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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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름 아닌 마리오네트라니, 어리둥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행지에서 본 꼭두각시 인형이 떠올랐다. 여러 개 줄로 조종하는 그것은 턱 관절이 빠지며 커다랗게 입이 벌어질 때는 우스꽝스러운 한편, 어딘지 공허한 표정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엄연한 이름을 두고 그리 지칭하다니, 별일이었다. 그새 별명이라도 생겼나 여기며 지켜보기로 했다.
수업이 끝난 뒤, 몇 사람이 다가와 매주 왜 그렇게 쌩하니 가냐며 말을 걸었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는 거였다. 얼떨결에 점심 먹고 카페까지 갔다. 그들은 오랜 친구처럼 서로 이름을 부르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일상이며 가족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이어지는 대화에 공감하거나 맞장구 칠 수도 없었다. 한마디쯤 끼려고 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이 치고 들어와 번번이 타이밍을 놓치고 우물쭈물거렸다. 단념하고 커피를 마시는 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이런 자리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고 굳이 동화되려 애쓸 필요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 본 적 없었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야 했다.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내 자리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데 누군가 우리 신입도 마리오네트구나, 한마디 했다. 잔뜩 신이 난 동시에 말꼬리가 올라가며 짓궂은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약속이라도 했는지 모두 똑같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누구 하나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그녀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 말을 벼르고 있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고 같이 점심 먹자고 한 목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있었다니, 썩 유쾌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지 않을뿐더러 나도 모르는 새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마리오네트라고 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신도시로 이사 온 뒤 처음 만나는 동네 주민들이었다. 의미는 알 수 없지만 환영 인사의 일종으로 받아들였다. 곧 그들이 현재의 나를 판단하는 기준인 것을 당장은 눈치채지 못했다.
내 인생이 사고 전과 후로 나뉘어졌다. 도끼날에 쪼개진 장작보다 분명하고 확연하게 달라진 일상과 맞닥뜨린 나는 갈 바를 잡지 못했다. 그 전까지 인생이 방향을 틀거나 흔들릴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미 출발했고 옆으로 새거나 후퇴하는 일 없이 오롯이 나아갔다. 습관인지 성실인지 아니면 강박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계기도 없었다. 출근하듯 날마다 자리에 앉았던 나는 고장 난 로봇 청소기나 다름없어졌다. 발에 채이고 걸리적거리는 쓸모없는 물건과 다르지 않았다. 사고를 겪고서야 느닷없이 변수가 끼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만 아연할 뿐이었다.
신도시로 이사를 결심한 건 전적으로 사고 때문이라고 봐도 좋았다. 세월과 함께 낡기도 했지만 넘어져 다친 집에서 태연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또 집 관리하는 부담 없이 단출하게 살 필요를 느끼기도 했다. 인프라 잘 갖춰진 곳에서의 편리한 생활을 상상하자 당장 몸이 꿈틀댔다.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함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고 나는 다시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야 했다.
오래된 집은 현관을 나서면 다섯 개 계단 아래로 마당이 이어지는 주택이었다. 잡초를 감당하지 못해 나무와 화초를 심은 가장자리를 제외하고 마당에 판석을 깔고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했다. 긴 세월 하루에도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려 보폭은 일정했고 다리 근육도 단단해 세상없는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단은 종이 위 그림과 다르지 않아 눈감고 춤출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생활의 단조로움을 방지하기 위해 그려 넣은 센스 넘치는 장치라고 여기며 콩콩 뛰어오르곤 했다. 그런 계단을 내려가다 발목을 접질려 마당으로 엎어졌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깜빡 의식을 놓쳤던가. 다음 순간, 나는 판석과 시멘트 마당에 패대기쳐진 개구리보다 납작하게 뻗어 있었다. 신음 같은 울음이 흘러나왔다. 고통과 두려움이 몰려와서인지 알 수 없었다. 발목과 손목뿐 아니라 전신의 아픔과 눈물 고인 볼이 쓰리고 욱신거려서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두려운 탓일 수도 있었다.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계단의 배신이었다. 아니, 계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멋대로 해석했을 뿐 배신으로 몰아붙이다니, 가당찮았다.
