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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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생각만 한 인간이고 돈키호테는 행동만 한 인간이었다. 즉 햄릿은 선도 악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회의(懷疑)하였다. 여기에 비극이 생겼고 돈키호테는 모든 악을 고쳐 다스리고 전 세계의 압박을 받는 미지의 벗을 옹호하려고 계획하였다. 민중에게 유해하다고 하는 거인과 싸운다고 민중에게 가장 유용한 풍차를 쳐부순다. 그러고도 그는 태연히 무심하게 지나가니 여기에 또한 비극이 있었다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같이 에고이스트이며, 아무것도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이며, 또 그의 친구들도 거의 그러한 타입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돈키호테와 같은 행동의 인간을 찬미하였고, 또 1859년 문제의 「아버지와 아들」을 집필하여 62년에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켜 그것은 결코 칭찬이 아닌 신구 두 세대의 독자에게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격렬한 비난이었다. 게르첸(1812-70, 러시아의 사상가, 작가)도 혹평했기 때문에 그는 이 옛 친구와도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는 너무나 격렬한 세평에 의기소침하여 한때 절필을 심각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작품 첫머리에서 지주인 니콜라이 페트로비치의 아들 아르카디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생인 바자로프를 데리고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르카디의 아버지 니콜라이는 시대의 변화에 뒤지는 것을 싫어하여 가끔 수도로 나들이를 하는 인물이었고, 역시 한집에 살고 있던 아르카디의 큰아버지 파벨은 한때 근위장교로서 사교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작품의 주역인 바자로프는 러시아의 새로운 세대로 등장한 평민 출신의 인텔리겐챠이었다. 비판적인 바자로프는 아르카디의 부친에 대하여 낡은 로맨티스트라 하고 큰아버지 파벨은 우스광스런 고고학의 현시자(現示者)로 규정하여 비판하고 행동하였다.
노예해방 전후의 낡은 귀족문화와 새로운 민주적 문화의 사상적 대립에서 새로운 시대의 서광을 발견하면서 주인공 바자로프에서 급진적 인텔리게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자는 바자로프에게 니힐리스트라는 신어(新語)를 사용하여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켰는데, 모든 낡은 도덕과 습관, 종교를 부정하여 과학만을 신봉하여 파괴를 건설의 제일보로 삼고 행동을 좋아하면서도 그것에 대하여 신중한 태도를 기하였다. 그러나 일단 작품을 발표한 후는 행동을 많이 사랑하여 행동하기 위하여 의지도 필요한 것이고, 행동하기 위하여 사상도 필요한 것이지 사상 때문에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상 때문에 행동한다는 다시 말해서 이론이 있어야 행동한다는 합리론자인 이성철학의 사고와는 정반대로 행동이 선행조건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투르게네프는 바샤로프의 행동 사상을 허무주의자로 표현하였다. 이어 허무주의자가 어떠한 것인가에 표시하여 일반적으로 상식화되어 있는 허무주의자와는 달리 “어떠한 존귀한 것이라 하여도 권위 앞에서는 결코 머리를 숙이지 않으며 증명된 어떠한 법칙이라도 승인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하였다. 도덕적·정치적·개인적이나 국가, 사회, 가정의 모든 분야에서 권위에 대한 개인적인 반항을 의미하였다. 더욱이 어떠한 법칙이라도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편타당성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법칙이란 보편타당적이라는 말인데 그것을 부정한다니 허무주의는 비합리론이 되는 것이다.
