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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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깔린 재색의 하늘가에 늘어선, 습기를 머금은 감은빛 구름들이 점점 응축의 강도가 세어지면서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여실하다. 툭 건드리면 지상으로 후드득 쏟아져 내릴 기세다. 창문을 세차게 뒤흔드는 바람의 강세도 심상치 않다. 폭풍전야다.
드디어 진눈깨비가 몰아치며 헐벗은 나뭇가지 위로 우두둑우두둑 거칠게 내려앉았다. 오는 봄을 재촉하려는 듯, 가는 겨울을 밀어내려는 듯. 세찬 바람결에 밀려 사선으로 내리꽂히다가 어느새 휑한 대지를 곧게 때리며 쏟아지니, 대지 아래에선 환호성을 지르고 있으려나. 홍두깨로 거칠게 다듬어진 듯한 비 입자와 눈 입자 앙상블의 추임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시공간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고나 할까.
먼 산은 수증기를 가득 얹은 채, 바위 꼭대기에 감추었던 전설이 드러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간만에 시원한지, 대지에 뿌리내린 수목들은 기지개를 활짝 켜더니, 이파리를 동글납작 펼치면서 낭창대는 수적(水滴)을 조심스레 모으느라 바쁘다. 근처 건물 꼭대기에서 창공을 향해 나부끼던 깃발은 진눈깨비의 채찍질이 조금은 매섭다고 느꼈는지 자꾸만 봉 뒤로 몸을 숨겼다.
지금 기온이 낮은 태백산맥에서는 굵은 눈발이 펄펄 날리고 있으리라. 마지막 눈꽃이 가득 피어오른 봄 설경에, 산 정상에 오른 이 모두 탄성을 터뜨리고 있겠다. 긴 별리를 앞두고, 봄 주변을 서성대던 늦겨울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마지막 심술을 부리고 있나 보다.
진눈깨비 사이로 산뜻한 몸짓이 나붓거렸다. 아이 손에서 놓친 분홍색 꽃무늬를 새겨 넣은 하얀 우산이 공중으로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 속에서 만개한 분홍 매화와 벚꽃이 나풀거리며 하나둘씩 빠져나왔다. 어느 결에 빠져나온 진달래도 수줍게 날고 있었다. 이어서 노란색 꽃무늬를 새겨 넣은 푸른 우산이 공중에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개나리와 튤립과 수선화와 수국 등이 차례로 쏟아져 나와 꽃망울을 흐드러지게 터뜨렸다.
무채색 진눈깨비 사이로 유채색 봄꽃들이 마구 흩날렸다. 꽃봉오리에서 막 개화한 봄꽃의 산뜻하고 은은한 꽃내음이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진눈깨비 사이사이 틈을 비집고, 봄꽃의 기운이 물밀듯이 파고들었다. 진눈깨비의 맹렬한 기세는 한동안 계속되다가 흩날리는 봄꽃의 위용에 그만 기가 죽었는지 어느새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풀거리던 봄꽃도 점점이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내 마음이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땅속에서 한창 영글고 있는 봄의 씨앗들이 대지 위에서 꽃피우는 걸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 봄꽃의 부심(負心)으로 떠올랐는가.
난작난작하던 진눈깨비가 눈 녹듯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산등성이의 물안개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지는 눈빛이 촉촉해졌고, 충분한 수혈로 한층 살이 오른, 나무의 이파리와 꽃봉오리도 제 몸집을 키워나갈 것이다.
아이들의 함성이 연이어 들려온다. 음산한 날씨에 놀이터의 기구도 차갑게 식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이 뛰노는 건, 아이이기에 가능하다. 이것저것 비교하거나 우열 또한, 가리지 않고 모이거나 흩어져, 놀이에 열중하는 건 어린아이의 특권이다. 봄이 다가오는 거리에선 모두 어린아이를 닮았으면 좋겠다. 일체의 위선과 아집과 허영도 던져버리고 순수 그 자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덕지덕지 묻은 마음의 때도 진눈깨비 속으로 던져 버렸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미움과 겉치레, 또는 동상이몽의 얕은 수 또한, 대지 위로 흘려보냈으면 좋겠다.
배우면 배울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른 사람의 마음이 들여다보이는 것도 슬프기만 하다.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그대로 판단을 하는 단순함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탕발림에 속아서 그런지 몰라도 남의 말에 쉽사리 넘어가거나 동조되지 않는 것 또한 슬픈 현실이지 아닐까. 달콤한 속삭임을 있는 그대로 믿어버린 속없던 젊음이 그립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이리저리 재어 보고, 내 기준에 부합하여야 마음을 여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인식의 구조가 뼈아프다고 해야 하나.
무조건적인 신뢰와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야만의 진리던가. 그래도 자식만큼은 믿음직한 존재다. 부모에게 무엇이라도 더 주고 싶어 안달을 하고 곁에 안주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말로 표현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살아가는 이유가 별건가. 누군가 있는 그대로 신뢰하고 인정하며 응원해 준다면 절반은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입에 꿀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조금만 아파도 걱정하고, 맛난 음식을 배달해 주며, 안부를 수시로 물어보는 자식이야말로 부모에게 최상의 보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 생명을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걸. 그래서 부모는 눈감을 때까지 자식을 곁에서 떼어놓지 못하고, 아마 죽어서도 잘 되라는 기도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진눈깨비가 몰고 온 서정에서 봄꽃 닮은 사랑이 한가득 느껴졌다. 삶의 진정성이 되살아나 온전히 숨이 쉬어졌다고나 할까. 계절이 지나는 접점에 잠깐 멈추어 서서 자연의 다단한 변화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진눈깨비 한바탕 몰고 간 대지 아래에선 생명의 잉태 후(後)를 위해 얼마나 잰걸음들 하고 있을까. 며칠이 지나면 자연은 또 삶의 현신(現身)을 눈부시게 열어 보일 것이다. 고개를 들어 살며시 기웃거리던 봄은 진눈깨비가 몰고 온 사색의 여백에 봄꽃의 향연을 미리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늘 봐왔던 봄의 추상(抽象)과 더불어 새로운 봄의 도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도 좋지 아니한가.
마침내 잿빛의 창공을 뚫고 한 움큼 쏟아져 내린 파스텔 톤의 이른 봄 햇살이 내 몸속 깊숙이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진눈깨비의 변신은 무죄였다. 새봄을 몰아다 주는 물의 요정이었다고나 할까. 덤으로 시원함까지 선사해 주었다. 겨우내 칼칼하던 목이 오늘은 제법 뚫렸다.
행복이 별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