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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소개팅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혜숙(혜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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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소개팅을 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부부가 맺어지는 것이 얼마나 엉뚱하게 시작되는지 전혀 짐작도 못했는데 진짜 결혼을 해버렸다. 모든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알게 모르게 얽혀 있다. 각자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삶으로 돌아와 그때 그런 일이 생겼고 그런 것들이 모여 또 다른 일이 일어나면서 인생길을 수놓기도 하고 아프게도 한다. 나는 중매쟁이도 결혼정보회사 직원도 아닌데 남의 인생에 발을 디밀곤 했다.
그러면 내 앞에 인연이 나타났을 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던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시간이 흐른 지금 내 삶 켜켜이 일어난 일은 인연에 의해 운용되어 온 걸 발견한다. 나는 늘 집안일, 친척들, 친지들까지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며 살아왔다. 힘든 상황을 보면 걱정이 몰려온다. 내 일도 제대로 해결 못하면서 가만히 있어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 오지랖을 떤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게 남편 눈에는 주책바가지로 보이지만 나 편하고 싶어 움직인다. 이수역 근처에서 몇십 년을 살아온 나는, 누가 길을 몰라 쩔쩔매지 않나 살핀다. 무언가 찾고 있는 것 같으면 그쪽을 향해 눈을 마주치려고 걸어가면 남편은 내 옷자락을 잡아끈다.
남성사계시장이 어디예요? 내가 아닌 내 앞 젊은 사람에게 묻는다. 내 얼굴이 편안해 보이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묻나 보다. 고개를 흔들며 지나가면 “저짝으로 가면 바로 나와유” 하고, 손으로 가리키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남편은 내 오지랖에 질렸다고 성질이 잔득 나 있다. 오지랖은 한복에서 앞부분이 겹쳐 내려오는 앞섶의 옛말이며 순우리말이다. 옷의 앞자락이 넓게 펼쳐진 모습이 자기 영역이 아닌 곳까지 참견을 한다는 뜻이다.
“우리 애들이 어디 가서 헤맬 때 누군가 이렇게 알려줄걸.”


동문 체육대회에서 누가 툭 튀어나와 묻는다.
“선생님,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글쎄. 너 나한테 배웠잖아.”
“선생님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중매 섰잖아요? 그게 우리 누나예요.”
그 순간 몇십 년 전 외갓집으로 생각이 날아간다. 잊고 지내오던 그 일이 화들짝 열린다. 혼자 시외버스를 갈아타며 충청도에서 강원도까지 여름방학이 되어 갔었다. 버스가 다른 데로 갈까 봐 조바심을 치며 창밖을 보는데, 열어 놓은 창문가로 풀포기가 날아와 내 옷에 진흙이 튀었다. 차장이 쫓아와 나를 보았을 때 차는 시골길을 한참 달리고 있었다.
“아이 저를 어째. 피를 뽑아 던진 게 하필 학생에게 튀었네.”
“피를 뽑아 던졌다고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나에게 노인네가 말한다.
“저 벼 사이에 키 크고 시커먼 게 피라는 풀이여. 피죽도 못 먹었느냐고 하잖어.”
“학생 옷 있으면 바꿔 입고 이리 줘 봐. 흙이라 마르면 비벼서 털어보자. 충주 가면 과자 사줄게. 미안해.”
왜 하필 나에게 튀겼을까. 어이없는 사건을 맞닥뜨릴 때마다 사주에 월천파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외갓집엔 엄청난 사건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차장 언니가 사준 과자를 먹으며 내가 내려야 하는 청일면 소재지에서 꼭 내려달라고 당부하며 간다. 전에 외할머니를 따라 왔던 길을 곱씹고 곱씹어 보며 간다.
태기산이 내려다보는 외갓집 안채에서 아침을 먹고, 외할머니를 따라 한의원으로 들어갔다. 시골이라 환자들이 죽 둘러앉아 기다리는 방에 외할머니 치마꼬리를 붙들고 따라다니니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외손주가 방학이라 왔다고 하고 나가시니, 낯선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아 주눅이 들어 있는데 나처럼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청년을 힐끔거린다. 한참 후 외할머니도 옆에 와 앉았다. 누가 들을까 봐 할머니 귀에 대고 속삭인다.