또 비합리론이란 합리론에 대립하고 ‘인간’을 모든 것의 표준으로 하고 윤리문제를 사회의 모든 문제의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무주의자들은 모든 법칙을 부정하여 교회의 권위도 국가의 기성법칙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모든 고정형식에 대하여 심각한 모멸을 공공연하게 발표한다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칼라를 쓴다는 습관도, 알송달송한 넥타이를 맨다는 의무도 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자기의 소신을 조금도 가식 없이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진리와 낡은 편견이 없는 상식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그들의 성격적 기본이다. 이것이 한 세대와 다른 세대의 대립 충돌 항쟁일 경우는 필연적으로 비극적 국면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작품에서 당시의 청년 사이에 대중 해방운동이 성행하여지매 바샤로프도 스스로 농민을 위해 일하려 하였다. 누군가 곁에서 勸 비슷이 또는 칭찬 비슷이 말하니 자기는 농민을 미워한다 하여 정반대의 말을 하였다. 이 말을 해명하여 크로포트킨(1842-1921, 러시아의 지리학자, 혁명가)은 ‘연대(連帶)와 의무(義務)의 현실 철학의 맹아(萌芽)다’라고 해명하였다. 즉 사회가 문란하고 불안할 때에는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인 것이고 또 그것은 사회의 연대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하라고 하면 그 연대와 의무의 관념을 가진 자기를 멸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이에 반대하여 농민을 증오한다는 뜻의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모든 사상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각 개인에게 관계되고 있다. 이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는 것이 사회 연대책임이고, 사회에 대한 의무이다. 사회가 잘 되어도 연대책임이 있고 사회가 잘못되면 그 사회를 잘 만들 의무가 있고 그 사회가 잘못되면 잘 만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회성을 말하는 것으로, 크로포트킨은 이 사회성을 설명하여 ‘인간이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연구함으로 얻은 교훈을 두 가지 경향이 한결같이 존재하고 있다’ 하였다. 하나는 사회성을 더 크게 발전하도록 하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따르는 개인의 행복의 증진과 육체 지식 도덕의 진보로서 나타나는 생의 강도의 증대라는 경향이라 하였다.
사실 사회성의 발전과 생의 강도의 증대라는 두 경향은 모든 과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증가되고 있다. 현대의 인간은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사상을 보고 듣게 되었다. 또 이 경향은 나날이 넓어가고 깊어가고 있다. 이것은 사회성의 발전과 생의 강도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인식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즉 사회의 사상에 대하여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하여서는 가치 있게 사랑할 줄 알게 되고 또 증오할 가치가 있는 것은 증오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보고 ‘하라’ ‘마라’ 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만 모든 것을 깨우쳐주고 이해하도록 할 뿐이며 그 사람의 판단과 선택의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사회 연대책임과 의무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합리론과 대립하는 데 중요한 문제인데 합리론은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여 이론화한다. 그런데 이 사회 연대책임은 그것을 분리하여 이론화하지 않고 個가 즉 社會이고 사회가 곧 個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러한 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을 문제로 한다.
이렇게 社會와 個를 함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個라는 것은 전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이 사회 연대책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個의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사회로 설명하며 논리화하고자 하였다. 투르게네프는 평생 그러한 문제로 곤란을 받아 고국에서 서거하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서거하였다.
2
허무주의 사상은 현대의 실존주의 문예, 즉 항거문예, 행동주의문예의 근저(根)를 만들고 있고, 또 미국의 ‘상실의 세대’의 근저가 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장차 오는 세대의 발전을 위하여 더욱이 원자(原子) 세대에 있어서 그 예감이 증대되는 실증을 보이던, 1916년 스위스 쥬리히에서 청년 문예인들의 주장한 다다이즘 활동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다다이즘은 제1로 ‘다다란 무엇이고 어떠한 것이고 구하지 않는다’ ‘다다는 무엇을 의하는 것도 아니다’ 하여 문예사조인 고전주의 낭만주의 신낭만파 현실파 인상파 상징파 미래파로 진화한 문예 전통과 절연하고, 제2로 다다이스트인 트리스탕 짜라가 말하기를 ‘무조직 그 자체 그것이 바로 가장 동감적(同感的)인 조직이다’라고 하였다. 즉 개개의 존립 그 자체가 곧 유일의 질서라는 것이다.
제3으로 5개년간의 대전(大戰)의 문예적 표현이라고 하는 다다이스트는 지평선만 보이는 파괴와 살생의 허무를 실감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허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제4로 다다이즘은 이성(理性)에 대하여 반항하면서 엄숙한 현실적 공기에서 얼음과 같은 이성과 죽음과 같은 지성이 약동하고 있었다. 제5로 다다이즘은 오직 허무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 폐허 내에서 느끼는 허무인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건설의 암시가 있었고 그들은 이어서 1924년에 초현실주의(Surrealism)을 선언하여 그 파의 효장(驍將)들이 되어 있었다.
