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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옷 입은 저 늙은이 무엇 하는 선비인고

한국문인협회 로고 송창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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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에 이르러 평온하던 가정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 나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반세기 동안 갖은 역경을 딛고 쌓아 놓은, 나의 삶이 일시에 무너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기로에 서서 내 삶을 돌아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심하다, 부모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산수 좋은 곳에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과 인접한 지실마을에 터를 잡고 가사문학의 산실인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을 오가며 선비들이 살아온 문향(聞香)에 깃들어 살게 되었다.
선유동은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과 「사미인곡」을 쓴 정자가 있는 곳이다. 봄이면 계당(溪堂)의 매향이 송강 문향처럼 온 동네를 진동하며, 큰 능수버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는 마을이다. 여름이면 무등산 원효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창계천(滄溪川)으로 흐르고, 붉게 물든 자미꽃은 백일 동안 마을 앞 십리 길을 붉게 물들인다. 송강은 배롱나무꽃이 좋아 자기 애첩 이름을 자미라 불렀다. 마을 초입의 큰 은행나무 두 그루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가을이 되면 온 마을이 노랗게 물들고 바람 따라 은행잎이 나비처럼 흩날린다. 창계천 넘어 왕버들나무에 하얀 눈이 쌓이는 겨울이면 신령스러워 발길을 멈춰 서서 마음을 씻는다. 아침 창문을 열면 무등산이 나를 반겨주고, 오곡이 무르익은 들녘도 내 집 마당인가 싶다. 가벼운 옷차림에 호박된장찌개면 족하지 않겠는가.
이곳 식영정은 잘못된 현실을 벗어나 산수 좋은 자연에 들어가면 그 잘못되어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스스로 없어진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식영정에 오르면 장대하고 선비처럼 준수한 사백 년 된 소나무가 성산을 내려다보고 있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환벽당과 용소가 지척에 있고 멀리 무등산를 바라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과 같은 세 곳의 명승지가 한 고을에 인접해 있음을 일러 일동삼승(一洞三勝)이라 말하고. ‘선유동’은 식영정과 인접한 지실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 은거한 사선(四仙)인 임억령의 식영정, 이십영(二十詠)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집필에 기초가 되기도 했다. 식영정 이십영 중의 선유동(仙遊洞) 시는 다음과 같다.

 

푸른 시내 흐르는 조그만 마을
밝은 달 맑은 바람 속에서
깃옷 입고 노니는 저 늙은이
무엇하는 선비인지 알지 못하겠네.

 

나는 이런 선비들이 노니는 곳에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내 고향 누정문화의 산실에서 선비들의 삶과 그 시문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그러면서 <식영정 이십영>에 등장하는 늙은이가 곧 내가 아닌가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젊었던 시절 원없이 일하고 앞만 보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 식영정이 내려다보이는 일동삼승 명승지인 지실마을에 터를 잡았고, 글 읽고 노래하며 유유자적 살고 있다.
신선 같은 삶이란 무엇일까? 세속의 허세를 버리고 자연에 귀속하여 산수를 즐기며 사는 선비들의 삶이 아닐까? 누구와 마주하며 어디에 앉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죽음을 한 발 앞에 둔 노년의 삶이지만 세월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새벽이나 황혼녘 어느 때나 이곳 식영정에 오르면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있어 마음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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