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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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다율리·당하리 지석묘군에서 새암공원까지 이어지는 숲속 8km의 산책길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만이 아니라 몇 겹의 시간을 한꺼번에 밟아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길의 앞머리에는 넓은 돌뚜껑으로 눌러 놓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엎드려 있고, 중간쯤에는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키 큰 비석과 봉분들이 줄줄이 널려 있으며, 끝자락에는 신도시 아파트의 반듯반듯한 창문들이 반짝반짝 눈을 밝히고 서 있다. 죽은 자들이 오래 누워 있던 자리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서 둥지를 짓고 깃들인 길목이다.
다율리 고인돌 주변에서는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고, 당하리 고인돌 둘레에서는 돌칼, 화살촉, 숫돌과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발굴되었다. 산책길은 당하동 산번지 일대의 구릉을 지나 파평윤씨 정정공파 종중 선산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조선 7대 왕 세조의 장인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 600기가 켜켜이 엎드려 있다. 조선 초기의 단정한 석물에서부터 후기의 복잡한 묘제까지 한 산비탈에 모여 있기에, 한국 유일의 조선시대 분묘 야외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선사시대와 조선시대가 겹쳐 있는 그 숲길을 벗어나면 두레공원, 가온건강공원, 한빛공원을 잇는 구름다리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길의 끝머리에서 새암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암공원은 운정이마트 맞은편에서 한빛마을 아파트 6, 7, 8단지를 등에 업고 있다. 서쪽 중앙계단으로 올라서면 공원은 활짝 펼친 나비 날개처럼 대칭으로 갈라져 있다. 왼쪽 날개는 젊은 단풍나무숲이고, 오른쪽 날개는 오래 묵은 잡목숲이다.
신도시 개발 당시 왼쪽 날개에서는 수많은 선사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튀어나왔다. 그런 경우 으레 그러기 마련이듯, 생땅이 나올 때까지 파헤쳐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 묵은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나갔고 그 대신 어린 단풍나무숲이 조성되었다. 저절로 선사유적공원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이런저런 악성 민원이 꼬리를 물었다. 설계자들로서는 공모에 부칠 수밖에 없었고, 새암공원이 탄생했다.
그러는 사이 새암공원 이름의 근거가 되었던 샘은 사라져 버렸다. 지역 토박이조차 파헤쳐지고 뒤집어진 숲속에서 샘이 있던 자리를 짚어 내지 못했다.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목마름을 다스려 왔던 샘의 흔적이 기다랗게 늘어져서 새암이라는 발음으로만 남았다.
지석묘군에서 시작된 산책길은 당연히 새암공원 숲속으로 이어졌다. 샘이 없어진 대신 산책길 여기저기에 시비가 세워졌다. 사람들의 육체를 적셔 줄 샘이 정신을 적셔 줄 시비로 바뀐 셈이다. 설계자들이 신도시 공원들을 제각각 특색 있게 꾸미는 과정에서, 특히 저비용 고효율을 강조한 결과였다. 두레공원에는 잡석 무더기를 둘러쌓아 윤관 장군의 9성 미니어처를 만든다거나, 새암공원에는 사각 패널에 시를 새겨서 길 모퉁이에 꽂는 식이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일어섰고,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김소월의 「초혼」이 들어섰으며,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겠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박혔다. 한 바퀴 휘돌아서 왼쪽의 단풍숲으로 접어들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가 서 있었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향수」가 쟁기질을 했으며,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문에도 비최나니/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가 흘러갔다.
산책꾼들은 시비 앞에서 걸음을 늦추거나 잠깐씩 멈춰 섰다. 손주를 데리고 나온 노인은 아이에게 큰소리로 한 줄씩 읽어 주기도 했고,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엄마는 자장가 곡조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새암공원의 시들은 쉬웠다.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고 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으면 시가 되는 거라고 속삭였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지쳐 갈 때, 삶과 꿈이 맞닿아 삐거덕거리는 곳에 기름을 치듯, 한번 시를 써 보는 게 어떠냐고 유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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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새암공원 오른쪽 오래 묵은 숲속에 샘이 부활했다. 전국을 휩쓴 맨발걷기 유행이 번져 온 덕분이었다. 설계자들은 날개 초입에 열 명이 두 겹으로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수돗간을 만들었다. 산책길 안쪽으로 800m의 맨발길을 뚫었다. 수돗간 옆에는 사방 10m짜리 황토풀장을 조성했다.
