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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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송정리 장이 서는 날이다. 송정장은 오일장으로, 사흘 있으면 설이니, 이른바 그믐장이다. 아침부터 장터 입구에는, 트럭에서 내리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영광통 앞으로, 시내 중심가 도로 안쪽을 따라 상인들의 차량이 늘어서고, 인도에 펼쳐진 좌판에는 채소와 생선, 과일이 가득했다.
새벽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장터는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이런 날을 두고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했던가.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반짝 비치는가 싶더니 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러다가 그것이 비치기가 바쁘게 다시 햇볕이 쨍했다.
장군들은 휘모리장단이라도 맞추듯 장짐을 싸기도 하고 풀기도 하였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날은 안정을 못 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점심참이 지나면서 눈바람이 장바닥을 휩쓸었다. 이렇게 되자 장꾼들은 아직 파장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바닥에 청과일을 펴 놓고 있던 최순민은 고개를 들고 동정을 살펴보았다. 송정국밥집, 영광굴비, 신발집, 테이프가게 등 눈바람을 피할 수 있는 가게들은 몰라도 난장에 물건을 벌여 놓고 있는, 장꾼들은 어쩔 수 없이 짐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순민은 고집이라도 부리듯 짐을 싸려고 하지 않았다. 좀 더 참으면 날씨가 좋아져 물건 하나라도 팔게 되려니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오기를 부리는 심정이었다. 더구나 오늘 저녁은 모친 기제이기 때문에 물건을 판 돈으로 제수를 장만해야 했다.
“재수대가리 없이, 저리 안 가! 이놈의 개새끼!”
최순민은 가게 앞에 붙어 서서 교미하는 누렁이를 보자, 질겁을 하고 수컷의 엉덩이를 발로 툭 차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놈은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에그, 웬순놈의 눈….”
누렁이의 그 짓을 훔쳐보고 있던 그의 아내가 남편 보기 민망스러웠던지 얼굴을 돌리며 엉뚱하게 혼잣소리를 지껄였다.
장바닥에는 그새 눈이 광목을 풀어놓은 듯 하얗게 깔려 있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이제 누렁이의 그 짓이 아니고 퍼붓는 눈이었다. 아내의 말처럼 눈이 원수 같았다.
그믐 장사를 망쳐 버렸으니, 눈은 곧 그들의 생계에 큰 지장을 주는 훼방꾼이었다. 하긴 오늘 장만 망쳐놓은 것이 아니었다. 겨울 들어 어느 장날도 빤한 날이 없었다.
그 사이 누렁이한테서 떨어진 암컷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누렁이만 미진한 욕정을 다시 찾고 있는지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렁이는 이제 전봇대 밑의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장꾼들이 돌아가면서 버리고 간 썩어버린 오장육부의 잉여물들이었다. 놈은 작은 뼈다귀 하나를 핥고 있는가 했더니, 그새 손바닥만 한 다른 것 하나를 물고 나와 길바닥에 저만치 집어 던지고, 빨고, 굴리고 있었다.
옛말에 장사꾼 돈은 개도 안 물어 간다고 했는데, 누렁이의 하는 짓거리를 보건데, 뼈다귀에 대한 놈의 집착은 장사꾼의 돈에 대한 집념과 별로 다를 바 없구나 싶었다. 누렁이를 쳐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에 야릇한 빛이 떠올랐다.
“개팔자는 상팔자여. 에그, 이년의 팔자는 개보다 못하구만!”
아내의 읊조리는 한탄의 소리가 칼바람에 실려와 최순민의 고막을 쑤셨다.
“어서 오세요.”
제수에 올릴 배와 사과 등을 사러 온 손님이었다. 그 손님이 돌아선 다음에도, 손님이 드문드문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공판장 88번에게 갚을 물건값 맞춰주기는 어림도 없었다.
바람이 눈송이를 날렸다. 폭풍 같은 눈바람이라도 몰려올 듯싶었다. 빈 궤짝들이 들썩이고 차일이 날아갈 듯 펄럭거렸다.
