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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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꽃이 핀다. 꽃잎이 한 개씩 기지개 켤 때마다 내가 간질여진다. 웃음이 터진다. 웃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나는 종일 꽃이다. 종일 꽃이 피는 삶이다. 종일 웃음 터지는 생이다.
나는 사료를 입에 넣고 오도독 깨물다가 웃음이 터진 다. 입안에서 오도독 가루가 되었던 사료가 하하 흩어진 다. 앞 케이지 울쌍이 콧등을 찌푸리며 훼훼 고개를 내젓 는다. 나는 앞 케이지 녀석의 이름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금방 웃음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테니까. 아 마도 녀석은 이 동물실험실 실험법칙에 따라 나와 비교되 는 실험군으로 세팅된 실험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꽃잎이 돋고 피고 웃음이 터지고 깔깔 하 하대는 걸 보면 그렇다. 나는 가끔 너무 심하게 웃다가 방금 생각했던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는데, 아마 나는 어제도 오늘 도 내가 지금 어떤 실험에 사용 중인지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실험의 한 현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웃는다는 것도 설명 들었을 것 이다. 하지만 들으면 뭐 하나. 나는 또 하하 깔깔 웃음으로 모든 현상과 설명과 실험 기억을 다 날려버릴 텐데. 나는 그래서‘아마도 녀석은 이 동물실험실 실험법칙에 따라 나와 비교되는 실험군으로 세팅된 실험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꽃잎이 돋고 피고 웃음이 터지고 깔깔 하하대는 걸 보면 그렇다’라는 앞 문장의 진위 여부와 인 과 관계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또 하하 핫핫 웃어대는 바람에.
-쯔쯔, 쟤 엄마는 얼마나 복장 터질꼬.
옆 케이지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그 걱정 소리까지 하하 웃음으로 날려버린다. 하하하 아하하하, 나는 웃음이 날 때마다 내 겨드랑이에서 내 손톱에서 내 발가락 사이에서 꽃잎이 돋는 걸 느낀다. 순간 0.1초만 한 의문이 끼어든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나처럼 꽃잎이 돋는 느낌을 모르나, 못 느끼나, 그래서 다들 웃기를 포기한 건가, 그래서 웃는 방법 을 모르는 건가, 그 때문일까, 내 주변엔 심각하거나 무표정한 실험쥐 들 일색이다, 까지 생각하는 순간 터져 나온 하하 킥킥 덕분에 문장들 이 토막토막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즉, 때문, 심각하거나, 방법을, 건가, 일색이다, 웃기를, 꽃잎, 그래서, 발가락 사이에서, 따위 단어와 문장들이 민들레 홀씨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솜털에 붙들려 허공으로 낱낱이 흩어지고 헤어져 떠나버리듯 멋대로 여기저기 날아가 사라지거 나 곤두박질 이 구석 저 구석에 박혀 버린다.
나는 너무 많은 꽃잎들이 거의 동시에 피어나 갑자기 몸이 빵빵하게 무거워지는 것도 느낀다. 순간 심각해지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큰 소 리로 웃어댄다. 하하하 아하하하 깔깔깔깔, 그러면 웃음소리마다 자디 잔 소름 포자 같은 솜털이 돋아나, 웃음은 하나씩 둘씩 셋씩 하늘로 허공으로 옆 케이지 아줌마에게로 앞 케이지 울쌍에게로 날아간다. 몸에 서 꽃잎들을 펌프질 해낼 때마다 나는 몸이 맑아지고 가벼워지는 걸 느 낀다. 가벼워진다는 표현은 적절하게 맞는 걸까, 실은 내 몸 일부가 찢 어져 날아가는 중인데, 그래도 나는 생색은 내지 않는다. 그 꽃잎들이 얼마나 가지 많은 웃음을 품고 그들에게 도달했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떠들어대지도 않는다. 대신 꽃잎을 한 개라도 받은 그들이 한순간이라 도 꽃잎처럼 웃었으면 싶다.
-쯔쯔, 저렇게 이쁘게 생기지만 않았어도 쟤 엄마도 그렇게까지 속 터지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옆 케이지 아줌마는 내 선물을 받을 때마다 더 심각하게 쯔쯔 거린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내 엄마 걱정을 한다. 엄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기 어렵 다. 특히 심각한 생각일수록 집중하기 어렵다. 대신 꽃잎 틈새마다 한 번 각인된 건 습관처럼 영구적으로 되새김질한다. 울쌍은 아줌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반응한다. 울쌍은 내가 날려 준 꽃잎을 마주한 채 미 간 주름을 하나라도 펴기는커녕 양껏 주름 골을 더 깊게 더 여러 가닥 으로 만들어 내더니 급기야 눈물까지 글썽인다.
