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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 죽은 이의 간절한 내일——임병식 수필집 『아내의 저금통』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덕규

문학평론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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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거지만, 수필은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길지 않게 서술한 산문이다. 여기에는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일기나 특정한 타인만을 대상으로 해서 보내는 편지에서부터,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다루는 기사나 전기 같은 것, 예술품을 완상한 감상문, 여행 체험을 다룬 기행문, 어떤 개념에 대해 논증하는 철학론까지 두루 포함된다. 이런 범주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에서의 수필은 대체로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밝힌다는 점, 일상적인 소재를 철학적 사유로 확장한다는 점, 완결된 논증보다 탐색이나 성찰을 중시한다는 점,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한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 등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임병식의 수필집 『아내의 저금통』 또한 수필의 이런 범주와 성격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필집이다. 전체 4부로 나누었고 각 부마다 내용과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상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 성찰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글이 위주가 되고 있다는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소재의 면에서 볼 때는 ① 아내를 비롯해 동생 등 가족을 다룬 이야기, ② 수석이나 여행 등 취미에 관한 이야기, ③ 역사와 선인들에 대한 이야기, ④ 달라진 세태에 관한 이야기 등이 수필집 전체에 산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내는 놀라운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명절날과 부모님 제삿날은 물론이고 나와 아이들의 생일을 잊어버린 때가 없었다.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칠 기미라도 보이면 달력을 앞으로 가져오게 하여 어눌한 말투로 일일이 짚었다. 1/3밖에 남지 않은 뇌를 가지고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했다.(「생명 활동」 부분)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서랍장에서 저금통을 발견했다.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을 반쯤 잘라낸 용기이다. 이것을 중풍으로 쓰러진 아내가 몸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생각하여 쉽게 꺼내도록 한 것이다. 아내는 그동안 몸을 쓰지 못하고 심각하게 언어장애를 겪고 있었지만, 인지기능은 어느 정도 작동하여 용돈 관리를 해왔다.(「아내의 저금통」 부분)

 

‘22년간 투병한 아내를 간병한 체험’은 이 수필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생명 활동」 「아내의 저금통」 등은 이 체험을 설명한다. 아내는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온 이후 결국 사지를 쓰지 못하고 1/3의 뇌 활동만 하는 중환자로 지냈다. 처음 2년간은 병원에서 지냈으나 이후에는 집에서 직접 간병했다. 떠난 아내의 유품은 지난 22년간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내의 저금통’은 그 상황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적인 도구이다.
아내는 전신마비 상태에서도 뇌 활동을 살려 명절이나 생일을 기억하는 놀라운 정신력을 보였다. 투명한 돼지저금통에 든 돈을 보고 그게 얼마인지를 알아보며 용돈을 관리하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그 저금통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있던 아내의 영혼을 상징하는 도구인 셈이다. 문학작품은 추상적이거나 복잡하거나 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의 것을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물질로 묘사함으로써 상징의 효과를 얻는바 「아내의 저금통」에서 바로 이 저금통이 그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의 심성을 다듬어 주는 대상으로 일찍이 선인들은 수석을 생각했다. 수석을 애완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에 접근하여 삶의 품위와 존재론적 의미를 찾는 대상으로 여겼다. 돌 자체에 우주의 근원과 생명, 윤리와 도덕까지도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안타까운 단절」 부분)

 

나의 취미생활은 분재 가꾸기부터 시작했다. 모양이 좋아 사다 놓으면 가꾸는 솜씨가 없어 곧잘 죽어 나갔다. 그때마다 속이 상했다. 그래서 분재 대신 난 가꾸기로 방향을 틀었다. 한데 이것 역시도 두 해 이상을 가꾸지 못했다. 귀한 난을 선물 받거나 사서 집에 들여놓았는데 이파리가 시들어 버리면 속이 상했다.
그런데 수석은 그럴 염려가 없는 것이다. 흔히 사람의 지문을 두고 종생불변(終生不變)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도 변함이 없다. 거기다 수석은 역시 지문처럼 만인부동(萬人不同)이 아닌 만석부동(萬石不同)인 것이다.〔「나와 수석(壽石)」 부분〕

 

‘수석’은 이 수필집에 가장 돋보이는 소재의 하나다. ‘수석’은 ‘완상하는 돌’을 뜻한다. 그 돌은 당연히 단단한 재질에 보기 좋은 모양을 기본으로 삼는다. 좋아하다 보면 그 일에 전문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글쓴이의 취미는 분재로부터 시작해 ‘난’으로 옮겨갔다가 ‘수석’으로 바꾸고는, 이제 전문가나 다름없는 수석 애호가로 살고 있다. 글쓴이에게 수석은 시각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글쓴이에 따르면 수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의 것이자, ‘종생불변’이요 ‘만석부동’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수석이 어느 무엇 할 것 없이 45억 년, 지구의 역사와 같은 생명을 지닌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에 이른 사람답게 글쓴이는 수석을 통해 ‘삶의 품위와 존재론적 의미’를 뒤새김질하기도 한다. 즉, 수석을 통해 오랜 시간을 두고도 변함없이 그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묵언의 소중함이라는 인생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많은 돌 중에서 특별히 ‘내 눈앞’에 놓인 데서 오는 ‘인연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특이하게 아호가 지극히 자기를 낮추고 있는 점도 공통적이다. 이태준 선생의 호인 상허는 항상 비어 있다는 뜻대로 겸손을 강조하고 김용준의 근원은 애초에는 원숭이 원(猿) 자를 써서 근원인데, 이는 자신을 가리켜 ‘원숭이와 같이 미물에 가깝다’라고 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겸손과 겸양을 이름인지 알 만하다.(「선택」 부분)

