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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문인으로 이끈 인연들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호재(서울)

수필가·서울 중랑문인협회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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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문인 활동을 하는 계기들을 돌이켜보니 문학의 길을 걷기까지 많은 내력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변변한 도서관도 없는 시골 학교라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가끔 아버지께 동화책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지만, 가정형편이 책을 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새로 받은 국어 교과서와 바른 생활 교과서 등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 그날로 모두 다 읽은 기억이 있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였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참가한 일이 떠오른다. 행사장까지 차를 타고 갔는지 걸어서 갔는지 기억이 감감하다. 산문부와 운문부 시제가 발표되고 각자 글쓰기 모드에 돌입했는데, 난 내가 산문부인지 운문부인지 몰라서 무엇으로 글을 써야 하나 망설이고 주저하며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참가했는데, 산문 운문도 모르다니 참 기막힌 일이다. 그만큼 시골 학교 교육 현실이 열악하였고, 내가 문학에 문외한이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겠다. 그런데 그 학교에도 아동들의 문학 교육에 열정을 바친 뜻있는 선생님이 계셨다. 이준동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그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아니셨는데, 전교생을 대상으로 글을 모아 원지에 철필로 쓴 육필 문집을 등사기로 밀어 출판하셨다. 출판이라 할 것도 없는 프린트물이지만 나도 도토리를 소재로 한 시를 그 지면에 발표한 기억이 있다.
6학년 때 봉화 청량산으로 걸어서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 선생님도 동행하셨다. 청량사에서 맛있는 토장국으로 저녁 공양을 하고 법당에서 잠을 자려고 모두 누웠는데, 어둠 속에서 그 선생님이 동화 구연을 해 주셨다. 전에도 그 후에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놓으시는지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내가 지금 문학을 하는 자양분이 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이라고 생각된다.
고교 시절에는 김동소 국어 선생님의 영향으로 문학이라는 씨앗이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님으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셨다고 들었다. 선생님이 일기를 쓰라고 하셔서 가끔 일기를 썼는데 사전을 뒤적거려가며 썼던 기억이 떠오른다. 더욱 적절한 단어, 문득 떠오르지 않는 낱말을 찾느라 사전을 뒤적거렸다. 그것이 어휘력 배양에 많은 보탬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수필이나 시를 쓸 때는 네이버 국어사전을 수없이 검색한다. 단어의 뜻을 몰라서 사전을 찾는 게 아니다. 용어의 쓰임새가 적절한지, 더 합당한 말은 없는지 재확인하여 글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처럼 아는 말도 재확인하는 습관은 문인으로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 난 문학을 곁에 두지 않았지만, 문학은 날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30대 후반인지 40대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은데, 어느 날 한밤중에 잠이 깨어 봄기운에 시심이 발동하였다. 마음속으로 시구를 다듬다가 「봄빛」이라는 시 한 편을 4연 13행으로 완성하여 노트에 쓴 일이 있다. 그 후에 사회생활이 바쁘다 보니 문학에 대한 열의는 잊고 지냈는데, 2007년 중랑구청에서 시행하는 ‘중랑 사이버 신춘문예’에 수필로 응모하여 우수상 격인 차상에 당선되었다. 지금은 ‘중랑신춘문예’로 명칭이 바뀌어 올해 22회째 공모전을 운영하였다. 지난달에 응모작을 심사하여 수상작을 뽑았는데, 오늘 시상식을 거행하였다. 공모전에 참가하여 수상하였던 내가 그 공모전 심사위원장이 되어 심사평을 하게 되니 격세지감이 든다.
‘중랑신춘문예’에 당선된 다음 해에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어느 날 아침 잠결에 TV에서 방송통신대학교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문학 공부를 하려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학점 평가는 중간 과제물 시험과 출석 수업에 따른 시험 그리고 기말시험으로 나누어지는데, 출석 평가와 과제물 평가는 주관식 서술 시험이었다. 주관식 시험은 모두 만점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객관식 기말시험에 대한 부담이 경감되었고 4년 만에 과정을 수월하게 마쳤다.
