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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권현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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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 없는 소녀> 를 감동 깊게 봤다. 원작가를 찾아보 니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다. 2021년 부커상 최종후 보에 올랐던 소설「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반가움에 주문했 다. 신형철 교수의 추천이라며 월계관 로고 3개가 방긋하고 있다. 적극적 진심일까에 나도 잠시 방긋,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달구어진 열의로 첫장을 열었다.
묵직한 작품은 길이나 깊이가 있어서 허벅다리에 힘을 주 며 걷게 되지만 뿌둣함이라는 비밀스런 희열을 만날 수 있으 리라는 기대로 감수하곤 한다. 이책은 의외로 얇다. 한결 가 벼운 가방을 메고 가는 느낌이었다. ‘가방 안의 돌덩이가 도 착지에서 황금으로 변한다’해도 가볍게 떠나는 지금은 어 쨌거나 즐겁다. 힘으로 버텨야 하는 물길도 아니어서 온수 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다. 몸의 온기가 오래 갔다.
노벨문학상을 탄 폰 욘세의 작품「아침 그리고 저녁」도짧 기는 마찬가지. 짧으면서 긴 여운을 주었다. 갈수록 사회는 복잡하고 이기적인데 우리가 어디에 시간을 들여 나를 몰입할까는 중요한 선택이다. 책에 몰입하는 일이 더없이 기쁘기는 하나 시 간과 건강을 맞바꾸고 있다는 거래의 시각으로 볼 때 야뱍해지는 순간 이 가끔 있다. 운동 먼저? 독서 먼저?를 고민하며 매일 서로가 양보하 듯 담금질하는 요즘이라 이런 짧은 책이 고맙기도 하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벗겨버렸다. …사람들은 침울했지 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첫 문단은 모든 걸 암시한다고 했다. 소설가 맥가이언의 말을 인용하 며‘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했다. 작가는 이 첫문장을 아주 중요하게 쓴 듯했다. 그만큼 많은 설정에 암시를 치 밀하게 했다는 얘기다. 덜어낼 게 없는 의미의 문장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파는 펄롱 의 이야기다. 빈 주먹으로 태어난, 아니 빈 주먹만도 못한 그는 16살 하 녀 출신의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성장한 펄 롱. 그러나 주위에 따뜻한 한 사람 덕분에 한 인간으로 살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부엌 바닥에서 기고 걷고 성장한 펄롱은 학교에서도 놀림감이었지만 주인집 여자 미시즈의 도움을 받는다. 펄롱은 아일랜 드에서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살면서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걸’고마워하고 일상의 기쁨을 느 낀다.
선한목자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보게된 사건은 펄롱의 마 음을 수선스럽게 한다. 반짝반짝한 마루, 세탁소에 대한 소문, 나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여자애, 우연히 보게 된 광 속의 여자, 높은 담벼락, 철저한 열쇠. 맘에서 지울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무시하려 했지만 갑 자기 수녀원에 가는 일이 마치 자기를 만나러 가는 일처럼 무거운 일이 되었고 미사를 보는 일요일이 공허해지고 교단과 수녀원이 한통속인 세상에 자신이 저항할 힘이 없는 것에 힘이 빠졌다. ‘자기보호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자신을 보게 된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미시즈 윌슨을 생각한다. 친절, 격려,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의 가치.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기 어머니도 그런 곳으 로 갔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아이를 낳고 광에 갇힌 그 여자애를 구 하기로 한다. 결국 더러운 여자애를 업고 어떤 비난이나 조롱의 시선 속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 더 힘든 일일 줄 알지만 벌써 최악 의 일은 지나갔다는 것, 두려움을 잠재우며 어떻게든 해나가리라며 집 으로 업고 오고 있었다.
결국 맘 속에서 일어나는 선한 생각, 그것이 행동이 되면 누군가의 영 혼을 따스하게 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소설을 말해주고 있다. 그 시절 수녀원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소녀들의 불행을 소녀들만 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 든다. 사소한 것을 지켜주며 표나지 않게 사소한 사랑을 베풀며 사는 인간이기를 나 에게도 조용히 채근하는 글이다. 따스한 시선을 잔잔하게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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