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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맛의 추억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옥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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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하면 굴비가 특산품인 고장이다. 어릴 때 꼬들꼬들 잘 마른 굴 비를 석쇠에 구워 하얀 쌀밥 한 숟갈에 얹혀지는 작은 굴비 살점의 쫄 깃한 그 맛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많은 식구가 둥그런 밥 상에 둘러앉아 밥을 기다릴 때 구수하고 비릿한 맛있는 생선 냄새와 함 께 올라오는 큼직한 굴비 한 마리.
아버지가 먼저 젓가락으로 한 점을 뜯고 나면 우리에게 차례로 한 점 씩 밥숟갈에 올려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과 참조기의 맛은 지금도 잊힐 리가 없는 반찬의 별미다. 아무 말씀 안 하시고 한 점 뚝 떼어 자식들 숟갈에 얹어 주시면 좋은 맛으로 표현되는 기쁨의 얼굴을 읽으셨던 아 버지의 표정도 그때만은 참 편안하셨다. 먹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의 명 품 찬거리 굴비는 오늘까지 영광의 전통으로 맥을 이어 오고 있다.
영광에서 굴비 한 두름을 사 왔다. 크기에 비해 별로 싸다는 느낌은 없었으나 맛이 다르다고 해서 샀던 것이다. 아버지가 사 오시던 굴비와 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맛이지만 집에 와서 구워 먹어 보니 반건조여서 짭조름하고 쫄깃한 그 시절의 맛은 아니었으나 그 맛을 그리워하게 하 는 매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던 시절 음식을 해놓으면 불티나게 없어지던 그때가 그리워지면서 허술했던 밥상이 굴비 정식으로 풍 성한 식탁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저녁상이 되었다.
영광에서 처음 들어간 곳이 굴비정식 전문식당이었다. 짭조름하고 꼬들꼬들 말린 굴비를 연상했는데 황석어만 한 작은 조기가 두 마리씩 배당되었다. 노릇노릇 비린 맛도 전혀 안 나고 기름에 튀기지 않아 담 백한 감칠맛이 식욕을 돋게 한다. 밥상에 동승한 간장게장“이 정도는 돼야지”노란 알이 송글송글 차 있고 짜지 않아 그 또한 별미였다. 굴비 보다는 크기에 밀려 게장이 풍성하게 진상되었는데 그 두 가지 맛은 정 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했다. 시장이 반 찬이라지만 영광의 굴비 정식의 밥상은 일미였다.
조기 떼는 반드시 해류를 따라 늘 같은 곳을 다니는 어종이다. 바닷 속에 깊이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 하며 수직 곡선을 그리며 다닌다. 봄 철에 법성포에 올 때가 가장 알이 많이 밴 상태로 바다 표면에 떠오를 때 잡은 조기가 영광굴비, 그때 법성포에서 잡히지 않은 조기 떼가 다 시 심해로 들어가 알을 낳고 그다음에 떠오르는 곳이 연평 앞바다. 그 래서 연평에서 잡힌 조기는 알이 없어 맛이 덜하단다. 생태계의 질서는 누가 알려준 것도 만들어 준 것도 아니건만 변함없는 흐름을 따르는 바 닷속의 신비에 감탄이 절로 나고 경이로움이 더해진다.
영광 지방에는 곡우 절기에 시제(時祭)를 모시는 집이 많이 있는데 이 를 가리켜‘곡우제’또는‘조기 신산’이라 이른다. 이 제사에는 특별히 크고 알찬 조기를 풍성하게 차려 올린다. 요즈음은 칠산 바다에서 잡히 는 조기는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때문에 영광 굴비의 명성은‘해 묵힌 천일염을 사용한 섶간’과‘해풍에 건조한다’는 가공 기술에 의지해 유 지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굴비는 조기의 아가미를 헤치고 조름을 떼 어낸 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아가미 속에 가득히 소금을 넣고 생선 몸 전체에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아 이틀쯤 절이고 절인 조기를 꺼내어 보에 싸서 하루쯤 눌러 놓았다가 채반에 널어 빳빳해질 때까지 말린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소금물을 짭짤하게 풀어 조기가 자박자박하게 잠 기도록 해서 이삼일 담가 두었다가 날씨 좋은 날 채반이나 빨랫줄 같은 곳에 꾸덕꾸덕 말려서 제사상에 올린다. 굴비를 그렇게 즐기셨던 어머 님과 집안 요리의 대가였던 굴비 요리를 이제는 맛볼 수 없는 맏동서 우리 형님의 조기찜 맛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였다. 그 맛을 살리려고 따라 해 보아도 나의 솜씨로 제맛을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조기(助氣)라는 이름은 사람에게 기운을 돕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 름이다. 특히 노인과 어린이의 원기 회복과 발육에 좋다고 전해 왔다. 머릿속의 단단한 돌 같은 뼈는 결석증을 치료하는 데 이용되었고 법성 포 굴비는 알이 가장 충실하고 윤기가 있을 때 잡아 예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으뜸으로 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금빛 윤기가 있고 부 드러운 육질을 가진 굴비는 짜지 않고 담백하면서 쫄깃한 맛이 자랑이 다. 조기 떼가 칠산 앞바다에 떠오를 때면 황금빛 바다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꼭 한번 보고 싶은 풍경이다.
영광의 특산품 영광 굴비의 밥상을 받아보았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 는 성찬이 되었다. 답답한 가슴과 막혔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곳은 역 시 바다다. 바다는 마음을 넓게 해주고, 산은 마음을 깊게 해주고 들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산과 들 사이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만드는 넓은 물, 그중의 바다, 그 물 속의 생태 조기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난 칠 산 앞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조기가 풍어를 이루어 식탁이 풍성 해지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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