이발하고 돌아오던 남편이 개구리 상태의 나를 발견했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마당에 뻗어 있는 나를 보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더니 심심했나 보다 싶어 풋,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것이다. 왜 그래, 소리치며 달려올 때는 반가운 나머지 흐느껴 울었다. 나를 일으키고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여전히 웃다 놀랄 뿐 아니라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어이없어 했다. 병원으로 실려가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왼쪽 발목은 반 깁스를 하고 오른쪽 손목뼈가 박하사탕처럼 네댓 조각으로 부러진 게 확인되어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팔에 영구 장애가 남는다고 해 다음날로 스케줄을 잡았다. 넘어지는 바람에 점심도 먹지 못한 데다 수술을 위해 다음날 아침까지 금식이 이어졌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꿈인지 생신지 얼떨떨한 상태로 수술을 기다렸다.
다음 날 오후 늦게 전신마취를 하고 핀을 박아 부러진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았지만 당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오른팔은 붕대를 칭칭 감아 손가락 끝만 보였고 뼈가 붙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다는 직감이 왔다. 당장 밥 먹는 것부터 문제였다. 입원 일주일 동안 포크로 왼손 식사를 했고 테이블을 펴거나 복도에 식판을 내놓을 수조차 없었다. 통합간병시스템 덕에 머리까지 감을 수 있었지만 화장실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절룩거리고 목에 깁스 보호대를 걸긴 했어도 혼자 옷을 내리고 올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 손으로 뒤처리하기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고 볼일이 끝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병원 생활은 답답하고 무료했다. 시간 맞춰 밥 먹고 약만 챙기는 내가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멍하니 앉아 있어 본 적이 없던 나는 사고와 함께 찾아온 시간의 공백을 견디는 것이 여간 낯설지 않았다. 입원 준비를 하면서 책과 돋보기와 노트북을 챙겨 넣자 남편이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어디 휴가 가냐고 했다. 역시나 한 손으로 책 넘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노트북은 더욱 꺼낼 수 없었다. 병실에서는 먹고 자는 것이 최선이었다. 약 기운에 졸다 깨길 반복했고 시간이 고무줄보다 길게 늘어졌다. 침대를 세우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병실 사람들과 서로 수술하게 된 이야기도 나눴다. 불현듯 마당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계단이 눈앞을 막아서며 위협했다.
입원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하나같이 나이도 드는데 이제 아파트로 옮겨 편하게 살라 성화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웃이 집 팔 의향이 없는지 물은 적이 있었다. 두 집 정원을 연결해 카페를 열고 싶다는 거였다. 갑갑할 때마다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책을 읽거나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도 머리 식힐 겸 마당에 나가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밤에도 쉬 잠들지 못했고 중간에 깨면 병실을 나갔다. 어슴푸레한 복도를 한쪽 발은 반 깁스를 하고 붕대 감은 팔을 팔걸이에 건 채 링거 폴대를 밀며 한발 한발 느리게 걸었다. 걷다 멈춰서면 검은 유리에 한쪽 발과 팔을 싸매고 상처 밴드가 얼굴 반쪽을 뒤덮은 기괴한 여자를 마주보았다.
퇴원 당일, 의사가 사람이나 물건에 부딪히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꼭 혼자 잘 것을 당부했다. 실제 잠결에 팔을 깔아뭉갠 사례가 있었다며 웃었다. 그리고 뼈가 붙고 재활 치료가 끝나도 예전 그 팔이 아니라고 선고했다.
실밥을 뽑고 수술 부위가 얼추 아물어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두어 달 만에 근육 빠진 팔이 앙상한 나뭇가지같이 변해 있었다. 오른손 식사를 시작했지만 손목이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힘이 없어 수저를 놓쳤다. 물리치료사가 아직 뼈가 붙지 않았다고, 확인 없이 치료했다 다시 부러진 사례도 있다고 했다. 손가락을 꺾고 각도를 높여 가며 팔과 손목을 돌려나갔다. 집에서는 테니스공을 들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운동을 했다. 뼈가 붙는 정도를 고려해 치료 강도를 높였고 점점 손을 쓸 수 있었다.
