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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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뻑한 두 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어젯밤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네 시였다. 키보드 위를 떠돌던 손가락 끝은 피로로 묵직했다. 숱하게 나를 괴롭혀 온 우울과는 달랐다. 컴컴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컴퓨터 화면 속 엽편도 되지 못할 몇 줄의 문장을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백스페이스키를 연타했다. 텅 빈 파일의 하얀 배경을 보고 있자니, 흰 방에 갇힌 사람은 결국 미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건 글이라고 할 수 없어. 제대로 쓰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던 시간이 어느덧 일 년에 가까워졌다. 내 글이잖아. 내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그러나 나 자신을 타이르고 얼러도 책임감은 겨울을 앞둔 잎새처럼 힘없이 널브러졌다.
누군가 머리를 가르고 안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듯 두통이 번졌다. 적당한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내면 그만이잖아. 나는 꾀를 부릴 때면 의연하다 못해 뻔뻔했다. 그런데도 글 몇 줄을 짜내지 못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선생님의 표정이 실망으로 일그러지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약속한 원고는 장편의 제2장이었다. 며칠 집중하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분량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선생님의 조언 없이는 짤막한 문장조차 제대로 밀고 나가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늦더라도 괜찮으니 깊이 생각한 끝에 써야 한다며 선생님이 시간을 배려해 준 형편이었다.
이미 마감은 일주일을 넘겼다. 내가 내 안에서 끄집어낸 주인공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너도 나와 같은 처지야. 비좁은 세상에 갇혔구나. 나는 나조차 속였다. 아프거나 일정이 있었다는 핑계와 변명이 작가라는 타이틀 대신 나를 대표할 때까지.
─ 작가로서의 기본에 따라라. 발로 뛰어서 취재해. 이건 네 작품이지, 내가 써야 하는 글이 아니다.
선생님의 조언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어졌다. 그간 선생님에게 심화 과정을 배워 왔지만, 제자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겨우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여기가 한계라면 어떡하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보면 볼수록 내 글은 잘 쓴 작품과 동떨어진,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문장들의 집합체처럼 느껴졌다.
내가 붙들고 있는 장편 속의 동생은 어리숙하고 소심한 인물이었다. 누나는 그런 동생을 늘 챙기고 돌보는 든든한 아군이자 보호자였다. 그렇기에 동생은 가족이 흩어진 뒤로도 누나를 꾸준히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런 누나를 5년의 세월이 지난 뒤 가까스로 만났는데, 그 뒤부터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역량 부족이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면, 나태함에 절여진 내가 “이럴 바엔 안 쓰는 게 낫겠네, 뭐” 하고 비죽거렸다. 어느새 나는 선생님을 전적으로 의존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상 위에는 그때 적어 둔 취재 질문들이 구겨진 채 굴러다녔다. 장편을 마무리하면 그 작품으로 내 이름을 내밀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간 작가라며 떵떵거렸지만 뚜렷한 성과 하나 없이 움츠러들던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폼을 잡을 수 있었다.
몰려오는 졸음에 눈꺼풀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쉬지 않고 활자를 따라 움직인 동공의 힘이 풀려 시야가 부옇게 번졌다. 입가에 조소가 올랐다. 말이 되는 건가? 작가란 사람이 노력이나 생각 없이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서러워한다는 일이? 여러 개로 나뉜 자아가 제각기 속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작가는 무슨. 픽 비웃고 지나가는 놈들 뒤로, 오늘이라도 힘내자며 애써 격려하는 마지막 양심이 슬쩍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일어나 창문을 조금 열었다. 진눈깨비가 내려 습하고 찬 공기가 훅 불어왔다. 짙푸른 새벽의 하늘이 한층 더 컴컴해진 듯했다. 창틀에 기대어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뺨과 코끝이 시렸다.
문득 SNS에 올렸던 글이 떠올랐다. 두 주 전이었던가.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해 시집을 읽다 쓴 조각 글이었다. 이번 작품에 넣을 만한 괜찮은 문장을 꺼내고자 로그인했다. 알림 사이에 친구가 남긴 댓글이 눈에 띄었다.
-네 글에는 진정성이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곧 드러날 진부한 거짓말들의 연속 같아. 무엇보다 글에 대한 애정, 간절함 하나 없어 보이고.
내 안에서 거대한 종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핑 하고 어지러웠다. 짜증이 치밀었다. 나와 내 글을 낮잡아보는 태도가 괘씸했다.
