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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점안식(點眼式)

한국문인협회 로고 서정진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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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오늘 자고 가면 안 되냐?”
“최 서방은?”
“그렇지….”
어머니는 인사하고 나오는 내 등 뒤에 대고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러고는 또 예의 그 소리를 선율에 맞춰 목청껏 부르신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어야….”
“엄마, 왜 그래. 듣기 싫구먼.”
나는 신발을 신다 말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어머니의 개작한 상엿소리를 들으며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깊은 사념에 들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는 자고 가라는 소리와 개작한 그 곡조를 연달아 부르시는 거다. 백 세가 넘으셨지만, 아직 맑은 정신과 정갈한 몸으로 자손들을 기쁘게 하시는 터인데 요즘 갑자기 이상한 소리로 섬뜩한 느낌이 든다.
어머니는 원래 부농의 딸로 유복하게 살아오신 분인데 애초부터 맞지 않는 혼인으로 평생 고생을 하셨다. 선친 집안은 소론 집안으로 대대로 벼슬을 크게 하였지만, 어머니가 혼인할 당시에는 이미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외조부의 고집으로 혼인이 이뤄졌다고 한다. 대가족 속에서 어른들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하고 삼복더위에도 버선을 신어야 하는 항상 긴장된 생활 속에서 외롭고 지친 삶을 감당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마침 선친의 직장으로 분가하며 얼마 동안은 숨을 쉴 수가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선친은 소실을 얻어 양가 살림을 차려 어머니는 또다시 터널을 지나야 하는 삶이 되었다. 과거 우리나라 양반들은 첩을 많이 얻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남성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호기로운 행위로 여겼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일부일처제로 천명되면서 첩 제도가 폐지되었다. 선친은 독선생으로부터 수학은 하였으나 신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다. 시대의 변화에는 관심 없고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집안 분위기의 관념적 사상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을까.
선친의 양가 생활로 인해 까닭 없이 나는 어머니에게 불만이 쌓여 갔다. 어쩌다 본가에 들르는 선친에게 예를 다하여 봉양하는 것은 더욱 싫었다. 살아생전 어머니의 삶은 세속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연속이었다.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 중 하나는 아버지의 첩에 대한 인식이다. 아내로서 배신감과 절망감 속에서도 세간의 여인들과는 다른 시선을 보냈다. 한 가정을 파탄 낸 여인의 잘못보다 “남편 때문에 남에게 지탄받는 인생길을 걸어야 하는 그 여인의 기구한 운명이 가엾다”며 탄식하셨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먼저 헤아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라는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이자, 남의 고통을 내 몸의 고통처럼 여기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 그 자체였다. 어머니는 미움과 질투라는 세속의 감정을 넘어, 다른 가여운 존재를 연민으로 품은 살아 있는 보살이었다. 
우리나라는 8·15와 6·25를 겪으며 거리에 구걸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어머니는 집에 오는 탁발승이나 걸인을 한 번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에는 아예 부엌으로 불러들여 아궁이 불을 쬐게 하고 언 몸을 녹이라며 한 상씩 차려 주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허름한 옷에서 냄새가 났지만, 투정 부리는 나에게 거지가 먹은 그릇들은 끓는 물에 펄펄 끓이면 소독이 된다고 별스럽지 않게 말했다.
이웃집 할머니가 마실 오면 베개부터 내려주며 편히 쉬라는 것도, 더운 여름날 지나가는 행상에게 물건도 사지 않으며 쉬었다 가라며 냉수 한 대접을 쟁반에 받쳐 주는 것도, 아무하고나 내 식구처럼 이야기하시는 것 등이 마땅치 않았다. 남에게 늘 낮은 자세로 대접만 하는 모습은 내내 바보스럽다고 여겼다.
평생을 그렇게 인자하기만 했던 어머니도 무섭게 옹친눈을 뜨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선친은 본가에 오시어 돌아가셨는데 호흡곤란으로 여러 날을 고생하시자 보다 못한 동생이 단지(斷指)를 하였다. 어머니는 그때 아들에게 쓸데없는 짓 했다며 크게 나무라시며 옹친눈을 하셨다.
그렇게 선친을 떠나보내고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는 당신이 부르시던 개작한 상엿소리를 몇 번 하신 후 하루 곡기를 끊으시고 옹친눈을 했던 그 아들 품 안에서 평온하게 영면에 드셨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어머니는 생전에 가끔 보통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나 행동으로 주위를 뜨악하게 한 바 있지만, 수년 전부터 돌아가실 나이를 예언하신 일은 우리들을 모두 크게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언하신 대로 정확히 백두 살 되는 해, 생신 잡숫고 아무 미련 없이 훨훨 나비처럼 우리 곁을 떠나신 거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내 안에 남겨진 기억의 조각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저 참기만 하고 자존심도 없는 어리석게만 여겨졌던 어머니의 시간이 지금에야 전혀 다른 무게와 빛깔로 다가온다. 마치 나무로 깎아 둔 조각상에 불과했던 지난 기억들이 비로소 생명력이 깃드는 것이다.
언제인가 불교방송에서 우연히 점안식 하는 광경을 시청하게 되었는데 매우 인상 깊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점안식은 불상을 조성한 뒤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어 신앙의 대상으로 숨 쉬게 하는 의식이다. 어머니의 행적 속에 숨겨진 깊은 혜안(慧眼)을 뒤늦게 깨달은 지금, 내 마음속에는 어머니라는 거룩한 불상에 눈을 뜨게 하는 점안식이 조용히 치러지고 있다. 뒤늦게나마 비로소 어머니의 참모습을 본다. 미혹의 중생에서 삶 자체가 열린 반야의 눈을 가지신 분이었다. 일찍이 남에게는 칭송을 받으셨건만 우매한 이 딸은 깨닫지 못하고 불효막심하게도 무도한 행동을 하였으니 한없이 죄스러울 뿐이다.
어머니는 당신 떠나가실 줄을 알아, 나이만 먹었지 허깨비 같은 이 딸이 염려스러워 마지막으로 한번 품어 주고자 했던 깊은 사랑이었는데 그 뜻을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깊고 따뜻한 사랑은 이제 내 삶의 지표가 되어, 세상을 지혜롭고 좀 더 넉넉하게 볼 수 있다. 경건한 점안식이 끝난 마음속에 잔잔한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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