“외할머니, 우리 옆 동네에도 얼굴이 저런 처녀가 있어요.”
“정말이야? 처녀인 줄 어떻게 알아?”
“머리를 엉덩이까지 땋고 다니거든요.”
낮에는 밖에 잘 나오지 않는지 처음 보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저래서 시집이나 가겠냐며 말 많은 게 싫었을 것이다. 나도 그러고 서 있었으니까. 외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안채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한참 후 외할머니 친구와 아들이 방석 위에 앉고 다과상이 들어왔다.
나는 다시 총각의 휘번덕거리는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까는 무서웠는데 나를 보고 웃어주자 원래는 잘생긴 얼굴인데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 할머니가 과자를 집어서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고, 눈이 똘망똘망한 게 공부 잘하게 생겼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외할머니가 언제 얼굴 덴 처녀를 보았냐고 묻는다.
지난달 장날, 머리를 땋아서 댕기를 드린 여자가 할머니의 짐을 들고 따라오다 들마루에 앉았고 엄마한테 인사를 해서 자세히 보았다. 그녀가 간 다음에 어쩌다 저렇게 되었냐고 하니, 참 얌전하고 손끝도 야무진 처년데 아깝다. 불이 났는데도 모르고 낮잠 자다가 데었는데 오래간만에 보았다고 했다.
1960년대 괴산에는 전화도 없어 외할머니가 나도 데려다 줄 겸 처녀를 보고 오겠다고 하니, 그들 모자도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따라 나섰다. 노총각이 될까 봐 노심초사하던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처녀네 집엘 다녀오더니 일사천리로 맞선을 보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밤에 불이 나 정신없이 나오다 여동생이 안에 있다고 하여 다시 들어갔다. 동생을 업고 나오다 화상을 크게 입은 것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한데 얼굴에 흉이 있는 신랑감이었다. 신혼부부를 위해 서울에다 집도 사주고, 가게도 차려 살림살이는 넉넉했다.
그들의 인연은 생각보다 허술한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인생꽃은 환하게 피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들이 모여 두 집 걱정을 덜었고, 아들을 업고 내 앞에 나타나 중매쟁이라며 선물을 안겨주었다. 어쩌면 어린 학생이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내 등을 두드려주며 추켜세웠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흐뭇했다.
이제와 보니 한 토막씩 자기 앞의 삶이 다 의미 있게 얽혀 있다. 아 그때 일은 저 일의 결과로 그런 좋은 일로 복을 받은 것이고, 그때 힘들었던 것은 잘못한 일에 대한 업보였구나.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세상을 원망하던 일은 아마 전생의 죗값이었나 보다. 그래서 거지가 동냥할 때 ‘적선합쇼’ 하는데 선업을 쌓는 일에 인색했음을 반성한다. 그 제자 아이를 가르치던 모교로 생각이 날아간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날 긴 직원종례를 마치고 가방을 들고 나오니, 회의 도중에 전화 왔는데 6시 이후에 전화한다고 받고 가란다. 애국가 소리에 맞춰 태극기 하강식을 하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누굴까 짐작해보지만 오리무중이다. 대부분 퇴근을 했을 때 전화가 왔다.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부탁할 것이 있다면서 퇴근길에 용다방에서 보자고 했다.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나에게 행정서류를 부탁하는 줄 알고 공적인 거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면 소재지에 처녀 선생이 남자를 만나면 바로 이야깃거리가 되는데, 어찌 사적으로 만나느냐고 툴툴거리는 것을 들은 친한 여선생이 같이 가자고 했다.
다방을 둘러보니 구석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동창인데 다행히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궁금해하며 커피를 홀짝거리는 나에게 반명함판 사진을 내밀었다.
“각연사에서 같이 공부하는 형이 둘 있는데, 큰형을 공양주가 중매 서자, 동생에게 미안하다며 나한테 이 고장 친구를 중매 서 달라고 조르는 통에 공부를 할 수가 없어.”
“졸업 후 처음 보잖아. 왜 하필 나야?”
“나도 없는데 누굴 소개하느냐며 피해 보았지만 결국 졌어. 명문대를 나온 형에게 맞추려면 선생을 소개해야 될 것 같아서 영어, 국어, 음악 세 선생을 안다고 말했더니, 신랑감은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국어선생이 된 거야?”