사람들은 소문이나 호기심에 등 떠밀리거나 이끌려서 맨발꾼이 되었다. 소화도 잘 되고 잠도 잘 온다더라, 믿거나 말거나 건강 비결들이 훨훨 날아다녔다. 염증에는 황토풀장이 효험 있다더라. 혈액순환에는 맨발걷기로 발바닥을 자극하는 게 좋다더라. 속설도 거듭 쌓이고 보면 진실이 될 때도 있었다.
초심자들은 발바닥의 통증을 피하려고 춤을 추듯 깡충거렸고, 숙련자들은 발바닥 전체로 지면의 굴곡을 비석 탁본하듯 문질렀다. 중증 환자들은 대지와 대화라도 나누듯이, 발가락으로 흙바닥을 움켜쥐며 감촉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모든 맨발꾼의 소망은 똑같았다. 신발이라는 두꺼운 껍데기를 벗어던진 다음, 비로소 다가오는 땅의 기운이 모든 통증을 거둬 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맨발꾼들은 황토풀장에 들러 진흙을 밟아 짓이기면서 맨발걷기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다음에는 수돗간으로 옮겨 가서 발바닥에 눅진하게 들러붙은 진흙을 씻어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새암공원 샘의 부활을 실감하곤 했다.
맨발길에는 별의별 발이 다 올라섰다.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거리다가 작은 돌부리에 걸려 금세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발, 굳은살이 층층이 박혀 발바닥이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노인의 발, 유리 조각이라도 밟을까 싶어 눈에 힘을 주면서 조심스레 걷는 젊은이의 발, 망설이다가 신발을 벗고 한 발을 디뎠다가 화들짝 놀라는 중년의 발. 맨발걷기는 못 하겠다는 사람들은 옆의 산책길로 나서면 되었다. 애완견을 동반한 사람들도 산책길로 나서야 했다. 맨발길은 맨발만 걷는 게 불문율이었다. 산책길과 맨발길은 기찻길의 철로처럼 나란히 뻗어 갔다. 어떤 부부는 한 사람은 산책길을, 다른 한 사람은 맨발길을 걸으면서 벽지 새로 바꾸는 날이, 손주 맞선 날짜, 전통시장 날짜 따위를 헤아려 가며 시시콜콜 의논했다.
시일이 지나면서 걷는 시각에 따라 맨발꾼들 서열이 정해졌다. 미명의 숲을 처음 헤치고 나타나는 맨발꾼들은 최상의 건강을 뽐내는 돌격대였다. 맨발길 한 바퀴 도는 데 5분이면 충분했다. 산책길과 맨발길 사이 드문드문 놓인 운동기구에 매달려 땀을 뽑는 것도 돌격대들이었다.
저물녘에 나오는 맨발꾼일수록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패잔병이었다. 맨발길 한 바퀴에 한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니까 오전에 나타나는 맨발꾼들은 5분에서 10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는 정예병이었고, 오후에 나오는 사람들일수록 몸뚱이를 질질 끄는 노병이거나 예비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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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맨발꾼들은 따로 있었다. 말이 없었고, 신중했으며, 눈빛이 깊고 절박했다. 체중이 급격히 줄어든 맨발꾼은 헐렁해진 등산복 바지를 추스르며 한 발짝 한 발짝씩 내디뎠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석양을 빨아들이려 애쓰기도 했다. 가혹한 진단을 받았든 가벼운 위장병을 앓든, 경중을 불문하고 그 시간에는 그저 똑같은 맨발꾼일 뿐이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 맨발꾼에게 황토풀장은 통증을 눅여주는 천연 염증 치료제였다. 치유 불능의 병명을 듣고 막막해진 맨발꾼에게 맨발길은 하나의 기도문이 되었다.
지구라는 커다란 배터리에 내 몸을 연결하는 거예요. 독소는 빠져나가고, 생명력은 채워지길 바라면서요.
