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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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에 배달된
덜 말라 비릿한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신선한 책 한 권을 꺼내든다.
누구냐
서툰 춤솜씨에 볼레로*를 틀어 놓고
아직도 토슈즈*를 고치는 너는
나는 너무 가벼워 불안한
개나리 입술 끝에 앉은 봄바람 손을 잡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깃발에 꽂혀 덩실대는
꽹과리 소리를 따라 나선다.
그래, 언제부턴가 달짝지근하게 풍기며
알레르기 체질에 재채기만 연신하게 만든
그 냄새의 주인공도 바로 너였구나.
털껍데기 뒤집어쓰고 고물대던 목련이
진즉부터 수런대고 있었지만
목덜미 서늘한 바람에 모른 척했었다
끼리끼리 한가로이 놀고 있는 오리를 보고
아직도 그런 줄만 알았다
버석대는 마른 풀밭을 어슬렁거리며
줏대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허우대만 멀쩡한 햇살도 그런 줄 알았다.
방금 책 한 권을 던져 놓고 떠난
우체부의 낡은 오토바이 소리가 돌아선
골목집 이층 베란다에서
화사한 여인이 그 닮은 화분을 내놓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내가 잊은 것이 무얼까?
깔끄러운 눈에 몇 장 읽지 않은 책을 덮고
신명나게 떠들던 패거리 뒤를 따른다
돌다리 건너는데 윤슬이 따갑다.
*볼레로: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스페인 민속춤
*토슈즈: 발레를 할 때 신는 끝이 뾰족한 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