학교에서 미모가 최고였던 그녀가 어이없어 하는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사실은 음악선생이 제일 예쁘다고 했지. 그랬더니 중매 서 달라던 큰형이 신붓감은 그렇게 고르는 게 아니야. 제일 착한 선생이 누구야?”
“그래서 여기에 온 거야?”
“그렇게 떠밀려 왔어.”
“잘생겼네. 한번 만나 봐.”
“정말 느닷없다. 불쑥 나타나 중매를 선다니.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
“나 공부 좀 하게 도와줘. 동창 좋다는 것이 뭐야. 내일 여기서 기다릴게.”
집으로 가는 길, 목도강가에서 한참 동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해가 넘어가며 하늘과 강물을 발갛게 물들인다. 수심 가득한 나를 보려는지 피라미가 수면 위로 펄쩍 튀어오를 때마다 은비늘이 반짝거리던 고즈넉한 풍경이 그림같이 남아 있다.
나는 이상하게 큰일이 있을 때마다 어떤 조짐이 있거나, 예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해 엄마랑 용문사에 정월불공을 드리러 갔을 때, 올해 결혼할 남자가 나타난다고 하더니, 이 사람인가? 강물에 물어보았지만 졸졸졸 소리 내며 한강으로 흘러갈 뿐이다.
집에 오니 보스톤에 사는 큰집 언니가 와 있어 깜짝 놀랐다. 수안보에서 산수장이란 커다란 온천호텔을 하며, 방학 내내 집안 친척들을 불러 모아 챙겨주고 미래를 준비시키던 언니는 내 삶의 롤 모델이다. 시골에 있는 내가 4년제 대학을 나와 선생을 하며 살 수 있는 데는 큰집의 큰딸인 언니가 집안의 대들보가 되어 집안 친척들을 도와준 공이 컸다.
10남매 중 세 딸이 토플 시험을 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넷째가 아들이었는데 실력이 모자라 딸들이 부모님을 초청해 영주권을 따고 이민 갔는데, 모두가 전문직이거나 부자가 되었다. 30여 명의 친척들을 호텔에서 방학마다 불러, 내내 먹이고 공부시키며 앞길을 열어주던 선업 덕인지 지금까지도 가장 잘나가는 친척이다.
언니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면, 너희도 여건이 될 때마다 다른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다. 그 영향으로 오지랖을 떨며 이렇게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참 인연이란 묘하게 연결된다. 어쩌다 괴산까지 와서 이 중요한 자리에 관여를 한다. 엄마는 신랑감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나이가 좀 많고 아직도 공부만 한다는 게 걸린다며 언니한테 사진을 넘겨준다.
“짙은 눈썹 아래 눈빛이 살아 있고, 단정한 얼굴이 한 자락 단단히 하겠는걸. 똑똑해. 어디 궁합 좀 보자.”
종이에 적힌 사주를 손가락을 짚어 가며 내 사주랑 맞춰보았다.
“닭띠와 뱀띠면 궁합이 잘 맞아. 머리가 좋고 집안도 좋은데 만나보라고 해.”
“총명하게 생기긴 했네요. 서울 총각이 시골 여자 데려다 잘 살 수 있을까요?”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언니의 말에 올해 불교와 큰 인연이 있는 집 총각을 만난다고 스님이 말씀하시긴 했어요. 절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만나려고 그런 이야기를 했나 보라며 소개팅을 하였다.
신랑감은 직업도 없는 남자에게 누가 딸을 주겠느냐고 취직자리를 알아보았다. 사법고시에 계속 떨어지는 동안 세월이 흘러 정상적으로 취직한 친구들은 과장을 달고 있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길을 찾아주어 1차는 합격을 했다. 2차부터는 영어 시험과 임원 면접이니까 네 실력으로 돌파하라고 했다.
영어는 사법고시 과목에 있어 자신 있었고, 면접은 잘 보아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앰배서더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시골에서는 호텔 결혼식이 낯설었다. 호텔 회전문에 끼일 뻔했다는 둥,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어 새 옷을 사 입고 왔다는 둥 요란한 결혼식이었다.
