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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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가지마다 일이 매달린 나무였다
돌봄과 책임과 역할의 이름들
나를 부르는 소리마다
가지를 뻗듯
응답하며 살았다
어느 날
하나씩 손에서 풀려났다
아이들은 제 길로 떠나고
내가 붙들고 있던 일들도
늦가을 잎처럼
조용히 마당을 떠났다
처음엔
꽃이 지고 난 가지처럼
허공에 남겨진 느낌이었다
쓸모가 빠져나간 자리엔
마른 적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지 끝마다
아직 터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자리마다
작고 단단한 매듭
꽃이 되기 전의 침묵
상실은
끝이 아니었다
피어야 할 것을
안으로 모으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은
아직 꽃이 아니어서
꽃봉오리다
지금의 나도
다만 늦게 오는
한 송이 봉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