-울쌍, 너도 한 번쯤은 웃으며 살아봐야지, 으핫핫핫.
그때마다 나는 울쌍을 다독이고 쓰다듬어 준다. 말이 아닌 웃음으로, 내가 날려 준 꽃잎들로. 내가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 없던 사건은 내가 울쌍에게‘너도 한 번쯤은 웃으며 살아봐야지’말 붙이던 그날 일어났 다. 옆 케이지 아줌마였다.
-쯔쯔, 쟤네 엄마는,
어제처럼 내가 히히히 하하하 웃는 중에 혀를 차던 아줌마가 갑자기 케이지 밖으로 끌려 나갔다. 나는 아줌마의 쯔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자 반은 안도하고 반은 이상해서 하하하 크크크 웃었다. 여기서‘이상하다’는 표현은‘평소와 같지 않다’라는 표현과 동급이다. 그때 아줌 마 비명 소리가 들렸다. 찍! 찌익! 연달아 어렴풋이 그 냄새가 맡아졌 다. 내가 매일 맡는 꽃잎 피는 냄새가 아니라 꽃잎을 죄 짓이겨 압축기 에 사정없이 눌러눌러 즙 짜낸 것 같은 냄새. 그 생즙 냄새 출렁이는 곳 에 아줌마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줌마 배가 터져 있었다. 언젠가 김 연 구원이 먹던 불어 터진 우동 사리 같은 내장이 예리하게 찢긴 생즙 구 덩이 속에 희끗희끗 흘러넘칠 듯 꼬불꼬불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이 어 찌나 내 꽃잎을, 뺨을, 후려치던지 나는 주책맞은 봄 벚꽃 폭발하듯 파 하하핫 터지고 말았다. 김 연구원은 돌아보지 않았다. 늘 웃어대는 내 가 더는 신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울쌍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 를 돌아보았다. 울쌍의 오만상 뒤로 배경 화면처럼 아줌마의 꼬리가 다 리가 잘려 나가는 모습이 간격 없이 이어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 나 잘난 척 쯔쯔거리던 아줌마가 저렇게까지 맥락 없는 모양으로 못생 기게 흩어질 수 있다니.
-파하하핫, 푸하하핫, 끼핫핫핫, 크彰하핫.
내 웃음소리는 최고조로 커졌고 최고조로 맹렬해졌으며 최고조로 파 장마저 깊어졌다. 그날 웃음소리는 하울링 되어 내 뼛속과 내 핏속까지 스며들었고 오래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그날 나는 수시로 폭죽 터지는 웃음 메아리를 끅끅 되새김질하며 오래오래 후드득 후드득 웃어야 했 다. 어떻게 웃음을 멈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몸뚱이 자체 가 웃음꽃이었다.
-대체 넌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거니.
울쌍은 종종 내가 해독하지 못할 말을 건넸다. 나는 맥락 없이 못생 기게 분해된 아줌마 때문에 웃다 숨넘어가기 직전이었고, 숨 막혀 혼절 하기 전에 웃음을 멈추고 싶었으므로 냉큼 반응했다. 꽃대 모가지 꺾듯 우격다짐으로 웃음을 꺾고 고개까지 갸우뚱 꺾어 울쌍을 보았다. 내가 하하 깔깔 웃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냥 웃는 거야. 웃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니, 유효기간이 필요하니.
-아줌마가 저렇게 비참하게 실험당했는데, 그냥 웃는다니.
울쌍은 내가 울쌍 말을 해독 못 하듯 백날천날 내 말을 이해 못하겠 다는 듯 캄캄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더 컴컴한 한숨을 내쉬었다. 꽃 잎마다 뭉텅뭉텅 썩은 내가 났다. 나는 울쌍에게 내 몸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속 시원히 말해줄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웃음만큼이나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현상, 즉 내 발톱과 발톱 사이에서 내 손가락과 손 가락 사이에서 꽃잎이 돋고 꽃잎이 자라나 세포들을 자극하고 세포들 간극이 벌어질 때마다 간질간질 후렴처럼 웃음꽃이 연달아 터지는 현 상을 어떻게 말로 표정으로 몸짓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내가 드물게 웃 지 않을 때, 아마도 잠들기 직전 어느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나는 분 명 들었다.