전술한 투르게네프의 ‘행동’을 상징으로 표현한 허무주의자인 바자로프의 허무와 다다이스트의 허무를 비교하면 전자는 사회적이고 후자는 個的이며, 또 정열과 의지의 통일적 행동 대 이성의 냉소가 내포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동일점은 기존의 모든 권위와 법칙에 항거 내지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다다이즘은 비합리론이며 반역사적이며 행동적인 것이었는데 니힐리즘과 같이 행동문학 항거문학 실존문예의 근저가 되었다. A. 말로는 1933년 『인간 조건』이 출간되어 인간성을 행동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하였다. A. 지드도 이에 동조하여 『私錢군』 등이 프랑스 행동문예의 대표가 되었다. 철학에서 비합리론이나 문예에서 행동문예나 그 주장은 동일하다. 즉 소피스트나 중세의 계몽철학이 또는 생명철학 의지철학 감정철학 실존철학 실용철학이 주장하는 것이나 문예상의 허무주의나 다다이즘이나 실용주의 문예가 강조하는 것이 모두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지혜로만 살 수 있다고 하는가. 이보다 더 있어야 할 것은 뜨겁게 끓고 있는 인간의 생활이 아니던가.
여기에 대립하여 논리를 전개하여 온 합리론은 사유〔理性〕를 중심한 학문으로 철학의 전부를 만들려 하였다. 그 ‘知’의 파벌과 계급을 만들었다. 그러나 행동을 우위로 하는 학자들은 그 학문 자체도 인간적이라 학파도 만들 수 없고 계급도 만들 수 없었다.
프라그마티즘(Pragmatism)의 대표라는 미국의 제임스(James William, 1842-1910)는 ‘의식은 존재하는가’라는 논문에서 7, 8년간 강단에서 의식부정을 암시해 왔다. 그것의 대치를 프래그마틱한 모든 경험의 사실을 가지고 바꾸려 노력하였다. 이 논리를 종합해 보면 지식의 대중화인데 현실에 대하여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비판하여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며 현실에 있는 권위에 항거하는 것이다. 합리론의 칸트파들이 르네상스 이후 형성된 절대주의 전제주의 귀족주의를 비판하였지만 이 현실비판과 항거는 이런 비합리적인 비판이었다.
합리론자들은 지식의 대중화를 기피하여 학문을 이끌고 대학에 들어가 철학에서 인간이 살게 하지 않고 철학으로 생활하려고 하였다. 칸트와 마르쿠스의 저서가 왜 그렇게 난해의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독일 저서의 권위를 위한 것이니 행동 하나도 그 자체는 늘 권위를 형성하는 데 노력하였다. 개인이 사회생활을 해가는 길에 자기가 하고, 하지 않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현상이 잘되면 다행이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영향이 크므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와 같이 살아가려는 ‘전인류의 태도’라는 것이다. 세계와 같이 사는 삶에서는 내가 하면 잘 된다는 망상도, 내가 절대적이라는 보증도 하지 않으며, 나선 사람이 잘못하면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충언을 하여 묵묵히 자기 일에 힘쓰면 그만인 것이다.
3
문예는 사회적 소산이다. 그러니 움직이는 우리들의 사회관을 축출하는 기성의 도덕률, 인습적 도덕관, 종교적 서구적 도덕관으로 규정된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 세계가 있다. 즉 개성이나 사회성을 생각하지 않고 사사건건 흥미를 가지게 하는 표현이다. 고대소설은 대개 이러한 경향들이다. 신화 또는 우화 같은 것이 이것이고, 춘향전이나 고대소설들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건을 만드는 지식이 많아야 한다. 영웅전 등이 가장 사건을 풍부하게 하며 또 그 사건을 통하여 그 개성을 알게 되고 그 사회성을 알게 되지만 그 세계는 인간의 생활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둘째, 개성을 중심으로 한 작품 세계관이다. 개인의 행복 또는 그 발전과 특유성을 표현하려고 하는 작품 세계관이다. 고백문학, 심리주의 문예, 주지주의 문예, 개성 문예 같은 것이 그것인데, 個의 분석과 변명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발레리, T.S. 엘리오트 들의 주지주의적인 경우가 그것들이다.
