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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깃든 나비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용신(충남)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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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눈가에 생기를 돋게 하는 아이의 청량한 웃음소리.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창가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존재들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꽃이다.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모양의 꽃잎. 거기에 고유한 향기가 더해져 각각의 특별한 꽃이 된다.
꽃은 눈길이 가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잠깐의 감상이 끝나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다. 꽃이 눈앞에 있으면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기 어렵다. 찍기보다 그 순간을 마음에 간직하고 머리에 기억하는 것이 더 적합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기록하는 다른 선택지인 사진으로 저장하게 된다.
눈과 마음에 품은 꽃이 대여한 책이라면 사진에 담긴 꽃은 구매한 책과 같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은 대출 기한 때문에 빠르게 집중해서 읽는다. 반면에 구매한 책은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때로는 집중이 흩어지고 다른 책에 순서가 밀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결같이 다시 보기 기능을 보장하며 사각의 틀에 남아 있다. 눈앞에 있는 꽃에 마음을 빼앗겨 감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색이 바랜 흑백사진이 되어 간다.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된 무수한 꽃은 흐릿해진 기억에 색을 불어넣는다. 사진을 찍은 그날의 분위기를 재구성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기억 속 풍경을 클로즈업시켜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책을 소장하듯 꽃을 보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한다는 말은 사람과 꽃 모두에게 무례하고 실례하는 것이다. 단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삶의 어느 시기가 되어서야 꽃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꽃에 개인적인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는 자신만의 시점(時點). 분주한 오후, 시선 끝에 들어온 노란 베고니아에 잠깐의 쉼을 얻는다. 베란다에 흔연하게 피어 있는 제라늄에 하루하루의 노고가 스르르 가라앉는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잊고 파란 꽃을 피워낸 봄까치꽃을 발견하면 봄이 보낸 편지를 받은 기분이다. 섬세하게 말을 걸어오는 꽃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는 농축된 시간과 응축된 사색의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통찰과 감정의 교류가 녹아 있다. 설령 단지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향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가?

 

지역 도서관 운영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각각의 탁자에 놓인 꽃이 눈에 들어왔다. 달항아리 화병에 꽂힌 꽃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상이 배치되었지만, 달항아리와 꽃의 조합은 회의장의 분위기를 훨씬 기품이 서리게 하였다. 감탄도 잠시, 다시 보지 못할 시간이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이전의 회의장은 회의 자료와 함께 과일과 떡, 음료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간단한 다과를 대신하는 꽃은 이전과는 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옆에 앉은 분이 ‘품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화병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어 간다’는 말이 무척 곱게 들렸다.
위원장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팔 년의 시간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비록 일 년에 서너 번 만나서 회의하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그 시간에 대한 가치와 수고를 꽃이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회의가 끝난 직후에 도서관 측은 선물이라며 달항아리 화병을 종이가방에 담아주었다. 물이 아닌 오아시스에 꽃이 꽂힌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꽃이 상하지 않도록 화병이 든 가방을 조심히 품에 안았다. 깨질 수 있는 항아리 때문이지만,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대할 때보다 더 조심히 다루었다. 화병을 세심히 품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런 선물을 준비한 측의 마음 씀씀이가 들여다보였다. 소품의 달항아리에 정갈하게 꽂힌 꽃 몇 송이에 불과하지만, 풍요와 복을 상징하는 달항아리에 꽃이 전하고 있는 감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화병을 거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스토크, 카네이션, 클레마티스, 조팝나무, 아직 피지 않은 수선화 봉오리. 그리고 달항아리 화병의 중심인 복숭아색에 옅은 노란빛이 가미된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 이 꽃은 빛과 시각에 따라 꽃잎의 색이 오묘하게 변한다. 나비의 날개가 빛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게 보이듯이,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숭아색이 점점 노란색으로 물들고 있다.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는 이름처럼 꽃에 나비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봉오리였던 스토크와 수선화가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도 작은 꽃망울 두 개를 터트려 꽃을 피우자, 나비 두 마리가 더 거실에 날아든 기분이었다. 아직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의 꽃봉오리가 다섯 개 남아 있다. 봉오리가 꽃을 피워 그 속에 깃들어 있는 나비 또한 날아오르길 소망한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거실에 하얀 달이 떠 있고, 꽃이 피어 있고, 나비가 날고 있다. 그 풍경이 너무 평온하여 잠시 벽에 기대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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