“이 아이의 세포마다 이 신경 코드를 심을 거야, 그런데 이 신경 코드 모양이 마치 꽃잎 같지 않아? 생명 현상은 들여다볼수록 아름답고 알 아 갈수록 경탄스럽다니까? ”
나도 보았다. 내 척추뼈를 댕강 분질러 촬영한 사진을 보았을 때 나 는 또 한 번 와핫핫핫 우핫핫핫, 웃음을 터뜨렸었다. 척추뼈 단면 사진 속에 이 세상 표정이 아닌 사랑스런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환하게 웃 는 얼굴이 숨어 있었다. 하도 반가워서 나는 내 척추뼈에게 악수를 청 할 뻔했다.
너도 나처럼 웃음이 골수에 박혔구나, 너도 웃음을 주체 못 하는 하루 하루를 살겠구나.
단 한 장 증거 사진은 수백 번 설명보다 확고한 이해와 믿음을 선사 했고 덕분에 나는 김 연구원 말을 정확하게 내 세포에 각인할 수 있었다. 김 연구원이 정말로 내 세포마다 꽃잎을 심었다는 것을, 심지어는 꽃잎을 단순 이식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내가 새끼를 낳으면 내 새끼에 게까지 그 꽃잎이 전달되도록 내 유전자 코드에까지 꽃잎을 끼워 삼줄 처럼 새끼 꼬았다는 것을.
“그런데 이 아이가 왜 갑자기 웃기 시작했는지 알아? 나는 PBA(Pro- gressive Bulbar Atrophy)용으로 꽃잎을 심었을 뿐인데, 느닷없이 웃기 시 작하더라고, 실험쥐가 웃는다는 얘기 혹시 들어본 적 있어? ”
김 연구원은 동료 연구원들로부터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인공지 능‘척’도 엉뚱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실험쥐는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정을 이해하거나 웃 을 수 없습니다. 실험쥐는 과학 연구를 위해 특정 실험 목적을 위해 동물 모델로 활용됩니다. 그러나 감정적인 상황에서 이상하고 재미있는 감정 적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답변은 틀릴 수 있어도 인공지능 답변은 틀릴 수 없다고 믿는 김 연구원 덕분에 나는 실험 실패가 확정되었고, 그날로 마취통에 던져 질 운명이었다. 그런데 마취통을 열기 직전 김 연구원이 중얼거렸다.
“비싼 실험쥐인데, 죽이기 전에‘그 실험’이나 시도해 볼까.”
자연에 널려 있는 미지의 생명체든 달이나 화성에 널려 있는 불명의 괴암석이든 먼저 발견하고 먼저 취한 자가 임자다. 김 연구원은 웃는 실험쥐를‘발견’하자마자 냉동고에 폐기하는 대신 사적인 실험동물로 용도 변경해 버렸다. 내 세포마다 꽃 모양 신경 코드를 심은 사실조차 망각한 듯‘실험쥐의 웃음 결정구조’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웃을 때마다 일정량 웃음 분자를 김 연구원에게 바쳐야 했는데, 김 연구원이 어떤 방식으로 웃음 분자를 취해 가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하깔깔쉴새없이웃는통에살필겨를도없었고.
나는 세포마다 꽃잎이 돋고 자랄 때 그 간지럼 부작용으로 웃게 되었 고, 애초 실험 목적도 웃음이 아니라 PBA 신경증 환자의 감정선 치료 가 목적이었기에 내 웃음은 명백한 에러에 해당되었지만, 하도 인간 세 상이 쓰레기 기사와 천인공노할 사건들로 뒤범벅되자 인간들은 반대급 부로 맹렬하게 웃음을 갈망하게 되었다. 웃음도 정규 티브이 프로로 편 성해 뿌리는 코미디처럼 의도하거나 몸 개그처럼 작정해서 터져 나오 는 웃음이 아니라 그냥 터져 나오는 자연산 웃음을 최고로 치게 되었 고, 김 연구원은 기회의 신이 달아나기 전에 기회의 상투를 움켜잡는 데 성공했다.
생명체의 세포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거나 변신한다. 세포도 탄생하 고 자라고 늙고 죽어간다. 그 변신 사이 사이 김 연구원이 심어놓은 꽃 잎이 세포를 간질이고 그 간질임의 총집합이 내 목젖을 통해 빵 터져 나오는 순간, 김 연구원은 내 웃음을 포집했다. 김 연구원은 웃음 분자 들에 뒤섞인 운동에너지, 질량, 수량, 침방울의 개수 따위를 정밀 분석 한 후, 똑같은 분자와 물질을 의도적으로 실험 접시에 배양했다. 배양 된 웃음 분자는 또 다른 실험쥐, 가령 나와 대조군을 이루는 울쌍 같은 실험쥐에 이식되었고, 대조군에서조차 웃음 효과가 확실하게 발현된다 고 판단될 경우‘웃음’을 대량 생산하여 인간들에게 판매한다는 치밀 한 계획을 짰다. 김 연구원은 이 돌연변이 프로젝트 이름을‘웃음꽃 프 로젝트’라 명명하고 개인 연구 노트와 개인 노트북에만 실험 결과를 기 록했다.
