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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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어느 만큼 살고 보니, 이제야 ‘선물’이라는 단어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젊은 날의 내게 선물은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대가 없이 주고받는 물건이나 행위에 불과했다.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나눔, 그 안에는 감사와 사랑, 혹은 사과와 축하 같은 선명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선물을 참 쉽게도 정의했다. 값비싼 것, 보기 좋은 것, 남들 앞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화려한 것이면 충분히 값지다고 믿었다. 내게 선물은 오로지 ‘받는 기쁨’이었고, 무엇을 받았느냐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그때는 인생이 끝없이 이어지는 비단길처럼 보였고,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하며 살았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다. 하루하루 모래알처럼 쌓인 시간이 어느새 인생의 중턱을 훌쩍 지났다. 이제는 종착역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 속도를 체감하며 선물에 대한 나의 기준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달라졌다. 요즘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값지게 여기는 선물은 화려한 포장지에 싸인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 일 없는 편안한 하루’ 그 자체다.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맞추어 눈을 뜬다. 몸 어디 한 곳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아내와 함께 운동 나갈 채비를 한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걷고 돌아와 따뜻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들이켜는 평범한 일상. 온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이 당연해 보이던 풍경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귀한 선물인지 절실히 깨닫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덧 책상 위에 약 봉투가 수북이 쌓이고, 병원 진료 일정이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작은 통증에도 덜컥 마음부터 불안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 확인한다. 건강이란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생이 준 가장 조용하고도 큰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하나의 값진 선물은 내 곁의 ‘사람’이다. 평생을 투박하게 함께 살아온 배우자에게 “여보” 하고 부르면, 주방에서 밥상이 준비되었다는 익숙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 목소리가 살아 있음이 고맙다. 말수는 줄었지만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오랜 벗이 있고, 바쁜 와중에도 안부를 묻는 자식들과 화면 속에서 재롱을 피우는 외손주들이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내 메마른 일상을 적시는 고마운 선물이다.
물론 사람 사이에 늘 햇살만 비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오해로 인해 마음이 멀어지던 시린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긴 세월의 강을 건너 결국 남은 것은, 우리가 서로의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함께 견디고, 기다려주고, 이해하려 애썼던 그 남루한 시간들이 비로소 사람을 ‘선물’로 정제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이었던 고생과 시련 또한 사실은 변장하고 찾아온 선물이었다. 군 상황실장과 율곡 장교로 밤낮없이 근무하던 시절, 나는 왜 나만 이런 가혹한 짐을 져야 하는지 수없이 하늘을 원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좌절과 두려움이 독초처럼 마음을 채웠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해 온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시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훨씬 가볍고 얕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픔을 겪었기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고, 실패를 맛보았기에 작은 성취 앞에서도 겸손하게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시련은 나를 모질게 흔들었지만,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빚어낸 거친 손길이었다.
요즘 들어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선물을 만끽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느려질 수 있는 용기’다. 젊은 날의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렀고, 잠시라도 멈추는 것을 곧 낙오라 여기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잠시 길가에 앉아 여유를 가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제는 버스를 놓쳐도, 약속 시간이 조금 어긋나도 그 빈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길가의 풀꽃이 보이고, 내 마음의 일렁임이 보인다. 이 느림은 세월이 내게 준 가장 성숙한 선물이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가장 깊이 와닿는 선물은 역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나간 어제는 이미 내 손을 떠난 역사이고, 다가올 내일은 누구도 기약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내가 온전히 주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뿐이다.
이제 나는 오랜 시간 움켜쥐고 있던 욕망과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그 빈자리를 사랑과 겸손, 그리고 타인을 향한 배려로 채우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성스러운 마음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오늘 숨 쉬고, 오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고, 오늘 창가에 내리쬐는 햇살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이 평범한 하루가 언제까지 허락될지 알 수 없기에, 나는 이제 오늘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의 가장 값진 선물은 결코 크고 화려한 곳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늘 내 곁에 있었으나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 즉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가 생겼을 때 비로소 선물이 되는 것들이었다.
건강한 몸, 함께 늙어 가는 사람, 시련을 통해 얻은 깨달음, 그리고 선물처럼 배달된 ‘오늘’. 이 모든 것이 이미 내게는 차고 넘치는 선물이다. 이제 남은 삶은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이미 받은 이 선물들을 소중히 닦고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건넨 인생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답례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