의사가 엑스레이와 손 움직임을 확인한 뒤 재활 치료도 끝났다고 선언했다. 병원을 나서며 손목에 남은 지네와 흡사한 십 센티미터 흉터를 어루만졌다. 발목은 진작 나았고 얼굴에는 시멘트에 찧은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새 몇 달이 지났지만 매사 조심스러웠다. 자칫 넘어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알아 누군가 삐끗하거나 급히 달려가는 것만 봐도 소스라치며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전보다 걸음이 느려졌고 건널목 신호등 숫자가 깜빡이면 아예 뛰기를 포기했다.
거실 소파 아래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퇴원 후 줄곧 그랬다.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허사였다. 치료 중간에도 수없이 마음을 추슬렀지만 앉지 못했다. 노트북을 켜고 들여다보았지만 집중은커녕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책도 읽고 싶지 않았고 앉으면 뭐 하나 싶은 회의감에 방을 나오기 일쑤였다. 사고 후 의욕을 잃은 나는 애써 지난 시간을 반추했다. 날마다 자리에 앉았지만 변변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현재를 자각할 뿐이었다. 발이 저려 소파로 올라앉았다. 몇 달 동안 지킨 자리였다. 전에는 가족이 모이면 둘러앉거나 피곤할 때 팔걸이를 베고 잠깐 눈을 붙이던 곳이었다. 나는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아파트는 집 밖을 신경 쓰거나 손 갈 일도 없었고 문만 닫으면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었다. 주변 인프라 덕에 필요한 것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편리성도 좋지만 새로운 환경이 자극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앉지 못했다. 재활치료가 끝나면서 더 이상 고장 난 로봇 청소기 신세도 아니었고 거치적거리지도 않았다. 일상을 회복해 소소한 집안일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앉지 못할 뿐이었다. 이사를 앞두고 한 약속이 있었고 그러려면 앉아야 했다. 앉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오래된 주택에 있던 내 방 책상과 책꽂이와 잡동사니 가득한 서랍장 위치까지 아파트로 고스란히 옮겨 앉았다. 아침이면 노트북부터 켜지만 어느새 딴짓을 했다. 인터넷 기사를 읽고 영상을 보고 쇼핑몰을 들락거리고 생필품과 식재료를 고르느라 눈이 침침하도록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사하기 전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전에도 온라인 쇼핑을 했지만 최대한 신속했다. 사고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면서부터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가며 견디던 일상이 어느새 짙은 물감처럼 온몸에 배어 있었다. 점점 책 보기도 어려웠다. 돋보기를 써도 작은 글씨를 오래 보면 여간 눈이 피로하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도 아른거려 큰 모니터를 설치했다. 밖에서 꽃이 폈다 지고 천둥 번개가 쳐도 흐트러짐 없던 집중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허망하곤 했다. 앉아 있었지만 결코 앉았다고 할 수 없었다.
앉기 위해서는 리듬 회복이 급선무였다.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고 책을 펴지만 이내 좀이 쑤셨다. 읽어도 재미없는데다 글자 하나하나가 모래알보다 서걱대 삼키기 어려웠다. 내면으로 녹아든 것들을 재료 삼아 실을 뽑아 올려야 했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이미 황폐해 불임이 된 것을 감지했다. 따분하고 지루한 나머지 입안 것을 게우는 몸부림으로 연신 엉덩이를 들썩였다. 몰두는커녕, 이내 기사와 영상과 쇼핑몰에 빠져들었다. 한번 보기 시작하자 그런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이며 가방 따위 구경도 재미있었다. 앉아 있지만 전과는 다른 세계에 가 있었다. 순간순간 시간만 죽인다는 자책감이 몰려오지만 이내 잊었다. 오후나절에는 산책도 나갔다.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머릿속을 궁굴려야 했지만 허적허적 걷기만 했다. 나는 빈 쭉정이였다. 걷다 우두커니 서 있거나 하늘도 보았다. 내가 왜 이럴까, 골똘해도 딱히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굳이 찾아야 하나 싶으면서 막연한 회의감조차 귀찮고 성가셨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이 단숨에 몸과 마음을 휩쌌다. 사실, 이대로 산다고 안 될 건 없었다.