그러니까 나는 웃어야 사는 것이다. 웃는 순간이 살아 있는 순간이며 웃는 순간이 진짜 나인 것이다. 심지어 나를 모태 삼아 태어날 나의 후 세도 나처럼 웃어야만 살게 될 것이다. 유전자가 그렇게 코딩되었다니까. 어떤 슬픈 순간이 닥쳐도 웃어야만 사는 삶, 어떤 고통이 뼈를 녹여 도 웃어야만 살려두는 삶. 사실 만날 웃음 터트려 대는 나도 웃을 때마 다 꽃잎이 보이고 꽃잎이 보일 때마다 웃는 등식이 상당히 난해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김 연구원 어깨 너머로 노트북 모니터 화면에 가 득 펼쳐지는 세포들과 분자들과 자연물의 현미경 사진을 엿보다가 꽃 잎과 웃음 등식이 문득 이해되었다.
노트북 화면에 펼쳐진 커피의 카페인 분자 사진은 어떤 유명 화가 그 림보다 화려하고 판타스틱했으며, 인간과 유사한 면이 많아서 생물학 실험동물로 자주 쓰이는 열대어 제브라피시의 수염 신경망은 꽃보다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노트북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확대되고 재생산 되던 모든 생명체들과 모든 자연물들은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름다웠고 확대할수록 신비로웠고 파헤칠수록 판타스틱했다. 심지어 악명 높은 유방암 세포조차 분홍색 하트 모양으로 변신해 내 눈을 유혹 했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래서 내 몸 세포들이 모종의 작용을 할 때마다 꽃잎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그 바람에 온몸 이 간질간질거리는 거구나, 그게 웃음이 되어 터지는 거구나.
하지만 김 연구원이 심었다는 꽃잎이 진짜 꽃잎은 아닐진대 왜 나는 진짜 꽃잎을 보는 걸까, 내 웃음 분자를 이식받은 울쌍 눈에도 꽃잎이 보일까. 울쌍은 고개를 저었다.
-대체 넌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여기 동물실험실에 꽃잎이 있을 리가 있니.
그제야 나는 세상을 한 번 휘둘러 보았는데, 내 앞이나 옆이나 뒤나 위나 똑같으면서도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웃기만 하느라 한 번도 내 옆이나 위를 돌아보지 못했다. 웃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가득 찼고 더는 다른 것을 시도해 볼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그랬는데 꽃잎을 젖히고 눈꺼풀을 열고 보니 세상은 넓었고 볼것도 많았다. 똑같은 케이지에 똑같은 사료통에 똑같은 물통에 심지어 생김새까지 똑같은(표정이나 코털의 개수, 코털의 위치와 방향 따위는 가끔 달 랐으려나) 실험동물들이 빽빽이 살고 있었다. 그네들 옆에는 위에는 뒤 에는 아래에는 어떤 꽃잎도 보이지 않았다. 꽃잎커녕 꽃 그림자도 없었 다. 깨진 꽃향기조차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한테만 꽃잎이 보이는 이유는?
나는 울쌍에게 물었다. 동물실험실에 입방한 후 처음으로 웃음기 쫘 악 빠진 질문을 던졌다. 울쌍은 최소한 나보다는 하루라도 먼저 이 동 물실험실에 입방했고, 나보다는 더 생각이 깊은 것 같았으며, 나보다는 정답을 하나라도 더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울쌍은 내가 이 실 험 케이지 안에서 처음 눈 떴을 때 이미 앞 케이지에 살고 있었고, 내가 웃느라 정신없을 때마다, 넌 왜 그렇게 웃니, 라고 물었고, 아줌마가 숨 져갈 때조차 무언가를 더 아는 실험쥐처럼 엄숙하게 굴었다. 무엇보다 옆 케이지 아줌마는 나만 보면 습관처럼 쯔쯔거렸고 덕분에 괜스리 엄 마를 떠올려야 했으므로 나는 울쌍에게 질문하고 울쌍에게 답을 얻는 게 더 속 편했다. 울쌍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꽃잎 실험을 하는 모양이지. 아마도.
-꽃잎 실험?