바람은 기묘하게 슬픈 영혼의 깊은 바닥을 훑는 듯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전의 어머니 목소리를 쏙 빼닮은 소리였다. 설을 이틀 앞두고 저세상으로 가신 어머님. 그는 환청 현상일 수만은 없다고 여겼다. 당신 기젯날 이렇게 장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으니, 혹여 젯밥 못 얻어 잡수실까 싶어서 어머니가 외치는 소리로 들렸다.
“그만 짐 싸게.”
장이 서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어서 돌아가서 어머니의 제수를 지어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짐을 싸다니요!”
아내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더 있어 봤자여, 이 추위에 누가 오겄는가.”
“추워도 올 사람은 올 것이구만요.”
“늦게 가면 찻길만 미끄러워.”
“공판장에 갚을 돈은 어쩌고요?”
“하는 수 없지 뭐.”
“그믐장까지 물건값 안 갚아주면 솟장 넣는답니다.”
“나쁜놈들….”
최순민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 시간이라도 더 있어 봅시다.”
“자네 몸 괜찮겠어?”
그는 걱정되어 아내를 쳐다본다. 얼굴이 퍼렇게 얼어붙어 있었다. 더구나 지난 장날 손님과 심하게 몸싸움을 하다가 다친 얼굴 곳곳에 피멍이 퍼렇게 살아나고 있었다.
“…….”
“불 피우더라구.”
최순민은 몸을 일으켜 쓰레기더미가 있는 나무 아래서 찌그러진 양철 화덕 하나를 주워 왔다. 파장하면서 어떤 장사꾼이 버리고 간 물건이었다. 그는 막대기를 들고 화덕 속을 저었다. 타다 남은 시커먼 불씨가 남아 있었다. 나무만 집어넣으면 불이 살아날 듯싶었다. 그는 빈 궤짝을 집어다가 쪼개기 시작했다.
“오메, 이것은 안 되어라우.”
아내가 질겁을 하고 말았다.
“불 피울 것이 없는디 어짤 것인가.”
“그런다고 궤짝을…. 이것 하나에 돈이 얼만디요.”
“지금 그까짓 돈이 문제가 아니여.”
그는 투덜거리며 물건을 발로 콱 밟아버렸다. 그것은 납작하게 부셔졌다. 아내는 마치 제 살이 찢긴 듯 몸을 움찔했다. 가게에 가서 빈 궤짝 하나를 사오려면 삼사천 원은 주어야 한다. 그 돈을 벌려면 그들의 오장육부가 그만큼이나 썩어 문드러져야 하는데, 땔감으로 써버리자 아내의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불을 피워 동태가 되어가는 부부의 몸을 녹이고 볼 일이었다.
찢긴 아내 육신의 파편을 끌어모으듯 판자 조각을 주워 화덕에 집어넣자, 어렵사리 살아난 불은 붉은 빛을 더하며 살아 올랐다.
아내도 이제 별수 없다는 듯이 슬그머니 화덕 옆으로 다가왔다. 순민은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까칠하고 차가웠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면서 끌어당겨 불이 달구어진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찔러 넣었다.
“왜 그러시오!”
아내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손이 너무 차서 녹여주려고 그라구만.”
그는 양다리를 더욱 옥죄었다.
“누가 보면 어쩔라고요!”
그녀는 마치 무슨 못할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마냥 얼굴이 붉어졌다.
“보면 어째? 서방 각시인디….”
그러는 사이 손님이 나타났다. 기대를 했었는데 겨우 단감 한 꾸러미였다.
그는 빈 궤짝 하나를 또 끌어내렸다. 이제는 그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따순 불을 쬐는 것이 좋다기보다는 체념한 표정이었다. 불빛에 드러난 아내의 얼굴이 환하게 붉어 보였다. 그는 신바람이 나서 빈 궤짝 몇 개를 더 끌어내렸다. 그중 한 궤짝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물건이 와그르르 쏟아져 나왔다.
