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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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스마트폰으로 혼밥하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집 인근 공공기관 식당의 메뉴가 먹을 만하다고 입소문이 자자해 예전에 아내와 한 번 식사했던 곳이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인 구립스포츠센터에 수영하러 가던 길이었다. 식반에는 밥과 동태콩나물국, 계란말이, 김치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최애 메뉴인 콩나물이 동동 뜬 동태국을 보니 맛있게 먹을 아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음이 이내 애잔해졌다. 혼자 식탁에 앉아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아내는 평소에도 식사 속도가 빠른 편이다. 혼자 먹으면 대개 더 서두르게 마련인데, 혹여 허겁지겁 먹다 체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앞섰다. 수영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가는 중이라며 전화가 왔다. 밥 먹고 곧장 수영하면 위에 부담이 가니 좀 쉬다 하지 그랬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괜찮다며 씩씩하게 답했다.
요즘 부쩍 아내는 피곤하다며 낮잠을 자곤 한다. 낮잠을 30분 이상 자면 바이오리듬이 깨져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만류해도 한두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쳤는데 부쩍 기운이 떨어진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산책하러 가자고 청해도 잠을 자겠다며 손사래를 치곤했다.
그런데 내가 고향에 내려온 뒤로 아내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여보, 나 지금 교보문고까지 걸어와서 책 보고 있어요. 갈 때도 집까지 걸어갈 거예요”라며 활기찬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왔다. 평소 산책을 채근할 때는 그토록 무거운 발걸음을 떼던 사람이, 막상 혼자 남겨지니 스스로 길을 나서고 활기를 찾는 모습에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오늘은 불광천에 벚꽃이 만개했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나 역시 합천에도 꽃이 활짝 피었다고 소식을 전하며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아내는 또 집 앞 보름달 사진을 찍어 보내며 “혼자 달 먹었어요”라고 했다. 아내의 ‘달 먹기’는 신혼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습관이다. 영화 <씨받이>에서 옥녀가 임신을 위해 달의 정기를 받는 ‘흡월정(吸月精)’ 장면을 본 뒤로, 아내는 보름달만 뜨면 내게 흡월정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뒤에서 두 팔을 벌려 아내를 번쩍 들어 올렸고, 아내는 크게 심호흡하며 달의 기운을 들이켰다. 자신을 닮은 딸을 낳고 싶어 했던 아내에게 끝내 아이는 생기지 않았지만, 아내는 달의 정기가 건강을 지켜줄 거라 믿으며 보름달이 뜰 때마다 그 의식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오늘밤엔 나 없이 혼자 달을 먹은 것이다.
‘누군가 그리워질 때 우리 마음에는 그림자가 진다.’ 권대웅 시인의 산문집 『그리운 것들은 다 달에 있다』에 수록된 「그림자」에는 ‘그리움에는 그리움의 그림자가 진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내가 보내온 저녁 식반 사진을 마주하자 내 마음에도 혼밥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동안 아내에게 미안했던 마음까지 더해져 그 그늘은 더욱 짙어진 것이다.
권대웅 시인은 대학 시절 친구를 통해 몇 번 마주하곤 했다. 그의 시와 산문에 그림자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을 조금은 짐작할 것 같다. 그 그림자가 시어로 재탄생하며 공감을 넓혀주는 듯하다. 누군가 그리워질 때 마음에 그림자가 진다는 그 애잔한 표현이 오늘따라 유독 가슴에 박힌다. 홀로 숟가락을 든 아내의 저녁상 위로, 나의 미안한 그림자가 아내의 외로운 그림자에 겹쳐진다.
실은 아내와 내가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나누기 시작한 지는 이제 8년 남짓이다. 마흔셋에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8년 전까지도 매일 대학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가족과 식사하는 시간은 뒷전이었다. 아내 또한 내가 작가로 자리 잡는 동안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매일 밤늦게야 귀가했다. 그러다 은평한옥마을에 집을 짓고 나서야 비로소 부부가 마주 앉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내는 요즘 들어 직접 김치를 담그며 음식 솜씨가 부쩍 늘었는데, 정작 나는 고마워하기보다 반찬 투정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12년 전 고향에 집을 지은 뒤 한 달에 한 번꼴로 내려오곤 하는데, 보통 일주일 정도 머물지만 이번에는 일이 겹쳐 어느덧 2주째다. 그 사이 아내는 혼자 한옥스테이를 운영하며 손님맞이를 하고 2층을 오르내리며 집을 지키고 있다.
고향 집에서 나 또한 혼밥을 한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있지만 혼자 밥 먹는 날이 더 많다.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할 때면 내 마음에 그림자가 진다. 설거지해 준다는 말을 빈말로 넘겼던 일, 식사 준비가 다 됐다는 부름에도 이내 식탁에 앉지 않았던 일, 국이나 반찬이 짜다고 잔소리했던 일들이 미안함이 되어 밀려온다. 뜨거운 밥을 입김으로 후후 분다고 타박했던 사소한 기억까지도 아프게 다가온다. 권 시인의 산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그 그림자가 깊을수록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간절히 부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고향 집에 오면 예전 본가가 있던 호수 자락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저녁 상차림을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까지는 누구도 식사를 시작할 수 없던 시절. 그때 먹었던 쿰쿰한 묵은지 내음과 찌개, 무조림의 맛은 이제 짙은 그리움이 되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늘이 되고, 북적이며 밥을 먹던 일곱 가족의 정경이 선명한 그림자로 남았다. 마음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옛 기억은 오히려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아내의 혼밥 사진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나의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한 채 12년 넘게 홀로 식사하셨다. 그러다 2년 전, 꽃들이 만발하던 4월 중순에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부부의 행복은 결국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먹고 마시는지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식반 위로 어머니의 기억이 겹쳐지며, 이 뒤늦은 반성과 깨달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지막이 아내에게 메시지를 띄워본다.
‘여보, 혼밥 할 때는 급하게 먹지 말고 꼭꼭 씹어요. 우리 오래오래 함께 식사하며 행복하게 삽시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