셋째로, 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 세계관이다. 경향 문예, 폭로 문예, 민족 문예, 국민 문예, 사회 문예, 보고 문예 같은 것이 이것이다. 더욱이 정치상 도덕상 예술상 종교상 사회상에 있어서 어떠한 주의 주장을 가지고 작품화한 것은 거의 이 작품 세계에 속한다.
넷째로, 인간 생활(행동)에 치중하는 작품 세계관이다. 인간 생활, 즉 행동은 양자강이나 나일강의 수원(水源)과 같이 복잡하고 수많은 갈래로 되어 있다. 그 복잡한 한 갈래 한 갈래의 수원이 다 진리인 것같이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진리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것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R. 브라우닝(1812-89)의 ‘사랑은 최선’과 같이 ‘사랑’(연애)에만 중심을 두는 것도, O. 와일드(Oscar Wilde, 1856-1900)와 같이 예술에만 중심을 두는 것도 아니다. 또 개성에, 정치에, 민족에, 국가에, 자기주의에, 사회에, 여자에, 남자에, 부루조아에, 프롤레타리아에, 또 개인에, 그 어느 하나에만 중점을 두어서도 아니 된다. 이들의 행동도 다 인간 생활의 일부이며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네째의 인간세계에는 여러 갈래의 행동(인간생활)이 있으므로 그 복잡한 행동주의 작품에는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게 되는 것이다.
첫째, 행동주의 작품에는 주인공이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주역이다. 모든 행동이 진리이며 아무리 바보라도 작품에서 주역이고 그 행동은 진리인 것이다. 사회는 인간 행동의 적체(積體)이다. 이들의 진리성은 각 개인의 지식 정도 경제 정도 생활 정도에 관계없이 개인에 있어서는 진리인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인간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한다. 헤밍웨이는 “소매치기도 명예가 있고 매춘부에게도 명예가 있다. 오직 표준이 다를 뿐이다” 하였듯이 아무리 이 세계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상은 인격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인간을 소중히 하였다.
셋째, 작품의 세계는 죽음에서 삶을 찾는다. 다른 작품 세계에 있어서는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였는데 행동문예의 경우는 죽음에서 삶을 찾는다. 다른 작품 세계관에서는 죽음을 공포로 여기나 행동문예의 세계관은 죽음을 문제로 하지 않는다. 죽음은 인간과 같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사는 것을 문제로 한다. 인간답게 살고 인간의 봄날을 즐기며 산다는 것은 불의에 항거한다는 전제에서 성립한다. 그것은 죽음을 앞에 놓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진실할 뿐이며 그 진실만이 삶의 진실이다.
인간이 누구든지 죽음이라는 벽을 향하여 서 있다는 것을 하이데커는 ‘死에서의 존재’로서 인간을 의식하였고, A. 말로는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을 뿐이다’라고 죽음을 어루만지면서 절멸하게 되는 긴장한 찰나에서 더 강렬하게 살고자 하는 역설적 생을 찾아 사회에 대한 기만은 더 말할 것 없이 자신에 관한 기만까지도 배척하였다. 그러니 자기들의 행동에 대하여 아무 책임을 느끼지 않고 생각을 잘못하였느니, 관념을 잘못 가졌느니, 또는 사상의 빈곤으로라고 하며 행동의 책임을 사유로 돌리는 합리론과는 정반대에 서게 된다.