서로 오려고 해서 집에서 잔치를 하고 차 한 대만 대절하여 다녀왔다. 결혼식에 참석한 대표 학생들을 통해 화제가 만발했고, 큰일을 치르느라 우리 반은 꼴찌를 하고, 출근계도 제대로 결재 처리가 안 되어 감사에 걸리는 등 온갖 해프닝을 겪으며 서울 사람이 되었다.

 

시골뜨기가 5년 만에 사표를 내고 서울토박이 집으로 시집을 와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의 염려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하는 것, 먹고 사는 것, 예의범절이 너무나 달랐다. 오빠 댁이 조카를 안고 올라오자 시누이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내가 결혼하듯 인연이니까 받아들이면 다 갈 자린데 무척 따져서 조건이 사람을 고르는 것을 보면서 나를 어떻게 데려왔는지 의아했다.
모든 일엔 골든타임이 있는데, 실기를 해서 낭패를 보는 듯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 물 좋고 정자 좋은 데를 찾았다. 사표를 내고 혼기인데 유학을 가서 학위를 따서 돌아오니 노처녀가 되어서 대학의 자리도 별반 없었다. 취직도 결혼도 안 되자 어찌나 날카로워졌는지 식구들이 그녀로 인해 지쳐 갔다. 살림만 하시던 얌전한 시어머님이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선생을 그만둔 후 늘 집에만 있고, 사회성이 약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딸 시집도 못 보내서 너에게도 고생시킨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네 책임 지우지 않을 테니 시누이 중매 좀 서다오.”
“엄마가 절대 시누이 중매 서는 것이 아니라는데요. 동창회에 가서 말은 해볼게요.”
그 당시 여고 동창들이 둔촌 주공아파트와 올림픽아파트에 와서 살았고 ‘변두리회’를 만들어 매달 집집이 돌며 만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국 사회체육센터에서 수영을 하고, 어른들도 성인반에서 수영하고 에어로빅도 배웠다. 아이 셋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새 세상을 만난 듯 살맛이 났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른 십여 명과 아이들 스무 명이 넘게 만나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만나 간식 정도를 나누고, 집집이 모임을 가지며 재미있게 살았는데 30대에 시작한 모임이 지금까지 매달 만날 줄은 몰랐다. 시누이가 우리 집에 자주 왔는데 왔다가 전화 받으면 그 히스테릭한 분위기에 친구들이 놀라곤 했다.
“그래, 너 너무 힘들겠더라. 중매 서 달라는 두 남자가 있어. 소개해 볼게.”
당시 외환은행 다니는 남편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 온 민숙이 두 건을 소개했는데 두 번째 소개한 사람이 더 마음에 드는 듯했다. 이 친구야말로 소개팅 다섯 번을 성공한 마음씨 고운 친구이다.
그런데 시카고에 사는 그녀의 딸이 변호사가 되었는데 남편감을 못 찾아 걱정이라서 해서 보은하려고 적극 나섰었다. 보스턴 언니네 손자가 변호사라 소개하려고 그 엄마와 무던히 노력을 했는데, 미국 사람이 다 된 남자애는 어른들이 자기 결혼에 관여하는 것을 질색해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했다. 그런데 워낙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친구라서 그런지 다른 한국인 변호사를 소개팅해서 잘 살고 있다.
시누이가 유리회사 공장장을 만나고 보니 두 아버지는 와세다대학을 같이 다녔고, 두 어머니는 경기고녀 1년 차이 선후배로 시어머니가 엑스 동생을 삼겠다고 했던 사이였다. 두 어머님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했으면 젊었을 때 연결되었을 집이 이렇게 엉뚱하게 이어져 만났다. 인연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만나나 보다.
중매로 사람을 만나면 수준이 어느 정도 맞춰지는 시점에서 출발하고, 두 집안 가족 간의 동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 양가 가족과의 관계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감정적인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연애로 만나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큐피드 화살이 날아와 주변을 놀라게 할 때가 많지만 신선한 이점도 있다. 연애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감정적인 기복이나 불확실성을 줄이고, 비교적 단기간에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저년이 소개하는데 내가 시집갈 줄 아느냐고 패악을 부리던 시누이에게 신랑이 한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나오자 사랑이 싹트고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예상과 달리 인간이 계산한 것보다 인연이 만든 만남이 더욱 끈끈하다. 내가 주선하는 소개팅은 휘몰아쳐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웨딩마치를 울리곤 했다.