2009년 가을 어느 날 내가 근무하던 주민센터의 동장님이 식사하러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는데, 식당에는 중랑문인협회 이기라 회장님과 이성숙 사무국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중랑문인협회 입회 원서를 미리 준비해 오셔서 문인단체에 처음으로 입회하게 되었다. 동장님과 회장님께서 2년 전에 ‘중랑신춘문예’에 당선한 나를 문인협회에 입회시키기 위해 사전에 협의한 자리였던 것 같다.
방송대 졸업 다음 해인 2013년에 『불교문학』 발행인이셨던 정정순 회장님의 안내로 신인상 응모를 하고 당선자로 뽑혀 수필 등단을 하게 되었다. 수필 등단을 하였지만 시 창작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중랑문학』과 『월간문학』에 게재된 시를 읽으면서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2018년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시 창작반에 수강하게 되었다. 지도강사 선생님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님이셨던 강희근 경상대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은 경남 진주에 살면서 매주 강의를 위해 버스를 타고 상경하셨다.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천리 먼 길을 달려오시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강희근 교수님이 ‘후문학파’라는 용어를 처음 제창하셨다는데, 젊은 시절에는 생업에 바쁜 생활을 하다가 삶의 여유가 생긴 퇴직 후에 문학을 시작하는 사람을 ‘후문학파’라고 지칭한다고 한다. 전에 근무하던 주민센터 새마을문고에서 헌책을 교체하기 위해 건물 밖에 내어놓은 책더미 속에서 강희근 교수님이 쓴 『시 짓기의 시작을 위한 길라잡이 우리 시짓기』라는 책을 골라 집에 가져와 절반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시 창작 교실에 오니 교수님이 바로 그 책 저자이셨고, 그 책을 강의 교재로 쓰고 있었다. 교수님 말씀처럼 나도 ‘후문학파’가 되어 시를 제대로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2019년부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시 창작 전문가 과정을 1년 과정으로 수료하였고, 추가로 6개월 심화 과정을 2020년 6월에 수료하였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은 주 2회 주야간 여덟 분의 지도 교수님께 시 창작 이론 등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많은 배움이 되었다. 그 결실이 그해 가을에 바로 나타났으니, 제4회 아산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여 당선된 것이다. 당시 공모전 요강에 수상자는 등단 대우를 한다고 하여 그때 시로 등단을 한 셈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수료한 뒤 8월부터는 중랑 직업전문학교에 등록하여 조경기능사 공부를 하였다. 조경은 어려서부터 문학 못지않게 늘 관심이 있는 분야였다. 2021년 봄에 자격증을 취득하였지만, 자격증보다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그 자체에 흥미가 있어 시작한 일이다. 고용지원센터 지원을 받아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취업은 내가 해야 할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1년간 올림픽공원에서 조경 업무를 하고, 다음 해인 2022년에는 태릉골프장에 취업했다. 일을 하다 보니 문학과는 조금은 멀어진 듯했지만, 조경에 관한 일은 감성을 키우는 일이어서 문학에도 보탬이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조경 업무를 하는 것도 좋지만, 내 집에서 내 일을 하며 자연과 벗하는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꾸어 온 꿈이다. 그래서 2022년 가을에 전원주택을 착공하여 2023년 연초에 집이 완공되었다. 내가 직접 설계한 전원을 일구는 것은 글밭을 가꾸는 일이기도 하였다. 뽑아도 뽑아도 뒤돌아서면 다시 자라는 잡초와 씨름을 하다 보면 시의 씨앗도 함께 발아하여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전원을 가꾸는 이유는 문학을 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려서부터 키워온 꿈을 열매 맺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공적인 직장에서 사적인 전원에서 식물과 대화하며 사는 동안에도 문학은 잠들지 않았던 것 같다. 작년에 글로벌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것이다. 이제 명실상부하게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면 안 될 것 같다.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그 위상을 지속적인 성과로 증명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제 자연 속에서 내가 가꾸는 텃밭의 꽃과 나무가 자라듯 내 문학적 결실도 커 가기를 소망한다. 자연(自然)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는 존재이니, 자연을 벗하는 삶이 문학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더불어 내가 하는 문학이 세상을 아름답고 이롭게 가꾸어 가는 감성적 자산이 되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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