걷다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멈췄다. 뒷짐을 진 채 가로수에 걸린 주민자치센터 수강생 모집 현수막 내용을 훑어나갔다. 앉아 있느라 가까이하지 못했던 세상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현수막에는 요가와 라인댄스 같은 운동을 비롯해 스케치와 민화와 노래교실과 기타와 하모니카뿐 아니라 영어회화와 팝송교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었다. 동사무소가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이 바뀌면서 서류를 떼던 곳에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가득한 공간으로 진화한 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통합예약시스템에서 회원가입부터 했다. 분기별로 개설되는 강좌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사주명리학과 행운타로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고 요가, 라인댄스, 필라테스는 인기가 많은지 전부 접수 마감 상태였다. 딱히 흥미를 느끼거나 끌리는 강좌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운동이나 취미 같은 여가 활동도 없이 오로지 앉아 있기만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를 끼고 흥얼거리던 기억이 있어 팝송교실 수강 신청을 마쳤다. 어차피 앉지 못한다면 한번쯤 몰랐던 세상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개강 첫날, 수강생들이 강의실로 들어서며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눴다. 오십대 몇 명에 대부분이 육십대 초중반이었고 두엇 정도는 칠십이 넘어 보였다. 출석 체크하는 강사도 일일이 반가움을 표하고 이번 학기도 수강 신청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새로 등록한 세 사람에게 자기소개 시간이 주어졌고 프로그램 참여 목적을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 얼마 전 이사 왔고 하루 빨리 이 도시에 뿌리 내리고 싶다고 했다. 잘 왔어요,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박수가 뒤따랐다. 머쓱한 나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첫 식사에 단단히 코가 꿰였는지 수업 후 매번 또래들에게 붙잡혔다. 오래 살던 동네 이웃과도 인사나 하는 정도였지 식사나 차를 나누는 교류는 잦지 않았다. 약속이 있다거나 바쁘다고 핑계조차 대지 못하고 어느새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며 수다 속에 앉아 있었다.
“나 좀 봐, 나 어때?”
연속 두 주 결석한 여자가 턱을 치켜들며 얼굴을 내밀었다. 연신 좌우로 눈을 굴리는 폼이 어딘지 우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입을 꼬물거리는 게 잔뜩 기대에 부푼 나머지 어서 반응을 보여 달라 재촉하고 있었다.
“훨씬 젊어졌어. 팔자 주름이랑 마리오네트 어디 갔대.”
“울쎄라야 써마지야. 뭐 한 거야?”
“보톡스야 필러야?”
