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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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 달빛이 실처럼 풀려 나뭇잎 위에 걸렸어요. 잎사귀들은 그 실을 살짝 잡아당기듯 흔들며 길을 밝혔지요.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은 은빛으로 흔들렸고, 작은 벌레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며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남겼어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움직임들이 겹쳐 숲을 조용히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어요.
그 길 위로 작은 빛들이 맴돌았어요. 둥글게 천천히, 때로는 서로를 스치며, 마치 길을 잃지 않으려는 듯 조금 간격을 두고.
그중 가장 작은 빛 하나, 이제 막 꼬리 끝이 반짝이기 시작한 아기 반디였어요.
“엄마, 내가 보여요?”
반디는 제 꼬리를 몇 번이나 돌아보았어요. 빛은 아직 여리고, 금세라도 꺼질 듯 흔들렸지만 분명히 있었어요.
“그래, 네 빛이야. 아주 작지만, 네 거란다.”
엄마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어요. 그 말에 반디는 가슴이 조금 따뜻해졌어요. 그래서 조금 더 높이 뛰어올랐어요. 더 멀리 가 보고 싶었어요. 아직 닿지 않은 곳까지 가 보고 싶었어요.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높이.
그때였어요.
반짝이던 빛들이 하나둘 멀어졌어요. 아니, 사라졌는지도 몰라요. 눈앞뿐만이 아니라, 주변 전체가 조용히 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엄마?”
대답이 없었어요.
숲은 갑자기 낯설어졌어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칠 때마다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그 소리는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았어요. 어둠은 그냥 어두운 게 아니라, 자꾸만 깊어져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게 만들었어요. 길을 지워 버릴 것 같았어요.
“아빠! 어디 있어요?”
반디는 날개를 급히 파닥였어요. 하지만 몸이 가벼워지지 않고 점점 더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어요. 숨이 가빠졌어요. 숨이 가빠질수록 빛은 더 작아졌어요. 꼬리 끝이 서늘해졌어요.
빛이 줄어들고 있었어요.
“안 돼….”
반디는 숨을 고르려 했어요. 하지만 숨은 자꾸 끊어졌어요. 들이마시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더 길어졌고, 빛도 따라서 흔들렸어요. 켜졌다, 꺼졌다. 켜질 때보다 꺼지는 순간이 점점 더 길어졌어요.
결국 반디는 나뭇가지 아래로 몸을 숨겼어요. 낙엽이 등을 덮었어요. 눅눅한 흙냄새와 마른 잎의 거친 느낌이 등을 타고 올라왔어요. 몸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때,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어요.
“거기… 있니?”
반디가 고개를 들었어요. 달팽이 하나가 더듬이를 조심스레 내밀고 있었어요. 움직임은 굼떴지만, 멈추지는 않았어요.
“왜 그리 가쁜 숨을 쉬는 거야?”
반디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말하면 무언가 더 빠져나갈 것 같았어요. 달팽이는 더 묻지 않았어요. 그저 가까이 다가와, 가만히 멈춰 머물러 주었어요.
아무 말도 없었어요.
그 고요 속에서, 반디는 제 숨소리를 들었어요. 빠르고 거칠었던 숨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천천히, 조금씩 숨을 쉬어 보았어요.
그때였어요.
아주 희미하게 꼬리 끝에서 다시 빛이 스쳤어요.
반디는 눈을 깜빡였어요.
“아직 남아 있어.”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혼자 한 말이었어요.
그때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기야.”
낙엽 사이에 고치벌레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어요. 몸이 단단히 말려 있었어요.
“난 못 가. 움직이면 더 아플 것 같아.”
반디는 잠시 멈췄어요. 하지만 돌아서지 않았어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고치벌레의 몸이 아주 조금씩 떨리고 있었어요.
그때, 머리 위에서 바람이 크게 일었어요.
잠자리였어요.
“나는 날 수는 있어. 그런데… 자꾸 떨어질 것 같아.”
잠자리는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망설였어요. 균형을 잡지 못해 날개 끝이 떨리고 있었어요.
조금 뒤, 바위 뒤에서 나비가 나왔어요. 날개를 반쯤 접은 채로.
“나… 안 예쁘지?”
그 말은 바람보다 작았지만, 숲속에서는 이상하게 또렷했어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어요.
숲은 여전히 어두웠어요.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어요. 서로의 숨소리가 들렸어요.
반디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요.
“나… 아까 아무것도 안 보였어.”
모두 가만히 들었어요.
“빛이 거의 꺼질 뻔했어.”
말을 꺼내자, 꼬리 끝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였어요.
“그래도… 아직 있어.”
그 말과 함께 빛이 작게 떨렸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꺼지지 않았어요.
잠자리가 날개를 한 번 폈어요. 짧지만 낮게 날았어요.
고치벌레는 몸을 아주 조금 풀었어요,
나비도 날개를 조금 더 펼쳤어요.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빛을 조금 받아들일 만큼은요.
그때, 반디는 알았어요. 빛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요.
그저 작아졌을 뿐이었죠.
반디는 또 한 걸음 걸었어요.
“같이 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조금씩 움직였어요.
느리게, 아주 느리게.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 속에 작은 빛들이 하나씩 떠올랐어요.
반디의 빛, 잠자리의 흔들리는 빛, 고치벌레의 아주 작은 빛, 나비의 가느다란 빛.
서로의 빛이 닿을 때마다, 조금 더 오래 머물렀어요. 빛은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오래 이어졌어요.
그때 멀리, 어디서 본 듯한 빛이 흔들렸어요.
“반디야!”
그 목소리는 절대 급하지 않았어요. 서두르지 않았어요. 언제라도 기다려 줄 것 같은, 따뜻한 목소리였어요.
반디는 그 자리에 잠시 멈췄어요.
그리고 바로 날아가지 않았어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어요.
함께 온 친구들이 있었어요.
작지만 분명한 빛들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어요.
반디는 꼬리를 들어 올렸지요.
빛이 천천히 깊게 번졌어요. 반짝, 반짝, 바안짝.
이번에는 오래 머물렀어요.
그리고 그 빛은, 혼자가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