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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인숙(성암)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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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말부부다. 그는 금요일 저녁 서울로 왔다가 월요일 아침 부산으로 출근한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지내온 터라 이제는 당연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젊었을 적에는 건설회사에 근무하다가 환갑 지나 감리회사로 이직하고부터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남들은 퇴직해 젖은 낙엽으로 산다는
데 늘그막에 무슨 복이냐며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을 때 면 나는 3일만 혼자 있어 보라며 손사래를 친다.
칠십이 넘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건 쌍수 들고 환영 할 일이다. 집안의 경제적 여유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만 큼 건강하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젊은이들도 취업하기 어려 운 요즘, 아직도 활동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게 고마우면 서도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 집 살림하자 니 생활비도 만만치가 않고 주말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 가는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가계부에도 그다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보다 집밥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더 신경 쓰이고 더 걱정된 다. 남자 혼자 식사를 챙겨 먹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라던가.
그가 없는 집안이 왜 이리도 크게 느껴지는지, 덩그러니 혼자 있을 때 면 때론 외롭고 쓸쓸한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허송세월하기 는 싫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만의 시간을 채운다. 종교생활에 집중하거나, 걷기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 무료함을 치유한다. 딸 아이는 어미 혼자 있는 걸 걱정하면서도 시간 많아 좋겠다며 부러운 듯 재잘댄다.
특히나 아들은 제 아빠가 직장생활 한다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같다. ‘아빠는 짱! ’이라며 대단한 능력자라고 추켜세우곤 한다. 아 들의 칭찬 한마디가 응원의 힘이 되는지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불평 없이 열심히 뛰어다닌다.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신없었다. 잘살라고 저마다 날 개를 달아주니 기대만큼 제각기 알찬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도 우리 부 부가 느끼는 뿌듯한 보람이고 기쁨이다. 가족이 함께 살면 맛있는 음식 도 만들어 줄 텐데, 그도 나도 혼자 있으니, 끼니를 대충대충 때우기 일 쑤다. 그가 올라오는 주말이면 그나마 손길이 바빠지는 것으로 빈속을 달래준다. 시장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취나물, 숙주나물, 시래기 등 재 료들을 사들고 와 나만의 손맛으로 조물조물 음식을 장만해 비어 있던 그의 입맛을 돋워주려 애쓴다.
만남의 기다림도 상큼하다. 설렘이랄까, 가끔 특별한 날이면 아이들 까지 합류해 기쁨이 사방에서 터질 듯 팽팽한 알맹이가 집 안 가득 흐 른다. 향기가 진동할 것 같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오늘이 무슨 날인가, 누가 벌인 축제인가 싶어 그와 나는 즐거운 상념에 빠져 단란한 가족애 를 맛보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 다 같이 오면 집 안 가득 뭔가 꽉 채워 진 듯 흐뭇하기도 하지만, 그와 단둘이 있는 아늑한 시간을 나는 더 좋아한다.
부부로 사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듬뿍 쌓인 것 같다. 주말부부로 지내다 보니 오해 아닌 오해도 생긴다. 그의 핸드폰에 뜬 이상한 문자 를 보고 나는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해 추궁하듯 그를 닦달하는 해프닝 도 벌였다. 이 또한 더 많은 행복을 축적하기 위한 황혼의 사랑법인지 도 모른다. 사는 동안만큼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도 부부가 지 녀야 할 덕목이다. 남편은 언제까지 일을 할지 몰라도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듯 말하지만, 나는 그가 어서어서 일손을 놓고 둘이 함 께 황혼의 여유를 즐기면서 편히 지냈으면 싶다.
결혼한 부부가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도 홀로 있으면서 혼자 있는 아내의 안부를 매일 전화로 챙기는 남편의 살가운 고마움이 아름다운 소확행처럼 느껴져 입가에 황홀한 웃음이 흐른다. 늙어지면 부부밖에 없다는데, 그 말이 새삼 절실한 믿음으로 다가온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같이 있는 것 같은 든든함이 미덥다.
5월 21일은 부부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제정한 법정 기념일이다. ‘건 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는 행사에서 시작된 날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침 뉴스를 보던 그가 부부의 날은 무엇을 기념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해마 다 부부의 날을 맞고 살았지만, 특별히 기념비적인 행사를 해본 기억이 없던 터라 그의 질문이 생뚱맞게 들린다. 그럼에도 무슨 변덕인지, 괜 히 마음 한구석에 허전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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