늘어졌던 피부가 전체적으로 탄력이 생겼다, 멍 빠지니까 너무 자연스럽다, 감쪽같다, 진작 하지 그랬어, 인상이 달라졌다, 역시 돈 들이니까 젊어졌다는 소리가 연달아 따라 나왔다. 한 사람씩 입을 열 때마다 여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상 모든 말이 감탄사였다. 여자는 피부과에서 주사에다 시술을 받은 모양이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보톡스나 필러 같은 것이 전부였다. 지인들 모임에 참석해 무슨 주사를 맞았네, 시술했네 하는 소리도 가끔 듣긴 했다. 흘깃 여자를 보았지만 원래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눈썰미가 없거나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화제는 내내 여자의 피부과 방문기와 미용 관련 내용이 전부였다. 나이 들면 피부 리프팅은 필수다, 어느 병원이 뭘 잘한다, 어딜 좀 보완하면 좋겠다며 서로 의견을 나눴다. 간간이 나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듣기만 했다. 화제를 돌리거나 진지하게 나오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나 싶은 회의감이 머리를 치고 올라왔다. 먼저 집에 갈 궁리를 하면서도 꼼짝달싹 못했고 넋이 빠진 듯 여자들에게 귀 기울였다. 어떻게 하면 젊음을 회복할지, 어떻게 하면 늙음을 늦출지가 그녀들 최대 관심사였다. 여자들과 내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늙었다고 단정하기 이르지만 더 이상 젊은 것도 아니었다. 함께 둘러앉은 여자들이 그 세월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현장을 묵묵히 목도할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관심 두지 않았던 세상과 맞닥뜨린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얼굴들을 살폈다. 팝송교실부터 몇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다섯 여자 모두 화장이며 옷차림까지 한껏 꾸민 것도 그제야 알았다. 첫 식사 후 두어 달이 지났다. 늘 세상과 사람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까이 있는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들은 피부에 윤기가 돌고 잡티 하나 찾아볼 수 없이 깨끗했다. 그들과 내가 비슷하기는커녕 전혀 딴판일 것이다. 내 얼굴에는 잡티가 뒤덮여 지치고 까칠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미용에도 관심이 없어 외출할 일이 생겨 화장을 해도 제대로 표도 나지 않았다. 그들은 피부 관리는 물론 화장품도 꼼꼼하게 갖추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대화를 종합해 보면 모두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관리와 시술을 받은 것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한다고 했고 휴대전화 프로그램 업데이트하듯 외모도 손을 봐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한번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라는 거였다. 한마디도 참여하지 못하는 나는 세상 밖을 떠돌다 돌아왔거나 혼자 고립된 채 살아온 기분이었다.
“자기도 신경 좀 써. 우릴 보고도 모르겠어?”
그들이 나를 자기라고 호칭했다. 우리는 함께 팝송교실에 다니고 식사하며 스스럼없는 사이라는 친밀함의 표현이었다. 나 역시 화답해야 했지만 사용한 적 없는 호칭이 거북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칫 다른 세계로 끌려 들어가리란 예감에 완강하게 입술을 물고 버텼다. 그것이 현재의 나를 규정하는 호칭이라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했다.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깨끗한 피부에 주름 없이 팽팽한 얼굴이 쌍둥이로 보였다. 나보다 한참 아래로 느껴졌다. 모두 비슷한 또래임을 상기하다 도리질을 했다. 그들이 눈짓으로 대답을 종용했지만 나는 뭘 어떻게 신경 써야 하는지 물을 수도, 알았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스킨로션을 바른 다음 영양크림을 듬뿍 찍었다. 양손으로 볼을 마사지하다 힘이 풀렸다. 얼굴을 뒤덮은 잡티가 유난히 도드라져 인상을 찌푸렸다. 거울 속 나는 영락없이 팝송교실 여자들 큰언니였다. 처진 눈꼬리가 시야를 가릴 지경이었고 벌에 쏘인 듯 눈밑 지방이 볼록해 보 기 거북했다. 그뿐 아니었다.
“이게 뭐야?”
중얼거리며 거울 앞으로 다가앉았다. 전체적으로 피부가 처진 데다 팔자주름과 함께 입 옆으로 조각도로 새겼는지 깊은 골이 잡혀 있었다. 때문에 나이 들어 보이는 데다 울기 직전의 우울한 표정이었다. 몰랐던 얼굴을 발견한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언제 이렇게 됐대. 아침저녁 거울 앞에 앉았으면서 무엇을 바라보느라 얼굴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의문했다. 유독 입 옆이 거슬렸다. 영양크림을 덧바르고 볼을 따라 피부를 쓸어 올리자 사라졌던 주름이 손을 떼면 메롱 혀 내밀고 조롱하며 다시 돌아왔다. 내 자리라는 선언이었다.