-네가 말하는 진심이나 간절함이 뭔데? 그걸 왜 네가 판단하는 거야?
어릴 적에는 친구의 솔직함이 부러웠다. 느낀 그대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에 괜히 내가 풀이 죽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몇 년 가까이 연락 한 차례 제대로 주고받은 적 없는 사이에 불과했다. 나를 팔로우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혹여나 친구의 댓글을 보고 덩달아 내 글을 비웃을까 겁이 났다.
나는 껍데기만 작가인가, 내 글이 사람들 마음이나 어지럽히는 건가.
한편으로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결국 내 글을 읽은 독자로서 평을 남긴 셈이니까. 그런 따끔한 채찍질이 어쩌면 내게 더 필요한 일일지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괜찮은 문장은 찾지 못하고 SNS에서 빠져나왔다.
꾸벅꾸벅 졸다가 번쩍 눈을 떴다. 잠결에 키보드를 눌러 파일에 글자들이 마구잡이로 늘어져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몇 번이나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이렇게 계속 미루고 외면하면 어쩌자는 거지?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처음부터 원고를 톺아보았다.
분명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이었다. 겨우 이어 붙인 몇몇 문장조차 잠꼬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주먹을 쥔 채 책상을 쿵쿵 내리쳤다. 홧김에 문서를 저장하기를 누르는 것도 잊고 창을 닫았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꺼진 컴퓨터 모니터에 못난 내 모습이 비쳤
다. 컴퓨터 옆 작은 수납함에 꽂힌 커터칼로 눈길을 옮겼다. 정신을 차려야 돼. 합리화나 변명은 나를 더 망가뜨릴 뿐이야.
왼쪽 손목 위에 바코드처럼 마구잡이로 남은 칼자국 위로, 날을 밀어 올린 커터칼을 가져다 댔다. 커터칼을 잡은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블라인드 사이로 서서히 밝아지는 바깥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흐르는 눈물에 모든 것이 번져 보였다.
2
선생님은 빈 머그를 손으로 툭, 툭 소리 나게 두드렸다. 카페에 흐르는 진부한 가사의 발라드 사이로 선생님의 한숨 소리가 이질적으로 끼어들었다. 심해진 내 조울 증세와 덩달아 기복을 타 엉망진창으로 쓰인 원고에 대해 염려하는 거겠지. 선생님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접힌 종잇장 같았다.
“이 상태로 장편은 무리야.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단편을 쓰는 거야.”
“네?”
“줄거리의 개연성도 문제지만 몇 번이고 지적했던 부분들이 고쳐지지 않았어.”
“그동안 노력했어요. 핑계가 아니에요. 며칠 전까지 몸살 때문에 고생했고, 제가 왜 이렇게 고생하는지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직전까지 온 정신을 헤집던 공황장애가 막 가신 참이었다.
“그게 네 글을,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니?”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서러웠지만 선생님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핑곗거리가 있는 시간 외에는 핑곗거리가 없는 시간이었고, 핑곗거리가 없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땀이 어린 손으로 주머니 속 빈 약봉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게 그러쥐었다. 나는 무책임하게 굴었다. 선생님 앞에서 ‘노력했다, 아프다’는 말 뒤에 숨는 일이 고작이었다. 일 년 가까이 쌓아온 탑을 나는 보란 듯 무너뜨려야 할 처지였다.
“내게 글쓰기를 배우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란 마음가짐으로 집중해. 다시 말하지만 이건 네 글이다. 내 글이 아니야.”
울컥 설움이 들끓어 올랐다. 선생님이 정말 내 노력을 알아주고 있는 건지, 나를 믿는 건지, 한심하게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속으로 외쳤다.
이 와중에 서러움을 느끼다니. 나 자신이 아닌 선생님에게 책임을 옮기려 들다니. 스스로의 비겁함이 우스웠다. 후끈해지는 눈시울에는 눈물이 어렸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소재.
내가 써야 하는 나의 글.
선생님은 정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조언으로 하나의 단서를 일러주었다.
“이번 단편의 주인공은 남편의 사랑과 보호에 익숙해진 여자로 해 보는 게 어떠니? 아이를 품어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여자. 그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변명만을 찾다가 기어코 죽음을 택하게 되는 걸로.”
갑작스러웠다.
“그 이야기에 남에게 의존하는 너를 녹여내 봐. 당연하다는 듯 호의를 누리는 사람의 끝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어떻게 저의 모습이나 상황을 담을 수 있어요?”
