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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는 복사꽃

한국문인협회 로고 차영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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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치마바위에 올랐다. 주말이라 등산객 대부분이 MZ세대들이었다. 한양 도성 순성길을 따라 가파른 바위산을 힘겹게 오르니 정상에 달했다. 복사나무 한 그루가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채 호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25년 4월 말, 20여 명의 산악회원은 수성동 계곡 소나무가 있는 입구에서 잠시 몸을 추슬렀다. 인왕산 동쪽 아래 있는 수성동 계곡은 예로부터 물소리가 크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해 오는 옛말과는 달리 메마른 계곡길을 따라, 저마다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배낭을 짊어지고 산 자락길을 따라 걸었다. 숲길과 계단을 치올라 인왕산 석굴암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니 솟아난 치마바위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다. 서울 서쪽에 있는 인왕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송림이 능선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계곡과 암석으로 경치가 빼어나다고 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비탈길을 숨 가쁘게 한참 오르니 거대한 바위산이 길목을 가로막으며 버티고 있었다. 경사진 암산을 올라야 하기에 설치된 쇠줄을 잡고 가야 했다. 주말이라 2030세대 등산객이 몰려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성곽 옆에서 가쁜숨을 가누며, 순서를 기다리다 대열에 끼었다. 첨엔 느긋하게 한 손으로 줄을 잡고 올랐으나 가파른 바위산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인파가 몰려, 앞뒤 젊은 세대들과 페이스를 유지해야 하기에 두 손으로 꽉 잡은 굵은 줄에 온몸을 지탱해야 했다. 비탈진 바위산길을 일정한 속도로 보조를 맞춰 걸어야 했기에 따가운 햇볕을 받으니 옷이 땀에 젖었다.
정상에 오르니, 성벽 옆 소나무 아래서 20대 전후로 보이는 남녀가 마주 쪼그리고 앉아 조그만 돌을 하나씩 올리며, 정성껏 작은 돌탑을 쌓고 있었다. 갑자기 솔바람이 휙 불어와 땀을 식혀주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탑이 무너졌다. 우측엔 서울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왔다. 몇 발짝 옮기니 봄기운을 느끼며, 심산에 오롯이 붉은 꽃을 활짝 피운 복사나무가 나의 발길을 끌었다. 불볕더위와 폭우 그리고 혹한이 몰아치는 인고의 나날을 묵묵히 견디며, 기다림의 열정으로 한순간 찬란한 꽃망울을 터뜨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499년(연산군 5년), 신 씨는 13세 나이로 당시 왕자 신분이던 한 살 어린 진성대군과 혼례식을 올렸으며, 대군의 정실부인으로 부부인(府夫人)에 책봉됐다. 1506년 9월 2일 한양 한가운데, 군사들이 진성대군의 집을 에워싸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놀란 대군은 자신을 죽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자결하려 했다. 이때, 부인 신 씨는 ‘군사의 말머리가 이궁(진성대군의 자택)을 향해 있으면 우리 부부는 죽어야 하지만,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다면 공자(진성대군)를 호위하려는 뜻일 것’이라며 남편의 손을 잡고 말렸다. 과연 말머리가 궁궐로 향해 있었다. 침착하게 지혜를 발휘한 신 씨에 의해 위기 상황을 모면했다.
반정 주체 세력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다음 왕으로 지목했다. 신 씨의 고모가 연산군의 비이고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이었다. 부친은 권세가 등등한 세도가인지라 반정에 찬성하지 않았으나, 중종반정이 성공했다. 진성대군은 조선 11대 왕인 중종이 되고 신 씨도 중전이 됐다. 기쁨도 잠시, 반정 세력은 신 씨의 아버지 신수근을 역적으로 몰았다. 그 여파로 신 씨를 폐위시켜야 한다는 반정 공신들의 거센 압박에 굴복하여 중종은 7년간 함께한 조강지처 신 씨를 폐위시키는 조치를 단행해야 했다. 7일 만에 폐출당한 단경왕후는 고작 19살, 중종반정으로 친정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최대 피해자로 전락했다.
중종은 공신 세력의 반대와 후계 문제로 신 씨를 복위시키지 못했지만, 부인을 잊지 못해 그녀가 그리운 날이면 경복궁 경회루에 올라 아내의 사가 쪽을 바라보며 사무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부름을 간절히 기다렸던 신 씨는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비로소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임금이 볼 수 있도록 궁궐에서 입었던 다홍치마를 인왕산 치마바위에 펼쳐 놓고 그 마음에 호응했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생이별을 당하고 가파른 바위산에 올라 홍치마를 펼치며 고독한 마음을 달래보았으나 끝내 응답을 받지 못했다. 다시 왕비로 복위되지 못한 채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서 신 씨는 독수공방의 나날을 보냈다.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13년이 지난 1557년(명종 12년)에 71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수백 년이 지나 세상은 변했지만, 역사 속에 새겨진 치마바위는 평토록 닿을 수 없는 한 여인의 덧없는 기다림과 외로움이 서려 있는 순수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중, 기나긴 엄동설한을 견뎌 내고 봄을 맞아 홀로 붉은 꽃망울을 피운 복사꽃은 마치 치마바위에 다홍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임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전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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