저녁 내내 인터넷에서 입가 주름을 검색했다. 그제야 팝송교실 여자들이 나를 마리오네트라고 한 의미를 알았다. 동시에 유럽 여행에서 본 목각 인형이 떠올랐다. 줄로 조종하는 그것은 입이 벌어졌다 닫히면 양쪽으로 깊은 주름 모양이 잡혔다. 나이 들면 생기는 입가 주름이 마리오네트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는 내용을 읽으며 숨을 골랐다. 내가 마리오네트인 걸 확인할 때마다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주름을 잡아낸 눈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여자들은 이미 여러 종류 시술과 관리를 받았다고 했으니 마리오네트 주름을 없앤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엊그제 일이 생각나 단체 대화방에 물어보려다 단념했다.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자존심만은 아니었다. 여태 추구하던 것도 외면하고 갑자기 외모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치관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인터넷에는 마리오네트주름 관리법이 넘쳤다. 입 주변 피부를 귀 쪽으로 쓸어 올리고 목 림프 순환 마사지를 해 주라는 유튜브 영상을 따라 해 보았다. 깊은 주름은 실 리프팅이나 안면 풀 거상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하는 의사도 있었다. 10년은 젊어진다는 자극적인 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당장 달려가 마리오네트에서 벗어나고 싶다가도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팝송교실에서는 여자들을 살폈다.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면서도 입가만 눈에 들어왔다. 다리미로 다렸는지 팽팽하다 못해 입꼬리가 딸려 올라간 것이 영화 캐릭터 조크같이 부자연스러운 사람부터 희미하게 주름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기사가 주름 관리용 크림부터 얼굴과 림프 마사지에 사용하는 미용기구를 배달해 주었다. 화장대에는 점점 물건이 늘어났지만 정작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 것만 사면 곧바로 효과를 볼 줄 알았지만 관리도 습관이며 자신에 대한 애정 없이는 힘들다는 생각에 맥이 빠졌다. 그런 애정이나 습관이 들 겨를 또한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앉아만 있었다.
며칠째 문자메시지를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당장 답을 해야 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사 잘했냐고, 원고청탁서는 이메일로 보냈고 마감 날짜 꼭 지켜달라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목이 눌렸다. 아직 제대로 구상도 못한 상태라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리라는 압박감에 세상에서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자리에 앉지만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읽다 보면 축포가 터지듯 반짝 떠오르기 마련이었지만 나는 사막보다 건조했다. 눈이 침침해 자주 돋보기를 벗었고 수시로 뒷목이 뻐근해 스트레칭을 했다. 물줄기가 터지길 고대하며 사막을 파고 또 파야 했다. 미련해도 방법은 그뿐이었다.
모티프를 잡고 얼개를 짜기 위해 엉덩이를 떼지 않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탈고할 때까지 집을 나가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여겼다. 팝송교실 수업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다. 동네 여자들과 점심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이 아주 싫지는 않았다. 그들과 동화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미처 몰랐던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벌써 신도시 주민으로 정착한 성싶었다. 그들을 통해 세상살이를 경험하는 중이기도 했다. 단체 대화방에 결석한다고 메시지를 남기자 무슨 일이냐고, 어디 아프냐는 염려가 줄줄이 따라 올라왔다. 시간 되면 같이 점심 먹자고 했지만 더 이상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
한글 프로그램을 열었지만 불러올 파일이 없었다. 다치기 전 쓰다 만 작품이 여럿 있긴 했다. 그중에서 한편 골라 마감 날짜를 지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불러오기부터 해야 했지만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나는 그다지 조급하지 않았고 막막하거나 쫓기는 심정도 아니었다. 전에는 깜빡이는 커서만 봐도 채찍질당한 듯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의욕이 없었다. 뚫어져라 커서를 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사 후에도 시간만 죽인 것이 새삼 실감났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갔고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좀이 쑤셔 몸을 들썩였다. 인터넷 기사를 읽고 영상을 볼 때는 지루한 줄도 몰랐다. 탁상달력에 원고 마감 날짜를 표시하며 인터넷과 영상을 끊어야 한다던 다짐조차 까맣게 잊었다. 차라리 팝송교실에 나가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 점심 식사 장소로 가겠다고 했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며 발꿈치가 들썩이고 몸이 달떴다. 가만가만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앉고 싶긴 한 걸까. 쓸 생각이 있긴 할까.
“점심 먹고 상담받으러 가는데 같이 가. 자기도 관리 좀 하면 좋을 텐데.”
