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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꺼지지 않는 오지(奧地)에켜진등불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송배

시인·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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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상남 성춘복 선생님 미수(米壽)를 맞아서 기념문집『인연 - 상남과 나』출판기념회를 겸한 제1회 상남문학상 시상식과 성춘복시전 집 봉정식이 많은 문인들과 그의 문하생들이 모여 성대하게 열렸다. 선 생님은 약간 수척한 표정으로 인사말과 상패를 수여하고 기념문집과 시전집을 봉정 받았다. 그동안 노환으로 병원 출입이 잦다는 소리를 들 었으나 병문안도 못 간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며“선생님 건강하십시오”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에게“고맙다”는말로두손을 꽉 잡았는데 인명은 재천이라 이제 선생님의 인자한 모습은 영원히 볼 수 없게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님과의 영적인 만남을 통해서 다시 선생님을 추모하고 불망(不忘)의 인연을 되새겨보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제 이승의 고뇌 를 모두 잊으시고 경기도 포천에 혜화동 천주교 묘원, 안온한 극락의 세계에서 새로운 내세를 계획하고 계실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김송배_ 선생님, 나의 선생님 존경과 선생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사 랑의 인연은 아마도 40여 년 전 열사(熱沙)의 심상해변시인학교에서 문 단 초년병으로 선생님을 뵙게 되는 영광이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인자하신 풍모와 근엄하신 언술 등이 참가 시인들과 독자들의 이목 을 흡인하셨습니다. 마침 운좋게도 선생님은 우리 반 초대시인으로 참 여하여 강의와 시단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후 선생님의 사랑으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문단에서도 선생님이 한국문협 시분과회장으로 계시면서 지도하신 <미 래시> 동인들과 지방 나들이 시낭송 행사에도 동행하도록 챙겨주셔서 내 작품의 소재나 주제의 착목(着目)에도 많은 도움을 얻었으나 그 깊은 은혜에도 못다 갚은 죄스러움을 지금도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을 찾아 뵌 것은 이참에 선생님이 우리 후학들을 위해서 남기신 시집과 평론집, 수필집 등 많은 저서들에서 아직도 풀지 못한 몇 가지 문제를 여쭙고 싶었는데, 그 중에서도 선생님이 자주 취 택하는 시어에서‘나’와‘너’즉 자아(自我)와대아(對我)에 대한 보편적 인 개념 이상의 심오한 이미지와 상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 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는데 창작 당시의 발상이나 동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성춘복_ 그렇지요. 특별하게 시대적 또는 나 개인에 대한 배경에 따 른 동기는 없어요. 그러나 나는 시집을 상재할 때마다 그‘책머리에’에 나 혼자만의 독백 같은 것으로 시인의 말을 통해서 밝혔지요. 나는 첫 시집『오지행』에서부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제가 바로‘나’를바탕 으로 해서 시대적인 극한상황과 자기 부정의 무상감이랄까, 상실감 같 은 것을 극복하려는 나 개인적인 삶의 진실이 작품으로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더구나 시집『복사꽃제』‘책머리에’서는“사고의 분열로 다소나마 자신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시적 본연의 생태를 통하여 진솔 과 윤기를 더하고 자아 및 대아의 관계를 정립하여 감동의 세계로 이르 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바로 그 몫이라 믿기 때문이다”라든지 시집『혼자 부르는 노래』에서도“나의 너를 조명하는 것이고 다음은 그런 너에게 비추어지는 나의 삶의 한 양 식으로 해석·확인하는 일”, 그래서 자아의식에 대한 구체적인‘나’와 ‘너’에 점철된 시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철학적 혹은 심리학적 으로 달관된 확증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는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 을까 싶네요.
김송배_ 특히 시「나를 버리는 일」을 읽어보면“나를 버려야 내가 사 는 길이라면/ 나를 줄여야 나는 사는 법이다”. 그리고“날마다 조금씩 내가 나를 죽인다/ 살아가는 일이 생애를 줄이는 것이듯”이라는 대목 에서는 화자의 언술이 마치 초극의 처연 앞에서 달관된 주정적인 사유 의 정감을 읽을 수가 있는데 이는 인식세계에서 자아에 대한 존재의식 의 창출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나를 버리는 일이 곧 내가 사는 길 이란 어조를 인생관 내지 가치관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성춘복_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 자아라면 철학에서는 사 유하면서 경험하여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기를 자아라고 할 수 있 어요. 어찌보면 해탈의 종교미학을 연상케 하지만“날마다 나를 죽이 는”주체(인격 구조에 있어서 중심부)의 해탈식이 잠재해 있어요.
여기에서 나의 순수한 체취가 잘 드러나 있는데 자아에서 파생하는 인식(주관)과행위(주체)를 합쳐서‘나’라는 대상에 대하여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사유를 포괄함으로써 자아에 대응하거나 객관성을 질감높게 승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진실의 부재를 탓하거나 상실된 시대의 사려 깊은 희구의 의지가 인간 본연의 삶으로 유도하는 문학적인 교시적 기 능이 함축되었다는 작은 의미이지 가치관으로까지 비약할 순 없지요.
