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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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강남대로로 나왔다. 차들의 헤드라이트와 가로등이 눈부셨다. 유턴 신호를 받고 나서야 중요한 전화 약속이 떠올랐다. 이미 두 시간을 넘긴 뒤였다. 급히 전화를 걸어 선생님께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괜찮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했어요. 좋은 일 했네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낮에 오래전부터 알던 분의 진료를 도우러 나섰다. 그녀는 몇 년 동안 해마다 거르지 않고 동치미를 담가 주고, 청국장도 가져다주었다. 사실 나보다 어머니와 더 가까운 사이였다. 어머니를 큰언니처럼 따르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거의 모시다시피 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일이 길어지며 하루가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결국 선생님과의 약속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딸기며 참외를 넉넉하게 사놓았기에 나눌 생각으로 집에 잠깐 들르시라 연락을 했다. 집에 온 그녀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아파했다. 진통제로 버티며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했다. 살이 빠진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언제 저렇게 나이가 들었나 싶었다.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망설임 없이 척추 전문병원에 예약했다. 혼자든 자식들이 모시고 가든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녀는 난감해했다. 자식들을 앞세울 형편이 아닌지,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사느라 바쁜 자식들의 처지도 짐작이 갔고, 혼자 병원을 찾아갈 엄두를 못 내면서도 자식들한테는 괜찮다고 말하는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그럼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겠냐는 생각에 함께 갈 수 있는 날로 다시 예약을 잡았다.
병원의 대기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더 왜소해 보였다. 나는 보호자가 되어 접수하고 문진을 도왔다. 병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금방 끝날 일이라 여겼다. 동네 병원에서 찍은 영상 자료도 가져왔으니 한두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는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는 데도 한참이 걸렸고, 몇 번이나 오갔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탈의실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순서는 밀렸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나이 든다는 일이 이런 것일까. 아직 팔순도 되지 않았는데 몸이 시간을 앞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절차는 계속 늘어나고 할 일도 하나씩 더해졌다. 시간이 자꾸 지연되니 마음은 조급해졌다.
병원에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엑스레이상으로는 척추에 금이 간 것으로 보이지만, MRI를 다시 찍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가져온 자료는 경추 사진이라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검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키와 몸무게를 묻자 그녀는 많이 줄었다며 숫자를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새삼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더 작아 보였다. 쓰고 있던 모자를 잠깐 벗었을 때 드러난 머리카락에는 통증의 시간이 새겨진 듯했다. 흰 머리카락이 자라나 염색된 부분과의 경계가 또렷했다. 늘어지는 시간 속에서 올라오던 마음은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가라앉으며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뼈에 금이 가 있어 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 입원하면 내일 바로 시술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미룰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에 당장 입원하겠다고 했다. 접수창구를 찾고, 입원 절차를 밟고, 필요한 설명을 듣고, 다시 확인하는 일까지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입원실로 안내받았을 때는 일곱 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녀의 권유에 못 이겨 병원 근처 식당에서 전복죽을 먹었다. 얇게 저며진 전복 몇 점이 들어간 짭짤한 죽으로 허기를 달랬다. 식당을 나오며 소금도 기운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그녀를 태워 보내고 병원을 나섰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의외로 평온했다. 그런 평온함이 낯설었다. 예전 같았으면 훨씬 힘겨워했을 것이다. 그 고요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무 해도 훨씬 전,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던 하루가 있었다. 그때는 늘 시간이 부족했고, 병원에서 보내는 몇 시간은 다른 일을 밀쳐두어야만 겨우 낼 수 있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리라는 예감이 그 순간에 짊어진 무게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항암 주사 치료를 받느라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손등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약물은 아주 천천히 떨어졌고 시간은 거의 멈춘 것처럼 흘렀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있었고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다음 날을 준비해야 했다. 사실 눈은 글자를 쫓고 있었지만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마음을 다해 지켜야 할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곁에 앉아 있는 일, 다리를 주물러 주는 일,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일로 채워져야 할 시간이었다.
문득 지금의 나이가 그때 병원에 누워 있던 어머니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의 나이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때였다. 그 시간에 어머니는 병들어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있으면서도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가만히 손을 잡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곁을 오래 지키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스마트폰 너머의 목소리가 다시 귀에 울린다. 아휴, 괜찮아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요.
선생님은 아실까. 그 말이 오늘의 일과 오래전 어머니의 기억까지 함께 감싸며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