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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길 위의 축복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은숙(증평)

수필가·증평문인협회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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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에는 유난히 오래 머무는 계절이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바래지지 않는 빛깔과 냄새, 그때의 공기와 체온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간. 내게는 1990년의 가을이 그렇다. 내 기억은 늘 코스모스 길에서 시작된다.
분홍빛과 흰빛 코스모스가 바람 따라 한들거리던 증평의 작은 길, 나는 남편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방에는 소박한 점심 도시락 하나와 태중에는 축복처럼 찾아온 첫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대가족의 막내며느리에게 일주일에 단 한 번 허락되던 외출 같은 시간이다. 남편의 복사 가게가 있던 청주로 향하는 그 길은 생활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피난처였다.
만삭의 몸으로 읍사무소 앞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결코 만만한 여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는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남편의 등에 살짝 기대어 바람을 맞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가을볕 아래 흔들리던 코스모스들은 마치 젊은 날의 우리를 축복하는 작은 깃발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복사 가게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배어 있던 그곳에는 늘 활자가 살아 움직였다. 사람들이 맡기고 간 원고와 책자, 빼곡한 문장들 사이를 오가며 나는 이름 모를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아직 글을 쓴다는 삶을 꿈꾸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어쩌면 문학은 이미 그때부터 내 곁에 조용히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이 위의 언어들이 먼 훗날 내 삶의 한 부분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남편과의 만남 또한 한 편의 운명 같은 이야기였다. 대대로 손이 귀했던 집안의 막내아들인 남편은 대학 시절부터 여러 번 선을 보았다고 했다. 형님마저 딸만 둘을 두자 시댁에서는 유독 딸 많은 집안을 조심스러워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우리 친정 역시 아들 한 명에 딸 셋인 집안이었다. 조건으로만 따지자면 서로의 집안은 어쩌면 비껴갔어야 할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계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친정 이모의 소개로 처음 마주 앉은 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감을 느꼈다. 남편에게 ‘열여섯 번째 선’이었다는 이야기를 훗날 듣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열다섯 번의 만남이 지나서야 서로를 알아보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늦게 온 운명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인연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다. 결혼 후 나는 두 딸을 낳고 마침내 막내아들을 품에 안았다. 시아버님 칠십 세에 얻은 손자였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크셨던지 시아버님의 사랑은 늘 내게로 먼저 흘러왔다.
나는 어린 시절,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아빠’라는 존재는 늘 마음속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도, 세상에 서러움이 밀려올 때도, 그 이름을 불러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 내게 시아버님은 생의 뒤늦은 선물처럼 찾아왔다.
“아버님.”
그 한마디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당신은 묵묵한 분이셨지만 그 침묵 안에는 언제나 따뜻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분 곁에서 비로소 보호받는다는 감정을 배웠다.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오래 바라봐주는 눈빛과 조용히 내어주는 자리 속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님이 계셨기에 며느리 이전에 한 사람의 딸로 살아볼 수 있었다.

 

세월은 쉼없이 흘렀다. 아이들을 키우고 대가족의 시간을 돌보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문학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그 갈증은 생계를 앞세운 일상 속에서 쉽게 꺼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삶은 늘 해야 할 일들로 가득했고,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돌보는 일에 먼저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내 삶에 문학이 다시 문을 두드린 것은 2011년, 시낭송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누군가의 시를 목소리로 전하는 일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었다. 시인의 숨결을 가슴으로 받아 다시 세상에 건네는 일이었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울고 떨고 침묵하는 순간마다 내 안에서도 오래 잠들어 있던 언어들이 조금씩 깨어났다.
문학회 활동은 내 삶의 또 다른 학교가 되었다. 총무로 시작해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거쳐 회장직에 이르기까지 늘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자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회원들의 원고를 챙기고 행사를 준비하며 문학의 울타리를 지키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을 배웠고, 공동체의 온기를 배웠다. 다만 타인의 글을 빛내는 데 마음을 쏟는 동안 정작 내 글은 자꾸 뒤로 밀려나곤 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는 오래된 소망 하나가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내 삶도 직접 써보고 싶다는 바람 말이다. 코스모스 길 위에서 느꼈던 바람의 냄새와 남편의 등에 기대어 웃던 젊은 날의 온기, 그리고 시아버님의 깊은 사랑을 나만의 문장으로 남기고 싶었다.
마침내 2020년, 사단법인 새한국문인협회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등단 소식을 듣던 날, 손끝이 오래 떨렸다. 그것은 단순히 이름 하나를 얻은 기쁨이 아니었다. 삼십 년 전 코스모스 길을 달리던 젊은 새댁이 긴 세월을 건너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낸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문학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남편의 묵묵한 사랑, 시아버님의 따뜻한 품, 그리고 함께 울고 웃어준 문학회 회원들. 그 인연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문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오래된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뒤늦게 배웠다.
이제 나는 안다. 좋은 글은 화려한 문장보다 오래 견딘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본 사람만이 타인의 슬픔도 오래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1990년 가을, 코스모스 길 위에서 흔들리던 젊은 날의 바람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그 바람은 세월 속에서 한 사람의 아내를 지나 며느리와 어머니를 만들었고, 마침내 시낭송가와 수필가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앞으로도 삶의 낮고 따뜻한 자리들을 오래 쓰고 싶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랑과 말없이 견뎌낸 시간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조용한 온기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것이 평생 나를 지탱해준 사랑에 대한 가장 진실한 답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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