넷째, 부정의와 함께 살지 않는다. 여기서 정의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게 되는데 합리론에서는 정의를 정의(定義)하지 못하였다. 합리론의 정의는 때에 따라서 변화한다. 국가가 지상(地上)이라고 하여 정의라고 하는가 하면 인민을 지상이라 하여 정의라고 하고 또는 나의 주의와 관념이 정의라고 하는가 하면 내가 정의라고 하기도 한다. 또 내 편이 정의라고 하기도 하여 전쟁에 있어서 자기들의 전쟁행위를 성전(聖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의가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문예는 인간 생활의 일부분이다. 그 생활을 묘사하는 것은 행동에서 나온다. 인간 생활을 넓게 깊게 파는 것이 인간 생활에 독립적인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 참다운 문예의 행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주의 작가들은 직접 행동하여 보려 한다. A. 말로가 월남 혁명운동에 또는 중국 혁명운동에 참가한 것도, 헤밍웨이가 스페인 혁명에 참가한 것, 까뮤나 사르트르가 반나치 항쟁 운동에 참가한 것은 작가 자신이 정의에의 정열에서 불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체험이 그들의 작품에서 허위성을 제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와 같이 자기의 사상을 내포시키거나 개성의 독특성을 묘사하거나 영웅적 엽기적 스토리를 만드는 데는 생각만 하여도 되지만 행동문예는 생각만 해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직접 행동하여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심리 관계를 알게 되고, 늘 변화하는 윤리관계를 인식하게 되고, 행동의 변화성의 진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또 허위성과 사건의 과장성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행동 문예는 세상 앞에서 또는 방 안에서 사색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 작품 세계의 특징이다. 여기에 벅찬 문예관의 행로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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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왕조를 둘러싼 내외 정세를 돌아보면, 1492년 지리상의 발견과 그 6년 후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 1469-1524)의 인도항로 발견으로 세계는 좁아지면서 지구 서쪽과 동쪽으로 그 지배력을 확대해 나갔다. 서인도 제도 방향은 스페인 영국, 동인도 방향은 포르투갈, 화란, 프랑스 등이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여 자유경쟁의 파탄, 기업 활동에 의한 독점의 강화, 종래의 원료 수입, 수출에 덧붙여 과잉자본의 해외투자를 기도하게 되어 식민지의 필요성이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제국주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에서는 1866년에 발족한 디즈레일리(1804-81) 내각이 1877년 인도제국 등 식민지 정책을 단행하였고,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삼국간섭 뒤 1898년 교주만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고, 영국은 威海衛(웨이위해위) 주룽반도(九龍半島)를 조차지(租借地)로 하였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 대륙은 1908년 서태후 사후 신해혁명 발발로 북양군벌 위안스카이와 쑨원에 의하여 청제(淸帝)의 퇴위를 강요, 정치의 주도권을 잡아나가고 있었다. 4대 군벌에는 안후이파(安徽派)의 단찌루이(段棋瑞), 직례파(直隷派)의 풍국장(馮國障) 조곤 오패부, 선양파(瀋陽派; 일명 봉천파)에 장작림(張作霖), 산시파(山西派)의 염석산(閻錫山) 등이 정권을 둘러싸고 항쟁을 계속하여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그 외에 대소의 지방 군벌의 횡포는 민중의 삶에 막대한 장해를 주고 있었다.
상하이는 제국주의와 외국자본이 중국에 진출하는 출발점이자 근거지이기도 했지만 1925년 ‘5·30사건’ 이래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국제도시였다. 1927년 2월 상하이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총노동조합 조직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미 인근 도시인 항저우를 점령한 국민혁명군(蔣介石의 北伐軍)의 도착을 목전에 두고 총파업을 벌였다. 총파업을 주도한 수뇌부는 증산함 사건과 장졔스의 국민당 정부 내에 속해 있는 다양한 성격의 군대를 명목상으로나마 통일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날(곧, 코민테른)의 일련의 조치로 광저우를 떠난 뒤 공산당 중앙위의 지령으로 새로운 활동 장소인 상하이로 잠입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있었다.
그곳 군벌인 쑨취안팡(손전방)의 군대는 이 총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팜플렛을 뿌리던 노동자는 그 자리에서 목이 베어졌으며, 거리에서 연설하던 학생 3명도 살해당했다. 결국 총파업은 실패하고 일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 다음 달인 3월에 접어들자 국민 혁명군은 상하이 근교인 룽화(龍華)까지 접근했고, 군벌의 군대는 3월 21일 상하이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을 기화로 총공회는 마침내 새로운 총파업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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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건」 제1부, 제2부, 7부에서 어떤 인간도 죽음을 선택한 사람보다 더 쓸모 있는 사람은 없다는 동지들의 사회적 각오가 집중된 행동을 살펴보기로 하자.
1927년 3월 21일 밤 0시 반, 진(陳)은 호텔 모기장 속에서 잠자고 있는 무기 브로커 달염대(達炎大)를 단도로 살해한다. 그는 투사가 아니라 한낱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다. 제물도 자기가 선택한 신에게만 바치는 제물이 아니었다. 폭동혁명에게 바치는 제물 밑에는 한없이 깊은 세계가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진은 상하이 앞에 맞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밤은 그의 번민 때문에 흔들리어 흡사 불꽃으로 꽉 찬 검은 연기처럼 또는 용틀임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것같이 구름 사이로는 성좌가 영원한 운행 속에 빛나고 있었다.
