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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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향리 군산 비둘기다방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첫 개 인전을 열게 된 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새 66년이 흘렀 으며 개인전을 49회 치러 왔다. 화가로서 작품 발표를 한다 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사건이며 손해는 없다는 것이 나의 경험을 통한 실증이랄 수 있다.
화가는 그야말로 준엄한 산령을 넘는 가시밭길과 같은 길 을 가는 것이다. 섣불리 대들어서도 안되며 안이하고 미온 적인 접근도 금물이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꼬챙이로 뚫어 야 하는 비장한 각오를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려운 번 뇌를 극복하면서 끊임없이 정진과 투쟁으로 일궈내는 희열 감이 없다면 도저히 기력을 찾지 못할 것이다. 예술과 작가 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소중한 극약 처방은 곧 희열감을 맛볼 때의 감동이며, 그것을 머금고 사는 예술가는 정년퇴임 이없다.
누가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을 땐 서슴지 않고 붓을 든 채 나의 생애를 다하는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삶의 지혜란 일손을 덜고 마음을 맑게 하여 고요 속에 사는 것이라고 했거늘 그 교훈을 실천하지 못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누적된 작업량을 본다. 그럴 때마다 화가 밀레가 말했던“화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강인한 의 지를 갖춰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 있던 그림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기름칠하는 과 정에서 벗겨지고 닳아빠진 부분과 물감의 균열을 보수하기에 바쁘다. 그러므로 작은 창조자의 손을 통하여 재생되는 그림들의 윤기는 곧 부 활이며 삶을 회복하는 한 줄기 빛이다. 그림밖에 모르고 앞만 보며 달 려 온 세월, 어느새 미수, 나이 88세의 고갯마루에 서서 발 아래 펼쳐지 는 구름을 바라보니 새삼 인생의 무게와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한 점 후회 없이 산다고 열심이었지만, 분주함이 욕심으로 치닫지는 않았는 지 이제 한층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는 내 소망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프 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이웃과 다정하게 살면서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 가는 것이다.
처음 그림을 시작하여 1976년 국전시대까지는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 한 그림을 그렸다. 1980년 파리 유학 시절 세계 미술의 흐름을 직접 돌 아보며 점차 사실의 재현에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다양 하게 모색하던 중, 1987년부터 청색누드와 붉은산을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순수미술을 추 종 퀘백미술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캐나다는 나에게 있어서 또 다 른 시작이었다.
1988년 캐나다에 가면서 알래스카를 경유할 때였다. 오후 5시쯤 태 양에 불타는 경관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석탄 같은 검은 산과 그 위의 빨간 산, 그리고 그 위의 하얀 만년설이 마치 캔버스 위에 그려진 작품 처럼 내 눈앞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그 감동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이후 그때 받은 강렬한 느낌은 붉은산의 판타지라는 작품의 모티브로 지금까지 재창조되고 있다. 평소에도 늘 최대한 단순화 하면서 남들과 차별화하는 작업을 하고자 고뇌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 래서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 뒤로 산의 구체 적이며 사실적인 묘사를 생략하며 나이프의 거친 질감으로 고유색을 파괴하며 보색대비로 과감하게 표현하여 원초적인 생명력을 느끼도록 하였다. 그 시대의 나를 사람들이 붉은산의 화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뉴욕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여서 나는 자주 차 를 몰고 국경을 넘어 아트 스튜던트 오브 뉴욕에서 공부하며 작업을 하 였는데, 어느날 작업실 창밖으로 맨하튼의 허름한 지붕이 운치가 있어 보여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게 되었는데 그 작품이 <맨하튼의 검은 지 붕>이다. 이 그림은 1992년 프랑스 살롱 도똔느에 <20세기 유명 작가 대전집>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1993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서울 근교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매우 극적이고 조형적인 도봉산의 형태에 반해 자주 야외 스케 치를 나갔다. 그 변화무쌍한 형태를 소재로 수많은 <붉은산의 판타지> 를 제작하게 되었다. 본래 산을 좋아하다 보니 국내 산은 물론 전 세계 의산을많이그렸다.
2000년경부터 붉은산이나 녹색산의 조형적 형태를 더욱 단순화시켜 강렬한 붉은색의 색면으로 처리하였다. 윤곽을 기하학적인 선으로 단 순화시킬수록 점차 사물의 본질에 가까워지며, 한 화면에 구상과 추상 이 어우러지며 다양한 변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또한 작업을 할 때 유 화나 아크릴 같은 서양재료를 쓰지만, 서양재료에서는 볼 수 없는 전통 한복에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색과 감성을 보여주려 노력하였다. 실제 2018년 예술의전당 구상대제전에 출품된 <신록의 찬가>를 본 사람들 이 마치 한복의 색같이 곱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2017년 성남아트센터 초대전에서 권동철 미술기자는 나의 그림을 보고“약동하는 생명, 자연의 신구상”이라는 주제로 주간한국에 글을 연 재하였다.
2015년에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에 최예태미술관 설립으로 그곳 에 1000호 작품을 비롯 53점이 소장되었다. 세잔이 고향의 평범한 생 빅투와루산을 30번 넘게 그려 훗날 입체파의 탄생을 가져왔듯이, 나도 <붉은산의 환타지>를 30년 넘게 시리즈로 그리고 있고, 지금도 변모하 며 진행 중이다.
나에게 산은 이제 단순한 산이 아니라 종교이며 산을 그리는 것이 아 니라 산을 살고 있는 듯하다. 어느덧 화업 66년 미수전을 앞두고 그동 안 내가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보며,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