어떤 맨발꾼의 입에서 빠져나온 나지막한 말마디는 밀다심경이나 주기도문 같은 거룩한 경전이 되었다.
다이소에 가서 숯불구이용 석쇠를 사세요. 천 원에 열네 개씩 들어 있는 불독클립과 이삼 미터쯤 되는 전선과 플러그 한 개를 사세요. 전선 한쪽에는 불독클립을 연결해서 석쇠에 물리고, 다른 쪽에는 플러그를 연결해서 콘센트에 꽂으면 돼요. 콘센트에는 전기가 통하는 두 개의 선 말고도, 감전 사고를 막기 위해 땅과 연결하는 어스선이 깔려 있어요. 그걸 접지선이라고도 하는데, 그냥 콘센트에 꽂아둔 채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전기는 흐르지 않고 접지만 되는 원리예요. 그렇게 해놓고 맨발로 석쇠를 밟고 있으면, 집 안 어디서든 맨발걷기와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어떤 맨발꾼은 얕은 과학 상식을 장황하게 앞세워 가며, 맨발꾼들이 이교도의 경전에 맹목적으로 빠지는 걸 경계했다.
새암공원 맨발길에서는 아무도 병명을 물어보지 않았다. 발걸음이 흐트러지면 말없이 손을 잡아 주었고, 누군가 힘에 부쳐 벤치에 주저앉으면 기댈 어깨를 내주거나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건네었다.
예순을 갓 넘긴 창수는 백두대간을 종횡무진 누비던 산꾼이었다. 두툼한 어깨와 통나무 같은 팔뚝은 과거의 영광을 증명하듯 여전히 단단해 보였으나, 하반신은 부서진 로봇처럼 삐그덕거렸다. 2년 전, 빗길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연쇄 추돌 사고는 건장한 사내의 뼈를 산산이 부숴 놓았다. 복합골절이라는 무미건조한 의학용어는 뼈의 마디마디에 수많은 금속 핀과 나사를 박아 넣었다.
창수가 맨발로 흙을 딛는 행위는 그러므로 전투였다. 오른쪽 다리를 크레인이 쇳덩이 끌어 올리듯 공중으로 들어 올리면 팽팽하게 당겨진 허벅지 근육 위로 수술 자국들이 철사를 꼬아낸 쇠줄처럼 길게 도드라져서 꿈틀거렸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빗물이 깎아낸 흙바닥처럼 미간에 깊은 골이 패었다.
순간순간 신경이 끊겼다가 이어지는 발바닥은 지면의 감촉을 제멋대로 왜곡했다. 부드러운 흙바닥이 거북선 갑판의 가시처럼 뾰족하게 일어섰고, 작은 모래알 하나도 신발 밑창을 뚫은 쇠못처럼 찔러댔다. 관절이 꺾일 때마다 다리 안쪽의 금속과 뼈가 맞부딪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열 발짝만 떼어도 땀방울이 굵은 턱선을 타고 내려와 황톳길에 툭툭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발가락으로 흙을 움켜쥘 때마다 사금파리 같은 빛의 부스러기가 숲속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재활실의 매끄러운 바닥에서는 볼 수 없던 생존의 파편이었다. 오른발을 내뻗으면 거친 흙바닥이 꿈틀거렸다. 아주 조금 더 멀리, 더 무겁게 흙을 밟아 다지며 느릿느릿 나아가는 몸짓은 투박하고 장엄했다.
숲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세상을 덮을 무렵, 맨발길 위에는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도 뜨거운 시간이 찾아들었다. 서쪽 하늘이 홍차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각자의 속도로 꿈틀거리던 마지막 맨발꾼들이 하나둘 황토풀장으로 모여들었다.
마흔을 갓 넘긴 지영이 질퍽한 황토에 발을 담근 채 지는 해를 향해 실눈을 뜨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 빛을 기억해 두려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애처롭고 온화했다. 가냘픈 몸은 스치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 얇게 말라붙었고, 희게 바랜 팔다리는 황혼빛조차 감당하지 못할 듯 가냘팠다. 헐렁한 스웨터는 몸을 감싸는 게 아니라 빈 나뭇가지에 걸린 헝겊 같았다.
