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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혈무의(孑孑無依)의 가배일(嘉俳日)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정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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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일 연휴 첫날부터 가을비가 푸슬푸슬 내렸다. 깨어보니 야심한 1시경이었다. 전날 하다만 만문(漫文) 작업과 번역 작업을 쾌적하게 갈무리했다. 조식을 끝내고 모처럼 온양온천에 가기로 했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마음이 두근거리고 시원한 감동이 왔다. 전철 종점인 천안역에 내려 점심을 먹었다. 요즘 시니어 교통카드를 받은 후 여가선용이 달라졌다. 이 카드로 마을버스 외 일반 시내버스는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만 65세가 넘으면 극장에서 영화관람료도 경로우대가 적용된다.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늘 생각하는 것은 이제 죽음을 준비하는 단계가 왔다. 예토(穢土)에서 살다가 그 종착역이 다가오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다. 젊은 여성을 보면 능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한 가지 사례가 된다. 나는 성령께 맹세했다. 어떤 교기(嬌氣)한 여성이 내 앞에 나타나더라도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은 절대 안 하기로 결심했다.
우중(雨中)을 뚫고 전철은 온양온천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남쪽으로 가는 철로는 울퉁불퉁하지 않고 스무드한 여행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창밖으로 벼가 노랗게 익어 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한 폭의 풍경화로 보였다. 매일 도심 속 빌딩만 보다가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비가 그친 후 안개 사이로 낮은 산들과 아파트 단지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자유 천지로 변했다. 온양온천역 부근의 60년 된 목간에서 온천수로 세목을 했다. 지방이라 요금도 저렴했다. 온천수라 욕실 바닥이 미끌미끌했다. 이곳은 전철 이용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주 올 수 없다. 왕복 5시간 이상 소요된 하루였다. 돌아오는 전철은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와 함께 달렸다. 가을비는 그칠 줄 모르고 갈대와 같은 내 마음을 태운 전철을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
중추절 같은 명절은 좋지 않은 추억밖에 없다. 지난 23년 동안 격일제 근무로 명절에는 휴일이 없었다. 현재 주 5일 근무제에서 명절 휴일은 성전(聖殿)이 유일한 목적지이다. 다니는 교회가 폐문으로 입실하지 못하게 출입문 번호를 바꾸었다. 오늘날 예배당은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영적 사업장이 되었다. 성전 입구에 ‘10월 10일까지 휴무’라고 적혀 있었다. 예수는 ‘고아와 과부를 돌봐준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내가 현시대를 잘못 읽고 있었다. 성직자나 성도들도 간절함과 애절함이 전혀 없다. 지금 기독교 신자들은 불신자(不信者)들과 별 차이가 없다. 사는 게 답답해서 기도하러 온 나를 외면한 교회당이었다. 분노할 필요도 없다. 교회도 일반 관공서같이 생각하는 게 좋겠다. 씁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출발지에서 세면도구를 구입해서 남춘천역으로 갔다.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계행(啓行)하도록 성령께 기도했다.
남춘천역으로 출발한 전동열차는 울룩불룩한 철로로 운행해서 머리까지 흔들거렸다. 도저히 책을 볼 수 없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13시경, 남춘천역에 도착하여 언덕이 높은 지역에 위치한 막국수집으로 들어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막국수, 수육, 녹두 빈대떡, 밥 한 공기로 든든한 오반 식사를 끝냈다. 정말 맛있는 식단이었다. 곧이어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맑은 날씨가 아닌 비 오는 오후인데, 명절 연휴라 사람이 많이 붐볐다. 비가 서서히 그치면서 잠시 청연(晴煙)이 끼어 춘천 시내를 구경하지 못한 점은 그지없이 분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 호수를 내려다보는 재미는 정말 쾌적감이었다. 동네 마트 직원이 ‘외롭지만, 추석 잘 보내세요’ 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내 저서인 『감사의 거울』을 읽은 간객(看客)이었다.
명절 연휴의 기도 일정이 없어서 성령의 인도로 서울숲에 가서 나무들과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광고사진처럼 매력 넘치는 곳은 아니었다. 비가 온 뒤 길바닥이 축축하였지만 신발이 진흙으로 도색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슴 사육장의 비릿한 냄새를 뒤로하고, 주찬(晝餐)은 벤치에서 생수, 샐러드, 카스텔라로 낙착했다. 식후,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를 어쩔 수 없이 완상(玩賞)하였다. 영화 내용은 한 해고 노동자의 재취업 면접 경쟁자 2명의 살월(殺越) 사건을 다룬 코믹 미스터리 작품이었다. 극장에서 귀가하면서 현대사회의 고용불안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봤다. 이번 연휴는 교회의 고폐(固閉)로 온양온천, 춘천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서울숲, 영화관람 등으로 이어지는 3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이는 내가 고독단신의 행진으로 이겨낸 ‘득첩(得捷)의 연휴’였다. 지금 이 나라에서 사는 게 너무 힘겹다. 지하 주차장에서 연매(煉煤)와 사투를 벌이면서 사는 나는 어떤 인생사인가. 이는 정말 한심한 고급 인력의 슬픈 구복지계(口腹之計)의 직업이 아닌가. 나는 감사의 거울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는 늘 성령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서울숲에서 성령의 도화지에 그린 명상은 좋은 문구가 생각나도록 간청했다.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르는 기술자이다. 작곡가는 경쾌한 멜로디의 금성옥진(金聲玉振)을 그려낸다. 작곡가는 영으로 선율을 창작하고, 작가는 좋은 글귀로 명문장을 도출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명작이 탄생한다. 숲을 한참 걸으니 가래가 많던 내 진성대(眞聲帶)에서 맑고 시원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일본 엔카 가수인 스가와라 츠즈코가 불렀던 <아코가레와 밧샤니 놋테(憧れは馬車に乘って)>를 불렀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동경은 마차를 타고’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답답하고 외로울 때 이 노래를 역동성 있게 너무 잘 부른다. 스가와라 츠즈코는 애수가 감도는 독특한 비브라토(vibrato) 가창법을 특기로 ‘비가(悲歌)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나는 이런 노래를 부르면 슬픔이 기쁨으로 전환된다.
남녀가 손을 잡고 숲을 산책하는 모습은 조화롭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서로가 좋을 때는 웃지만, 이견이 있어서 사이가 벌어지면 싸움이 된다. 그다음 단계는 바로 ‘이별’이라는 무서운 전쟁이 온다. 때로는 낭만에 취하여 여성과 지내는 것보다 혼자서 즐기는 자유를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둘이 있으면 말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둘 이상의 사람과 있을 때는 말을 조심하고,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群居守口 獨坐防心). 신혼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옆에 앉아서 반려견을 안은 남성에게 서운한 말을 했다. 그들의 결혼식에서 남편의 형수가 자신을 미워했다는 말로 들렸다. 그들의 대화가 점입가경이었다. 여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남성에게 불평을 했다. 곧이어 남성은 논리적으로 여성의 말을 눌렀다. 식사를 마친 나는 숲을 나오면서 그들이 곧 몌별할 것으로 판단했다.
나는 가끔 상객들에게 고인이 된 작곡가 P씨를 비유하면서 주차 실력을 설명한 적이 있다. P씨는 가수를 하겠다고 온 U씨의 노래를 듣고, “너는 노래하지 말고 회사 총무를 하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작곡가 P씨는 예술가로서 가수 지망생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 있는 전문가이다. 나도 작가로서 타인들이 하지 못하는 탁월한 권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성령이 나에게 나타나야 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오직 성령으로 영일(盈溢)해야만 크고 은근(慇懃)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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