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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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달력에 눈길이 머물렀다. 계절의 결을 미처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어느새 여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예전에는 바쁠수록 세월이 빠르게 흘렀지만, 요즘은 바쁘지 않아도 바람에 밀려가는 듯한데, 어쩌면 내가 자연에 무심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나무와 풀, 꽃의 생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겨울을 견딘 나무가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운 뒤 다시 낙엽으로 돌아가는 순환은 마치 노자의 ‘무위자연’을 닮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계절이 아니라 일정표로 가늠한다. 봄의 꽃이 피고 여름의 매미가 울어도, 그것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스쳐 보낸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된 방식으로 시간을 새긴다. 나무의 나이테와 꽃의 개화가 그렇다. 그 앞에서 인간의 분주함은 한 철 흘러가는 바람과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잠시 멈춰 선 발걸음 하나가 세상과 나를 다시 이어주는 끈처럼 느껴졌다.
퇴근길,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췄다. 낯설지 않은 향기 하나가 코끝을 스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길 건너 쌈지공원 담벼락에 서너 그루의 치자나무가 소박하게 서 있었다. 만개한 꽃송이 사이로 시든 꽃도 섞여 있었지만, 그윽한 향기는 여전히 선명했다. 그 순간, 나는 그 향기를 따라 오래된 시간으로 들어갔다. 그 향기는 단지 코끝에 머무는 자극이 아니었다. 마음 깊숙이 묻혀 있던 기억이 열리며, 치자꽃 향기가 내 젊은 날의 불안과 설렘, 그리고 막연한 소망을 함께 불러냈다.
고교 3학년이 되자, 나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 대학 입시에 있다고 믿었다. 칠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길게 뻗은 교정을 걷다가 처음 맡은 은은한 향기에 걸음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유백색 꽃잎과 노란 수술이 어우러진 꽃, 그 곁에는 ‘치자나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새벽이슬에 젖은 교정은 향기로 가득했고, 그때 나는 ‘향기에도 깊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며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불안과 마주하고 있었다. 목표로 삼은 성취의 기준 앞에서 나 자신의 크기를 가늠해야 하는 시간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날 치자꽃 향기를 맡은 순간, 마음 한켠이 느슨해지며 그동안 팽팽하게 붙잡고 있던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향기는 성적이나 결과와는 무관한 마음의 고요였고, 내 청춘의 흔들림 속에 스며든 위로였다. 그러면서 나는, 볼품없는 나무에서도 정갈한 향기가 피어나듯, 사람의 품격 또한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인식은 ‘인향만리’라는 말처럼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그렇게 살아보니, 진정한 향기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을 감싼다. 좋은 사람은 그저 곁에 머물 뿐, 향기는 스스로 피어나 사람을 감싼다. 치자꽃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빛을 내는 존재, 그것이 내가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이었다. 인향이란 결국 타인에게 전하는 마음의 온도이며, 그 향기가 남긴 여운이 한 사람의 깊이를 말해준다.
문득, 그 향기의 기억은 내 고향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고향의 특산물은 유자, 치자, 비자의 ‘삼자(三子)’였다. 유자는 마을 입구의 장승처럼 서 있었고, 비자는 고급 목재로 쓰였지만, 이상하게도 치자는 보지 못했다. 대신 치자 열매는 익숙했다. 옷감을 물들일 때나, 음식의 색을 낼 때 치자를 사용하였다. 발목을 접질렸을 때 치자 반죽을 얹으면 금세 부기가 가라앉았다. 세월이 지나 알게 된 건, 그 치자가 해독과 항균의 효능까지 지닌 귀한 열매였다는 사실이다.
시골 마당에서 치자물을 들이던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선하다. 햇볕이 좋은 봄날에 하얀 모시 적삼이 노란빛으로 물들어 갈 때, 어머니는 늘 “색은 마음을 닮아야 오래 간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말처럼, 삶의 빛깔 또한 마음에서 비롯되며, 치자꽃의 향기처럼 맑은 마음이 삶을 오래 지탱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치자꽃은 유월과 칠월 사이, 장마가 한창일 무렵 피어난다. 누군가는 그 향기를 사랑해 칠월이면 밤마다 공원을 거닌다고 했다. 달빛 아래 치자꽃 향기를 맡으며 걷는 길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가는 길과 같다고. 그 말을 읽고 문득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은하수를 비추는 치자꽃의 향기가 두 연인의 만남을 더욱 고요하고 성스럽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사랑의 전설은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을 때 더욱 빛이 난다.
아마도 치자꽃은 세상 모든 기다림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한 해 중 단 한 철만 피어나고, 짧은 생을 향기로 남기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끝에서 피어난 향기는 그래서 더욱 깊고 간절하다. 인생 또한 그런 것 아닐까. 오래 기다린 사람만이 비로소 진한 향기를 품게 되는 법이다.
이해인의 시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가 떠오른다.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시인은 꽃송이 하나에 마음을 담아 보냈다. 말보다 향기로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시인의 마음이자 인간의 품격일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향기로 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주말부터 비 소식이 있다. 장마가 시작되어 연약한 치자꽃이 비에 꺾이거나 그 향기를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하늘을 바라본다. 담벼락을 붙든 능소화처럼 치자꽃도 제자리를 지키며 비바람을 견뎌내겠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비는 잠시 꽃을 흔들지만 그 뒤에는 더 짙은 향을 남긴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어쩌면 인생의 비바람 또한 그러할 것이다. 오늘 내게 머문 치자꽃 향기가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도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