시어머님은 결혼은 다 팔자소관이다. 한 치 앞 매듭이 연결이 안 되다가 한 걸음 나아갈 길을 찾아 인연을 이어 놓으면 이렇게 잘 만나 살아가는 것인데, 그걸 못 찾고 일본에 갔다 오고, 가정이 살얼음판을 디디며 살아왔다며 나의 공을 치하했다.
민숙에게 중매를 서서 너무 고맙다. 옷을 해주면 잘 산다고 해서 남편 친구인 이림스타일 원피스를 선물했다. 공장장에게 시집가는 신부 옷도 신랑이 그 집에서 다 맞추었다. 그랬더니 신랑 집에 중매를 섰던 민숙 친구이자 신랑감 고종사촌이 난리가 났다. 중매쟁이에게 좋은 옷을 해주어야 잘 산다는데, 자기도 해달라고 졸랐다는 이야기까지만 생각이 난다.

 

어차피 비용이 들어가고 연결하기가 힘든 중매를 하다 보니 결혼정보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광고를 보면 한 회사에 오만 쌍 이상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거나, 진지한 만남을 원할 때 매력적이고 현실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직종이 생겨난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인연을 못 만나서, 최근에는 결혼은 선택 사항이 되어서 기피하는 풍조까지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남을 위해 소개를 했다가 잘못되면 두고두고 원망을 듣는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업체가 등장하고 솔로들이 공중파를 통해 만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딸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니, 대학 앨범을 보고 연락을 했다는 결혼정보회사의 전화를 100통 이상 받았다. 연예인같이 생긴 딸에게 집중적으로 전화가 오고, 명문대를 나온 딸에겐 덜 오는 것을 보고 차마 말은 못하고 다들 인기가 많아서 연결은 안 했지만, 기분이 좋다고 얼버무렸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나의 결혼도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전혀 상관없는 두 사람이 연결이 되어 살아왔다. 어떻게 낯선 사람과 부부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다 그 싹이 11살짜리 중매쟁이가 맺어주었던 인연의 끈이 청실홍실 실타래가 된 것이고, 그 빚으로 어렵다는 시누이 중매를 서서 39살에 2번째 소개팅을 성공한 것인가 짐작해본다.
세 딸의 결혼도 묶어보니 누구의 주선으로 인연의 끈이 연결되었고, 세 사위를 만나게 되었을까 돌아본다. 회사 사원아파트를 방학동에 받아 입주하게 되었던 것을 정리했다. 융자를 빼서 방배동 헌 아파트로 무리해서 이사를 온 집터의 복을 받았을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 실로 직물을 짜면서 분에 넘치는 사위들을 만났다. 힘든 중매를 해주어 상을 받은 것일까.
첫째딸은 가장 친한 동네 친구가 사귄 남자와 친구 둘을 이어주는 경우였다. 2년을 두고 소개할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세월이 흘렀다. 친구들과 사주카페를 갔다 재미로 사주를 보았다. 올해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여 친구에게 넌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준다더니 왜 소식이 없냐고 채근해서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다.
23살에 회계사가 된 그의 이야기는 듣고 있어서 4명이 잘 만났는데, 그만 소개한 커플이 헤어져 위기가 왔지만, 첫사랑으로 만난 둘의 단단한 결속력은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마음의 간절함이 남아 금방 만났고 다시는 헤어지는 일이 없었다.
세상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큰딸의 행복한 교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세 딸을 둔 내 마음은 세 아이의 결혼 전선에 날이 서서 무언가 뒤처지는 딸에게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행정고시를 보며 야위어 가는 둘째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비상은 막내딸로부터 걸렸다. 사귀던 남자가 성북동 할머니가 부른다고 하여 언니가 줄줄이 있는 그녀는 말도 못 하고 갔었나 보다. 그녀를 보자, 한눈에 마음에 들었는지 두 손을 잡고 그 자리에서 명령했다.
“조부모와 한집에 살면서 이렇게 예쁘게 컸으면 볼 것도 없다. 나 죽기 전에 손주며느리로 들이고 싶으니 서둘러라.”
