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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일생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완현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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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을 같이하는 나의 예술 이야기이다. 1940년대 축음기(蓄音機)부터 첨단 음향기기인 입체음향의 오디오 시스템까지, 그리고 SP음반부터 SD카드까지의 음악과 함께 일생을 살고 만년에는 수필가로 데뷔 글을 쓰는 행운아이다.
전기도 없던 시절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처음 음악을 만난 것은 농악과 퉁소 소리였다. 다음에는 다섯 살(1945년) 무렵 사촌형들이 듣던 축음기였다. 일제강점기였고 일본제 축음기인데 음악은 우리 유행가와 국악, 그리고 일본 유행가인 엔카(演歌)로 기억한다. 나이 많은 사촌형들이 듣는 축음기 소리가 좋아 형네 집에 가서 귀동냥으로 음악을 들었다. 축음기에서 들리는 악기 소리가 신기했다. 가수의 노랫소리보다 악기 연주 소리가 더 좋았다. 축음기 바늘이 꽂혀 있는 동그란 부분(축음기 머리라고 했다)의 바늘을 돌아가는 음반 위에 살짝 얹으면 소리가 나는데 신기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집에 있는 바짝 마른 대나무 장대를 잘라서 어른이 불던 퉁소를 보고 비슷하게 만들었다.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대나무 매듭을 뚫고 구멍을 내어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소리가 났다. 처음 연주한 곡은 우리 민요 <아리랑>으로 기억한다. 음정이 맞았는지 정확하게 모르나 처음 연주한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그 퉁소를 나는 고등학교에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에 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밴드부에는 퉁소와 비슷한 악기가 있으니 와서 불어보라고 제의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서양 악기를 만나게 되었다. 선배의 권유에 따라 목관악기 클라리넷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민요만 불던 나는 밴드부에서 행진곡과 등 다양한 명곡들을 연주하면서 음악세계에 빠져들었다.
축음기 판에서나 듣던 현대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의 음악 정서는 급변했다. 특히 민요나 대중가요만 알았던 나에게 클래식 음악과 만남은 새로운 감동이었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접촉하면서 장래에 대한 희망도 달라졌다. 훌륭한 연주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평소 음악은 물론 독서를 좋아하여 중학교 때부터 당시 청소년 잡지 『학원』을 탐독했다. 고등학교에서는 『현대문학』도 읽으며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장래희망이 악기 연주가로 바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미소를 하던 우리 집은 6·25 때 빨치산들의 수탈과 부친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어 대학 진학이 어려운 형편이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하며 1년을 지내는데 밴드부 동급생의 제의로 악기 실기 장학생을 뽑는 서울의 예술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당시는 그 대학을 나오면 중등학교 음악교사를 할 수 있는 준교사 자격증이 나왔다. 목표는 바로 그 자격증이었다. 그런데 더욱 기쁜 것은 음악 강의실 주변에 문예창작과 강의실이 있어 문학지 독서로 알게 된 유명 작가인 교수들의 강의도 청강할 수 있었다. 당시 같이 강의를 듣던 문창과 학생들 중에는 유명한 작가들이 여럿이 있다. 덕택인지 나는 만년에 수필가로 문단에 데뷔 글도 쓰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고향 중학교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채용 소식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지인의 소개로 서울의 유명한 식품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바라던 음악교사 희망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근무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음악교사에 대한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음악교사 대신 음반을 수집하여 감상하고 음반을 재생하는 음향기기(오디오 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 시절 자주 찾았던 명동이나 종로 쪽의 음악감상실을 연상하며 음향기기를 구입하여 음악을 감상하며 갈증을 풀었다. 음반도 클래식과 모던 재즈로 가격이 높았지만 수입 원반을 구입했다. 음악 동호회에도 가입하여 마니아 소리를 들으며 음반 수집과 감상에 열중했다.
성인이 되어 처음 구입한 음향기기는 국산 전축(電蓄)이었다. 음반도 재생 음반인 국내산 LP판으로 축음기 SP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입체음향이었다. 라디오 음악도 축음기 소리보다는 잡음이 없고 좋았지만 전축에서 듣는 음악 소리는 압권이었다.
음악을 듣는 사람의 귀도 진화하나 보다. 회사 동료 중 오디오 마니아가 있어 그의 집에서 들어본 수입 오디오 소리가 나를 유혹했다. 국산 전축보다 소리가 좋았다. 나는 월급을 모아 전축을 수입 오디오 시스템으로 바꿨다. 역시 소리가 달랐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내 귀의 변화였다. 음반 소리에 민감해진 것인지 더 좋은 소리에 대한 기대 심리인지 모르지만, 당시 좋은 오디오 기기가 들어왔다는 세운상가 오디오 상들의 제안(유혹)에 넘어가기 일쑤였다. 소위 오디오 시스템 업그레이드 시작이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음반 수집과 음향기기의 발전과 함께 음악으로 세월을 보내며 직장생활을 했다.
중년이 되면서 직장생활보다 자유스런 생활을 바라고 회사를 사직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사업이었는데 갑자기 IMF로 큰 타격을 받았다. 우여곡절의 시작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견디어 온 것은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세월은 흐르고 생업에서 은퇴할 나이인 60대가 되면서 갑자기 동네 재개발사업 책임자가 되었다. 재개발공사로 살던 동네 집들을 철거해야 하므로 오디오를 출가한 자식 집으로 보냈다. 재개발 기간에는 개인 사업 때와는 달리 너무나 바쁜 일정 때문에 음악에 열중할 수 없었다. 음반 구입도 중단하고 십여 년을 재개발사업에 열중했다. 그렇게 재개발 공사를 끝내고 보니 70대 노인이 되었다.
아파트로 입주하고 집 안을 정리하며 지난날의 음악 일생을 돌아봤다. 음반은 축음기판(SP판)에서 오디오의 LP판 CD와 DVD판으로 바뀌었다. 그 음반들을 오디오기기에서 들었다. 다음에는 그 음반의 곡들을 손바닥만 한 외장하드에 입력하여 컴퓨터로 스피커에 연결하여 들었고, 지금은 손가락만 한 USB 메모리카드나 SD카드에 수백 곡의 음악을 입력하여 핸드폰과 각종 전자기기를 통해 듣는다. 음향은 물론 연주 화면까지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행이나 등산하면서도 휴대용 소형 기기를 이용하여 모든 음악을 편하게 골라 들을 수 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들으면 오디오 못지않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수집한 나의 음반들은 진열장에 잠들어 있다. 손톱만 한 SD카드에 내가 소장한 음반(CD) 기준으로 1천여 장의 음반곡이 모두 입력되어 있다. 지금은 누구나 소장하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음악이 입력된 SD카드로 어디서나 쉽게 원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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