김송배_ 다음은 자아와 대칭하는 대아에 대한 것입니다. 어쩌면‘나’ 에서보다 더욱 절실한 어조로 일상의 감각이나 격정 등이 실험의식에서 초월하고 있는 현상을 각 시편들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시「너를 생 각하면」에서“금방 보름달로 차오르는/ 그런 크기 그런 밝기로/ 넌 내게 있어야 한다/ 닦으면 날로 새로워지는 내 나이같이/ 너는 내 안에서 삭 아야 한다”는 어조에서 나와 함께 너를 반추함으로써 너가 나의 존재의 미를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오늘 나를 삶이게 일으켜 세우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나와 너, 자아와 대아에 대한 상관성을 어떤 포괄적인 의미로 작품에 표출하셨습니까?
성춘복_ 여기에서 너는 나의 존재의의를 새롭게 하고 오늘 나를 삶 이게 일으켜 세우는 버팀목이라고 할까요. 이처럼 존재의 인식을 통해 서 사랑의 확인이나 사랑의 갈구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어요. 그 당시 박이도 교수가 내 시를 말하면서 자아와 대아의 관계를‘자아의 이원성’의 축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는 살아 있는 자, 자아와 죽어서 돌아온 자, 대아 곧 영혼과의 대칭으로‘나의 너’를 조명하는 삶 의 양식으로 추적하고 있다고 평한 것을 보면 나와 너의 공존을 추구하 면서도 이질적인 나와 너이거나 아니면 동질적이면서도 어떤 연유에 의해서 동화되지 않는 나 혹은 너의 상반관계의 암울성을 변증법적인 시도를 통해서 화해로의 전환을 지향하려는, 말하자면‘너는 내 안에 서 삭아야 한다’는 인생관의 명징한 여운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송배_ 선생님 시집 중에서 내가 읽은 작품에서 나와 너를 이미지 로 생성하는 제목은「내 가슴 복판에도 꽃빛이」「나를 버리는 일」「밤 마다 나는」「나를 떠나보내는 강가엔」「나에게 띄우는 연하장」「내가 가을을 가듯이」등이 있으며「내 어찌 너를」「너의 이름을」「네가 없는 이 하루는」「너를 보내며」「너를 생각하며」「내 춤을 네가 본다면」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시집『꽃잎 띄운 물 마신 듯』후기에서 명시한 것과 같이 바깥쪽에서 살필 수 없는 그리움이 안쪽에 도사리고 있어서 안과 밖은 서로 등을 대고 있는 연결 된 것이라는 자아와 대아의 명징한 해법을 이미 정립하셨는데 시적이 나 인생적으로 나와 너에 대한 다채로운 형상들이 화해하고 융합하여 더욱 새로운 시세계를 모색하셨습니까?
성춘복_ 이제 와서 새로운 모색보다는 마감하는 정리에 주력하고 있 지요. 사실 내가 한국문협에서 우리 문학과 문단을 위해서 그리고 문인 들, 특히 후배들을 위해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라는 존재감을 명확하게 암시하는 보편성에 치우쳐서 더러는 부정적 눈길도 있었으나 이런 일도 생애의 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되는 군요. 그리고 작품에 대해서는 언젠가 조병무 평론가가 어느 문예지에 서「성춘복 시인의 새로운 감각과 심상」이란 글로“성춘복 시인의 정서 는 일상의 질곡을 넘어서 깊은 사념과 엄숙한 인생의 묘미를 한 단계 높혀 달관의 세계로 자신을 인도한다. 무한의 세계를 터득한 듯‘취한 듯 몽롱한 꿈이 좋아/ 나는 오늘 나비가 된다(「꽃들의 잔치」)’는등시어 에서 보여준 토속적인 미감과 함께 우리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한 폭의 심상으로 남겨주고 있다”는 단평으로 나의 시세계를 요약해 주어서 고 마웠지요.
김송배_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나의 삶/ 나의 시/ 나의 목숨까지 주신 어머니/ 아주 영이별을 앞두고/ 나는 자꾸 헤맨다(「어머니를 보내 며」)”거나“오, 사랑이여/ 내 춤을 네가 일으켜/ 고르지 못한 내 숨 가지 런케/ 네 귀에 담아 쌓고/ 너를 내 가슴 속에 다독여/ 내 곁에 다소곳 눕 게 하리라(「내 춤을 네가 본다면」)”라는 어조와 같이 선생님의 나와 너의 주제의 귀결점은 어디인지 앞으로 더 연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늑 한명계(冥界)에서 이승의 고뇌 모두 잊으시고 영면하옵소서.

나는 상남 선생님과는 대만에서 열린 <아세아시인대회>를 비롯하여 금강산, 중국, 러시아, 체코, 헝가리, 독일, 미국 등 문협 해외심포지엄 에 동행 여행하였으며, 선생님이 변함없이 사랑의 손길로 인도해주신 은혜가 너무 깊으면서도 그의 따스한 정감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의 첫시집『奧地行』을 읽고「奧地에 켜진 등불 -시인 상남」제 하로“순백의 깃 드리운 찻잔 속에/ 일렁이는 멋 가득 채우고/ 아, 내 마 음 끝간데를 몰라/ 더듬어 보는 언어들/ 저만큼 앞서 걷는/ 쌓인 어둠 속 우리들 사랑을 위해/ 시를 위해/ 오지를 밝힌 저 등불”로 선생님의 행장과 내면에 잠재한 고매한 정신을 숭앙(崇仰)하는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등불 부디 영원히 이 세상에서 꺼지지 않고 비추어서 우리들 을 보살펴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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