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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온 날들

한국문인협회 로고 전경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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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눈이 내렸다. 두물머리로 산책을 갔다. 양 볼이 얼얼하도록 춥긴 했지만 쨍한 겨울의 냄새가 상쾌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연못가는 호젓했다. 여름 내내 푸르던 자리에는 갈색 연방들이 고개를 숙인 채 얼어 있었다. 벌집 모양처럼 생긴 껍질 위로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연못 한쪽은 아직 얼지 않은 곳이 남아 있어 발길을 옮겼다. 가장자리에 숫눈을 밟은 새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가까이 보니 일정하지 않았다. 발자국의 크기로 보아 작은 새는 아니고 키가 큰 새 같았다. 두 다리로 걸었을 텐데 자국은 X자처럼 겹치거나 한 발로 원을 그린 것처럼 둥근 모양이었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물속의 먹이를 찾았던 흔적으로 보였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면 혹시 무언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얼음 아래에서 물이 미세하게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하지만 바람만 지나갈 뿐이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새는 이미 이곳을 떠났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발끝부터 감각이 둔해졌다. 장갑 속 손도 점점 차가워졌다. 오래 서 있을 자리는 아니었다. 그 새는 혼자 서 머물다 건너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 발자국을 보며 작년 한 해 동안 건너온 길을 떠올렸다. 새들의 발자취처럼 생각이 엇갈리며 교차하던 시간들. 혼자만이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혼란스런 날들이었다. 음울하게 궂은 날이 많았기에 맑은 날의 햇빛이 더 환하게 다가왔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변할 기약이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그저 바라보자고 생각했다. 무거운 발자국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눈이 내리고 단단하게 굳어 갔다.
걸어온 길과 지금 가고 있는 길,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서로를 덮으며 남아 있었다. 분명하게 선택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다만 그렇게 지나왔고, 그렇게 남아 있었다. 눈은 이 흔적을 오래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해가 조금 기울자 발자국의 가장자리는 느슨해졌다. 오래 남아 있을 흔적은 아니었다.
연못 가장자리에 가까이 있던 연방을 주웠다. 물기를 머금은 틈새마다 연자는 하나도 없이 텅 빈 채 차갑게 젖어 있었다. 속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안을 오래 상상했다. 어둡고 둥근 자리, 껍질은 두껍고 마른 벽처럼 닫혀 있었겠지. 씨앗은 작은 공간 안에 하나씩 외로이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이 스며들어도 바로 닿지 않는 자리. 빛이 내려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곳. 연자는 그 속에서 오래 웅크리다 물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면서.
연방 하나를 가져왔다. 물에 젖지 않은 것이었다. 물에 담가두자 껍질 틈이 조금 벌어졌다. 그 사이로 연자 몇 개가 빠져나왔다. 둥근 것들은 잠시 수면에 떠 있었다. 그러다 하나만 가라앉았고 나머지는 끝까지 떠 있었다. 칼끝으로 껍질 한쪽을 조금씩 갈아냈다. 가루가 얇게 일었다. 너무 깊이 닿지 않도록 몇 번이나 멈추었다. 서두르면 안 될 것 같았다.
매일 물을 갈아주었다. 한동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딱딱하던 껍질이 불어 부드러워졌을 때 벗겨주었다. 물에 불은 땅콩 같았다. 어느 날 아침, 갈아낸 자리 옆이 아주 조금 벌어져 있었다. 창가로 옮겨 햇빛에 비추었다. 틈 사이로 연한 색이 보였다.
며칠 뒤, 물 위로 가느다란 싹이 올라왔다. 생각보다 연약했고,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웠다. 그렇게 단단한 껍질을 밀어냈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날짜를 한 번 더 계산해 보았다.
지금도 매일 물을 갈아준다. 물 위로 가느다란 초록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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