그건 울쌍식 답변이 아니었다. 그건 답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질문이고 늪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울쌍의 확인 덕분에 그때부터 내가 꽃잎 역할 을 부여받았다고 확신했고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가 꽃이었다. 나는 이 냄새나고 더러운 동물실험실에서 꽃이 보고 싶을 때마다 꽃을 볼 수 있 는 방법이 바로 웃는 거라는 사실도 깨우쳤다. 나아가 나는 동물실험실 모든 실험동물에게 꽃잎 역할을 해야 하며 그들에게 한 개라도 더 꽃잎 을 선사해야 한다는 나만의 사명감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 깨우침은 울 쌍 도움 없이도 가능했는데, 나는 나날이 꽃잎만 자란 게 아니라 생각도 자랐던 것이다. 특히 나는 나를 똑닮은 실험동물이 하나씩 실험 케 이지에서 사라질 때마다, 아줌마처럼 맥락 없이 못생기게 분해될 때마 다 미친 듯 웃음꽃을 터트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웃음이 너무 과해 웃 음이 나를 꿀떡 먹어 치우기 전에, 꽃잎이 너무 무성해 내 몸이 갈래갈 래 가지 나뉘고 꺾이기 전에, 부지런히 꽃잎을 나눠야 한다는 각성까지 하게 되었다.
-난 꽃잎이 싫어.
울쌍이었다. 나는 울쌍의 투덜거림이 이해되지 않았다. 갈래갈래 몸 이 찢어질 것 같은 간지러움을 감수하면서 애써 토해낸 꽃잎을 거부하 다니,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생명체도 있다니. 울쌍이 말했다.
-그래서 난 니가 웃는 것도 싫어.
나는 더욱 울쌍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에 웃음을 싫어하는 생명체 도 있다니, 아마도 울쌍은 동물실험실 케이지 안에서의 삶이 너무 뻔하 고 너무 반복적이어서 미쳐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간지럽다 못해 웃음 꽃이 만발해 버린 것처럼. 불쌍한 울쌍, 그래서 늘 울쌍이었구나. 그럴 수록 급하게 웃음꽃이 발화되었고 그럴수록 마구마구 꽃잎을 날려 주 었다. 아하하하 푸하하하핫.
-그러니까 이제 제발 웃지 마.
어쩌면 그래서 나는 울쌍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웃는 거고, 웃지 않으면 아팠는데 살 수가 없는 데 웃지 말라니, 그럼 나더러 죽어버리라는 거냐고 따져야 했지만 울쌍 표정이 하도 슬퍼 보여서 따질 수도 없었다. 대신 나는 울쌍이 딴 곳을 보고 있을 때 웃기로 작정했다. 난생처음 눈치 보면서 웃으려니까 웃음 이 자꾸 체했다. 지금 웃어도 되나 걱정하니까 웃음이 피시식 샜다. 꽃 잎도 제대로 만발하지 못했고 필연적으로 세포들마저 쭈굴거리기 시작 했다.
“스말, 너왜이래? 너어디아픈거냐?”
김 연구원이 나를 케이지에서 꺼냈다. 이리저리 내 몸뚱이를 뒤집고 살피며 나를 진찰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눈앞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잔뜩 꽃잎을 구긴 채 말했다. 내가 웃는 게 싫대 요. 김 연구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누가 그래? 나는 울쌍을 보았다. 울 쌍은 나로부터 몸을 돌린 채 베딩 바닥을 파고 있었다. 쟤가요. 김 연구 원이 나를 케이지에 내려놓고 울쌍에게 다가갔다. 울쌍이 더욱 울쌍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더는 울쌍을 지켜볼 수 없었다. 울쌍 때 문에 구깃구깃 용도 변질되려는 웃음 분자들을 똑바로 펴놓기 위해 내 몸 구석구석을 자체 점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쌍은 김 연구원에 의해 동물실험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막 점검 끝낸 웃음 분자들이 급하게 목젖을 탈출하려 꿈틀거렸지만 나는 애써 10분의 1만 피식 웃었다. 울쌍이 지금 매를 맞고 있을까, 주사를 맞고 있을까, 생각해야 했으므로. 울쌍이 동물실험실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하 고 돌아왔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울쌍이 동물실험실 밖으로 끌려 나가 면 울쌍을 의식해 웃음 수량을 조절하려 기를 쓰는 바람에, 역으로 울 쌍이 동물실험실 케이지로 돌아올 때마다 울쌍이 10그램씩 달라졌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저 아이는 어쩌다 또 저리 됐누, 쯔쯔쯧.
