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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이동훈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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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며 시작하는/ 갓난아기의 작은 발걸음/ 되돌아오는 추위를 막아서서/ 어린 새봄을 지킨다/ 가진 것은 여린 솜털뿐이지만/ 봄을 덮어 온기를 간직한다(「노루귀」 전문)

 

무엇 하러 다녀오던 길이었는지 잊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산어귀에 핀 노루귀 한 송이를 봤다. 이천 년대 초 지리산 성제봉 활공장에서 내려오던 길이었다.
가슴에 작은 불길 하나가 일었다. 그것이 내 꽃 사진의 시작이었다. 열여덟 살에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이십여 년 만의 일이었다. 산은 내 사진의 시초였고 밑바탕이었다. 처음 산을 찍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는 이미 은밀하게 꽃이 피어 있었으나 당시에는 카메라가 드물었고 찍는 사람은 더욱 드물어 꽃을 찍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노루귀를 본 이후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꽃이 피는 시기에는 성제봉에서 노루귀를 찾아 헤맸으나 결국 찾지 못해 남해로 눈길을 돌렸다. 설흘산 오르는 산길 주변에 지천으로 핀다는 말을 풍문처럼 들어서였다.
노루귀 피는 시기에는 며칠씩 휴가를 내고 온 산을 훑고 다녔다. 비 오는 날도 멈추지 않고 찾아다니다 심한 감기를 앓기도 했다. 그렇게 또 몇 해가 흘렀다. 다른 작가에게 묻지 않은 건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꽃의 자리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당시 야생화 작가들 사이 불문율이어서 그 규칙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말은 나도 당연히 알려주지 않아 야생화를 훼손하는 경우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시 야생화 농원에서 파는 노루귀 한 포기 가격이 삼천 원이었다. 하얀 노루귀, 분홍 노루귀, 청노루귀 가리지 않고 삼천 원이었고, 야생화 화원에 주문하면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포트째 안전하게 배달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야생화를 돈 주고 산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어디서든 불법으로 채취해 집이나 가까운 곳에 옮겨 심었다. 나는 그들의 행위와 자랑을 경멸했다. 야생화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채취해 옮겨 심어도 뿌리가 노출되면 절대 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야생화를 채취해 집으로 가져갔다. 복수초 몇 포기 채취하면서 복수초 자생지인 산비탈 한 면을 온통 뒤집어 놓는 것을, 노루귀를 찾아다니다 거제 깊은 산골에서 본 적 있었다.
나는 그들을 벌하고 싶어 붙잡아 놓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면사무소, 파출소 등에 차례대로 신고했으나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법이 없다는 이유로, 산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두 내 신고를 거절했다.
그해에도 5일 정도 비 오는 산속을 헤매다 심한 몸살을 앓았으나 멈추지 않고 노루귀를 보았다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찾아 헤맸다. 그러던 하루 나를 딱하게 여긴 어느 야생화 작가분이 여수 금오산에 피어 있을 거라는 말을 하며 대강의 약도를 슬쩍 건네주었다.
이십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지만, 처음 본 금오산 노루귀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햇살이 이우는 시간 금오산의 바람은 차가웠고, 꽃송이는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떨고 있었다. 나도 꽃을 바라보며 꽃과 함께 떨었다. 분홍빛 작은 꽃송이, 갈색의 적멸 속에서 슬픔처럼 피어나 한 점 햇살에 의지한 채 보송한 솜털의 무게도 이기지 못하고 떨고 있다. 여린 줄기, 내 마음도 노루귀 곁에서 흔들리며 떨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꽃이 한 번 내게 다가온 이후 천 자의 노루귀가 모두 내게 손짓하며 달려왔다. 봇물 터지듯 일시에 안겨 왔다. 나는 오래 그들을 껴안고 입 맞추었다. 삼월 물오름달이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남녘 거제의 노자산과 통영의 미륵산에서부터 남원 견두산, 대둔산, 중부지방의 수리산과 천마산, 강원도 청태산에 이르기까지.
돌이켜보면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가슴 깊이 사랑했을까. 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을 피해 꽃으로 도피한 것은 아니었을까. 꽃 속에 숨어 세상을 지운 것은 또 아니었을까?
꽃을 만나러 가서 햇살 잘 드는 봄산에 앉아 햇살 속을 유영하는 꽃잎을 바라보며 문득문득 생각했다. 세상은 꼭 그렇게 쓸쓸하거나 아픈 것만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꽃이 피어나듯이 삶도 오래 풍우를 겪으며 환하게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마침내 삶이란 노루귀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노루귀를 가슴에 안으면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적멸을 담고 핀 까닭일 것이다. 사람마다 가슴에 숨어 있는 외로움이 꽃 속에 숨어 있는 적멸을 알아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눈 쌓인 산에 복수초가 피고 눈 녹을 즈음에 바람꽃이 피고 뒤따라 노루귀가 핀다. 복수초는 눈 속에 피면서도 화사함을 잃지 않고 바람꽃 또한 눈부심 외에 어떤 느낌도 들지 않지만, 유독 노루귀에게서는 짙은 외로움이 느껴진다.
저 몸으로 어떻게 혹독한 바람을 견디었을까. 무슨 마음으로 피어 저토록 외로울까. 무리 지어 피어서도 한 송이 한 송이 끝내 외로울까. 노루귀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득한 슬픔이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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