“지금 너에겐 자전적 소재가 어울려. 네가 직접 겪는 일이니까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알 수 있잖아.”
“하지만 부부 생활은 제가 경험한 적 없는 일인걸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다. 한참을 기어 올라 겨우 정상을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아무런 보호구도 없이 무작정 뛰어내려야 하는 신세가 된 듯했다.
“의존적 삶의 폐단에 대해서라면, 그건 네가 누구보다 잘 아는 문제일 거야. 이번엔 따로 취재할 필요가 없어. 네가 겪고 있는 일이니까.”
선생님은 우수가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카페 앞에서 담배를 피운 손님이 막 곁을 스쳤고, 씁쓸한 향이 풍겼다.
“이번엔 너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해. 꾸미지 말고 사실적으로.”
나는 한층 더 부루퉁해졌다.
“아직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렇게 사랑받는 여자가 왜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여자가 왜 두려워하는지, 그 두려움이 어떻게 변명으로 이어지는지, 왜 결국 스스로 해치는 데까지 가는지.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남에게 의존하는 네가 보일 거야.”
선생님은 의존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 여자는 사랑을 의존으로 봤고, 그 의존을 지키기 위해 변명이 필요했던 거야.”
나는 내 치부를 외면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괜한 반발감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기껏 생각해낸 몇 마디의 말조차 뒤죽박죽 얽히고설켰다.
“남편은 여자를 위해 헌신했을 거야. 야근이라도 생겨 귀가 시간이 늦어져 피곤하다 해도 밀린 설거지와 빨래에 손을 대는 사람이었겠지.”
나는 양손을 책상 위에 탁 소리 나게 얹었다.
“그건 남자 쪽의 과한 헌신 아닌가요? 여자가 의존한다고 보기 어려운걸요.”
“일방적이지 않아. 여자도 남편을 사랑하니까 잃을 걸 두려워하는 거지.”
“그럼 그 이후의 이야기는요?”
“여자의 의지가 의존으로 기울어 가는 과정과 그 심리를 세세하게 그려내면서 너를 돌아보면 된다.”
푹신했던 카페의 의자가 딱딱하게 느껴질 때까지 꼼짝 않고 대화에 몰두했다.
“주인공이 왜 불안해하나요? 그렇게 사랑받는데 왜 자살하나요? 너무 큰 행복이 과분하다고 느껴지는 걸까요? 속되게 말해서 그건 저 자신을 기만하는 내용이 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 그걸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소설의 중심 과제로 삼자.”
내 두 눈썹에 힘이 들어갔다. 눈매가 사나워진 줄 모르고 선생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쓰란 거야? 그렇게 큰 행복이 주어진다면, 그저 기쁘게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 배운 적 없는 문제를 풀지 못해 주눅 든 꼬마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말았다.
“기차 시간이 다 됐지? 커피가 많이 남았네.”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차가운 커피가 담긴 컵을 쥐어 몇 모금 홀짝였다. 달콤하게 시작하다가 쓰게 남는 뒷맛. 남들이 모르기를 바랐던 나의 치부는 이미 한참 전 선생님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부모님에게, 애인에게, 친구에게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곤 도와달라며 호소하던 나 자신의 면면을.
예정보다 늦게 끝난 대화에 집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다시 끊어야 했다. 그조차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나는 신발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허겁지겁 달렸다. 출발 시간까지 1분을 남기고서야 탑승 준비 중인 기차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역을 출발하고 나서 나는 차창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생님과의 논의를 되짚어보았다. 가뜩이나 좁아진 시야에 비치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교차되는 생각에 머리가 번잡했다. 이번에도 쓰지 못한다면 어쩐지 글과 아득히, 그리고 영영 멀어질 것 같았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답답함에 몸이 열이 오르는가 싶더니 간질거리기까지 했다. 옆자리 사람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게 안마를 하는 척 콩콩 몸을 두드렸다.
익숙한 이름의 역에 다다를 때까지 한참이나 여자의 죽음을 합리화해야 했다. 아, 정말 모르겠다. 헤쳐도 헤쳐도 끝이 없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역에서 나오자 칼바람이 뺨을 베듯 스쳤다. 추위와 피로를 피해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십 분이 안 되는 가까운 거리를 운전해야 하는 기사의 눈길이 마뜩잖아 보였다.