옆 케이지 아줌마가 또 쯔쯔거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웃음보를 터트렸다. 아줌마는 저번에 죽지 않았어요, 아하하핫? 아줌마가 농담 처럼 말했다. 죽다 살아났지. 아줌마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목소 리로 말해주었다. 울쌍은 오래전부터 우울증 실험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웃음 실험으로 용도 변경되는 바람에 필연적으로 겹치기 우울증 실험을 감당하게 되었노라고,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웃어 대는 나도 쯔쯧이지만 매일 우울한 데다 이제는 죽쌍까지 보태야 하는 울쌍은 더 쯔쯧이라고.
과연 울쌍은 어제보다 더 울쌍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바람 새는 풍선 입구처럼 웃음 새려는 입술을 쫑쫑 몰아 다문 채 울쌍을 살폈다. 울쌍 은 어제의 울쌍과는 달랐다. 표정이 더 울쌍인 점은 당연히 달랐지만, 눈의 느낌이 분명 어제와 달랐다. 눈언저리가 웃고 있었다. 이상하다. 아줌마 말대로라면 우울증이 겹치고 겹쳐 우울증 그 자체여야 하는데, 저 눈자위를 보니 울쌍도 약간은 웃음을 아는 것 같아. 저것도 김 연구 원의 에러일까 김 연구원의 의도일까. 아니면 웃음 모델인 내 눈에는 뭐든 웃음 형태로만 인지되는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하하하 깔깔깔 웃다가 웃음에 체할라치면 얼른 울 쌍을 보았다. 울쌍을 보면, 어제보다 더 울쌍인가, 어제보다 더 죽쌍인 가, 단 한 개라도 생각이란 걸 해야 했으므로 순간 웃음이 1정도 잦아들 던 것이다. 울쌍은 케이지 밖으로 나갔다 올 때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눈가가 웃고 있었는데, 저게 웃는 게 아니라면 혹시 눈주름일까, 우울 이 겹치고 겹쳐 눈가까지 우울 그림자가 늘어진 걸까, 갈팡질팡 내 생 각까지 시소를 탔다. 생각 빈도만큼 웃음도 2만큼 3만큼씩 잦아들었고. 그때 나와 울쌍 눈이 마주쳤다. 울쌍은 그림자 선명한 눈자위로 내 눈 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특히 내 앞에서는.
울쌍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했다. 이상하다. 저것도 에러일까 의도일 까. 김 연구원이 동물실험실로 들어왔다. 김 연구원은 나를 먼저 살펴 보고 울쌍을 살피기 시작했다. 울쌍은 김 연구원이 듣지 못하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 기울였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아하하하 웃지 않았다.
-니가 웃을 때마다 내 가슴이 너무 아파.
나는 놀라서 김 연구원을 올려다보았다. 자신 실험 역할에 올인하지 못하고 대조군 실험 역할에 감정 이입되는 순간 울쌍은 마취통으로 던 져진다. 그동안 감정 불량 난 실험쥐가 마취통 속에 던져져 불명예스러 운 죽음 거품을 뻐끔뻐끔 물고 죽어가는 과정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 가. 김 연구원은 자신만의 연구 노트에 울쌍의 변화와 상태를 체크하고 기록하느라 바빴다. 다행이었다. 김 연구원이 마지막 순서로 울쌍의 똥 꼬를 체크하기 위해 울쌍 꼬리를 들고 울쌍 몸뚱이를 허공에 반 띄웠 다. 울쌍은 앞발로 케이지 바닥에 널린 베딩 가루라도 잡으려 기우뚱 갸우뚱 꼴사납게 버둥거렸다.
순간 내 목젖이 떨어져 나갈 듯 웃음보가 터져야 마땅했지만 나는 웃 지 못했다. 나는 적이 당황했다. 내 손가락이나 발가락 사이에서 더는 꽃잎이 피어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마저 치고 들었다. 불안이 치 고 들수록 웃음꽃은 그림자까지 꽁꽁 더 멀리 더 깊이 숨어버렸다. 나 는 우수수 꽃잎 지는 한숨을 몰아쉬며 울쌍을 보았다. 울쌍은 그새 베 딩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지, 울쌍은 대체 무슨 역할인 거야.