가장 큰 병증은 욕망의 상실이었다. 세상의 맛깔스러운 음식들에 대한 기억은 뿌예졌고, 무엇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몸속 어딘가에 뿌리 내린 짙은 그늘이 에너지를 서서히 녹여내는 듯싶었다.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벤치에 기대어 눈을 감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실체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웠다. 피부는 습자지처럼 얇아서 몸 안에 흐르는 생명의 강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손바닥은 희다 못해 투명해서 햇빛이 그대로 통과할 것 같았다. 목소리 또한 가늘어서 번번이 바람소리에 파묻히곤 했다. 건초처럼 마른 팔다리에서는 풀 냄새, 흙냄새, 꽃잎 냄새가 피어났다.
쉰을 훌쩍 넘긴 연자가 지영 앞으로 다가섰다. 줄기는 물속에 잠긴 채 머리만 내밀고 우쭐대는 연꽃처럼, 숲길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면 나무들 사이에서 솟아난 전신주처럼 낯설었다. 걸음걸이는 도도한 물살에 맞서 휘어지도록 잘못 설계된 정밀기계처럼 낭창거렸다. 발바닥 전체로 지면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아주 얇은 살얼음판을 까치발로 디디듯 느릿느릿 밟아서 뒤로 밀어냈다. 코로나 예방주사 후유증이라지만, 나라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균형장애였다.
연자는 그러나 가누기조차 힘이 드는 제 몸 젖혀두고, 지영의 앙상한 어깨 위로 떨리는 손을 뻗쳤다.
…조금, 춥지 않아?
목화에서 솜털을 뜯어내듯 목소리를 조금씩 뜯어내면서 걸치고 있던 얇은 카디건을 벗어 지영의 무릎을 덮어주었다. 지영은 대답 대신 가냘픈 손을 들어다가 연자의 손등에 겹쳤다.
창수가 쓰러진 철탑을 일으켜 세우는 크레인처럼 둔탁한 쇳소리로 흙바닥을 긁으며 걸어왔다. 뼛속의 금속 핀들이 저녁의 냉기에 반응해 욱신거리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 지영과 연자 앞에 멈춰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도 다들… 무사히 돌았구먼요.
창수는 투박한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었다. 비닐 포장을 벗겨내자 빨갛게 볼을 붉힌 사과가 잡혀 나왔다. 기울어지는 몸을 왼쪽 발로 버티면서 칼끝으로 얇고 정교하게 조각을 내었다. 사고가 있기 전에는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바위산을 탔던 거친 사내의 섬세한 손놀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든 한 조각을 지영은 다람쥐가 앞니로 도토리를 갉아내듯 녹여 먹었다.
박씨가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칠십 평생을 대목수로 살면서 남의 집만 지었다는 사내였다. 왼쪽 손이 의수였다. 현장에서 은퇴한 뒤 제재소를 차렸다가 톱날에 손목을 날려버렸다고 했다. 박씨는 꼼꼼하게 맨발꾼들의 발을 점검했다. 흙투성이 발등, 통증으로 붉게 부어오른 발목, 감각을 잃은 발가락. 맨발길 한 바퀴에 기진맥진한 발들을 살피더니, 황토풀장 가장자리의 황토흙 가루를 모아서 작은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보쇼들, 우리가 오늘 쏟아낸 눈물이랑 통증이 이 흙 속에 다 묻혔소. 땅은 참 신기하기도 해. 지독한 병증과 독기를 쏟아내어도 다 받아주거든. 그걸 삭혀서 봄에 꽃이나 풀포기로 다시 내놓지.
연자와 지영이 새삼스레 부끄러운 듯,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발을 진흙 속 깊숙이 파묻었다.
해가 넘어가고 숲에 보랏빛 어둠이 내렸다. 네 사람은 수돗가로 향했다. 시원한 물줄기가 발에 묻은 황토를 씻어내렸다.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흙탕물은 하루를 견뎌낸 고통의 잔해였다. 땅거미가 슬금슬금 내려앉았다. 네 사람의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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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날짐승과 길짐승들은 맨발길의 새로운 풍속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까치는 높은 가지 끝의 둥지로 기어오르는 청설모를 쫓아내기에 바빴다. 깍깍까까, 까치가 고함을 내지르며 덮쳐들면 청설모가 기함하면서 밑둥치로 내리꽂혔다.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뒤엉킨 땅바닥에서는 까치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동물들은 보고도 못 본 척, 모르쇠였다. 장끼 한 마리가 화려한 목깃을 번쩍이며 길을 가로질러도, 산비둘기는 낙엽을 헤쳐가며 벌레 찾는 제 일에만 열중했다.