여자 음성에서 간곡한 권유와 함께 내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심성도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재촉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노력도 없이 적나라하게 세월을 노출하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빛이었다. 이대로는 모임에 속할 수 없다는 무언의 압력으로도 다가왔다. 딱 자르면 분위기를 망칠 거였고 호응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녀들과 다르다는, 나에게는 내 일이 있다는 밑바닥 의식이 꿈틀대는지도 몰랐다. 마리오네트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고, 그런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얼버무렸다.
“자신에게 애정을 좀 가져 봐. 관리도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질책을 들으며 가볍게 웃었다. 나와는 다름을 증명하려는지 턱을 치켜들며 어깨도 으쓱해 보였다. 더없는 자존감의 표현이었다. 이날 이때껏 자존감을 지키며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그녀의 태도에 마음 어딘가가 긁혔다. 그렇다고 외모를 가꾸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냐고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녀를 따라나선다면 더욱 자존심 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외모 관리와 자존심이 무슨 관계인지 모호했다. 잘 관리된 외모가 최고의 간판이며 곧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보였다. 젊어 보이려 애쓰는 것도 본능의 일종일까. 나는 주목받지 못해도 날마다 자리에 앉아 읽고 쓰는 걸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것에서 멀어지면서 정말 즐거움이었는지, 집착은 아니었는지 가끔, 의구심이 끼어들었다. 외모를 가꾸며 산 덕인지 그녀들은 활력이 넘쳤다. 나와는 딴판이었다. 비난받을 일도 아니거니와 내게 그럴 자격이 없기도 했다.
“전엔 나이 들어 외모 집착하는 사람 속 빈 강정 같고 흉해 보였어. 근데 우여곡절 끝에 늙어 버린 자신을 발견한 심정 이해 못할 것도 없더라구. 젊을 땐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라도 나를 아껴 줘야지. 축 처져 있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활기 찾으면 좋잖아.”
“그럼, 암 투병 후에야 몸이 소중한 걸 알았어. 정원 가꾸듯 나를 살피다 보면 건강 관리도 더 신경 쓰게 되거든. 그래야 가족에게 폐 덜 끼치지.”
“굳이 늙음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을까. 자기만족이라도 뭐 어때.”
“열심히 일하다 은퇴했는데 관리 좀 하는 게 무슨 잘못이겠어.”
우리 속없는 사람 아니라고, 우릴 비하하지 말라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녀들에게 권리가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게 있는 걸까. 계속 써야 하는 것인지, 세속적인 즐거움도 모르던 버둥거림에서 놓여나 여유를 가져도 되는지 묻고 싶어 입술을 오물거렸다. 누구라도 좋았다. 나는 앉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 그 또한 묻고 싶었다.
여자들에 이끌려 전화 상담과 예약을 진행했다. 무슨 아바타 노릇인가 한심해하다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지 한 번쯤 확인해 볼 필요도 있었다.
병원 대기실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대부분 나이 들어 보였고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쓴 사람도 여럿이었다. 헐레벌떡 달려 들어오는 남자도 있었다. 지방에서 기차 타고 오느라 조금 늦었다는 것이다. 정장 차림에 머플러로 멋을 낸 그는 숨을 고를 때마다 얼굴 전체 주름이 출렁였다. 접수하는 아내 등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남자도 있었다. 체인 숄더백을 든 채 뭘 또 손을 대냐며 낮게 목소리를 냈다. 딸과 함께 온 여자는 기대와 설렘으로 연신 사람들을 살폈다. 요즘 피부과는 질환 치료보다 미용 목적 시술이 더 많다는 뉴스가 영 거짓은 아니었다.
예약 내용을 확인한 직원이 상담실 앞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감색 정장 차림 여자가 상담실로 안내해 주었다. 걸음걸이와 손짓이 사무적이었고 이목구비 어느 하나 죽은 데 없이 반듯한 얼굴이었다. 자신을 소개한 상담실장이 나를 살폈다.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간결한 눈빛이었다.
“마리오네트 주름이 심한 데다 눈밑 지방도 많이 쌓였네요. 살이 없어 피곤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나이도 더 들어 보이구요.”
