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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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흥산* 줄기 길게 걸어온 끝자락
초가지붕들이 산산이 자리한
내가 태어나 뛰놀던 곳
비탈진 밭, 다랭이논으로
사람들이 살아오던 동네
부족함은 온 하늘에 깔린 별빛과
푸근한 달빛으로 채워 가며 살던 곳
전기도 없어 TV, 냉장고, 선풍기는 모르고
비료 포대 오려 부채로 쓰고
해 지면 방의 등잔불 하나가 어둠을 밝혀
그를 중심으로 식구들이 모여 앉아
서로 차지하여 책을 보거나 이를 잡았다
그 시절 눈썹 한 번 안 태워본 사람 있을까
동네 중앙엔 우물이 몇 개 있으나
외딴 우리 집은 개울 건너 산밑 샘에서
물통 둘 매단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먹었다
설거지, 빨래, 허드렛일은 집 앞 항상 흐르는
개울물에서 하고 물새가 살았다
농사일 흙 묻은 장화, 삽, 농기구도 씻고 갔다
온갖 것 내다 씻어도 밑바닥 맑게 보인
앞 냇가엔 물고기 떼와 게, 가제가 많았고
배가 볼록 나올 때까지 소 풀을 뜯기고
어둑할 쯤 집으로 몰고 오면
아버지가 베어온 꼴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논다랭이에 물을 가둬
꽁꽁 얼면 썰매 타고 팽이 치는 놀이터가 되었고
모닥불 펴놓고 젖은 신발, 옷을 말렸다
마른가지에서 차가운 휘바람 소리 들리면
창호지 바른 문고리가 손가락에 달라 붙었고
추위는 뜰팡까지 서성일 뿐 문지방은 넘지 못했다
누렁이 소는 덕석을 입고 끓인 여물을 먹었다
여물 쑨 아궁이 불을 담은 화롯불
방 안에 놓이면 그 위로 여러 손이 모여들었고
고구마, 밤을 화롯불에 묻고 구워 먹었다
여러 남매 북적거리던 내 어릴 적 그 시절이
겨울밤이면 으레 나를 만나러 달려온다.
*성흥산성(聖興山城): 백제 후기 수도 사비성을 수호하기 위해 서기 501년 축조한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와 장암면 지토리 사이에 위치한 테미식 산성으로, 가림성(加林城)이라고도 부르고, 천연기념물 사랑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