시일이 지나면서 오히려 맨발꾼들이 숲의 리듬에 맞춰 가고 있었다. 부드러운 황토와 삭아 부스러진 낙엽, 모난 돌멩이의 뾰족한 돌출, 나무뿌리의 불룩한 곡선을 모두 아끼게 되었다. 혈액순환이 좋아져 혈압이 안정되었다는 사람, 무릎 통증이 누그러졌다는 사람, 깊은 잠을 이루게 되었다는 사람, 몸에 더운 기운이 돌아서 살 것 같다는 얘기를 두런두런 풀어냈다. 맨발길을 두 바퀴만 돌면 오래 묵은 통증보다 오래 묵은 슬픔이 가벼워졌다는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슬픔이 정말 발바닥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면 왜 이제야 맨발이 되었을까, 새삼스레 생각의 갈피를 뒤집어 보는 맨발꾼들도 생겨났다.
맨발길과 산책길 사이에 좁고 기다랗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땅이 생겨났다.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그곳에 한 줄로 늘어서서 갇혔다. 숲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맨발길이 뚫리면서 길가로 밀려 나온 나무들이었다. 5월 어느 날, 맨발꾼들의 시선을 끄는 아름드리 밤나무에서 실타래 풀리듯 하얗게 흘러내린 꽃들이 숲속을 환히 밝혔다. 달콤하고 비릿한 밤꽃 냄새가 자욱하게 새암공원을 점령했다.
밤나무 둥치에는 툭 튀어나온 옹이가 있었다. 옹이 밑, 어른 눈높이쯤에 아기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얼핏 상처로 보였으나, 구멍의 입구는 동그랗고 매끈했다. 안을 들여다보면 위를 향하다가 다시 아래로 굽어 있어 속이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이 들이쳐도 빗물이 안으로 흘러들지 않는 첨단 건축 기술이었다. 누군가는 예전에 나무가 병들어 생긴 상처라 했고, 누군가는 새들이 일부러 뚫어 놓은 통로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그 구멍은 숲속의 비밀 중 하나가 분명했다.
처음 그 구멍을 제대로 들여다본 건 부모를 따라나선 여학생이었다. 꾀를 부리며 부모와 멀찌감치 떨어져 걷다가 짹짹, 애달픈 구조신호를 듣게 되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의 근원을 좇다가 휴대전화를 구멍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여학생은 궁금해하며 다가오는 맨발꾼들에게 화면을 펼쳐서 불쑥 내밀었다. 사진 속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솜털이 부스스한 아기새 두 마리가 노란 부리를 딱딱 마주치며 울고 있었다.
아기새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작은 소동이 일었다. 너도나도 차례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들이밀었고, 어떤 이는 손전등 기능까지 켜서 구멍 속을 비췄다. 아기새들은 플래시가 번쩍거릴 때마다 짹짹거리고 울부짖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구멍이 오색딱따구리 둥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기새들을 돌봐야 하는 어미새들이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생태연구가와 사진작가들이 찾아들었다. 밤나무 옆에 삼각대를 세우고, 대포만 한 망원렌즈를 앉혔다. 맨발꾼들은 오색딱따구리가 벌레를 물고 날아오는 순간을 기다렸고, 사진작가들의 망원렌즈는 동영상을 찍었다.
정작 오색딱따구리들은 담담했다. 맨발꾼들이 밤나무 아래로 바짝 다가들어도, 렌즈의 반사광이 번들거리며 오르내려도 제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붉은 머리와 화려한 깃을 추스르며 숲 밖의 하늘로 날아가 벌레를 물어 날랐다. 밤나무로 내려앉은 다음엔 날카로운 발톱으로 옹이를 움켜쥐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재빨리 구멍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아기새에게 먹이를 내주고는 포르르 날아갔다. 곧장 오색딱따구리의 짝이 교대로 날아왔다. 어미새 두 마리는 포기하거나 도망치려는 기색이 추호도 없었다.