상하이를 북벌 혁명군에게 넘기려 하는 긴박한 시기에 폭동계획이 세워지고 있는 이때, 총이라고는 겨우 2백 정도 못 되는 것이었다. 지금 암살당한 중매인이 정부에 팔기로 계약한 피스톨(약 300정)이 이쪽으로 넘어오면 폭동자는 대단히 유리한 것이고, 그들이 먼저 할 일은 경찰을 무장 해제시켜 그들 폭동혁명군이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은 그 서류를 뺏기 위해 작은 지갑에서 서류를 꺼냈다.
오전 한 시, 지난밤 오후에 쏟아진 소낙비 물이 웅덩이가 되어 빛나고 있다. 불란서 조계(租界)의 종점에 있는 여기는 밤 외는 아무것도 없다. 살인의 세계도 아닌 어떤 생명 어떤 존재의 잡음도 없다. 허술한 상점 앞, 축음기상회, 노어선(盧於宣)과 에멜리크상회이다. 레코드를 진열한 사이에 웃통을 벗은 네 명의 동지들이 있다. 왼쪽에 노어선, 짧게 깎은 머리와 넓은 코 푹 파진 어깨의 에멜리크, 그 뒤에 카토브, 우측에는 기요(淸)지조오르, 이 혼혈아의 얼굴은 구라파에서 흔한 모습과 흡사했다. 그들은 일의 결과를 알고 싶어 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진은 무기 양도 명령서를 기요에게 주었다. ‘대금교환’이란 글자가 쓰여 있는데 진의 포켓에는 사진과 영수증이 있었다. 기요와 카토브가 하는 말에 진이 심한 고독에서 천천히 깨어나 주었다. 언젠가 처음으로 창부와 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누이동생의 존재를 뚜렷이 깨달았던 것처럼…. 광대 같은 러시아인(쾌활한 조그마한 눈, 들창코) 카토브는 죽음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기요에게 진은 기요의 부친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상해 폭동을 좌우할 혁명군이 종착역에 도착할 의미의 분위기였다. 부친을 새벽에 쉬는 일이 없으니 지금 가기로 한다. 진은 필요시에는 지조오르 노인에게 가는 것이다. 거기엔 아무 허식도 없었다. 기요는 폭동 조직원이다. 한구(漢口) 중앙위는 그를 신임하고 있다. 카토브는 1905년 아직 욋과대학생 때 오데싸의 감옥문을 폭파하려다 5년 유형을 언도받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1912년까지 스위스에 망명하고 그 후 비밀리에 러시아로 돌아왔는데, 프랑스어 중국어를 서툴게라도 할 수 있었다.
무기는 에멜리크와 카투브가 어떻게 하기로 하고 무기를 실은 배(산동호)의 정박소를 바꾸게 하는 일이 급하였다. 놈들이 배에 가려면 세 시간은 걸릴 것이니까. 모두 밖으로 나와 중국인 거리를 돌아 카토브와 기요는 희미하게 켜진 초라한 전등 위를 지나갔다. 이 담벽 뒤에는 50만의 사람이 있다. 제사(製絲)공장 직공, 어렸을 적부터 하루 16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 헌데투성이의 척추가 굽은 이들, 굶주림에 우는 이들, 흐릿한 하늘에선 중국 고유의 억센 소나기가 대도시 위에 휘몰아쳐 퍼붓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보잘것없는 삶을 얻으려는 수백만이 넘는 목숨들의 하루살이 발버둥질은 또 다른 힘센 하나의 목숨에 눌리어서 사라지고 있었다. 철망을 한 조계(租界)나 부유한 구역에도 위협 방벽, 창살 없는 감옥의 긴 담벽밖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2월 폭동 실패는 소총 기관총에 대항했기 때문에 당 중앙위는 기요에게 혁명세력의 조정을 명령하였던 것이다. 2백 정의 소총도 지니지 못했다. 낡은 추럭과 자전거에 의지해 연락대를 유지했다. 현실의 거리(길고 어둡고, 무관심한 거리)를 새삼스레 깨닫고 그것이 먼 과거의 것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빔은 어딜 갔을 것 같소? 지조오르 노인을 새벽에 만나러 갔다.