“여길 뭘 담아 두었는가?”
순민은 바닥에 너절하게 엎질러져 있는 것들을 보고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워메메, 어쩐다요! 이 궤짝은 손대면 안 되는디요.”
아내가 놀라 바닥에 깔린 물건들을 주섬주섬 쓸어 모았다. 그런 아내의 손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뭣인디 그려?”
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저녁에 시어머니 제 지낼 제수 반찬인디 어쩐다요.”
그녀는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주워 모으는 데만 열중이었다. 그는 가슴이 뜨끔했다. 저녁에 제사 지낼 제물을 아내가 장이 파하기 전에 사서 빈 궤짝에 담아 놓았던 것이다. 참꼬막이 터져 나와 굴러다니고, 잡은 지 얼마 안 된 듯 핏기가 뻘건 토종닭 한 마리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쇠고기도 두어 근은 됨직해 보였다. 도토리묵도 문드러져 있고, 곶감, 대추도 굴러다녔다. 나무새, 마른 육포, 팔뚝만 한 굴비 한 두릅도 있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조상들의 기제만은 정성들여 모시는 아내의 착한 마음은 알 만하였다.
“장을 너무 많이 봤구만.”
순민은 허리를 구부려 그것들을 주워 담으며 투덜거렸다. 오늘같이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이렇게 장만하자면 힘겨운 일이었다.
“몇 가지 안 되구먼요. 시세가 있었으면 더 살 것인디, 어머니가 오늘은 많이 못 얻어 잡수시겠구만요.”
“오늘은 찬물을 떠 놓고 지내도 감지덕지할 분이시구만.”
“조상님들 욕되게 하구만요.”
아내는 제물들을 새 비닐봉지에 담아서 화덕 옆에 모아 놓았다. 그것들을 보는 순민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기젯날 일찍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 무슨 청승인가 싶었다. 텅 빈 장터에 그들만이 남아 개도 안 물어 간다는 돈을 벌기 위해서….”
순민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나무 몇 개비를 집어 화덕에 던져 넣었다. 나무는 톡, 톡 소리를 내면서 활활 피어올랐다. 불기운에 온몸이 근질거렸다. 추위에 얼어버린 삭신과 앞전에 장꾼들과 싸우면서 얻어맞은 신체 곳곳의 응혈이 더운 불길에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손님들이 몰려왔다. 손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사과, 배, 밀감…, 쌓아 놓은 과일 박스들이 자꾸만 줄어들었다. 비싸면 비싼 대로 물건값 한 푼 깎는 사람이 없었다. 손님이 뜸했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굶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 돈벌이에 흥이 나서 밥 생각이 없었다. 아내를 생각했다.
“당신 점심 안 먹었지? 얼른 가서 국밥이나 한 그릇 사 먹고 오소.”
“아니어요. 나 배고프지 않아요. 당신이나 가서 잡숫고 오세요.”
아내는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돈주머니를 두둑하게 차고 있었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주머니에 담고 있는 돈 한 뭉치 꺼내 다독이고 나서 세어 나갔다.
“이거 좀 배달해주세요. 미장원 골목이에요.”
아내가 돈을 세는 동안 젊은 여자가 과일 박스를 골라놓고 있었다. 그는 젊은 여자가 산 밀감 박스를 배달하기 위해 짐받이에 실었다.
“물건값은 댁에 가서 받을까요?”
“돈 드렸잖아요.”
“주셨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방금 만 원짜리 두 개 받았잖아요.”
여자가 눈을 치떠 그를 쏘아보며 앙칼지게 말했다.
그는 돈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이런 장바닥에서 이따금 그런 일로 시비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물건값을 받은 즉시 아내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순민은 혹시나 하고 호주머니 속을 뒤져봤다. 조금 전 사과 한 박스를 팔고 받은 삼만 원뿐이었다.
“그 돈 삼만 원은 제가 주었구만요.”
