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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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 일을 하지 않게 된 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나가는데 아침 식사를 하며 탁상시계를 바라보는 습관은 여전하다. 작년 9월 10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B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급식을 돕는 일을 했다. 주말과 공휴일은 쉬고 평일에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했다.
작년 5월 어느 날 딸과 함께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치매센터 앞을 지나게 되었다.
“엄마 치매검사 좀 해보는 게 어때?”
“그럴까?”
딸의 권유대로 4층으로 가서 치매인지선별검사를 했다.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치매센터에 속해 있는 웰에이징센터에서 메시지가 왔다. ○월 ○일 목요일 아침 10시에 1일 요리교실 참여를 알리는 문자였다.
그날이 되어 요리교실에 갔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아주머니 둘이 앉아 있었다. 눈인사를 하고 앉아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두 분은 아무 일도 안 하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만 저었다. 우리 남편이 중학교에서 배식을 하는데 용돈도 벌고 매일 나가서 좋다고 말하면서 해보고 싶으면 N동에 있는 주민센터 시니어클럽에 가보라고 했다. 옆에 있는 부인은 관심이 있는지 전화번호까지 적었다. 그때는 지나가는 말처럼 예사로 들었다. 매주 목요일에 낙상예방운동을 하러 다니고 복지관에 강좌 들으러 다니느라 노인 일자리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7, 8월 찜통더위를 견뎌내고 9월이 시작되었을 때 문득 요리교실에서 들었던 노인 일자리 생각이 났다. N동이면 이웃 동네니까 그곳 어디에 있겠지? 생각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러나 주민센터가 대로변에 있지 않아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부동산 가게에 들어가서 물었더니 어디쯤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상가들이 늘어선 이면도로에 N주민센터 건물이 있었다.
2층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사회복지사를 만나 찾아온 목적을 말했더니 B초등학교에 배식 일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 학교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두 정거장인데 평소에 많이 걸어 다니기 때문에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적절한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발품을 팔며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사회복지사는 보건소에 가서 장티푸스, 폐결핵, 파라티푸스, 세균성 이질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검진을 받고 건강진단 결과지를 제출했다. 그것으로 배식할 자격은 주어졌다. 사회복지사는 체크무늬가 들어간 흰 모자와 비닐 앞치마, 토시 한 벌, 마스크 하나가 든 가방을 주고 하얀 티셔츠는 떨어졌네요, 하면서 구매하라고 말했다. 배식할 때 복장이 흰옷에 검정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식팀 반장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미리 전화 한 번 하시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초저녁에 반장과 통화를 했다. 걸걸한 목소리의 경상도 말씨를 쓰는 여인은 어느 동네에 사느냐? 그곳에서 오래 살았느냐? 얼굴도 안 본 처지에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학교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동네 사람끼리니까 좋게 지내리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입학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학교에 갈 날을 기다렸다.
9월 10일에 B초등학교에 갔다. 내 아이들이 이 학교를 6년 동안 다녔던 때를 상기하면서 교문을 들어섰다. 건물 출입문으로 들어가니 바로 오른편에 신발장이 있고 방문이 보였다. 문을 열어보니 몇 사람이 있었다. ‘잘 찾아왔네’ 생각하며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부터 일하러 왔다고 하니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군대에서 신병이 전입 신고하듯 이름부터 묻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나면서 보니 열 명의 배식원들 전화연락망도 없었다. 반장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익히고 따라 하면 되는 식이었다.
학교에 오전 11시 20분까지 가서 배식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11시 40분에 2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가서 일찍 와 있는 영양보조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2벌 뽑고 면장갑 한 켤레를 챙긴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필수다. 잠시 후에 영양사가 오면 그를 따라 몸 푸는 체조를 하고 나서 그날 어린이들이 먹을 반찬들의 양을 얼마만큼씩 주라는 설명을 듣고 반찬통 앞에 가서 대기한다.
급식 메뉴는 매일 다르다. 보리나 현미, 렌틸콩이 섞인 밥과 육류나 생선, 김치, 깍두기, 나물류와 소고기가 들어간 국 종류,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한 조각도 가끔씩 줄 때도 있다.
12시가 되어 1학년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을 따라 들어오면 밥부터 배식을 한다. 처음 며칠은 긴장하며 배식을 했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은 “더 주세요” 한다. “먹고 나중에 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배식하기 전에 영양사가 말한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배식할 때 영양사가 감독관처럼 지켜보고 있어서 할머니의 마음으로 더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12월 중순에 시니어클럽에서 각 학교 배식원들을 주민센터 강당에 모아 놓고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배식 일을 하면서 생기는 애로사항을 듣고 난 뒤에 센터장은 배식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제발 음식 좀 싸가지 마십시오.”
오죽 음식들을 싸가지고 가면 민원이 들어가나? 우리 배식원들도 영양사와 관계자들 몰래 급식들을 앞치마에 집어넣느라 바쁜 걸 일상 보아 왔는데, 다른 데서는 안 하리라는 법도 없겠지.
크리스마스 무렵 시니어클럽에서 건강보험공단 서류, 주민등록등본, 이력서를 내라고 했다. 일을 마치고 서류를 떼어다 냈다. 해가 바뀌어 1월 초에 각 학교 배식원들의 면접이 있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루에 진행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B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개학날을 며칠 앞두고 길에서 배식반장을 만났다.
“형님 이름이 명단에 없던데요?”
집에 와서 노인 일자리센터에 전화를 했다. 내가 왜 제외되었는지를 묻고 통보를 해야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통보를 하느냐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계절은 순리대로 봄이 오고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매일 집을 나서면 B초등학교 방향으로 걷고 있다. 올해 신입생들은 몇 명이나 들어왔을까? 지금쯤 아이들은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겠지? 12시가 되면 급식을 먹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며 큰소리로 떠들고 놀겠구나, 씩씩한 모습들을 머리에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