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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리스(Nameless)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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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미대륙을
자동차로 동서남북 ㅁ자로 한 바뀌 돌았다. 28개 주를, 그것도 시골길을 골라 다녔다. 남부를 달릴 때는 존 스타인벡이 쓴「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Rt. 66, 지금은 Rt. 10과 많이 겹 쳐 없어졌지만 얼마 남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소설에 나 오는 이야기를 되살여 보곤 했다. 사실 1930년대만 해도 사 회주의 물결이 지식인 사회를 휩쓸고 있어 글깨나 쓴다면 다 거기에 다리를 걸치고 살았다. 스타인벡 역시 그 물줄기를 잘 탔다. 노벨문학상을 탄「분노의 포도」는 농장주가 노동자 를 착취하는 걸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중부와 북부를 갈 때는‘당나귀 우편배달 길(Phony Expressway)’을 찾아 다녔다. 지금은 Rt. 50과 합쳐져 사라졌 지만 어떤 곳에서는 당나귀를 갈아타던 역촌이 아직도 남아 있고 거기에 당나귀를 몰던 어린아이가 쉬던 곳이 관광자원 으로 보존되어 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직선으로 달리면 6천 마일이라는데, 내가 지난 수십 년간 다닌 길은 아마도 수만 마일은 될 것 같다. 금쪽같은 여행 낙수를 버리기 아까워 책으로 엮었다. 금년 봄에『자동차로 미대륙을 횡단하다』(392면, 2024, 한빛)을 출판했다.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느냐 하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려운 고비도 많 지만 재미있는 일이 더 많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는 미국서 공부할 때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여행할 때는 대 도시보다 미국의 깊은 속살을 보고 싶었다. 이른바 시골길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흥미롭기도 하지만 동양인으로서는 보수적인 농촌을 여행 할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특히 미국의 중 남부는 아주 보수적이 다. 어떤 곳에서는 동양인을 처음 본다는 곳도 있다. 그래서 준비해 간 것이 미국 성조기다. 차에 성조기를 달고 다녔다. 도움이 필요할 때 요 청하면 성조기가 도와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미국 농촌 사람들은 성조기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집집마다 정 원에 성조기가 꽂혀 있고, 그런 집은 영락없이 서너 개의 장총을 보유 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교통사고로 죽는 이보다 총기로 죽는 수가 더 많은 나라다. 미국 농촌은 거의가 총기 소유자인 동시에 부자다. 한국 농촌과 비교하다간 큰 바보가 된다. 농장은 끝모를 대규모에 완전 기계 화로 농민은 컴퓨터로 농사를 짓는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시골을 보 면 기계로 농사를 짓지만 그 규모가 영세하기 짝이 없고, 그나마 규모 경제도 없거니와 시장성도 없고, 가내 소비용일 뿐이다.
어느 날 네브래스카주를 여행하는데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아들이 네 브래스카의 스테이크를 드시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예약해준 스테이크 하우스에 찾아갔다. 이게 웬일인가. 덩치 큰 백인 여러 놈이 맥주잔을 들고 TV 스크린 앞에 모여 미식축구 생방송에 완전 미쳐 있 다. 이미 미친 농민들의 고함 소리는 기본이고 서로 어울려 야단법석을 떠느라, 왜소한 동양인 내외가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완전히 주늑이 들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브론디 헤어의 여자 가 나타나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우리 내외는 이미 들어올 때 기 가 죽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도망가고 싶었다. 스테이크 소리가 나오 지 않고 그저 미안합니다, 잘못 들어온 것 같습니다 하고 나오려는데 그 여자는 등에 대고 여기가 네브래스카 스테이크 하우스라고 친절하 게 소리 지른다. 못 들은 척하고, 고개를 숙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미 국 농촌에 사는 농민들은 모두가 이런 식으로 생활을 즐기는 부농이다.
하루는 중부의 작은 마을을 지나가다 보니 마을 입구에 이 마을의 이 름, 인구, 표고 등을 표시한 표식판이 걸려 있다. 여행객으로서는 여간 고마운 정보가 아니다. 지금 지나가는 마을의 이름도 성도 모르고 그대 로 지나가기 일쑤인데, 그 마을에 관해 정보를 상세히 알려 주니 여행 객으로서는 하나라도 더 알고 여행을 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속담에 한 집에 살아도 시어머니 성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수많은 마을을 자동 차로 지나가다 보면, 그 마을이 그 마을 같을 뿐인데 마을에 관한 그 작 은 정보가 지나가는 여행객에게는 금쪽 같은 정보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곳이 마을 이름이 네임리스(Nameless)다. 우리 말 로 직역하면‘이름이 없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이‘홍길동’이든지 뭐 든지 작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마을 이름이 네임리스다. 처음 부터 이 마을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처음부터 이름 을 갖고 나온 마을이 어디 있나. 사는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그 후에 나오게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누가 태어날 때 사내인지, 여식인지도 모 르는데 어찌 이름을 갖고 나올 수가 있는가. 작명을 한 후 당국에 출생 신고를 해야만 그제서야 이름을 갖는다. 그래서 작명가가 돈을 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 국민 60% 이상이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이른 바 노비와 하층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의 사연은 재미있다. 어느 한 사람이 언덕에 혼자 집을 짓고 사는데 그 옆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집을 짓는다. 마을이 생겼 다. 우체부가 하루는 진지하게 이렇게 살지 말고 마을 이름을 지어야 우편배달이 가능하다고 일렀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여 마을 작명을 놓고 논의한 결과 처음부터 여기 에는 마을 이름이 없었던 곳이기에 마을 이름을 고유명사인 Nameless 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너무 솔직하고 해학적이다. 미국인들의 솔직한 자기 고백 같은 레토릭을 읽을 수가 있다. 그뿐 아니고 다른 곳을 지나 다 보니 마을 이름으로‘성교(Intercourse)’라는 마을도 있다. 놀랍고도 너무 솔직해 대놓고 부르기조차 부끄럽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Intercourse를 꼭 사전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Nameless처럼 고유명사 로 사용한다. 그들은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인터코스라고 부를 뿐
이다.
여행하다 보면 Love Land, Love Country, Dime, Nickle 등의 이름도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차를 세워 놓고 수첩에 그 마을에 관해 메모 를 하곤 했다. 그런 메모가 쌓여 한 권의 재미있는 미국 여행기가 탄생 한 것이다. 여행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만, 다시 그곳에 간다면 같은 것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모두가 처음엔 이름 없이 태어났다가 운 좋게 이름을 달고 이 세상을 살게 되어 있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 Nameless는 그 마을의 정체성이 자 고유명사로 부르면 마을 이름치고, 재미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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