 

그런 순간만은 그야말로 미동 없는 정적 상태가 된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파적(破寂)을 감지한다. 실제가 아닌 상상으로 너른 파초 잎에 매달린 물방울이 둔중하게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때처럼 극적인 변화를 상상한다.
그러다가 이윽고 정신을 깨워 번쩍 떠올려지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한 폭의 파적도(破寂圖), 다르게는 야묘도추(野猫盜雛)라 일컫는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실로 절묘하다. 들여다볼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정적과 파적」 부분)

 

이태준은 다수의 명작을 남긴 소설가다. 김용준은 화가이자 미술사학자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둘은 1930∼1940년대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깊이 교유했다. 이태준은 집은 ‘수연산방(壽硯山房)’, 김용준의 집은 ‘노시산방(老枾山房)’. 노시산방이라는 이름은 이태준이 그 집 뜰의 늙은 감나무를 보고 이른 말을 두고 김용준의 현판한 것이다. 두 사람은 1904년생 동갑이었고, 각각 『무서록(無序錄)』(1941), 『근원수필(近園隨筆)』(1948) 등 명수필집을 남긴 수필가이기도 했으며, 광복 이후 월북을 ‘선택’해 이북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대 이후 비참한 상태에 이르러 사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태준의 호는 ‘늘 비어 있다’는 의미의 ‘상허(相虛)’이고, 김용준의 호는 ‘근원(近園)’ 이전에 ‘원숭이에 가깝다’는 뜻의 ‘근원(近猿)’이었다. 이 둘의 호는 존경할 만한 업적을 남긴 두 사람이 얼마나 겸손하게 살려고 했는지를 알려주는 예다. 물론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는 역사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김득신은 조선 정조 때 도화서 화원으로 김홍도, 신윤복 등과 더불어 풍속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정적과 파적」에서 글쓴이는 병든 아내를 간병하다 한순간의 ‘파적’ 속에서 김득신의 그림 <파적도>를 떠올린다. 마당에 닭과 병아리들이 한가로이 노는 대낮에 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가다 늙은 주인이 휘두른 장죽에 돌아보며 놀라 내빼는 모양이라 ‘야묘도추’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그림이다. 한낮의 적막을 깨뜨리는 장면으로서 ‘파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들여다볼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살렸다. 도화서 화원들은 주로 임금이나 왕실 관련이나 국가 행사에 대한 그림을 그렸지만 특별히 임금에게 민간 생활을 보이기 위한 풍속도 같은 그림도 그려 바쳤다 한다. ‘야묘도추’ 그림을 본 임금 또한 ‘파적’의 의미를 새기며 한껏 미소를 지었을 법하다. 글쓴이는 이처럼 선인들의 행적이나 업적에서 뜻깊은 예를 들어 삶의 지혜를 설파한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선(線)이 많다. 그것은 정도가 부족해서도 아니되지만 지나쳐서도 아니 된다. 이를 두고 흔히 금도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어떤 선을 지키라는 말로 들린다. (중략) 도를 넘으면 문제가 된다. 이는 속담도 경계를 한다. ‘남 앞에서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데, 이렇듯 경계해야 하는 것을 문인이 소홀히 하면 어찌 될까. 생각 없이, 함부로 써서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넘지 말아야 할 선(線)」 부분〕

 

살아가면서 접한 말 중에 입안에 박하사탕을 문 듯이 상쾌하고 신선함이 느껴지는 표현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잊히지 않는 것이 몇 개가 있다. (중략) 그중 하나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不狂) 미치지 못한다(不及)는 말. (중략) 그 밖에도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오늘 내가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의 간절한 내일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것으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본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것도 있다.
거기다가 정신집중을 강조하는 ‘정신일도 하사불성(情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도 좌우명처럼 좋아한다. 정신을 한군데 집중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은 참으로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 아닌가 한다.(「뇌리에 꽂힌 명언 명구」 부분)

 

글쓴이는 이 책의 여러 수필에서 예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뜻을 밝혀두었다. 그와 관련해 들려주는 예화도 흥미로운 것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여수의 돌산대교 기념탑 건립을 축하하는 미당 서정주의 ‘축하시’, 임진왜란 때 왜군의 주요 주둔지가 된 남해군에 대해 쓴 소설가 정을병의 기고문 등은 ‘선을 넘은’ 표현을 해놓고 수정도 사과도 하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된 사례다. 이 책은 그 사례를 읽는 소소한 재미와 더불어 그로부터 얻는 교훈 또한 뜻깊게 제공한다. 글쓴이는 지나치게 세속의 영리를 쫓는 일, 예의 바르지 못함, 자기 편의를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등을 삼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이런 교훈과 관련해 글쓴이는 동서고금의 명언, 명구를 되새김질하며 사는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기도 한다. 글쓴이는 ‘채근담’, ‘명심보감’, ‘예기’ 등의 고전이나, 공자나 루소 같은 선인들을 통해 삶에서 새길 만한 명구를 찾아내 생생히 기억하고 서술한다. 거기에는 물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문장도 많을뿐더러 너무 익숙해서 도리어 쉽게 잊고 사는 것들도 적지 않다. 글쓴이는 어쩌면 세상을 사는 가장 인간다운 이치는 도리어 아주 상식적인 데 있지 않을까 하고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수필집에서처럼 ‘오늘 내가 의미 없이 보내는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의 간절한 내일이다’라는 정곡을 찌르는 ‘상식’ 같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몰각하고 살아있는 자로서의 책무를 게을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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