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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예찬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일권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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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가다 점심을 먹은 것이 잘못되었는지 배가 몹시 아파, 열차에서 내려 다급하게 인상을 쓰며 화장실을 찾는다. 평소보다 작아진 듯한 표시판을 보고 급하게 화장실로 향한다. 그러나 화장실에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두 명이나 기다리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급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다. 나는 당황한 모습을 감춘 채 그들을 모른 체한다. 그러나 그 표정은 잠시 후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고 내 앞의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배설을 억제하기 위하여 온갖 표정을 바꾸어 가며 변신한다. 사정이 급함을 참아내지만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비참하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이후 빨리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세상에서 가장 인내심이 강한 모습으로 나도 모르게 탭댄스 동작으로 춤을 추며 앞뒤로 움직인다.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내 앞의 사내가 화장실 문을 열고 서둘러 나온다. 나는 구세주라도 만났다는 듯이 그에게 눈인사를 하며 등에 작은 가방을 짊어진 채 서둘러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변기에 부끄럼 하나 없이 털썩 주저앉는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배설물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아무런 불평 없이 따뜻하게 안아주는 넓은 양변기에 나는 세상의 모든 걱정을 다 덜어놓은 것처럼 온몸의 긴장을 풀어놓은 채 버릇없는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의 긴장을 풀고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배설을 한다. 이보다 더 좋은 생리적 현상의 해결이 없다며 심호흡을 하며 흐뭇해한다. 세상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급한 마음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던 백지의 상태에서 다시 뇌의 기억은 되살아난 듯 머리가 맑아진다. 그리곤 잘 외워지지 않아 겨우 머릿속에 쑤셔 넣었던 시 한 편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내 감성이 문학에 취했던 젊은 시절 한때를 기억한다는 핑계로 암송을 했지만, 바쁜 세상사에 묻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시 한 편이 갑자기 망각의 울타리를 넘어 내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온 것이었다. 걸으면서, 달리면서, 뜀박질까지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던 시가 술병에서 술이 술술술 떨어지듯이 쏟아져 나와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시의 서정과 배설의 기쁨이 합쳐지니 온몸으로 진한 쾌감이 돌고 돌아 그것이 미소가 되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쾌감에 잠시 변기에 앉아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도 한다.
며칠 동안 기를 쓰고 암송한 시를 아무리 떠올리고자 하여도 입 안에서만 머물 뿐 기억나지 않던 시 구절이 실타래에서 줄줄줄 실이 풀려나오듯 자연스럽게 풀려나오니 이게 웬일인가? 인간이 먹으면 배설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배설을 통한 쾌감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려는 것인가? 그것도 문학의 성취 기쁨으로 주려고 하는 것인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 전까지 나는 배설의 기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소화 기능이 떨어져 밥을 먹으면 늘 예민하여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했고, 가끔씩 한 끼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과식을 해서 배가 배불뚝이처럼 빵빵해져서 배앓이를 하곤 하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또래의 동네 친구들보다 배가 앞으로 튀어나와 보기가 싫었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불행을 겪었다. 어린 시절 강원도 접산 아래 접산마을에 살았던 나는 움막 같은 작은 공간에 사각의 변기통을 만들어 그 위에 좌우로 나무판자를 올려놓은 재래식 화장실의 나무판자에 웅크리고 앉아 그 위에서 마음을 졸이며 배설을 하였다. 어린 시절의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있다는 것은 큰 인내심이 필요했다. 행여나 나무판자에 발을 잘못 올려놓거나, 내 몸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큰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음식을 잘못 먹거나 음식과 내 몸의 궁합이 맞지 않아 늦은 밤에 화장실에 가는 것은 두려움의 극치였고,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처럼 덜덜덜 떨며 긴장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 앉아 독서를 한다거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배설을 해야 하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나 자신을 뒤돌아본다. 아내와의 작은 언쟁으로 서로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낸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변기에 앉으면 나의 어리석음으로 귀결된다. 아내와 내가 함께 만든 아이가 아이의 주장을 하며 말을 듣지 않아 크게 꾸짖고 나서 변기에 앉으면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변기를 톡톡 두드리며 쑥스러워한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친구와의 작은 오해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가 그가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변기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죽은 친구와의 오해를 진작에 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내 몸을 닦듯이 변기를 깨끗이 목욕시킨다.
봄에 핀 목련꽃처럼 하얀 변기에 내 몸을 맡겨 긴장의 끈을 놓으면 나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시구를 자연스럽게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아마도 나도 현대인이라는 속도인이 되어 그 사슬에 나를 매어 놓고 살고 있으며, 그 사슬에서 벗어나면 그제서야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고 내 삶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매일처럼 속도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바쁘고 바쁘게 더 빨리빨리’를 외치며 사는 와중에 그래도 여유를 갖고 나만의 공간에서 쉴 수 있는 여유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가장 참기 힘들고 가장 더러운 생리현상이기에 그것이 해결되면서 나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잠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바쁘고 더 빨리 움직여야 하는 때라 할지라도 나는 잠시 변기에 앉아 여유를 갖고 시를 기억하고 두 쪽짜리 수필을 쓰기 위하여 구상해 본다. 그리고 책을 펼쳐 글을 읽으며 변기의 가장 깨끗한 몸을 바라보곤 하얀 미소를 지어본다. 난 화장실에서 독서를 하고 시를 기억하여 외울 때 그것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맛이 있고 행복한 체험이라며 내 몸을 깨끗이 씻어내리듯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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