스물 안팎의 앳된 처녀가 등장한 건 그 무렵이었다. 맨발길에는 늘 새로운 맨발꾼들이 찾아들었고, 하루 이틀 걷다가 사라지는 일도 흔했다. 처녀는 숲의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햇살이 밤나무를 비스듬히 비추는 석양 무렵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대충 뒤로 묶었고, 얼굴은 희었으며, 화장기는 전혀 없었다. 눈길을 끄는 건 걸음걸이였다.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하게 다리를 절었다. 왼쪽 발을 딛고 난 뒤 오른쪽으로 체중을 옮길 때면 몸이 미세하게 낮아졌다가 돌아왔다. 속도가 몹시 느렸으므로 멀리서 바라보면 표나지 않았지만, 한번 눈에 들어오면 계속 보이는 절뚝거림이었다.
처녀는 여러 날이 지나도록 맨발길을 걷지 않았다. 밤나무 옆 벤치에서 맨발꾼들이 발바닥으로 황톳길을 눌러 밟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응시할 뿐이었다.
처녀가 맨발길 걷기에 나선 것은 아기새가 발견된 다음 날이었다. 벤치에서 운동화를 벗더니 양말과 함께 천가방에 넣었다. 그 정도 짐이라면 벤치에 놔둬도 좋으련만 오른쪽 어깨에 둘러메고 절뚝걸음을 내디뎠다.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 한 바퀴를 돌더니 상기된 얼굴로 밤나무 앞으로 다가섰다. 처녀가 아기새의 구멍에 눈을 맞추려면 허리를 약간 펴고 가슴을 들어 올려야 했다. 그런 자세가 심각한 통증을 몰아오는 듯 찡그리며 한 손으로 왼쪽 가슴을 쥐었다.
처녀는 한동안 캄캄한 구멍 속에 눈을 박고 있다가 벤치로 돌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밤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구멍을 지켰다. 누군가를 면회 온 듯, 혹은 누구의 안부를 확인하듯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렀다. 휴대전화도 꺼내지 않았고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밤꽃 향기가 짙어질수록 아기새들의 울음소리도 굵어졌다. 부리 끝의 노란 색깔도 또렷해졌다. 어미 오색딱따구리 두 마리는 교대로 벌레를 물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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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가늘었지만 밤꽃을 적셔 무겁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물을 잔뜩 머금고 뚝뚝 떨어져 내린 밤꽃이 질척한 맨발길을 허옇게 덮었다. 저물녘이었고 맨발꾼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처녀는 혼자서 맨발길을 절뚝절뚝 걸어왔다. 젖은 황톳길은 미끄러웠고, 불안정한 발걸음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는 천가방은 운동화와 휴대전화 때문에 축 늘어졌고, 우산을 쓰지 않은 탓에 머리카락이 어깨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처녀가 밤나무 앞 10m쯤에 다다랐을 때였다. 짹짹짹짹, 느닷없이 아기새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얼마나 간절하고 다급한지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작은 구멍에서 아기새들의 비명이 꾸역꾸역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비가 내려도 배는 고픈 모양이구나.
처녀는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쳐들고 숲을 휘둘러 바라보았다. 어미새가 날아올 방향을 찾는 몸짓이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밤나무 옹이 근처에서 붉은 점 하나가 반짝, 했다. 뱀의, 꽃뱀의 머리였다. 처녀의 몸이 태풍에 휩쓸려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휘리릭 날았다. 천가방이 타닥, 허공을 갈랐다. 천가방과 꽃뱀이 진흙탕에 뒹굴었다. 처녀가 균형을 잃고 푹 쓰러졌다. 추락하는 바람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꽃뱀이 스르르 몸뚱이를 뒤틀어 풀어내더니 처녀 쪽으로 움직였다.
아아악-.
