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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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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녀석이 꾸벅 인사를 한다. 표정은 여전히 시크하 다. 제 엄마가 미는 유모차에 앉아 인사를 하곤 이맛살을 잔 뜩 구기며 딴청을 한다.
제 엄마와 내가 눈짓하며 웃으니 제 흉보는 것을 눈치챈 모양, 뭔가 불편하다는 듯 유모차를 흔들며 어서 가잔다. 녀 석은 신생아 때 참 많이도 울었다. 무슨 아기가 잠도 없는지 꼭두새벽부터 깨어 쉬지도 않고 울어댔다. 아기가 울면 난 속으로‘에구∼ 저 아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하겠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좀처 럼 그치질 않으니 초보 엄마 아빠가 진땀을 뺐다. 어느 날은 한밤에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울어대기에 처음엔 아기가 어디 아파서 우는 것 아닌가 하여 겁이 나기도 했다.
하루는 누가 초인종을 눌러서 문을 여니 아기엄마였다. 아 기한테 무슨 일이 있는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아 기엄마는 작은 케이크 상자를 내밀며“요즘 잘 못 주무시죠? 우리 아기가 너무 울어서 죄송해요”라고 했다. 나는 짐짓 “아유, 괜찮아요. 아기는 자기 요구사항을 표현할 방법이 아직 울음밖 에는 없잖아. 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우는 것을 보면 나중에 뚝심 있 는 총각이 되겠어”라며 웃자 그제야 아기엄마도 웃으며“정말 그래요. 쪼그만 녀석이 어찌나 고집이 센지 몰라요”했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 걸음마를 배워 삐삐∼ 삐삑‘삑삑이 신발’을 신고 복도를 걸어 다닌다. 울음 끝도 짧아졌다. 녀석이 복도에 나와 있는 것 같아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면 아주 쌩 돌아서 제 엄마에게 달려가 매달린다. 그런데 난 그 렇게 돌아서는 녀석이 어쩜 그리도 귀여운지 모르겠다.
어느 마을에선 몇십 년이 흘러도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저출산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심각한 인구 감소 실태다. 이런 시 대에 아기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렁 찬 아기 울음은 사람 사는 소리, 건강한 소리 아닌가. 어느 땐 정말 아 기 울음소리에 깨어 잠못들때도있지만에라! 잠을포기하고 거실로 나와 앉아 제 뜻이 관철될 때까지 떼를 쓰는 아기 모습을 상상하며 웃 는다.
최근 들어서는 아침에 아래층에서 어르신 코 푸는 소리가 올라오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다. 언제부턴가 코 푸는 소리를 들어야 하루 안심이 다. 참 공교롭게도 내가 아침밥을 먹을라치면 꼭, 하필 그 시간에 코 푸 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아무리 아파트의 층간 방 음이 부실하다고 치더라도 정말 놀랄 정도로 우렁차다. 난 속으로‘저 러다 혈압이 터지거나 고막이 손상되면 어쩌시려고 저렇게 코를 세게 푸시나! ’생각할 정도니까. 사실 코 푸는 소리가 아름다운 소리는 못 되니 처음엔 매우 못마땅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 침에 할머니 코 푸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그때부터 별별 상상을 다 하며 어찌나 불안한 생각이 들던지…. 자꾸만 아래층으로 귀를 기울 이다 아예 창을 열고 귀를 세우니 누군가와 통화를 하시는지“그래, 그만전화끊고이따봐”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휴∼ 숨을 크게 내쉬며 다행이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코 푸는 소리가 영 못마땅하면서도 언제 부턴가 혼자 사는 어르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소리로 인식되고 있 었던가 보다.
지금은 이사 갔지만 복도 맨 끝 집 모자 때문에, 한여름에도 문을 열 지 못하고 2년여를 살았다. 어느 날 새벽 한 집 거쳐 옆집에서 살림이란 살림살이는 다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다투는 말투로 보아 부부싸움 같 진 않았다. 엄마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의 싸움이었다. 이렇게 모자지간의 격렬한 싸움이 있는 날은 내가 괜히 초긴장한다. 왜냐하면 아들이 엄마에게 그렇게 대차게 대들고도 분을 이기지 못해 애먼 옆집, 우리 집 현관문까지 발로 차며 지나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외 출하려고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꽝!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퍽 주 저앉았다. 아들에게 문제가 좀 있는지 학교 가는 시간 외엔 엄마가 상 시 아들을 감시, 통제하는 눈치였다. 이 모자간의 격렬한 싸움은 밤낮 을 가리지 않았다. 밤 열두 시가 넘어도 이웃에 대한 민폐를 아랑곳하 지 않았다. 어느 땐 참다 못한 누가 민원을 제기했는지 아파트관리실 직원과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다. 싸우는 소리가 매우 두렵고 불편하면서도 언 제부턴가 그 집이 너무 조용하면 마음이 놓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혹시 이 모자가 무슨 사고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매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모자의 존재 여부가 확인되는 소리,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오 히려 안심되는 아이러니였다.
그렇다고 우리 동네가 불편한 소음만 있는 동네는 아니다. 도심이지 만 산이 에워싸고 있어서 사철 다양한 새소리와 바람, 자연의 소리가 한몫 거드는 동네다. 봄이면 야들야들한 잎이 아직 저 혼자가 아니라 나뭇가지에 몸을 기대어 바람에 뒤척이는 찰랑찰랑한 소리. 여름이면 욕심껏 수분을 머금어 바람이 불면 가지의 무게를 압도하는 묵직한 소 리. 가르랑가르랑 가을바람 소리와 겨울이면 산과 아파트 사이 좁은 이 면도로를 다소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과속으로 질주하는 겨울바람의 호기도 힘이 있어 좋다.
물론 아름다운 소리가 듣기 좋지만 다소 불편한 소리도, 날쌘 바람 소 리도 참 감사하다. 이 모두가 내가 살아 있으며 아직 귀가 밝게 열려 있 음이다. 외따로이 고립된 삶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존재들, 공동체를 인식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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