드라마에나 나오는 그런 성북동 높은 담장 안으로 불려간 막내딸의 인연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반전의 만남이었다. 평소에 멋 부리느라고 거울 보는 시간이 책 보는 시간보다 많은 그녀를 우리 가족은 돌연변이라며 위태로운 시선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연산홍 꽃이 색색이 피어나고, 모과나무 분홍꽃이 무수히 지고 나면 2층 테라스에서 노랗게 익은 모과를 따고 멀리 있는 것은 막대기로 내리친다. 세 딸이 밀짚모자를 들고 쫓아다니며 모은 향기로운 모과를 차에 넣고 다니라고 나눠주고 바비큐를 해먹던, 생애 제일 아름다웠던 주택으로 이사 와 살 때이다.
남편과 일층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유리창으로 줄이 내려가더니 툭 하고 떨어져 우리 부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막내가 외출복 차림으로 내려와 친구를 만나겠다고 인사하고 나갔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안 나서 살그머니 두레박줄처럼 내려오던 보따리가 궁금하여 내려다보았다. 보일러실이 있는 지하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왔는데 보니, 바닥에 질질 끌리는 통 넓은 바지로 바꿔져 있었다.
“이리 들어와.”
“잘못했습니다. 이 바지가 너무 입고 싶었는데 혼날까 봐….”
그렇게 겉멋에 빠져 있던 그녀는 여중 여고가 같이 있는 사립학교에서 6년을 다니다 보니 선생님들부터 학생들까지 거의 다 얽히어 일거수일투족이 레이다에 걸렸다. 그렇게 서로가 엇나가려 하면 붙잡아주면서 재수도 안 하고 대학에 셋 다 갔다.
만날 짝은 이렇게 만나는 것인가? 그녀는 그런 허당녀인데 남자들 눈에 막내 티를 줄줄 내며 애교를 부리면 어디서나 그녀의 매력에 퐁당 빠지곤 했다. 입학하자마자 그 과에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 운명처럼 나타났다. 왕자처럼 잘생긴 부잣집 아들은 그녀를 매일 같은 동네라며 차에 태워 학교를 다니면서 커플이 되었고, 졸업 전에 외국계 은행에 취직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26살 어린 그녀를 데려가겠다니, 우리 집으로선 대혼란이었다. 일단 큰딸이 결혼을 먼저 하겠다고 서두른다. 그런데 신랑감 형이 짝이 없다. 치과의사가 되기까지 너무 숨가쁘게 달려와 교제할 시간이 없었다고 먼저 가라고 하여 서둘러 웨딩마치를 울렸다.
우리 집도 막내네 결혼을 시키자니 고시 공부 중인 둘째가 걸린다. 하지만 동생 먼저 보내고 느긋하게 도전하겠다고 빨리 가라고 서둘러서 9개월 후에 결혼을 한다. 양쪽 집 사는 것이 차이가 많고, 겨우 세 딸의 공부를 마치고 둘의 결혼 자금까지 대려니 무리였다. 그 집에선 그냥 와도 된다고 하지만 딸이 기 죽을까 봐 그럴 수는 없어 성의를 다 한다.
예물은 뭐로 하냐고 하니까 시계랑 반지 다 있다고 하며 괜찮다고 하는데 자꾸 권하니 금목걸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집안에 금을 모아 보았다. 돌반지조차 금 모으기로 다 내놓아 그 이후 있던 것을 모으니 세 돈이 모자랐다. 그런데 임원 직책을 맡았을 때 받은 기념패에 붙여준 것이 딱 세 돈짜리가 보여서 그것까지 떼어서 보냈다. 재복이 있는 신랑에게 요즘 보여주는 금값 상승 행진과, 하는 사업도 잘 되는 것도 보며, 시어머님 말씀처럼 사람은 팔자를 잘 타고 나야 하는 걸 실감한다.
내 주변 중매의 역사를 되돌아보니 친구들과 친척들이 깊숙이 관여를 한다. 주변에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디에서 사는가에 따라 인생길이 많이 달라지고, 종교에 따라서도 인생관이 바뀐다. 둘째가 시험 커트라인이 소수점 차이로 떨어지고 나이는 먹으니 점점 초조해졌다. 행정고시를 세 번 떨어졌을 때, 노무사 시험으로 궤도 수정을 했다. 그런데 첫째 친구가 외고 후배 중에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데, 서로 도와 가며 공부하면 어떠냐고 소개팅을 주선했다.