울쌍이 숨어버렸으므로 대답해 줄 생명체는 없었다. 옆 케이지 아줌 마조차 다시 영원한 침묵에 빠졌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내 질문 따윈 듣지도 않았다. 김 연구원은 매일 한 번씩 내가 오늘은 몇 번 웃었는지를 확인하고, 웃음 강도 따위를 확인하고, 웃음 진폭 따위를 확인하고, 웃음 종류, 웃음 연속성 따위를 확인하지만 그 때마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반응을 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김 연구원에게는 어떤 답도 들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럼에도 울쌍 말이 하도 이상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김 연구원님, 지금 내 세포를 쑤셔볼 게 아니라 울쌍을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김 연구원은 노트북 모니터와 내 세포 사이에서만 오락가락했다. 나는 애가 탔다. 김 연구원님, 울쌍이 이상하다고요, 울쌍이 아픈 것 같다 고요. 소용없었다. 김 연구원은 오늘 내가 두 번이나 덜 웃었다는 걸 확 인하고 애꿎은 내 세포들을 헤쳐댔다. 이상 없는데, 어제처럼 그제처럼 세포마다 정상 작동하고 있는데, 그런데 왜 어제처럼 그제처럼 웃지 않 을까, 어디서 에러가 났을까. 나는 웃음보 대신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김 연구원님, 울쌍이 이상하다니까요! 그때 나는 희미하지만 정확하게 들었다. 축축하고 냄새나는 베딩 속에서 스며 나오는 눅눅한 목소리를.
-부디 웃지 않는 너를 다시 볼 수 있길 바라.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김 연구원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울쌍! 왜 그래, 어디 가?
울쌍은 답이 없었다. 설마 아줌마처럼 갑자기 죽음에 드는 건 아니겠 지, 왜 다들 갑자기 나만 두고 사라지는 걸까.
-울쌍, 나만 두고 가지 마, 아줌마도 어제부터 아무 소리도 안 나고, 울쌍, 나만 두고 어디 가지 마?
울쌍은 베딩 속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애초 울쌍은 내가 존재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대조 실험군이었다. 행복이 존재하면 불행이 존재하듯 웃음 모델이 존재하므로 우울 모델도 존재해야 했다. 따라서 내가 동물 실험실 케이지에 살아남아 있는 한, 울쌍은 절대 어디로 가서도 사라져 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실험 역할을 거부하거나 도망쳐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울쌍은 내가 존재하고 내가 웃는 한 반드시 건너편 케 이지에 울쌍다운 생명체로 우울하게 존재해야 했다. 그게 동물실험실 법칙이니까. 그런데 대답이 없다. 어디선가 죽음 냄새가 났다. 꽃잎 자 체로 살아온 나로서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지만 즉각 그 냄새의 정체 를 알았다. 생즙 된 피 냄새, 생즙의 비릿함마저 뭉개버리는 냄새.
-김 연구원님, 울쌍이 죽었나 봐요, 울쌍에게 대체 무슨 실험을 한 거예요?
김 연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동물실험실에서 유일하게 답해주고 내 말을 들어주던 울쌍은 그렇게 떠났다. 동물실험실 케이지에는 나만 남았다. 김 연구원은 나를 새 케이지로 옮겨주었다. 특별한 주사도 놓 아주었다. 피곤함을 치료하는 주사야, 매일 웃느라고 에너지가 방전된 것 같은데, 주사 맞고 기운 내서 다시 웃어라. 김 연구원은 웃지 않으면 울쌍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웃어야 할 거라고 엄 포까지 보태어 주사했다.
-으하하하핫, 푸하하핫하.
나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내 겨드랑이에서 꽃잎들이 간질간질 피어 났다. 아하하하, 나는 최대한 열심히 웃었다. 내 발가락 사이에서 손가 락 사이에서 손톱에서 발톱에서, 강수량 0퍼센트인 아타카마 사막에서 기적처럼 꽃들 피어나듯 꽃잎이 피어났다. 초창꽃 닮은 꽃잎이 알타미 르라 닮은 꽃잎이 냉이꽃 닮은 꽃잎이 사랑초꽃 닮은 꽃잎이 저 홀로 또는 무리 지어 무시로 피어났다. 꽃잎들은 수시로 아하하하 깔깔깔깔 흩어졌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끔 너무 웃어 목이 아프면 물을 할짝거리며 할짝, 할짝, 웃었다. 그 사이 사이로 울쌍 목소리가 끼어들 었다.
-부디 웃지 않는 너를 다시 볼 수 있길 바라.
