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47
0
자기가 밤하늘의 별인 줄 알았던 개똥벌레가 있었다. 어느 날 자기가 별이 아니라 벌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슬프고 충격적이었지만, 우주에서 날아온 별이 반딧불로 다시 태어난 거라 믿으며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라고 노래한다. <나는 반딧불>이라는 유행가 내용이다.
나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집 앞에는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 그곳에 자주 가는 이유는 몸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다. 운동하러 간다. 도착하면 우선 미숫가루 하나를 주문한다. 40도 온탕에 들어가 반신욕을 하면서 달달한 행복을 마신다. 여유롭게 앉아 냉탕에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살핀다. 한가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준비 운동을 하고 천천히 들어간다.
허리춤까지 오는 물의 깊이는 운동하기에 딱 좋다. 벽을 붙잡고 머리를 들고 조심조심 발차기를 한다. 발이 물 밖으로 나와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 그건 무례하고 몰상식한 짓이다. 100번씩 9세트를 하는 게 목표인데, 중간에 사람들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쉬었다가 속도 조절을 하며 눈치껏 마치고 나온다. 벽에 붙어서 하니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가 운동하는 것을 신기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씩씩하게 발차기를 마치고 나오려던 참이었다. 관리인이 들어오더니 울퉁불퉁한 타일에 뭔가를 붙이려는 것 같았다. 혼자 테이프를 떼는 게 힘들어 보여 도와줄까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줌마가 거들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궁금해서 쳐다보았다.
‘냉탕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곳이므로 머리를 담그고 퐁당퐁당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머나!’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조금 전 상황이 그려졌다. 미숫가루 들고 오는 내 모습을 보고 사인을 주고받았겠지. ‘야, 그 아줌마 왔다, 왔어. 그거 가져와.’ 그러고는 미리 코팅까지 해 놓았던 경고문을 내 앞에서 보란 듯이 붙인 거겠지.
아니, 내가 언제 사람 많을 때 한 적이 있던가? 구석에 붙어서 최대한 조심해서 했는데 이게 무슨 인신공격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민원을 넣은 건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자기는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남들이 잘못하는 꼴은 절대 용서 못하는 아줌마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창피함과 따지고 싶은 마음이 부글부글 일어나는 것을 참고 ‘일단은 철수하자’ 서둘러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상황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리에 어긋나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나는 머리를 물 밖에 내놓고 하는데 ‘머리를 담그고’라고 한 걸 보면 다른 사람 얘긴가? 생각은 점점 자기 합리화로 향하더니 급기야 ‘냉탕에서는 말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붙이라고 요구해야겠다는 반발심까지 들었다. 남편을 붙들고 씩씩거리며 하소연했다. 따뜻한 위로와 맞장구를 기대했건만 남편이 내린 결론은 딱 한마디였다.
“민폐녀 맞네.”
나름 매사에 도덕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걸 보면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 흉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거슬렸다. 그런 내가 민폐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기고 싶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 허물은 못 보고 남의 잘못만 지적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우길수록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임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범죄자가 사건 현장을 찾듯 다시 목욕탕에 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내문을 찾았다. 울퉁불퉁한 타일에 붙어 있질 않았는지 이젠 아예 내가 머리를 대는 쪽 유리에 단단하게 붙여 놓았다. 나를 주시하는 누군가가 더 이상 발차기를 하지 않는 나를 보기를 바라며 얌전히 자맥질 몇 번 하고 나왔다. 개똥벌레 주제에 빛나는 별인 척 했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이제 퐁당퐁당 안 해요. 이거 떼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