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절하는 소나무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선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조회수1

좋아요0

<왕과 사는 남자> 영화 관객이 1,650만 명을 넘어섰다. 나도 지난 섣달그믐날 보았다. 『단종실록』의 활자가 아닌 엄흥도의 충절을 앞세운 영상으로 보니 단종의 슬픔이 더 절절히 느껴졌다. 실록은 왕위를 찬탈한 세조 대에 쓰여서 진정성이 부족한 탓이었을 게다.
4년 전, 『단종실록』을 읽고 영월에 다녀왔다. 장릉에 들렀다가 청령포 앞에 서니 서강이 앞을 가로막았다. 서쪽은 기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 삼면은 서강에 둘러싸여 있어서 천연 감옥 같았다. 유배와 처음 강을 건널 때 단종 마음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영화로 인해서 인파가 몰린다는 요즘과 달리 그날은 예닐곱 명의 단체 관광객과 나만 배에 올랐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숙연해진 마음으로 청령포에 내렸다.
오월 햇살에 빛나는 노송들이 반겨주었다. 잠깐 솔향에 취해서 마비된 이성이 돌아왔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단종이 느꼈을 두려움과 비참함을 생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단종은 문종이 승하할 때 이미 바람 앞의 촛불이었으리라. 수렴 뒤에서 섭정으로 도와줄 대비가 없는 열두 살 어린 왕이 성년이 될 때까지 무사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게다. 가까운 종친에 의해서 왕위를 빼앗긴 역사적 사례가 적지 않았으니까. 더구나 수양대군은 단종의 즉위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냈다고 하지 않던가.
어소 마당에 들어섰다. 수령이 족히 백 년은 넘어 보이는 소나무가 눈길을 붙잡았다. 담에 허리를 걸친 채, 지팡이를 짚듯이 마당에 세운 지지대에 몸통을 의지하고 가로로 자라고 있었다. 단종의 처소를 향해서였다.
신기하기도 하지, 소나무가 어찌 저런 형상으로 자랄까? 혼자서 중얼거리며 눈을 떼지 못했다.
어소를 다 둘러보고 관음송 앞으로 갔다. 안내판에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쓰여 있다. 단종이 유배 생활 중 갈라진 나무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고 하여 볼 관(觀), 들었다고 하여 소리 음(音) 자를 써서 관음송이라고 불린다.
마음이 지옥이었을 텐데 몸이 쉰다고 쉬는 것이었을까? 왕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잃는 사육신 등을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렸으리라.
‘네가 말할 수 있어서 보고 들은 대로 다 들려주면 좋으련만….’ 
부질없는 생각에 빠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이 없었다. 여행을 혼자서 다니는데 아무도 없는 울창한 숲속이라 아쉽게도 돌아섰다. 단종의 그리움이 돌 하나하나에 흠뻑 젖었을 망향탑, 석양 무렵 그곳에 서서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는 포기했다. 단종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시비를 보자 가슴이 먹먹했다.
나오는 길에 다시 어소 소나무 앞으로 갔다. 관음송과 달리 여기저기 찾아봐도 안내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영월군청 문화관광과에 전화해 관광해설사 전화번호를 부탁했다. 해설사 말에 의하면 어소 소나무는 충절 소나무, 엄흥도 소나무, 절하는 소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위로 곧게 자라다가 어소를 복원하고 나자 형태가 변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내 믿음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다.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우리 집 뒤란에는 고목인 도토리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웃집과 경계인 울타리 바로 옆이다. 그래서였을 게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우리 감나무 새끼인 듯한 제법 큰 감나무가 이웃집에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하얀 수염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노인이 감나무 아래에서 욕을 하더란다.
‘어디 이놈 두고 보자.’
꿈이 아주 생생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뒤란으로 갔다. 새집을 짓기 위해서 윗집 주인이 감나무를 베고 있었다. 섬뜩했지만, 이미 거의 다 베어서 말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 뒤 새집은 완성했다. 그러나 윗집에는 우환이 계속되었다. 장성한 장남이 암으로 떠나고 아저씨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단종의 비참한 사정을 알았다면 어찌 신하가 되어서 엎드려 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소나무와 엄흥도의 충절에 머리를 숙였다. 소나무도 엎드려서 절하는데 영월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현덕황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네놈이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여야겠다고 저주를 퍼부어서 의경세자가 죽었다. 현덕왕후가 세조 얼굴에 침을 뱉어서 피부병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아무 힘이 없는 본인들 대신 현덕왕후가 응징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게다.
정순왕후의 사릉에 심은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동쪽을 향하고 있다. 단종이 묻혀 있는 영월이 동쪽이다. 그래서 사후라도 부부를 이어주자는 뜻에서 1999년 4월 9일 사릉의 소나무 한 그루를 영월 장릉으로 옮겨 심고 정령송(精靈松)이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올해는 사릉 일대에서 들꽃을 장릉의 정령송 주위로 옮겨 심는 추념 행사를 열었다. 국가유산청에서 단종 사후 무덤조차 떨어져 조성했던 단종과 정순왕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꽃’이라는 생명의 매개체로 이어 역사적 슬픔을 치유하려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한다. 오백 년 만에 꽃으로 이어진 슬픈 사랑, 정순왕후의 외로움과 절절한 그리움을 들꽃들이 충분히 전했으리라 믿는다.
인간의 욕망 끝은 어디인가. 현대사에서도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자행하면서 민주주의를 짓밟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완전히 멈추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소나무도 아는 일을 인간이 모른다.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흥행이 계속되길 바란다. 우린 인간이기에….
*토토리감: 고염의 전라도 사투리
**나무위키에서 인용함.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