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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강아지

한국문인협회 로고 위민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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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낡은 일기장을 펼친다.
거기 유년의 기억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봄날의 아련한 기억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냇가에 자주 나갔다. 특히, 매서운 겨울이 끝나가는 이른 봄날이면 제일 먼저 냇가로 달려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한 생명을 만나는 기쁨을 느꼈다. 바로 버들강아지다.
아직 바람은 차고, 햇살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이른 봄날. 진분홍 가지 끝에 맺힌 그 작은 솜털은 마치 내게 세상이 다시 시작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살짝 만져보면 놀랄 만큼 부드럽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어떻게 이런 따뜻함을 품고 있었을까. 자연은 늘 그렇게, 가장 여린 것 안에 가장 깊은 생명력을 숨겨 두고 있었는가 보다.
어릴 적 냇가를 따라 걷다 보면 버들강아지는 늘 우리보다 먼저 봄을 알리고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꺾어 풀피리도 불어 보고, 괜히 볼따구니와 귀에 대보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치 살아 있는 강아지처럼 기어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곤 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좋았던 기억. 그저 그 존재만으로 마음이 밝아지던 만남의 순간들, 바로 버들강아지와의 봄날의 조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버들강아지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가 멀어져 간 것이 아니라 내가 모진 세상의 바다를 헤쳐나가느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점점 단단해지는 법을 배운다.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 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감싸 안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잊어버린 것이 있다. 바로, 버들강아지 같은 솜털 마음이다. 작고 여리지만, 누구보다 먼저 봄을 알아보는 감각. 아직 따뜻해지지 않은 세상 속에서도 먼저 부드러워질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차가운 냇가에서 겨울을 이겨낸 버들강아지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완성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되는 생명의 한순간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인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직은 작고 부족해도 괜찮다고 이제 다 큰 어른이 된 내게 조용히 말해주는 것만 같다.
이른 봄날이면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완전히 피어나지 않아도, 그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존재의 시간들. 그래서일까, 봄은 언제나 소리 없이 온다.
어느 날 문득, 겨울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손을 흔드는 작은 생명체가 있음을 기억하자. 냇가에 홀로 핀 버들강아지다. 봄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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