나는 물통 꼭지에서 약 오르게 떨어지는 물방울을 할짝대다 말고 잽 싸게 시선을 들었다. 어디에도 울쌍은 없었다. 매일 울쌍에다 화내는 것 같던 그 죽쌍 얼굴이 이토록 보고 싶을 줄이야, 매일 눈앞에 있을 때 는 기억 한번 안 나던 그 목소리가 이토록 듣고 싶을 줄이야. 나는 울쌍 의 말을 곰곰 되새겨 보았다. 말의 행간을 짚어 보았다. 부디 웃지 않는 나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러면 나는 웃지 않아야만 울쌍을 볼 수 있을까. 오도도독 사료를 깨물다 말고 별안간 웃음이 폭죽 터져 버렸다. 하지만 죽어버린 울쌍을 어떻게 다시 만난단 말야, 드디어 나까지 미쳐버린 거야? 파하하하핫, 내 입에서 튀어 나간 사료 가루를 뒤 집어쓴 채 머리를 털어대던 그 언젠가의 울쌍에게 따지듯 물었다.
-울쌍, 내가 웃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
나는 다급하게 문장을 이어 붙였다.
-내가 웃지 않으면, 그러면 울쌍 너도 대조군 실험을 하지 않아도 될 건데, 내가 웃지 않으면 울쌍 넌 어떻게 되는지부터 알려줘.
울쌍은 대답이 없었다. 연이어 웃음보가 터졌다. 울쌍이 살아 돌아오 지 않는 한 대답은 불가능한 일이야, 미쳤군 미쳤어, 나는 아하하하 깔 깔깔깔 자지러지면서 울쌍이 기거하던 케이지를 건너다보았다. 웃다 웃다 양 눈꼬리에 이힛,이힛, 웃음 젖은 눈물방울을 두 개나 매단 채 울 쌍 이름표를 더듬었다. 사막에서 물 찾듯 이름표 속에서 울쌍을 건져내 기라도 할 것처럼.
‘웃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우울 장애의 표준 모델1 -부제 : 웃음 코드 교란과 관련하여 웃음 코드 삽입 및 우울 코드 제어를 실험하기 위한 도너 서브 모델1’
세상에나 저렇게 긴 이름표도 있다니, 파하하핫, 세상은 넓고 의아한 것 투성이였다. 나도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이름이 저래 길어서야, 아 하하하, 핫핫핫,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구만, 크크흐흐흣. 나는 웃음을 꾸역꾸역 토하면서 생각했다. 울쌍에겐 울쌍이란 이름이 훨씬 더 잘 어 울린다고, 정말 울쌍다운 이름이라고.
-쯔쯔, 쟤 엄마는 얼마나 속이 터질까.
어디서 또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부디 웃지 않는 너를 다시 볼 수 있길 바라.
나는 벌떡 케이지 바닥을 박차고 일어났다. 울쌍은 지금 나를 기다리 고 있다! 틀림없이‘다시’‘볼 수’있다! 내 겨드랑이에서 꽃잎이 피어 나고 내 발가락 사이에서 꽃잎이 피어나고 내 손톱에서 내 머리칼에서 꽃잎이 피어날 때마다 웃어대느라 세상 모든 것을 간과한 채 살아야 했 지만, 그래서 날마다 웃느라 지치고 지친 덕분에 나에게 울쌍의 우울 코드를 접합하기 위한 수술이 바로 오늘 오후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만 간과하고 있다는 걸 순간 알아버렸다.
김 연구원의 연구 과제는 그새 또 방향을 틀었다. 웃음이 과한 모델 에게는 우울 코드를, 우울이 과한 모델에게는 웃음 코드를 접합하는 수 술을 시행함으로써 적절한 웃음과 우울이 교차 되는 모세포를 만들어 인간에게 이식, 균형 잡힌 감정을 소유한 인간을 창조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난 것이다. 이로써 김 연구원은 모든 발견과 창조는 에러와 우연의 연속 중 아주 사소한 일부임을 또 한 번 증명한 셈이 되었고, 덕 분에 울쌍은 나보다 먼저 생체 해부에 동원되었고, 나는 울쌍 다음으로 생체 해부가 예정되었다.
헌데 나는 울쌍 최후를 짐작도 못 했는데 울쌍은 나의 최후를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울쌍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울쌍 케이지에는 이 제 이름표마저 떼어지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름표대로 따박 따박 울쌍을 불러보면 이름표 안의 울쌍이라도 대답 해줄까 열심히 이 름표 글자들을 되새김질해 앞뒤를 이어보지만 소용없었다. 웃느라 모 든 에너지가 방전된 내 기억력으로는 이름표 한 토막도 제대로 토해내 기 어려웠다. 어흐흐흐 어흐, 울쌍을 기억하려는 웃음소리가 자꾸만 목 구멍에 걸렸다. 대신 울쌍 목소리만 계시처럼 내 귓가를 맴돌았다. 그 날 몸속 깊이 하울링 되어 스몄던 웃음꽃 메아리처럼.
-부디 웃지 않는 너를 다시 볼 수 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