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오지랖 넓은 세상에서의 자유 찾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안문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조회수14

좋아요0

우리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 되어서 노인들이 많이 산다. 관리소장 말로는 입주민의 평균 나이가 70세라고 한다. 어 린이 놀이터에는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이버지를 쉽게 볼 수있다.
어느 날, 나는 집 근처의 맥도널드에 갔다. 한 할머니가 손 자와 함께 와서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한 공간을 헤치고 어린아이의 큰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나는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햄버거를 들고 손자의 입에 넣으려는 할머니를 향하여 어린 남자아이가 소 리를 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색한 표정으로 먹지 않으려 는 손자를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의 기억은 1970년대 나의 유학 시절로 달려갔다. 주위에 말이 조금 어눌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어 느 날, 잘난 체하는 다른 친구가 이 친구를 놀려댔다. 그 친 구의 말이 어눌한 것은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린 손자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미리 눈치채 고 다 해 주어서 말이 어눌해졌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할머니의 오지랖이 손자의 언어발달을 늦게 한 것 같다는 그의 주장에 나도 어느 정도 수긍했었다.
마침 내가 앉아 있는 멕도널드 길 건너 초등학교가 끝났는지 마중 나 온 엄마와 함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외 없이 아이들의 소지품은 모두 엄마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자기 배낭은 자신이 짊어지게 해야, 앞으로 자기 일을 자기가 해 나 가게 될 텐데’하며 나는 혼자 오지랖을 떨다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오지랖을 떠는 나에게 어느 초등학교 동창이‘나 이가 들수록 말수를 줄여야 자식도 손주도 안 도망간다’라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만능인공지능 언어인 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하여 세상을 놀 라게 하고 있다. 챗지피티는 문서를 요약해 주기도 하고, 질문에 답을 해 주기도 한다.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해 주고, 그림을 그려 주고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해 준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사람이 원하는 것만을 챗지피티가 답해 주지만, 곧‘오지랖 넓은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 그 오지랖 넓은 인공지능 은 우리가 원하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을 미리 알아서 생각하고 말하고 사소한 것까지 우리에게 지시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세상에서는 사람들이‘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고 살 것 같다. 지능기계가 인간을 대신하여 생각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지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벌써 이런 세상이 낯설지 않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네비가 없으면 스스로 길 찾기가 어려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공지능 네비는 우리가 스스로 길 찾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억지로 햄버거를 먹이려는 할머니에게 대든 어린아이처럼 우리도 ‘제발 억지로 우리에게 지시하지 말라고’인공지능에게 대드는 날이 앞으로 올지도 모른다.
언젠가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가 어느 작품 속에서 이런 세상에서 살 고 있는 주인공을 소개한 것이 생각난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아침 에 로봇이 잠을 깨우고, 커피를 타서 먹으라고 하고, 그날 입을 옷을 골 라주고, 출근을 채근한다. 그 주인공은 그런 세상이 싫었다. 그래서 소 리친다.
“나는 저 로봇이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공지 능은 데이터를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입 력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습하고 작동하는 기계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행동을 학습할 것이기 때문에, 오지랖 넓은 인간 은 오지랖 넓은 인공지능을 만들 것이다. 인간이 오지랖 넓은 인공지능 의 간섭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려면 우리 스스로 오지랖을 떨지 말 아야 한다.
취미 삼아, 나는 베란다에서 다육식물을 키우고 있다. 지나친 사랑과 관심으로 오지랖 넓게 키운 다육이보다, 그냥 놔두고 무심한 듯 키운 다육이가 더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앞으로 출산율이 줄어들어 아이들이 더더욱 귀해지면, 오지랖이 넓 은 엄마와 할머니는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집 밖에서 즐겁게 떠드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마치 우리 집 다육이가 경고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이제 그만. 무심한 듯 자유를 줄 때 튼튼하게 자랍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