옆에서 과일을 산 여자가 거들어 주었다.
“그럼, 내가 주지도 않은 돈을 주었다고 했단 말이요?”
“전 안 받았소. 돈 가지고 와서 이 물건을 가져가시오.”
그는 짐받이에 실은 밀감 박스를 불끈 들어 내려버렸다.
여자는 실룩실룩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분을 참지 못하겠다고 중얼거리며 돌아가버렸다. 그 여자가 한때 착각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냥 단념하고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되려 미안하기도 했다. 사람이란 착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가 너무 거세게 밀어붙였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 후에 그 여자는 덩치가 크고 사나운 생김새를 한 장정 네댓 명과 여자들 몇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당신, 그 밀감 이리 내놓으시오!”
한 사내가 사천왕 형상으로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밀감이라뇨?”
“내 집사람이 산 것 말이오.”
여자의 남편인 모양이다.
“난 아주머니한테 물건 판 적이 없습니다.”
“그 물건 내놔!”
반말지거리로 윽박질렀다.
“못 내놔요.”
“이 새끼, 사기꾼 아냐?”
“사, 사기꾼이라니?”
순민은 분통이 터져 상대를 노려보았다.
“돈 받아 처먹고 물건 안 주니깐 사기꾼이지 뭐야?”
여자가 삿대질을 하며 남자를 거들었다.
“난 돈 받은 적 없습니다.”
“이놈의 새끼, 너 한번 죽어볼래?”
사내는 씩씩거리며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꿈틀대는 근육을 자랑하는 팔뚝에 순민은 그만 기가 팍 질려버렸다. 그러나 장부로서 물러설 수가 없다 싶어 그 역시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그 순간 사내의 주먹이 순민의 얼굴를 강타했다. 눈에서 번쩍 불똥이 튀었다. 그는 왕년에 복싱을 한 적이 있어 훅으로 쭉쭉 뻗어 봤지만 중과부적으로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입 안에 비리하고 짭짤한 핏덩이가 흘러들었다. 그는 뱉지 않고 그것을 삼켰다.
“워메메! 왜 이런다요.”
아내가 뛰어나와 사내들을 밀어내며 소리질렀다. 그러자 느닷없이 옆에 서 있던 두 여자가 달려들어 아내의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아내 역시 한 여자의 파마머리를 움켜잡았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 바람에 흩어져 날아올랐다.
한참을 뒤엉켜서 싸우다 보니 넘어진 아내가 두 여자의 몸에 깔려 납작해져 있었다. 장꾼들은 삥 둘러서서 구경만 할 뿐이지 누구 하나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이 비정했다. 옆에 있는 채소전, 국밥집, 돼지머리 가게도 장사에만 정신이 팔려 사람이 죽어가도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자, 순민은 차일을 받치는 은빛 쇠파이프를 집어들었다. 이제는 앞뒤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불을 켠 그는 마구잡이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파이프에 맞아 나가 떨어졌다. 그러자 사내들도 손에 손에 몽둥이를 쥐고 우르르 달려들어 쇠파이프와 몽둥이의 군무가 아수라장을 이뤘다.
조금 후에 경찰이 나타났다. 그들의 출현으로 싸움은 일단 끝났지만, 아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찢기고 짓밟혀서 옷은 걸레처럼 너덜거리고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머리카락이 형클어져 귀신 몰골이었다.
파출소로 불려갔다. 싸움은 양쪽이 잘못한 것으로 해서 화해를 했지만 벌금을 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도적놈들! 날강도들! 남의 물건을 거져 먹겠다구?”
아내는 분통을 참지 못해 어금니를 앙다물고 분을 삭였다.
“어서 합의서에 지장 찍소!”
“못 찍어요!”
아내는 반대했다.
“어서 찍어! 이 장바닥에서 장사 해먹고 살려면 그러면 못써.”
순민은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사를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다 싶어 재촉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그녀의 손이 벌레처럼 떨리고 있었다.
