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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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크루즈 여행 3일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은 스페인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했다. 배에서 잠을 자고 매일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크루즈 여행만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20여 년 전 미국 시애틀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까지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나로서는 이번 여행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들뜬 마음으로 시작했다. 바로 전날 다녀온 이탈리아의 제노아,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이어 바르셀로나에 들어서면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30여 년 전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는 다녀온 적이 있지만 제2의 도시인 바르셀로나에는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첫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에 초등학생이 소풍 갈 때처럼 설레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에 대한 명성은 대단했다. 1852년 바르셀로나 근교의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 건축전문학교에 입학한 안토니 가우디는 25세에 건축사 자격을 딴 후 시청 산하의 여러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서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된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카사 비센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엘 별장, 구엘 궁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 아닐까 싶다. 가우디는 1883년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매진했지만 재정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완공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1926년 세상을 떠났다. 가우디는 “나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슬프게도 나는 내 손으로 이 성당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후손들이, 다음 건축가가 이 건축물을 완성시키고 이곳에 빛을 내려주리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성당이 완공되는 2026년은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가우디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마을 레우스에서 주물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 류머티즘으로 병약해 마음껏 뛰놀지 못했던 그는 자연의 곡선과 빛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상상력을 키웠다. ‘신은 직선을 만들지 않았다’는 어린 시절의 깨달음은 훗날 그의 모든 건축물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평생을 바쳐 건설한 이 성당에 착공 이듬해부터 총책임 건축가로 참여한 그는 이후 40여 년 동안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독특한 형태의 이 성당은 자연의 질서에서 구조를 배우고, 빛의 방향에서 신의 의지를 읽은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무처럼 뻗은 기둥, 물결치는 곡선,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의 색조 등 성당 구석구석에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우주를 창조하는 흔적을 닮았다고 평가한다.
우리 일행이 이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안내자의 말을 잘 알아듣기 어려웠다. 성당의 동쪽에서 성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각자 성당을 한 바퀴 돌면서 관광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144년째 공사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는 모두 18개 탑이 솟아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 탑이 외곽을 감싸고, 복음서의 저자 4인과 성모 마리아의 탑이 안쪽을 호위한다. 중앙에는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있다. 하늘에서 보면 나머지 모든 탑이 예수의 탑을 향해 경배하듯 모여드는 형상이다. 이 장대한 서사의 마지막 단계인 예수 그리스도 탑 꼭대기에 십자가를 올리는 작업이 얼마 전에 완공되었다. 이번 십자가 설치로 이 성당은 가우디가 설계한 최종 높이인 172.5m에 도달했다. 독일 울름 대성당(161.5m)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되었지만, 가우디의 목표는 기록 경신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사랑했으며 우리 일행도 다녀왔던 몬주익 언덕의 해발고도는 173m이다. 이보다 0.5m 낮게 설계한 그의 건축가로서의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숫자에는 “인간의 피조물은 신의 창조물보다 낮아야 한다”는 그의 겸손함이 담겨 있다.
성당은 동서남북에서 보는 방향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동쪽은 예수 탄생, 서쪽은 수난(受難), 남쪽은 영광이라는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북쪽은 화려한 조각 대신 신성한 제단을 배치해 고요한 성소를 완성했다. 정부 지원 없이 하루 입장료만 5억 원이 넘는 성당의 건축 현장은 사실상 세계인들이 벽돌 한 장씩을 보태는 인류 공동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2026년 6월 10일은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가우디 서거 100주년 미사와 예수 그리스도 탑 준공 행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144년이라는 이 긴 여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결국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건축주(하느님)는 서두르지 않으신다”던 천재 건축가의 신념이 드디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성당의 이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우리말로 옮기면 성가족 성당(聖家族 聖堂)이 된다. 성가족은 인간이 돌아가야 할 근원적인 본향(本鄕), 즉 안식처를 말한다. 인류가 함께 머무를 영원한 ‘집’을 의미하는 말이다. 말년의 가우디는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성당 공사장에서 살았다. 채식과 단식으로 신앙에 몰두하던 그는 교통사고로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를 ‘하느님의 건축가’로 애도했다. 그의 시신은 성가족 대성당 지하 묘소에 안장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완성되는 날, 비록 나는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없겠지만, 100년 전 하늘나라로 간 안토니 가우디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이 성당을 내려다보면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축복의 메시지를 듬뿍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