빠르게 견적을 뽑은 실장이 내 앞으로 테블릿을 내밀었다. 눈밑은 레이저로 지방을 태우고 처짐 방지를 위해 필러로, 마리오네트 주름도 필러 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술 범위가 커진 데다 비용이 많이 나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마리오네트 주름만 생각하고 왔다고 하자 딱한지 고개를 흔들었다.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하는 상태라고, 당장 관리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할 때는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오십 중반인데 제 나이로 보이나요? 저도 몇 가지 시술 받았습니다. 방심하면 무너져요.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장 얼굴은 도자기보다 반들반들하고 탄력 넘쳤다. 자랑스러운 나머지 뻐기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댈 때는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경고인 동시에 압박으로 다가왔다. 당장 결단하라는 촉구기도 했다. 대답해야 한다는 쫓김과 함께 예상 밖의 시술 범위와 비용이 뒤엉키며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모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또 중요하게 여긴 적도 없어 더 그랬다.
“고민해 보고 올게요.”
실장이 발끈하듯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나를 똑바로 보며 두 손을 깍지 끼었다.
“필러로 마리오네트 주름 펴는 시술 먼저 받아 보세요. 부분 마취하고 하니까 간단하고 결과도 만족하실 거예요. 내일 외출도 가능합니다.”
나도 모르게 자리 잡은 마리오네트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귀가 솔깃했다. 주름 의미를 알고 씁쓸했던 기분을 떨칠 수 있다면 한 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더구나 내일 외출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헤어밴드를 하고 시술 전후 비교용 사진 촬영을 했다. 직원이 입가와 볼에 부분 마취 크림을 바르고 랩을 씌웠다. 안내를 받아 대기실로 나가자 여럿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건너편 여자는 눈밑 시술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처럼 입가에 크림을 바르고 랩을 씌운 여자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기차 타고 왔다는 남자는 얼굴 전체를 감싼 랩이 갑갑한지 연신 손을 올렸다 내렸고 벌떡 일어나 대기실을 오갔다. 사람들이 곁눈질을 하거나 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나 역시 궁금했지만, 모두가 내 모습이어서 이윽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앞에 앉은 여자와 눈이 마주쳐 서로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여자 입가 허연 크림이 물길처럼 갈라지며 마리오네트가 드러났다. 어딘지 서글퍼 보였다. 평생 자신을 돌볼 여유 없이 살았다는 하소연으로 보였다. 차마 짐작할 수 없는 풍파와 시들어 가는 생의 서러움이 얼핏 비켜가는 듯했다. 그녀에게 나도 다르지 않을 거였다. 아무려면 어떠냐고 위로하고 싶어 다시 웃었다. 두 마리오네트가 마주 보며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자 여자가 가슴이 들먹이도록 심호흡을 했다. 나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 정도 응원은 보내고 싶었다. 마리오네트가 사라진다고 젊음을 회복할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무엇을 기대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주먹을 풀고 손깍지를 끼었다. 정말 구경이나 해 보자고 병원에 온 것인지 살펴보았다. 현실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한 지난 시간에 대한 반발은 아니었을까. 순간, 벼락을 맞았는지 머릿속이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눌린 마음이 속살을 드러냈다. 즐거움만 있지 않았지만 날마다 앉았고, 강박을 성실로 가장한 채 맹목적으로 달려왔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또 그것을 열정이라고 믿었다. 믿지 않았다면 앉지 못했을 것이다. 쓰지 않아도 세상은 상관없이 돌아갈 것이고 원고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해도 애석해할 사람 하나 없을 것도 알았다. 쉼 없이 썼지만 제대로 한 번 타오르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것이 조금 서글프기는 했다. 나는 살아 본 적 없는 삶 앞에서 안간힘을 다해 뻗댔지만, 결국 대기실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지 않으면 쳇바퀴에서 내려와 홀가분할까. 그러면 친절하지 않았지만 오랜 친구와 작별할지 궁금했다. 아니면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마리오네트 다음 장으로 가 볼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