남자와 주인공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품게 된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여자는 세 번 유산한다. 그럴수록 남자는 더 노골적으로 여자를 중심에 두고 움직였을 것이다.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보살피는 남편을 보며 여자는 죄책감을 가질 거야. 자신이 받은 애정과 사랑을 나약한 심신이 모두 망쳐버렸다고 느낄 테니까. 여자는 네 번째 임신에서 드디어 중기까지 안정을 유지한다. 배가 불러올수록 남편에게 받는 사랑과 도움도 커졌겠지. 그때 드러나는 불편하고 가혹한 진실. 여자는 본래 마음이 약했고, 태생적으로 몸이 좋지 않아 오래전부터 수면제를 복용했던 거야. 임신을 하게 되며 단약했지만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돌아온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겨우 얕은 잠에 들어도 태동에 눈을 뜨기를 반복하고, 결국 불면을 견디지 못한 여자가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수면제를 충동적으로 삼키게 된 거지. 그렇게 또다시 아이를 잃어버린다. 여자는 두려움에 빠진다. 여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사랑과 보호라는 따스한 빛 아래서 살아왔기에, 처음으로 그늘 아래의 서늘함을 느낀다. 약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분노, 그리고 미안함으로 온실처럼 자신을 감싸고 지켜주던 사랑마저 무너져 버릴까 봐…. 그럴수록 그녀는 남편의 애정에 더 갈급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향해 몸을 던지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나?
“여기죠? 안 내려요?”
기사가 속도를 낸 걸까?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진작 식은 줄만 알았던 외투 주머니 속 핫팩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3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늦었네, 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엄마, 나 왔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요 며칠은 더더욱 그랬다. 아마 다툰 것이 침묵의 이유겠지. 나흘 전이었다. 친할머니의 제사가 코앞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일로 바빴고, 내 상황 또한 여유롭지 못했다. 물론 어떻게든 도울 수 있었고, 그래야 했다. 하지만 돌연 찾아온 몸살에 일상이 망가졌다. 덩달아 하루에 두 번씩 공황장애가 찾아와 정신과와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한 움큼씩 집어먹고 하루를 견뎠다. 설령 내가 어떻게든 엄마를 도왔더라도, 실수 한 번 했다가는 짜증을 냈을걸. 엄마랑 있으면 숨이 막혔다. 마주 보고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방문을 닫았다. 방금 건조한 인사 한마디를 내뱉던 순간 스쳤던 엄마의 얼굴이 뒤늦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잘 챙기지 않아 마른 편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핼쑥해 보였다.
나 정말 이기적이구나.
까슬까슬하게 튼 입술을 혀로 건드렸다. 기차 시간을 맞추느라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묵직한 아랫배보다 갑작스레 찾아온 갈증이 더 신경 쓰였다. 이러다가 또 싸우면 어떡하지? 소설을 쓰는 데 집중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괜히 감정 소모하지 말자. 상처받는 건 나잖아. 늘 그랬잖아.
화장실에서 나오자 엄마가 무어라 말을 붙이려는 듯했다. 이번에는 내가 모른 척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닫자마자 맞은편에 놓인 전신거울에 비친 행색이 여느 때보다 초췌했다. 내 잘못 아니야. 내 책임이 아니었어. 나는…, 나는. 미끄러지듯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울 속 웅크린 또 다른 내가 픽, 비웃음을 흘렸다.
─함유담, 오늘도 변명과 핑계만 둘러댔네. 선생님께 듣고 배운 게 몇 년인데 깨달은 게 고작 그것뿐이야?
“조용히 해! 내가 언제 변명을 했어?”
─너, 사실 오늘 선생님께 보여드렸던 원고도 피곤하다고, 잘 써지지 않는다고 미루고 미뤘지? 가는 길에 급하게 기차에서 쓴 거 다 알아. 그 와중에 배는 고프다고 아버지 카드로 밥까지 챙겨 먹고, 되게 여유롭다. 아니, 뻔뻔한 건가?
심장이 밭게 뛰기 시작했다.
“네가 뭘 알아? 미룬 거 아냐.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어떻게든 앉아 있었잖아.”
─아, 기억해. 키보드 좀 두드리나 했더니, 집중 안 된다고 인터넷이나 뒤적거렸지? 전원은 끄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워 버린 것까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컴퓨터 본체의 팬이 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뭘 깨우쳤어? 더 나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 대신 둘러댈 그럴싸한 핑곗거리?