지조오르 노인이 봉황새 그림 있는 방에 진이 와 있다. 진의 두툼한 입술은 그의 선량함을 말한다. ‘달염대를 죽인 건 접니다’ 진의 말에 노인의 눈동자는 따뜻한 그 무엇을 보았는데, 기요가 그걸 안다는 것이다. 진이 자기에게 의지하는 것은 놀라운 건 아니었다. 지조오르 노인은 몇 해 동안 중국어의 뜻으로 진의 은사(恩師)였다. 죽은 진의 부친보다 연령에서 조금 아래지만 어머니보다는 위였다. 진의 부모 모두 죽은 뒤로 지조오르는 진이 필요로 하였다.
남자가 언제까지 자기의 것으로 해 두고 싶을 때는 여자와 같이 생활하면 된다. 그러나 상대가 여자가 아니고 죽음일 때는 죽음과 같이 살면 된다. 노인은 달염대를 죽인 사람을 무척 경멸하겠지만 죽음 자체와 같이 살면 된다 하였다.
열강들과 군벌세력이 베이징을 휩쓰는 불안에 번민하는 학생들은 이 현명한 교수가 있는 힘과 이해력을 다해 그들을 도와주려 손을 뻗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다수가 쁘띠부루조아 출신인 이들에게 교수는 군벌과 결탁하든지 민중에 가담하든지 자기 갈 길을 책임감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성격의 힘이 그들을 이끌었고 진에게도 깊은 애착심이 가는 것이었다. 이런 애착심을 느끼는 이때, 비가 내릴 듯한 어두운 밤에 그 청년이 찾아와서 아직 채 굳지도 않은 피의 이야기를 할 줄이야 어떻게 예상했을까?
기요와 카토브는 헤어졌다. 8개국의 군대가 이곳을 경비한다. 그러나 국민당은 租界를 습격하려는 의향이 조금도 없다. ‘블랙캣’ 캬바레를 지나며 시계를 보니 오전 2시였다. 허물 곁에 머물게 하듯이. 카토브외 기요가 상해에서 돌격대원을 양성한다. 그들은 수류탄을 만들고 훈련시키면서 무기가 부족한 것이 큰 문제로서 적군이 탱크로 밀고 올 때 결사 항전 작전 대비하기로 한다. 끄라삐크는 배를 옮기고 피복창에 있는 동지들이 우리들에게 순경 제복을 마련해 준다고 기요가 말했다.
기요는 단층 중국식 집에서 부친과 함께 산다. 좌우의 흰 벽에는 송왕조 때의 그림(샤르댕식의 푸른 봉황새 그림)이 걸려 있고, 정원 주위에 네 개의 익면(翼面)을 가진 집이다. 호올 안에는 마치 로마시대 조각의 스타일을 방불케 하는 위나라 때 불상이 있다. 작은 소파와 아편 흡입대가 있다. 기요의 얼굴은 수도승 닮은 부친과는 다르게 일본 어머니의 피가 기요의 얼굴 선을 부드럽게 하면서 사무라이식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방금 끌라삐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무기에 관한 것은 함구하고 있지만, 물론 부친을 경계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 목숨에 관하여 자기 혼자서 책임을 지고 싶은 생각이었다. 지조오르 노인은 본래 북경대학의 사회학 교수였는데 그의 강의가 당국의 비위에 거슬리어 장작림에게 쫓겨난 셈이다. 그는 북부 중국에 좋은 혁명단체를 조직했지만 실제 운동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 방에 들어오면 기요의 의지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행동보다도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더 많은 흥미가 끌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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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건」은 A. 말로로 하여금 세계적 작가로 부동의 지위에 올려 놓았다. 이 작품은 행동의 휴머니즘이 인간을 불안에서 건져내는 거화(炬火)의 불빛이며 강철 같은 의지를 찬미한 ‘30년대 전반의 행동문학 르포르타즈 전형(典型)’이라는 찬사로 인해 프랑스 문학상 중에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상이 수여되었다.
