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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하우스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범수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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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상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장례식장은 인천 의 옛 도심지에 있었다. 위치를 확인한 후에 지하철을 이용 하기로 했다. 숭의 전철역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아주 오랜 만에 옛 거리로 갔다.
숭의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와서야 너무나 많은 세월 이 흐른 것을 알았다. 어린 시절 그 거리는 학생들이 다니기 어려운 금단의 거리였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빨리 지나가야 되는 대단히 특이한 동네였다. 인천의 옐로하우스라고 불리 던 거리이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성매매 집결지였다.
문상하고 전철역으로 돌아오면서 그 거리를 둘러보았다. 인천이 고향이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숭의동 옐로하우스 거리이다. 그곳은 완전히 사라지고 고층의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근처의 도로와 골 목길만 옛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곳이 격심한 변화의 소용 돌이에 있을 때도 어쩌다 들려오는 뉴스를 듣고 잊고 있 었다.
그 거리는 한국 현대사의 눈물 어린 민중의 쓰라린 이야기가 담긴 곳 이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매춘이 가능한 유곽을 만들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부터 도시 외곽에 유곽을 두고 세금을 걷었 다. 일본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성풍속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항구 도시 제물포(옛 인천의 이름)에 일본과 유 사한 유곽을 건설하고 공창 제도를 두어 한국인들의 문화에 큰 충격을 주었다. 8·15 해방 이후에 공창 제도는 없어졌지만 그 잔재는 계속 남 아 있었다. 5·16 군사정권이 집권하고부터는 기존의 선화동 유곽을 강 제 철거하였다. 단속에 쫓겨서 인근으로 밀려났고, 숭의동 옐로하우스 촌이 생겼다.
어린 시절 어쩌다 그 거리를 지나칠 때는 불쌍함과 안타까움을 느꼈 다. 멀리서 보이는 거리는 빨간 색등과 노오란 색으로 빛났다. 안이 들 여다보이는 유리방에 여성들이 앉아 있고 건장한 어른들의 무리가 떼 지어 지나다녔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앉아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우 리에 갇혀 있는 듯 보였다.
2000년에 발생한 군산시 성매매 집결지의 화재 사고는 고도의 민주 사회로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냈다.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한 상황에서 대형 화재가 났음에도 탈출을 못하고 불길에 참담하게 죽어 갔다. 그 당시 술자리 모임에서 친구들은 옐로 하우스의 상황을 묻곤 했다.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의 거대한 모습을 보면서 그곳에 살았던 여성 들, 원하지 않았음에도 그곳에서 한 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자료를 검색하니 2017년부터 몇 년간 이어진 그 들의 피어린 투쟁 이야기가 나왔다.
옐로하우스 성매매 종사자들이 대책위를 만들고 일방적인 퇴거 통보 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주 보상 대책을 요구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화대로 호의호식한 업주들만 보상금을 챙기고 수십 년간 그곳에서 살 아온 사람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쫓겨나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삶은 오로지 그들만의 책임인지 이 사회에 되묻고 절규했다.
그 거리를 벗어나 숭의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는 아파트 완공 모습과 높은 집값이 색색의 글씨로 크게 적혀 있다. 나 는 10대를 판자촌에서 살았다. 거기에서의 세월이 내 삶을 관통한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난 아직 그들 옆에 있는 것 같다. 많은 시간이 지났 는데도 당시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온다.
뒤돌아서서 다시 한번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호객을 하던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아련히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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