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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단상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서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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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밤과 낮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문밖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거리에는 사람보다 고요가 어둠을 장악 중이다. 밤을 밝히던 가로등 불빛은 더듬듯 스며 오는 여명에 숨 고르기를 한다. 이 시간 익숙한 발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나의 일과는 하루를 여는 의식처럼 자리를 잡았다.
아파트 광장을 지나 4차선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보니 건너편 거북산의 아담한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차 부장이 건널목 맞은편에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아침 산행을 하면서 낯을 익히게 된 그는 몇 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러 나온다. 젊어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부장으로 정년퇴직을 했다는 그 어르신은 과거 경력을 훈장처럼 자랑하며 그것으로 자존감을 대신하곤 한다.
거북산 초입에 위치한 구두공원에는 쉼터 역할을 하는 아담한 정자가 있다. 한낮에는 이곳에서 차 부장 또래의 노인들이 모여 바둑과 장기판을 펼쳐 두고 막걸리를 마시며 훈수를 두기도 하고 때로는 고성이 오가며 난장을 벌이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의 편린처럼 그 모습조차도 개나리 진달래 명자나무 산딸나무 등 계절별로 색깔을 달리하는 꽃나무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된다.
큰 거북이가 앉아 있는 형국이라고 해서 거북산이라고 부르는 이 산은 장수와 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 이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거북이 등껍질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조성된 약 3.5킬로미터 거리의 둘레길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파른 거북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자칭 깔딱고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중턱의 둘레길에 올라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어차피 한 바퀴 돌아오는 동선이지만 나는 내리막으로 시작되는 비교적 완만한 우측 코스보다는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황톳길 위에 자갈과 나무뿌리가 하지정맥류처럼 튀어나와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좌측 코스를 선호한다.
내가 이 길을 더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측 신도시의 콘크리트숲 풍경과 대비되는 좌측 동선은 시작부터 서들마을의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이 옹기종기 보이고, 대략 60만 평 규모로 짐작되는 광활한 황산공원의 초록빛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논밭 사이로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종횡으로 칸을 만들어 놓고 지하철과 국철의 선로 그리고 낙동강 본류가 방금 싸리비가 지나간 자리처럼 모두 양산에서 부산 방향으로 세 개의 실선을 길게 그려 놓고 있다. 조금 더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둔덕 아래에 방금 이발을 마친 듯 깔끔하게 손질된 작은 무덤이 하나 보인다. 무덤 양옆으로 알록달록한 꽃으로 장식된 화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처음 둘레길을 안내해 준 이웃의 동생이 이 무덤 주인인 노부부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 무덤에 혼자 남은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마실 오듯 다녀가시며 매번 꽃을 바꾸어 꽂아 두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산행을 시작하고 두 해가 지날 무렵부터 무덤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주변에는 아카시아나무가 점령하여 무덤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분명했다. 그해 추석 무렵 멀리서 사는 자손들이 벌초를 하고 갔는지 잠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듯해서 반가웠다. 하지만 그 무상함에 나는 이 세상 소풍을 마치면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노부부의 혼령이라도 다녀간 듯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귀신바위가 있다. 검은색 현무암이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다. 바위 중간쯤 갈라진 틈바구니로 잡초들이 자라서 마치 귀신의 수염처럼 보여 섬뜩하다. 곧이어 물금지역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당산이 나온다. 당산 앞에는 아름드리 천년 주목이 45도로 꺾어진 채 용틀임을 하며 파수병처럼 서 있다. 혼자 새벽산행을 할 때면 매번 등골이 서늘해지며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었다. 생각을 달리해 지금은 매일 출석 체크를 하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다 보니 수호신처럼 느껴져 오히려 든든하다.
내가 둘레길을 걸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일대가 김정한 소설가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 작가답게 「모래톱 이야기」 「산서동 뒷이야기」 「수라도」 등 그 밖의 많은 작품들이 대부분 낙동강과 황산공원, 거북산, 그리고 가까이 있는 물금역과 오봉산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34년 일제강점기 시절 낙동강 대홍수는 신문 기사로도 기록이 남아 있다. 낙동강이 범람하자 오리숲과 모랫등 인근에 살던 마을 사람들이 거북산 서쪽 벼랑 끝으로 올라와 멧비둘기 둥지처럼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았다고 해서 명매기 마을이라고 불린다. 산서동은 거북산 서쪽 산 아래 지금의 남부마을이다. 둘레길의 거북이 꼬리 부분에 이르면 작품 속에 실제 등장하는 물금역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마침 부산행 완행열차가 물금역에서 잠시 정차했다가 길게 꼬리를 이으며 지나간다. 산서동 사람들이 이주하는 데 헌신적 역할을 했던 선로 보선공 하라다의 쇠망치 소리가 지금도 물금역 어디쯤에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서울에서 30여 년을 살다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심코 거북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거북이 등껍질 위에 계란판을 엎어 놓은 듯 수많은 무덤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산서동 사람들의 공동묘지 같았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명매기 마을 사람들의 한숨처럼 묏등을 스치고 내려온 한 줄기 바람이 길 양옆에 도열한 등 굽은 노송의 허리를 무심히 두드려댄다. 이들의 고단했던 삶과는 무색하게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은 밤사이 미리내 별빛을 듬뿍 쏟아 놓은 듯 아침 햇살을 받은 윤슬로 천상의 물길을 만들고 있다.
이제부터는 둘레길의 나머지 반 바퀴를 돌아오는 동선이다. 과거에서 현대로 회귀하듯 신도시의 고층아파트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회색빛 풍경들이 펼쳐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왕복 4차선 도로에는 부지런한 출근길 차량의 불빛들이 황색과 붉은색의 긴 띠를 이루고 있다.
또다시 희망찬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인생의 후반기에 이렇듯 새로운 삶이 연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벅차게 한다. 머지않아 삶의 종착역이 다가올지라도 삶은 매 순간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간이역처럼 특별한 의미로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노년이 결코 잉여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며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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