이야기 첫머리는 무기 브로커 달염대 암살 장면에서 시작했는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믿는 허무주의자 진은 삶에 의의를 두기보다 죽음에 의의를 두고 있다. 죽음의 의식으로 처절한 고독을 느끼며 사회연대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죽음의 진실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폭동으로 사회적 승리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침내 코민테른 노선에 항거 거역하여 테러 행위 관철을 위해 폭탄을 안고 쟝(蔣)의 자동차에 뛰어들고 빈사 상태에서 권총 자살로 죽는다.
러시아인 카토브 유능한 혁명가로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기요의 죽음에서 고독을 느끼고 청산가리로 자결한다. 기요 등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주음을 기다리다가 기요가 자살한 뒤 고독감을 느끼며 일종의 휴식을 구하지만 불에 타죽을 각오를 한다. 독일인 에멜리크는 축음기商會에서 호구지책하며 아내와 아이를 위해 쟝(蔣)의 테러활동에는 불참하지만 죽음까지 박살된 상태에 있었다, 폭동의 총책임자 기요가 죽은 후 그의 아내 메이는 시부 지조오르 노인에게 모스코바로 가자고 종용한다.
제7부 일본 고베(神戶), 화창한 봄빛. 메이는 돈도 부족하여 걸어서 가마(蒲)의 집으로 향하여 언덕을 오른다. 상해를 떠날 때 지조오르 노인은 노화가 카마의 집에 유숙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걸으면서 북(北)한테 온 편지를 읽는다. 북은 진이 산()과 함께 쟝을 테러하려던 중국인이며 동지를 숨겨줄 별장도 있다. 그렇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변화시킨 것에 의해서만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시부는 문간에서 메이를 기다렸다. 그는 일본옷을 입고 있었다. 메이는 아지테이터(agitator)로서 일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여의사로 병원에 있기로 내일 모레면 블라디보스독에 닫게 된다는 것이다. 지조오르 노인은 카마 화백의 주선으로 여기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맡고 있다.
나는 모스코바에 가고 싶지 않다. 메이, 기요의 죽음은 단순한 고통도 아니고 단순한 변화도 아니야. 그건 일종의 변모(變貌)지. 나는 세상을 그다지 사랑해 온 것은 아니야 나를 세상사람과 연결시킨 것이지. 바로 기요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나에게 존재했던 것이다. 처절한 기분으로 여기서 강의나 하겠다. 마르크시즘은 이미 내 마음속에서 꺼져버렸다. 기요의 눈에는 그게 하나의 의지였지. 그러나 내 눈에는 그건 하나의 숙명이었다. 기요가 죽은 이래 내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는 것이다. 나는 죽음과 삶에서 동시에 해방된 것이다. 내 나이 이미 60살이다.
내가 모스코바에 가서 무얼 하겠다는 거냐? 나에게 잃어버린 자식이 또 있을 것도 아니다. 그녀가 그를 이해하게 된 것은 오직 기요를 위하여 자기에게 준 사랑과 기요가 자기에게 느낀 사랑에 의한 것이다. 이 정신적 짓밟힌 사랑은 그가 판단하고 있던 것과는 낯선 것이었지만. 그가 정숙성(貞淑性)을 사랑해 온 것이 일본 여자를 사랑해 온 것이다. 자기 눈에는 사랑이란 것이 알력이 아니요, 사랑이 깃든 얼굴에 대한 믿음의 명상이요, 가장 조용한 음악의 권화(勸化)요, 가슴을 찌르는 정숙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래도록 인생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엔 인생이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준다. 인간은 현실이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인은 모두 그 증인이므로 노후가 공허하며 그것을 숨겨왔을 뿐이다. 기요의 행동은 기진맥진한 중국 위에 가해진 탄압 속에서 민중의 고통이나 희망 속에 마치 협곡에 새겨진 원시시대의 왕국의 비명(碑銘)처럼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후 지조오르 노인은 음악을 발견했다. 지금 카마 화백이 퉁기고 있는 샤미센(三味線)에 귀를 기울여 오직 정관(靜觀)의 세계를 듣고 있다.
지조오르 노인은 메이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죽은 사람을 사랑하지 말고… 보수를 구하러 가는 노상에서 메이야! 사람은 생활을 만나는 것이다.
1931년 10월 A. 말로는 아내 클라라와 함께 꿈에 그리던 쿄토나 나라의 고고미술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작중에 카마 화백, 기요 같은 인물이 등장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