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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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겨울을 빨아들이며
한랭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는
그쯤,
나는 여수를 떠나기로 했다
5년의 휴전을 끝내고
다시 도면 위에 설계를 하려고 하니
투명한 눈금들 사이로
사뭇 정든 사람과 흠뻑 풀물이 든 섬과 섬을
붓으로 잇다 보니
거친 바다 물감 냄새가 올라왔다
맛집 앞에 길게 늘어선 이방인들을
경계에 선 구경꾼처럼 낯설게 바라보기도 했다
운동화와 등산화를 두 켤레씩 공물로 바쳤던
고락산과 장도 산책로가 발등만큼 두꺼워졌는데
나는 여수를 떠나기로 했다
그물에서 빠져나간 인연과 변해 가는 어촌 풍경까지도
텃세를 부리던 짐승들의 함성까지도
한때는 내 것이었기에
폭풍에 걸린 섬처럼 잠시 보고 돌아선다
곁에 있던 것들이 모두 사랑이었지만
이젠 구름이 되어 간다
쓴맛도 달게 느껴지면 분명히 내게 선물이다
따스하게 만난 가슴과 웃음 짓던 순간들이
더 깊어지며 활어처럼 살아 펄떡이는데
나는 여수를 떠나기로 했다
맑고 투명한 첫 햇살의 온기로
풍경들은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