심술이라도 부린 듯 바람이 불어오면서 활활 타오르던 불이 꺼져버렸다. 검은 연기를 내어 뿜었다. 그는 재빨리 화덕에 입을 대고 훅, 훅 불어댔다. 불은 매운 연기를 피어 올리며 다시 살아 올랐다.
퍼붓던 눈발이 조금씩 그쳐 가고 있었다. 아직 해는 남아 있었다. 그는 새로운 기대를 걸면서 마저 빈 궤짝을 부쉈다. 새 땔감을 얻은 불은 더욱 활활 피어올랐다. 누렁이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배를 채우고 이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저리 안 가!”
아내가 막대기를 들어 누렁이의 등을 후려쳤다. 아마 두 여자들한테 당한 분풀이가, 궤짝 몇 개를 태우고 나서도 가슴에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화를 달리 풀길 없어 죄 없는 누렁이한테 분풀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놔두소. 개도 추운 갑네. 불이라도 쬐게.”
순민은 누렁이가 안쓰러워서 등을 쓰다듬었다. 놈은 꼬리를 흔들며 그의 가랑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보고 있던 아내가 불을 지피던 막대기로 놈의 등짝을 또 한 차례 세차게 내리쳤다.
“저리 가라니깐! 작것이…, 여기 뭐 처먹을 것이 있다고 기어 들어!”
“이 사람아! 가만 놔두란 말이여. 개가 여기서 뭘 먹겠는가. 사과를 먹겠는가 배를 먹겠어?”
그는 왠지 누렁이가 안쓰러웠다. 이 거친 장바닥에 인정이란 찾을 수가 없는데, 떠나지 않고 옆에서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개가 어쩐지 고맙기만 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보낸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유독 개를 사랑했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어서 장짐을 싸서 돌아가야 한다고 여겼다. 아무리 장사도 좋지만, 모친 기제를 지내야 할 판에 도리가 아니었다.
날씨가 망치지만 않았어도 그런대로 공판장 88번에게 기십만 원이라도 해주고 해결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날도 어두워 가고 도저히 장사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쳤던 눈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짐 싸!”
그때 승용차 한 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좌판 앞에 끼익, 하고 멈춰섰다.
“손님이 왔구만요.”
아내가 짐을 챙기는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한 박스에 얼마입니까?”
손님은 그중 굵고 때깔 고운 사과를 허리 굽혀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참부사 상품입니다. 개부사는 싸지요. 눈도 오고 파장하니까 싸게 드리겠습니다.”
그는 손님이 보는 앞에서 자랑하듯 사과를 뒤적거렸다. 윗부분 아랫부분 할 것 없이 굵기가 고르고 색깔이 좋았다.
손님이 과일을 싣고 사라진 다음, 그 뒤를 이어 또 몇몇 사람이 찾아왔다.
“이제 이 돈 합쳐서 공판장에 갚으면 체면이 서겠구만. 아이고, 이제 살았다. 어머니 혼령이 도와주셨구만.”
“손님들이 떠나고 나자 그는 손가락에 침을 뱉어 돈을 세면서 말했다. 늦게나마 매상이 올랐으니 다행이었다. 물건값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추운 것도 잊고 있었다.
“그래요, 제삿날이니까 시어머님이 빨리 돌아오라고 손님을 보내주셨구만요.”
그녀가 웃음지었지만 찌그러진 채였다. 여자들과 싸우면서 얻어맞은 자국에 피멍이 선명했다.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가슴은 미어질 듯 아팠다.
멈출 듯했던 눈발이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순민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궤짝을 불근불끈 들어올렸다. 바닥에 있는 물건을 차에 거의 다 싣고 났을 때였다.
“당신 여기 있던 고기 못 봤어요?”
“화덕 옆에 놓아두었잖은가.”
화덕에 불을 지피기 위해 빈 궤짝을 내려 부쉈을 때 그 속에 담아 두었던 제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아내가 그것을 챙겨서 불 옆에 놓는 것을 보았었다.