“그만, 그만하라고!”
그때 문 건너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무슨 일 있어?”
나는 당장 거울을 부술 듯 주먹을 치켜든 내 모습을 바라보며 가삐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아무 일 없어요.”
“저녁은 안 먹니?”
“괜찮아요.”
나는 허물을 벗듯 외투를 벗어 바닥에 놓았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문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4
피로를 이기지 못해 그대로 의자에 기대앉은 채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 자신과의 하잘것없는 싸움 이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파일을 열었다. 기차 안에서 쓴 메모와 카페에서 받아 적은 선생님의 말들이 화면 위에 뒤섞여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던 중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단지 ‘잘’ 써서 인정받겠다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나는 인정해야 했다. 노력한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방패 삼아 숨고 물러난 나 자신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프고 지쳤던 건 맞지만, 솔직해지자면 그걸 방패 삼아 숨고 피했다. 나는 많은 시간을 글에 쏟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감추고 외면하는 데 써 왔다. 이제는 그 사실까지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당장 선생님이 곁에 없으니, 나눈 이야기들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몇몇 말들은 각인처럼 남아 글을 쓰는 내내 떠올랐다.
하얀 도화지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쉬웠다. 도화지를 가졌다는 건 무엇이든 칠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내가 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멋있어 보이는 색을 되는 대로 얹는다고 그림이 되지는 않았다. 문장도 같았다. 문장을 고친다는 건 보기 좋게 덧칠하는 일이 아니라, 더는 나를 숨기지 않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말한 ‘솔직함’은 서투름의 면죄부가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에 가까웠다.
나는 커서를 옮겨 쓰기 시작했다.
당연한 듯 호의를 누리는 사람.
그리고 사랑을 갈구하는 방식이 끝내 의존이 되고 마는 사람.
5
아이가 크면 클수록 그녀의 잠은 더 얕아졌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새벽이었고, 다시 눈을 감았다 떠도 여전히 새벽이었다.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그녀는 안도했지만 곧바로 겁이 났다. 평온함과 겁이 한몸처럼 붙어 있어 떼어내기 어려웠다. 그녀는 ‘이번에는 괜찮을 거야’라고 되뇌었지만, 그 말이 기도인지 변명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수면제를 먹고 아이를 잃은 뒤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슬픔보다 들키는 일이었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신이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두려웠다. 아이를 잃은 여자이기보다, 그 사랑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그래서 그녀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몸이 갑자기 나빠졌다거나, 원래 위험한 임신이었다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할 말을 먼저 찾았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깊이 자신을 미워했다.
남자의 잠든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따뜻한 방의 온기와 달리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이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 순간 그녀가 붙든 결론은 이상하리만치 단순했다. 더 들키기 전에, 더 비참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약은 작은 병에 담겨 있었다. 뚜껑을 돌릴 때 플라스틱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몇 초 동안 손을 움직였다. 약을 손바닥에 올려놓고도 한참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보호받는 순간을 되돌아볼 때마다 그녀는 더 작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약을 삼켰다. 목구멍이 뜨거웠지만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이 곧바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결과보다, 그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었는지 몰랐다.
저물녘 빛이 천천히 사라졌다. 현관문의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늘 그랬듯 양손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딸기를 한가득 들고 돌아왔을 터였다.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가까워지는 남자의 목소리와 얼굴이 점차 흐려졌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온점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이 따가워 몇 번 깜빡였다.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자 축축한 물기가 남았다. 가슴 한쪽이 비워진 듯 가벼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살짝 열었다. 커튼이 젖혀진 베란다 창 너머로 익숙한 나무가 보였다. 가지 위로 작은 새 한 마리가 금방 날아갈 듯 어설프게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거실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입안에서 걸리던 말이 조용히 새어 나왔다. 엄마라고 부르면 다시 어린애처럼 굴 것 같았다. 변명하고 기대고, 끝내는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는 쪽으로 미끄러질 것 같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조금 멀고 낯설었지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함부로 무르지 않게 만드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낯선 호칭이 귀에 걸린 사람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무어라 가늠하려는 듯한 시선만 오래 내게 머물렀다.
나는 그 눈을 마주 보았다. 어떤 설명도,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해받지 못한다 해도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깨 부근이 뻐근했다. 무언가 밀려 나오는 듯했다. 소설 한 편을 끝까지 쓰는 일처럼, 이 낯선 감각 또한 끝까지 견뎌 내 것이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