같은 도서관에서 밥도 같이 먹으며 공부하여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둘째딸도 될 줄 알았는데, 또 0.1 차이로 떨어졌고, 나이는 서른을 넘어서자 마지막이라며 본 시험 앞에 가족들도 무너졌다. 손목이 가느다랗고 얼마나 오래 앉아 공부하는지 엉덩이에 물집이 잡히곤 하는 저 몸으로 고시를 할 수 있을까 고시폐인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남자가 떠나면 더 좌절하여 어려울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그는 변호사가 되고도 휴일이면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겹치는 과목은 과외까지 해주는데 그 신의에 감탄했다. 그러고 나서 딸도 합격하여 결혼을 했고, 잘 살고 있다. 신랑도 개업을 했고 같이 책도 내고, 대학교에 강의도 나가며 전문직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은 세 딸 모두 시집을 갔다. 나는 아들도 못 낳았는데, 손자 하나씩 다 낳았고 손녀 둘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누군가가 소개를 해주고 사랑을 주어서 부모의 숙제를 다 한 것에 감사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인생도 하향 곡선인지 IMF의 골이 깊었다.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다. 남편은 퇴직을 하였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퇴직금조차 사기꾼한테 떼이고 사업도 잘 안되었다. 빚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라 세상사는 재미가 없었다. 나라 전체가 우울한 때였다.
집 근처 학교에 다니는 선생님네와 친해 시험 때면 아들 국어를 가르쳐주었었다. 그 부서에 국어교사가 병가로 결근 중이어서 급히 찾았다. 아들 가르쳐준 일이 생각났다며 전화를 받고 느닷없이 학교엘 나갔다. 내 인생은 동네 친구들과 점심 해 먹다 기간제 교사로 취직이 되는 등 예상 밖의 일이 자주 일어났다. 입학식 날 선생님들이 운동장 조회를 해서 서 있는데, 동네 사람이 잡아끌었다.
“거긴 선생님들 서 있는 데야.”
내 변신은 그렇게 놀라운 것이었다. 교무실에는 여교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똑똑하고 예쁜 인재들이 학교 울타리에 갇혀서 일하다 보면 좋은 인연을 만날 시간이 없어 노처녀로 나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오지랖병이 도져, 나는 경황없는 중에 짝 맞추기를 수도 없이 한다.
결혼 세 번을 성사시키면 죽어서 좋은 데로 간다는데, 한 건 더 올려서 전에 맛보았던 쾌감으로 내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었다. 수안보 호텔에서 여름방학 내내 같이 지내던 친척 조카가 국가기관에 있는 데도 결혼이 잘 안되어 나한테 선생을 중매 서달라고 했다. 교무실에서 착하고 복스러운 후배를 맞선을 보게 하여 틀림없이 성사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신붓감은 좋다는데 조카는 이상형이 아니라고 하여 한 교무실을 쓰는 사이에 무척 힘들었다. 이래서 중매를 잘못 서면 뺨이 세 대라는 말이 나오는구나. 다시는 극락이고 뭐고 중매는 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남편을 대기업에 취직시켰던 제일 친한 친구 아들이 대기업 연구원이 되어 귀국했고, 그가 남편에게 부탁했다.
“그 애 신붓감을 선생님 중에 골라줄 수 있어?”
남편은 모처럼 부탁을 하는데 교무실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맞아요. 요즈음 되는 일이 없지만, 그분 덕분에 우리 집이 안정된 직장 다니며 애들 잘 키웠는데 은혜를 갚아야지요.”
당시 학교는 전산화가 진행되어 나이 든 나는 업무 면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는 상황이었다. 내 옆에 앉은 국어과 선생이 컴퓨터 다루는 것이 능숙하니 많이 도와주어 고마워서 큰딸 친구를 소개했는데 잘 안 되었었다. 내가 운이 없으면 소개하는 데도 운이 안 따르나 싶어 신중하게 누굴 해주어야 할지 고심했다. 국어과 선생들 중 혼기가 꽉 찬 사람이 둘이 있고, 같은 동네에서 출퇴근하는 영어 선생도 있어 고심하는데, 운명인지 퇴근길에 같이 걷게 되었다.
“선생님. 혹시 사귀는 분 있어요?”