“어째서 보이지 않을까요?”
아내는 이곳저곳을 뒤지며 말했다. 그는 그것이 갔으면 어디 가겠냐 하는 마음에 물건 싣는 데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닭도 보이지 않고 쇠고기도 없어졌구만요.”
“닭고기도…?”
“개새끼가 물어 갔나 봐요.”
“뭣이, 그놈의 개가!”
최순민은 들어 올렸던 짐을 내려놓고 차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바닥에는 쇠고기와 생선을 담아 두었던 비닐봉지들이 낭자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 추운 섣날 대목에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몇 시간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깨끗하게 간수해야 할 제물을 개한테 다 물려 보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이제 제사를 어떻게 지낸다요? 장도 파하고 가게 문도 닫았는디, 어디서 고기를 살래도 살 곳도 없구만요.”
아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찬물 떠놓고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어쩔 것인가. 그러고 본께 어머니도 잡술 복이 없는가 보네.”
“고기를 찾아야 하겠구만요.”
아내는 잃어버린 고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찾는당가? 벌써 그놈의 뱃속에 들어가 버렸을 것인디.”
“요놈의 개새끼! 앵기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구만요.”
아내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앙다물었다.
“어머니가 시켜서 그놈이 물어갔다고 생각하소.”
그녀는 도리깨눈을 내돌리며 이리저리 찾느라 덤벙대고 있었다.
“저, 저기, 개새끼가!”
저쪽 가게 바로 옆에서 누렁이가 고깃덩이를 물어뜯고 있었다.
“닭고기구만요.”
아내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내버려뒤!”
그는 체념해버린 심정에서 소리를 질렀다.
“워리! 워리!”
그녀가 조심스럽게 누렁이에게 접근해 갔다.
으르렁. 놈은 먹이를 지키느라 험한 눈빛을 하고 아내를 노려보았다. 빼앗기겠다 싶었던지 고기를 물고 슬금슬금 달아나기 시작했다.
“워리야, 제발 고기만은 이리 다오. 저녁에 시어머님 제사 모실 것이란다.”
그녀는 뒤를 따라가며 얼러댔다. 그러나 누렁이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져 가는 개를 쫓으며 아내는 소리를 질렀다.
“이놈의 개새끼! 오늘은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하자. 다른 것도 아닌 제사 반찬을…, 이놈의 개새끼!”
“그만하고 돌아가세. 찾아봤자 먹을 수도 없어. 어떻게 그것을 제상에 올릴 것인가.”
그 말을 듣고야 아내는 단념을 하고 돌아섰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눈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어쩐다요. 어머니의 묏밥을 올려야 할텐디.”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미 진지를 잡수신 거나 다름없다네.”
“무슨 소리여요?”
그녀는 놀란 듯 어둠 속에서 눈을 돌렸다.
“누렁이 말일세.”
“그 웬수놈의 누렁이가 어쨌단 말이요?”
“아, 어머님이 그놈한테 적선을 하신 것 같아. 워낙 인정이 많으신 분이라.”
“어머님이 적선을 하셨다고요?”
“그게 아니라, 오늘 밤이 제삿날인데, 그 제숫반찬을 자신 양반이 여….”
“고기는 개가 먹었는디, 당신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요?”
“개에게 적선했다고 말일세.”
“불경에도 그런 설화가 있다고 했어요.”
“그려. 만일 어머님이 지금까지 극락에 가시지 않았다면 당신 음식을 개에게 적선하고….”
“어머님은 그러실 분이어요. 젊었을 때도 굶는 일이 있더라도 꼭 개밥을 챙겼다지 않아요.”
“맞네 맞아. 오늘 밤은 어머님이 당신 몫을 개에게 베푸신 걸세.”
“맞아요. 어머님은 그러셨어요.”
아내의 밝은 웃음에 어둠이 깔리고 있는 장터가 환해지는 것 같았다. 최순민은 눈이 내리는 아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웃음을 짓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는 마지막 장짐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