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황혼기에 써본 인생 수필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종범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조회수1

좋아요0

인생의 황혼기에 서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가족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삶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린 시절 자라던 고향은 가난이 일상이던 농촌이었다. 부모님은 영세농으로 작은 논밭을 일구며 육 남매를 키우셨다. 먹고살기조차 힘든 형편 속에서도 아버지는 “큰아들만은 꼭 공부시켜야 한다”는 굳은 집념을 가지셨다. 그 뜻 하나로 나는 당진을 떠나 공주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학업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취할 형편조차 되지 않아 생식을 하며 학교를 다녔고, 눈물겨운 삶을 견뎌야 했다. 공주에서의 5년은 젊은 날의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인생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은 바로 밑의 남동생이다. 동생은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업해 내 학비 조달에 도움을 줬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접고 형의 공부를 위해 희생해 준 그 은혜를 나는 지금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 동생과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모교 국민학교에 첫 발령을 받던 날,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 대학을 졸업한 첫 인물이 되었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날 부모님이 기뻐하시던 모습은 내 인생 최고의 훈장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교직 생활은 어느덧 40년 세월로 이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직에 있던 세월 속에서 나는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당시 사회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산아 제한 구호가 울려 퍼지던 시절이었다. 봉건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딸 넷을 낳고 기어이 늦게 막내아들을 얻어 5남매를 키우며 살아왔다.
동생들을 가르쳐야 했고, 이어 자식들을 공부시켜야 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가난한 형편 가운데에도 아이들은 모두 바르게 성장해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고 아빠의 대를 이어 사위와 며느리까지 다섯 명이 교수와 교사로 교직에 봉직하고 있다.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1984년 1월 1일 주일이었다. 그날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그 만남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세상의 가치만 좇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변화되었고, 신앙은 우리 가정의 중심이 되었다.
특별히 막내아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식이라는 마음으로 키웠다. 아들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치열한 경쟁을 거쳐 현재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교목으로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아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더없는 감사와 보람을 느낀다.
정년퇴직으로 교단을 떠난 지도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이제는 열 명이 넘는 손주들의 재롱과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린 손자손녀들이 의젓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세월도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는 듯하다.
지금 나는 교회에서 원로장로로 섬기며 성도들에게 작은 신앙의 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부족한 인생이었지만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늘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다. 가난했던 소년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사랑 속에서 교사가 되었고, 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믿음의 가문을 세우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황혼기에 선 지금, 나는 더 이상 큰 욕심이 없다. 다만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족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그리고 내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은 결코 혼자 걸어온 길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눈물, 동생의 희생, 아내의 헌신, 자녀들의 성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만든 한 편의 긴 이야기였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