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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사는 재미

한국문인협회 로고 신삼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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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물건 사면서 게임하듯 흥정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비싸게 샀든지 덜 주고 샀든지 간에 흥정은 긴장감을 높이며 스릴을 맛보게 했다. 칸 엔칼릴리 재래시장 골목을 지나가면서 들리는 호객 행위가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솔직히 말해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장에 가서 보던 풍경이 되살아났다. 콩나물 한 줌 더 얻으려고 덤을 달라고 떼쓰던 일이 새로웠다. 그 한 줌이 뭐 대단하다고 우쭐거리던 모습이 다시 살아나 혼자 웃었다. 대형마트의 정찰제나 키오스크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풍경은 낯설지 않았으며 정겨움과 향수가 있었다. 돈만 오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삶이 보였다.

 

재미의 시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지하철에서 보면 사람들 손에는 거의 핸드폰이 들려 있다. 각자 보는 게 다르겠지만 핸드폰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버린 게 틀림없어 보인다.
나도 배우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시간에 여유가 생겼을 때 여기저기 문화센터를 찾아다녔다. 많은 곳을 거쳤지만 머무른 곳은 글쓰기 교실이었다. 결국, 내가 글을 계속하는 건 재미가 있어서였다. 그 재미가 나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글쓰기 덕분에 살고 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재미가 소비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글을 잘 쓰고 싶어 모르는 지식 호기심을 채우려 책을 사서 보고 기쁨을 얻는다. 아니면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영화 감상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감을 얻을 적이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어 후회하기도 한다. 재미란 이름으로 지갑을 비우고 있다. 멜로드라마를 좋아하는 내가 SF드라마 <인터스텔라>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는 경험을 했다. 우주 탐사의 경이로움에 흥분하고 가족애에 감동하며 진정한 희생과 희망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나간 돈이 아깝지 않았다. 반면에 가끔은 기사 제목에 홀려 실망할 때가 있다. 잔뜩 기대하며 클릭했는데 내용은 빈껍데기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미끼 같은 제목이 넘쳐나는 걸 알면서도 짜증이 난다. 세상이 점점 보여주기에 집중하는 탓인 듯하다. 특히 유튜버가 심한데 알면서도 기대감에 또 빠져 손가락이 저절로 가고 있다. 뭔가 특별한 듯해 놓치면 안 된다고 암시를 받는다. 마침내 그 콘텐츠를 소비하게 된다. 이는 내 안의 조급함이 만든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외로우면 말하는 로봇을 사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던 나는 편리함도 좋지만, 기계와 상대하는 게 어색하고 왠지 허전하다. 클릭 한 번으로 모두 해결되니 신기하면서도 가슴에는 구멍이 뚫린다. 2030세대에서 가장 핫한 소비 트랜드로 자리 잡은 게 일명 ‘가잼비’라 한다. 가잼비란 가격 대비 재미를 뜻한다. 이제는 재미가 있어야 소비를 하는 시대가 됐다.

 

사실 나는 물건 흥정을 잘 하지 못해 싸게 사지는 못했다. 중간 정도나 됐을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가격에 부담이 크지 않았고 밀고 당기는 들뜬 분위기에 감정이 높아졌나 보다.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반을 깎고 거기서 또 깎는 놀음을 게임하듯 하며 즐겼다. 아마도 사람을 상대로 말을 걸고, 표정을 읽고, 마음을 밀고 당기는 데서 잊고 있던 추억이 되살아났지 싶다.
한때는 우리나라도 흥정의 나라였다. 나는 동네에 마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남대문시장을 즐겨 다녔다. 상인들과 말씨름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는 해도 거래를 잘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착한 가격에 사면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끔은 고른 후에 값이 맞지 않으면 다음에 오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쇼를 했다. 이게 물건 사는 일상이었다.
어쩌면 높아진 나라의 위상을 업고 그들이 주는 환대를 누리며 우쭐거렸을 수도 있다. 그들과의 거래 뒤에는 든든한 나라가 받쳐주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엄지척을 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어깨가 펴지며 당당해지는 순간이다. 1960년대 우유와 옥수수빵을 받으려 줄을 서던 시절은 갔다. 희멀건 얼굴의 서양인을 우러러보며 작아지는 나도 이제는 없다. 대신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있다. 변화가 나를 바꾸어 주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 상인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그들을 상대하는 게 버겁기는 해도 오랜만에 기억을 살려내는 물건 사기는 맛이 붙었다.
나는 신중히 골라서 이것저것 신이 나서 선물을 샀지만, 내 취향대로 선택인지 식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오히려 공항에서 산 초콜릿을 더 좋아했다. 작은아들은 주섬주섬 내놓는 물건에 “많이도 사셨네” 하며 핀잔 비슷한 말을 했다. 남들의 쇼핑에 휩쓸려서 사긴 했어도, 사는 재미로 재미를 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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