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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자의 군사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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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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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군항제가 끝나갈 무렵 벚꽃잎들이 하늘하늘 대지에 흩날린다.
어느 날 편지함에 군사우편 하나가 날아든다. 해군사관후 보생으로 훈련 중인 외손자의 편지라고 짐작이 간다. 아마 도 할머니가 부쳐준 위문편지에 대한 답장일 터이다.
노을빛 하도롱 봉투를 정성스레 열어 본다. 깨알 글씨로 알알이 새기듯이 촘촘하게 공들여 쓴 편지지 두 장이 다소곳 하다. 연분홍과 파랑 종이에 적힌 사연을 대하자 읽어보기 도 전에 마음은 어느새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서 서성인다.
외손자 나이쩍 스물몇 살 언저리를 넘나들고 있음이다. 육 군 병사와 햇병아리 여교사가 사흘들이 주고받던 그 옛날의 편지지와 방금 받은 외손자의 색색깔 편지가 어쩐지 닮아보 인다.
그 시절은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불안정할 때여서 소 용돌이 가운데 오갔던 군사우편과 고운 편지가 무지개 다리 를 놓은 듯 행복을 전해주었다.
‘걸어다니는 수필, 멋진 수필가님 할머니의 손편지를 받던 날은 설렘 으로 가슴이 벅찼어요’라고 편지 첫머리를 여는 외손자의 군사우편 사 연. 올해 해양대학을 졸업하면서 해군장교로 진로를 정하겠다던 외손 자의 결심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 해군의 길을 가 려는가 보다.
외손자의 선택은 당연하다 여겼으므로 격려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아빠의 복무지를 따라 옮겨다니면서 바다가 있는 항구나 섬을 배경 삼 아 자연스럽게 군인들을 보면서 자란 외손자니까 말이다.
어느 섬에선가 해거름녘에 해군 숙소에서 내려다 보니 바닷가 바지 선 국기게양대 앞에서 일몰 하강식 중이었다. 서서히 내려오는 태극기 를 향하여 진지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던 초등생 외손자 형제 모습은 귀여운 추억의 옛 그림이다.
사위는 온유하고 자식사랑 지극하면서도 어려서부터 체력단련은 군 대식으로 강하게 시켰다.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손자들이 안쓰러 워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인정신이 일찌감치 길러져서 이 번 고된 훈련에도 잘 적응하는 모양이다.
군사우편 사연 속에는 저녁 5시 석식 이후의 굴풋한 시장끼를 메우려 고 외할머니의 요리를 떠올리기도 한다는 귀절도 있다. ‘가오리 조림 의 쫄깃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느낌과 아삭아삭 씹히는 연한 뼈의 식감 을 내려면 양념과 가열시간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하리라’며 아몬드 초 콜릿의 겉모양새를 떠올려 본다는 등.
군생활에서 편지가 이토록 일과에 윤택함을 주게될 줄 몰랐다며 소 대장에게 편지를 전해 받은 저녁에는 읽고 또 읽다가 행복하게 잠든다 고적혀있다.
내가 첫 수필집을 출간했을 때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의 도서관에 책 이름과 작가인 할머니 이름을 적어서 읽고 싶은 책으로 신청했단다. 그 후 수필집이 서고에 꽂히고 나서 책을 빌려와 읽고는 다시 반납하더라 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제 몫으로 받은 책은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더라 고 들었다. 내가 쓴 수필의 진정한 애독자가 외손자였다니 감동이다. 더욱이 책의 홍보를 위해 학교 도서관을 선택한 기발함이 기특하고 놀 라웠다.
눈에 어려운 질환이 와서 한쪽 눈을 제대로 못 보게 된지 햇수를 넘 겼다. 글쓰기를 멈춘 요즈음은 서글프고 우울한 나날이다. 절필을 해버 릴까 싶다가도 글쓰는 즐거움을 못 누리는 남은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 까 생각하면 슬퍼진다.
그런 중에 외손자 입대 소식을 접하고서 응원하는 글이라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써보냈다. 답장으로 외손자가 보낸 군사우편 사연으로 말 미암아 조심스레 써보는 글 한 편이 막혀버린 문학의 샘을 촉촉하게 적 셔줄지도 모른다는 바람이다. 지난 번 안과 진료 때 그간에는 없었던 치료약이 조만간 나올 예정이라고 희망적 위안을 준 안과 명의의 말을 떠올린다.
내일은 외손자가 훈련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장교 임관식을 치르는 날이다. 우연하게도 같은 시각에 그 아버지는 훌륭하고 모범적인 군생 활을 마감하는 전역 신고를 한다. 그리고는 아들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 보러 갈 것이다. 할머니인 나 또한 외손자에게 줄 새롭게 쓰기 시작한 수필을 전하면서 늠름한 임관에 큰 박수로 축하하러 갈 예정이다. 거룩 한 식전에 나가서 해군의장대의 행진을 보며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다 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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