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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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 산 지도 어느덧 30년이다.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은 미처 몰랐다. 앞으로의 삶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퇴직 이후의 시간 또한 이곳에서 이어질 것만 같다. 그만큼 순천은 내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곳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마음을 나눌 인연을 얻었다.
요즘도 ‘동사연’(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의 약칭)의 ‘순천길 따라 걷기'(하늘 따라 길 걷기)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여러 모임 가운데서 이 모임에도 마음이 간다. 그 시작은 20여 년 전 역시 순천의 시민단체 ‘동사연’이 주관하던 역사탐사 모임이었다. 광양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참여한 그 모임은 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었다. 익숙함 속에서 놓치고 있던 세계가 그 길 위에 있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인문학적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나를 그 모임에 머물게 했다.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인솔하시던 향토사학자 선생님의 부재와 여러 사정으로 모임이 중단되었을 때, 한동안 길도 멈춘 듯했다. 그러나 2023년, 옛 멤버들이 다시 모여 ‘순천길 따라 걷기’라는 이름으로 그 길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뜻을 잇겠다는 마음이 발걸음을 다시 묶어 세웠다. 그때 핵심 멤버이자 수제자였던 향토사학자의 헌신과 열정으로 요즈음도 걷기 모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모임의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대개 20km 안팎의 거리를 걷지만, 그 거리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침에 출발해 오후가 깊어질 즈음에야 끝나는 하루 동안, 우리는 길 위에서 배우고, 나누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각자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쳐 함께 나누는 시간은 소박하지만 깊은 온기를 품고 있다. 때로는 배낭 속 막걸리 한 병이 그 온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든다.
처음 이 모임에 참여했을 때는 솔직히 버거웠다. 하루 20km를 넘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처음 동행할 때 솔직한 심정은 주부들이 흔히 ‘욕하면서 본다’는 시청률 높은 주말 드라마(?)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몇 번의 동행 끝에 생각이 바뀌었다. 힘듦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묘한 끌림이 남았다. 걷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루는 걷기 모임의 코스가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재건길을 도보로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주요 코스는 순천의 주암-창촌-접치-성산-구치-비월마을-순천읍성까지를 걷는데 대략 32km였다. 주암면사무소에서 아침 8시 30분쯤 일행이 출발해서 ‘쌍암’(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점심을 먹었던 곳으로 추정)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는 것 외에는 줄곧 걸어서 오후 5시 30분쯤에 순천에 도착했다.
당시 장군이 임금의 명을 받고 단촐한 수행자들과 함께 지나온 길과 우리 일행의 도보 코스가 똑같을 수는 없다. 가능하면 근사치에 가깝게 그 행적을 밟아갈 때 힘도 들었지만 산 정상에 오른 듯한 상쾌한 피곤함을 느꼈다. 걷는 도중에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과 관련된 곳에서 휴식도 잠시 취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순신 장군의 수군재건길을 따라 걸었던 날을 잊지 못한다. 긴 여정 끝에 다다랐을 때,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졌다. 장군이 걸었을 길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그 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백의종군길’을 걸으며 나라의 위기 속에서도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한 사람의 마음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을 생각하는 장군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 셈이다.
이외에도 ‘과거 보러 가는 길’을 비롯해서 ‘주암호 따라 걷기’, 복숭아꽃이 만발한 ‘월등길 걷기’ 등 순천의 역사와 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한 추억들이 새롭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을 걷다 보면 과거 선인들과 교감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걷기는 몸을 단련시키는 일인 동시에 마음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아내는 그런 나를 기꺼이 응원해 주고, 도시락 준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함께 걸을 때면 내 걸음이 느리다며 웃곤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발걸음이 빨라졌다고 말한다. 몸의 변화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의 변화다.
길 위에서는 늘 새로운 만남이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마주하며 듣는 이야기는 살아 있는 배움이다. 동행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생각은 넓어지고, 때로는 혼자 걷는 시간 속에서 마음은 깊어진다. 같은 풍경도 걸어서 볼 때와 차로 스쳐 지날 때의 감각은 전혀 다르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가 걷는 길은 대체로 도심을 벗어난 옛길과 둘레길이다. 번잡함에서 멀어질수록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봄에는 꽃이 길을 열고, 여름에는 물이 발걸음을 식혀 준다. 가을에는 단풍이 시간을 물들이고, 겨울에는 고요가 생각을 깊게 한다. 사계절의 변화 속에서 걷는 일은 곧 살아 있는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다.
걷다 보면 삶의 속도도 자연스레 조절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걸음이 쌓여서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그래서일까. 매달 다시 그 길 위에 설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도, 여전히 다시 걷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그 길이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설렘을 동반하기에 나의 가슴도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