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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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이 우리 집 지붕에 머물기에 나는 얼른 구름 위로 올랐지. 어린왕자가 타고 있는지 왕관이 눈부셔 어리둥절하다가 철봉을 뛰어오르듯 운해(雲海) 속으로 기어든다. 푹신한 이불 속에서 우리는 벌거숭이가 되어 삶의 열락(悅樂)을 유영(遊泳)하고 있는데, 설산의 정자. 거기 천 년을 살았다는 노인이 나를 손짓하더라고, 저 멀리 물가에는 발가숭이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길가엔 숫눈처럼 뽀얀 들국화가 산들산들 반기는데 아이들 웃음소리가 돌돌 계곡을 흐른다. 열목어와 버들치가 아이들 품에 안기고 미운 오리 새끼들이 물방울을 튀기며 물속을 희롱한다. 빨간 머리 앤의 웃는 소리에 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이 부끄러운 듯 붉은 볼을 가리는데, 나는 구름 아래를 살펴보다가 사뿐 뛰어내리니 대관령 양지바른 곳. 엉겅퀴의 영접을 받고 소담스러운 구절초를 베고 누웠지. 시원한 동해 바람이 토닥이듯 나를 잠재우는데 낙엽은 이불 되어 나를 덮어주고, 햇살이 틈을 파고들어 아랫목처럼 포근하게 나를 품는다. 천년만년 후에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고깔모자를 쓰고 다시 구름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우리 집으로 내려올 텐데, 지붕 위에 널린 빨간 고추와 엄니 얼굴 닮은 박 덩이가 나를 반겨주겠지. 나는 좋아라 울 엄니 굵은 허리 꽉 끌어안고 팔짝팔짝 뛸 거야. 밤이 되어 박속 같은 마당에 내려앉은 보름달. 쏟아져 나온 궁녀들의 춤사위에 홀린 밤. 밤새껏 놀다가 강변을 바라보니 동살이 눈부셔 고개 숙인 가을이 신부처럼 다가오더라고. 나는 그 가을에 누워 무지갯빛 햇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슬이 내리고 꽃봉오리가 부스스 눈을 뜰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