처녀가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다. 연자와 손을 잡고 걸어오던 창수가 벼락 맞은 통나무 쓰러지듯 냅다 뛰었다. 마지막 맨발꾼 네 사람은 언제든 서로에게 손을 내밀거나 서로의 손을 당겨 잡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체력이 부실했으므로 누가 누구를 부축하는지,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창수는 슬라이딩으로 세이프 하는 야구 선수처럼 몸을 날려 꽃뱀을 움켜쥐었다.
안심하쇼.
가볍게 한마디 내뱉기는 했으나, 고장 난 로봇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우느라 잘못 뒤집어진 거북처럼 한동안 버둥거렸다. 그 몸으로 어떻게 달려왔으며, 어떻게 꽃뱀을 잡을 수 있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뒤따라온 연자가 처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 다음 밤나무 아래로 몇 발짝 옮겨 가서 머리를 꼿꼿이 곧추세운 채로 천천히 몸을 낮춰 처녀의 천가방을 집어 올렸다. 수직으로 몸을 낮췄다가 세우는 그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연자는 몹시 지쳐 보였다.
꽃뱀은 힘이 셌다. 머리에서 한 뼘쯤 아래를 붙잡힌 꽃뱀은 몸뚱이를 틀고, 머리를 홰홰 내저으며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무엇이든 걸려들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을 기세였다.
유혈목이야. 그냥 꽃뱀이라고들 말하지. 독이빨이 안쪽으로 많이 휘어져서 사람을 물기는 어렵지만, 일단 물리고 나면 치명적이지.
창수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손을 머리 쪽으로 조금 옮겨 잡았다.
연자에게 몸을 기대고 있던 처녀가 손가락을 불쑥 쳐들었다. 흐린 하늘을 마구 휘저었다. 죽을힘을 다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음성 없는 말이라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주 먼 곳으로 가져가야 해요, 아기새를 습격하지 못하도록요. 처녀의 손짓 의미는 분명했다. 꽃뱀을 살려야 한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보내야만 한다. 두 가지 다 창수가 들어주기에는 불가능했다. 연자가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문제를 풀어줄 사람은 박씨뿐이었다. 손은 하나라도 두 발은 튼튼했다. 박씨의 사글셋집이 있는 다율리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고인돌 무더기 뒤편 산에 풀어준다면 처녀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6
꽃뱀 사건이 알려지면서 휴대전화 플래시를 터뜨리는 맨발꾼들은 사라졌다. 기다렸다는 듯 문제가 터졌다. 꽃뱀의 습격에 놀랐던 아기새들은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휴대전화를 들이밀지 않아도,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아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미새가 먹이를 부리에 넣어줄 때를 빼고는 짹짹짹짹, 목청을 쥐어짰다. 재앙이었다.
벤치에 앉은 채 슬픈 눈길로 지켜보기만 하던 처녀가 부스스 몸을 일으켜 밤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오래도록 구멍 속에다 절망의 눈길을 쏟아부었다. 그러다가 숨결 같은 바람 소리를 띄엄띄엄 끊어냈다.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 온다.
소란스럽게 짹짹대던 아기새들의 울음이 뚝 끊겼다. 부리를 몇 번 더 딱딱 마주치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지나가던 맨발꾼들이 걸음을 멈췄다.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처녀에게 눈길을 건넸다. 처녀는 시선을 맞받지 않았다.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구멍 속의 아기새들에게 숨바람을 끊어 던졌다. 처녀가 아기새를 달래려는 게 아니라, 오래전 자기 안에 남겨졌던 울음을 토막 내는 것처럼 보였다.
한번은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밀고 나타났다. 비스듬히 누워 칭얼거리던 아이가 밤나무 아래를 지날 무렵, 금세 울음을 터뜨릴 듯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바로 그때, 아이와 처녀의 눈길이 딱 마주쳤다. 처녀의 눈매가 바람결에 스친 촛불처럼 펄럭했다. 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 얼굴을 활짝 펴더니 방그레 미소 지었다. 처녀가 밤나무 둥치를 짚고 비틀했다. 아이와 처녀를 번갈아 보던 젊은 여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처녀는 대답 대신 훌쩍 허공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날짜는 꼬박꼬박 흘렀다. 오색딱따구리 내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물어 날랐다. 산책객들과 맨발꾼들의 얼굴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누군가는 아기새들이 얼마나 컸는지를 인사처럼 물었고, 누군가는 어미새를 찍은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
밤꽃 진 자리에 맺힌 밤송이가 도토리만 하게 자란 어느 날, 아기새들이 구멍 밖으로 목을 내밀었다. 솜털은 성긴 깃털로 바뀌었고, 검은 눈동자에는 바깥세상이 비쳐 어른거렸다. 맨발꾼들은 환호했다. 마음 놓고 아기새의 사진을 찍어도 괜찮게 되었다. 처녀는 밤나무 옆 벤치에서 앉아서 지켰다. 꼭 다문 입술로 아주 가끔,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같은 숨기척을 흘려내었다.
