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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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가 한창인 논에 비가 내린다. 논바닥에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모은다. 맑게 윤이 나는 빗방울을 손끝에 문질러 본다. 비 젖은 하늘과 바람을 마음에 들인다. 어려서는 부모님과 많은 형제 덕에 비 맞을 일이 적었다. 늘 마중 나온 우산 속으로 쏙 들어가 비를 그을 수 있었다. 비 맞은 일이 적은 만큼 느닷없이 오는 비를 맞고 싶었다.
비가 내리면 빗속을 거닐었던 시인이나 극작가가 된 것 같다. 빗소리에 맞춰 실내악을 연주하고 동해로 달려가 바다와 나란히 비를 맞는 상상에 젖어 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 일은 적었다. 미리 챙긴 우산을 들고 비를 맞을 수는 없었다. 몸에 익은 습관이나 체면은 덥석 빗속으로 내딛는 걸음을 붙잡는다.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비를 맞았다. 그것도 여럿이서 흠뻑 비를 맞았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아들이 축구를 했다. 주에 두 차례 열리는 게임에 아이를 운동장까지 태워다 주고 데려와야 했다. 쫓기듯 쫓아다니던 그날, 아들을 데리고 가 마음먹고 관중석에 자리했다. 선수 수만큼 앉아 손 흔들고 손뼉 치는 관중들과 어울렸다. 운동장가에 한껏 늘어진 야자수가 눈에 들어왔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갑자기 낮은 하늘에 급한 바람이 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타박거리고 빗줄기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운동장 가득한 푸른 잔디는 얼굴을 돌려대며 앙증맞게 비를 맞고 있었다. 물방울에 향내가 들어 있기라도 한 듯 풀냄새가 퍼졌다. 아이들 발소리와 응원하는 소리도 비에 젖었다. 벤치와 블록에 떨어지는 비는 넓죽한 야자수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어우러져 청량한 화음으로 울렸다.
비는 점점 거세졌지만 경기는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공을 차며 뛰어다녔다. 키가 작은 한 아이는 비에 젖은 금발의 곱슬머리를 뒤로 쓸어내리며 달렸다. 한 아이는 안경을 벗어 손에 쥐고, 까무잡잡한 얼굴 위로 물빛이 더 선명해 보이는 다른 아이는 머리를 흔들어 비를 털어내며 달렸다. 아들은 박지성 선수처럼 이마 밴드로 멋을 부린 채 거칠 것 없이 달렸다. 팔을 흔들며 뛰는 선수들은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밀림을 헤치고 나가는 원시인 같았다.
관중은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비를 맞고 앉아 있었다. 마치 비가 내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와 눈인사를 나눈 부부는 서로 점퍼 깃을 세우고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지 않고 뛰어서 비를 피하지도 않는다. 그 한가한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동차 안에 우산이 있지만 꺼내 들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이 좋아도 비가 오면 부산을 떨었다.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서 비를 맞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우산을 챙겼다. 다 그런 줄 알았고 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마음 놓고 비를 맞았다.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다 같이 비를 맞았다. 빗줄기에 비치는 얼굴들, 나뭇잎과 잔디가 풀냄새를 내며 파랗게 비를 맞았다.
그즈음에 우리는 교회의 한 부서를 맡기로 하고 그곳 컬럼비아로 이사를 갔다. 짐을 풀기 전에 인사를 가서야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생계는 다음 일이었다. 곧 대학에 가야 하는 아이들과 다른 주로 이사를 가서는 짐을 풀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사람들과 같이 비에 젖으니 그런 마음이 가라앉았다. 힘든 마음에 비를 맞으니 잔디처럼 파란 기운이 솟아올랐다.
가끔은 비를 맞는다. 긴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천천히 걸어 봄직도 하다. 늘어트린 긴 머리를 싹둑 잘라 단발을 살랑거려도 좋을 것이다. 주로 분식집을 찾았다면 듬성듬성 뼛가루가 있는 추어탕을 먹어볼 일이다. 여름휴가를 즐겼다면 겨울 나들이는 어떤가. 시집을 들고 다녔다면 경제서적이나 여성잡지를 뒤적이는 재미도 괜찮다. 트로트를 흥얼거렸다면 테너의 목소리에 호흡을 맞춰보는 것도 좋으리.
아이가 큰소리를 지르며 공원을 지나간다고 꾸짖어서는 안 된다. 지금 그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옆사람 젓가락질이 서툴고, 한겨울에 반소매를 입어도 고개를 끄덕인다. 비를 맞는 여학생에게 덥석 우산을 씌워 주어서는 안 된다. 비 맞는 것을 핑계 대고 빗물에 눈물을 흘리거나 깊은 사색에 잠길 수도 있기에.
내가 습관처럼 해오던 것을 반대로 뒤집어 본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색다른 습관이나 신념과도 부딪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 내가 이전과 다를 수 있듯이 다른 사람 또한 그렇다. 다른 것이 많을수록 삶에 미소가 번지고 활기가 넘친다.
여럿이 비를 맞은 그날처럼 초여름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