“아니 없어요. 엄마도 걱정 많이 하는데 소개 좀 해 주세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기업 연구원이고, 아버지도 대기업 임원이었는데 신랑감 얼굴은 본 적 없어요.”
“저 소개시켜 주세요.”
“남편 같은 직장에 다니던 집이어서 좀 부담스럽기는 해요. 나도 여기까지만 아니까, 만나서 알아가며 신중하게 판단해요.”
결혼식 날 식장엔 우리 부부가 아는 사람이 반이 넘었다. 국어과 선생님들과 나랑 친했던 선생님들이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고 눈을 흘겼다. 우리 교무실에서 제일 시집을 잘 간다고 자기들도 해달라고 야단이었다.
소문대로 연구원 부부는 3남매를 낳고 강남에 아파트를 사서 잘 살고 있다고 남편이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술을 얻어먹는다. 두 집 부부가 가끔 만나서 식사할 때도 좋은 며느리를 소개해 주었다고 인사를 받고 그 뒤로 내 인생도 역전이 되었다. 그때 중매 서고 얻어 입은 겨울 코트는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라, 그 옷을 입고 나가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열심히 사는 것에 달렸다고 본다. 특히 결혼은 만남 전 준비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첫 만남에 대한 부담감이나 기대를 너무 높게 가지기보다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면 나의 단점을 찾아 상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늘 베풀고 웃는 얼굴로 살아가면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 그것은 절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해 안 되는 게 없다. 국가기관에 있던 조카처럼 최고 대학을 나오고 인물도 잘난 그는 자기가 찾는 이상형이 나올 때까지 결혼정보회사도 이용하면서 200여 번의 소개팅을 했다. 의사와 결혼했는데, 시집 식구들에 대한 거만한 표정을 보며 내가 소개해준 선생보다 인간미가 없어 보여 걱정했는데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잘난 사람들은 조건 스펙만을 따지며 나랑 어울리는 조건으로 사람을 만나는데 인성을 간과하기 쉽다. 따뜻한 정을 느끼며 편안한 가정생활을 해야 하는데 서로 잘났다고 양보하지 않으면서 티격태격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소개팅은 잘만 하면 좋은데, 잘못하였을 때는 뺨이 석 대라는 매서운 질책이 있다. 나도 결혼하여 잘 살 때는 중매를 서준 동창이 고맙다. 하지만 남편이 크게 교통사고를 내서 아기를 업고 걸리고 가서 피해자 가족에게 시달릴 때는 왜 이렇게 무모한 남자를 만났는지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인간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인데 여기저기 새댁이 돈을 꾸어 합의를 해주고 융자로 메꾸고 나니 전 재산 반이 날아간 때는 중매쟁이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평화로워지려고 노력하면서 좋은 때를 떠올리려고 사진첩도 찾아보며 마음을 다스리며 살았다.
세상을 살면서 쓸데없는 오지랖이 누군가의 인생을 이어주기도 한다. 이로써 세 번의 중매를 성공시켰으니 죽어서 나는 좋은 데를 가지 않을까. 오지랖 넓고, 지나치게 긍정적이라 핀잔을 받곤 하지만, 왠지 저승과 가까이 갈 수밖에 없는 인생길인데 별로 두렵지 않다. 서로 도와주며 쌓은 복으로 식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다 잘 될 것이란 마음으로 살고 있다.
오늘 봄 바다를 보러 가는데 벚꽃이 피어 있고 산은 연둣빛 신록과 함께 황홀하다. 바다에 도착하자 바람이 거세진다. 햇빛이 수평선부터 해안까지 반짝거리는데, 파도가 거칠다. 몇 미터씩 백마들이 줄 맞춰 달려와 하얗게 부서진다. 산골 소녀가 책에 나온 바다를 보며 어떤 모습일까? 저 하늘과 비슷할까? 바다를 동경하던 그 시절부터 싹튼 그리움은 바다를 보고 돌아서면 또 바다가 그립다.
바닷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해안선을 따라 심어진 해송이 온몸을 흔든다. 하필 그 자리에 심어진 운명이 안타깝다. 산에서 부는 분홍 꽃바람도 이별가를 부른다. 인연이 무엇이기에 바람처럼 느닷없이 와서 인생길을 열어 간다. 바다가 내 인생을 많이 닮아 있다. 볼 때마다 내 인생처럼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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