어느 날, 아기새 하나가 구멍 입구에서 금방 떨어질 듯 뒤뚱거렸다. 맨발꾼들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불쑥, 처녀의 손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닿을 수 없는 거리를 향해 내뻗은 손길이었다. 처녀는 민망한 듯 손을 거뒀지만, 표정은 몹시 적나라해서 아무도 마주 볼 수 없었다. 붙잡고 싶었던 것을 붙잡지 못한 절망이 거기에 남아 있었다.
밤송이가 아기 주먹만 하게 부풀고, 한낮의 열기가 숲을 통째로 찜통에 삶을 듯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수돗간에서는 쉴 새 없이 물소리가 이어졌고, 누군가는 허벅지까지 드러내 놓고 황토풀장 진흙을 문질러 씻어냈다. 밤나무 구멍에 낯선 정적이 깃들여 머물렀다. 여든 살을 넘긴 노인 맨발꾼이 구멍을 들여다보더니, 툭 내뱉었다.
갔네.
맨발꾼들이 느릿느릿 다가갔다. 텅 비어 있었다. 어둠을 밀어내던 짹짹 소리도, 딱딱 마주치던 노란 부리도, 붉고 푸르게 색칠하던 날개도 없었다. 빈집은 조용했다. 분주하던 나날의 뒷모습이었다.
처녀가 나타났다. 맨발길 초입에서 운동화를 벗어 천가방에 넣었다. 천천히 맨발길로 들어서서 고개를 쳐들었다. 나뭇잎 그물 사이로 하늘이 파랬다. 30분 동안 절뚝거리며 한 바퀴 돌 때까지 한 번도 시선을 낮추지 않았다. 정답이 적혀 있는 답안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수험생처럼 밤나무 앞으로 다가섰다. 우뚝 멈춰 섰다. 달랠 울음도, 어미새도, 기다림도 없었다. 손바닥을 얇게 펼쳐서 옹이를 문질렀다. 커다랗게 벌어진 상처의 가장자리를 더듬는 듯 느릿느릿 조심스러웠다. 아주 오래 붙들고 있던 날개를 놓아주는 듯 손을 거둬 가슴에 얹었다.
엄마 온다, 숨결에 섞어냈던 그 말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까.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고 싶은 것,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한 것, 그 모든 부재의 자리에 맨발로 서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면서 밤나무 잎새 몇 장을 뒤집었다. 처녀는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한용운 시비 쪽으로 걸어갔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돌아서는 처녀의 걸음걸이에서 전과 다른 결이 보였다. 상처를 숨기려 애쓰는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상처를 디디며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인 걸음걸이였다. 처녀는 숲길 저편으로 멀어졌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나무들 사이로, 선사시대의 무덤과 조선시대의 봉분과 신도시의 아파트 사잇길로 사라졌다.
밤나무의 빈 구멍이야말로 새암공원에서 가장 빼어난 시였는지도 몰랐다. 시란, 채워진 말보다 비어 있는 자리에서 더 멀리 울리는 법이었다.
지석묘는 죽은 자를 눌러둔 돌이고, 봉분은 죽은 자를 덮은 흙이었다. 그렇다면 밤나무 구멍 속의 빈 둥지는 죽음을 노래하는 시였을까. 머물렀던 생명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시간으로 옮아갔다는 징표였을까. 어떻든 사람은 걸어야 했다. 맨발로든 신발을 신고서든, 제 몸의 통증을 감당하며 자기 몫의 길을 줄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